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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하나님의 아픔으로 세상을 치유하라

정현욱 | 2017.10.02 00:28
하나님의 아픔으로 세상을 치유하라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기타모리 가조/이원재/새물결플러스/정현욱 편집위원

하나님의 아픔으로 세상을 치유하라


하나님이 아프시다. 이 책의 결론은 하나님의 아픔이다. 그것은 시작이고, 과정이며, 결론이다. 하나님이 아프다는 말은 위험한 말이다. 신은 아프지 않기 때문이다. 신이 아프다면 그는 이미 신이 아니다. 그러므로 신은 절대 아플 수 없다. 그러나 참으로 신은 아프다. 우리는 이제 아픈 하나님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이라는 도발적인 책의 제목은 1946년 일본의 저명한 신학자 중의 한 명인 기타모리 가조가 고작 서른 이란 나이에 써낸 역작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무정(無情)의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으로 인해 아픔을 느끼며 용서와 사랑으로 공의와 구원을 완성한다고 말한다. 그의 사상은 패전 후 죽음과 슬픔과 고뇌와 삶의 회의를 느낀 일본인들에게 절대적 지지를 얻었을 뿐 아니라 일본의 신학의 수준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들었다. 우리는 이 책을 살펴보면서 그가 주장하는 아파하시는 하나님은 누구시며, 왜 아파하며, 그 아픔의 결과는 무엇인지를 살펴볼 것이다. 또한 그가 주장하는 주요한 논지의 흐름과 한계 등도 살펴보려고 한다. 이 책은 동일한 제목을 1987년 양서각에서 박석규의 번역으로 동일한 제목으로 출판된 적이 있다. 필자는 먼저 목차를 따라 저자의 주장을 간략하게 요약정리한 다음, 그의 주장에 비평적 서술을 하고자 한다.

 

서론

 

일반적 신론에서 하나님은 아파할 수 없다. 아니 아파하지 않는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랑을 증언하신다. 그러나 기타모리 가조는 렘 31:20에서 하나님 아픈 마음에 주목한다. 그는 부록으로 실은 렘 31:20과 사 63:15의 주해를 통해 아프신 하나님을 찾아낸다. 특히 렘 31:20내 창자가 들끓으니내 창자가 아프다고 번역하여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연민의 마음을 강조한다. 이런 하나님의 아픔은 저자의 주장하는 아프신 하나님의 핵심이며, 세상 속에서 내재하고 초월하시는 하나님,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이미지를 끌고 온다. 필자는 저자의 주장을 좀 더 명료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12911장을 주의 깊게 읽을 것을 권한다. 특히 저자 해설을 빠뜨려서는 안 된다. 한국 독자들이라면 역자 해제를 꼭 읽어 봐야 한다. 하나님의 슬픔의 신학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자, 이 책의 한계가 역자 해제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이 책은 난해하다. 일본 정서나 일본의 역사적 배경과 문학에 깊이가 없다면 저자의 주장들은 모호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본론

 

아픔과 하나님은 1장의 주제이며, 이 책의 전체적인 흐름을 주도하며 기저(基底)에 자리한다. 먼저 가장 핵심적인 문장부터 언급해 보자.

 

아픔에 있어서의 하나님은 자기 자신의 아픔으로 우리 인간의 아픔을 해결하여 주는 하나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자신의 상처로 우리 인간의 상처를 치유하여 주는 주님이시다.”(33)

 

서론이자 결론인 이 문장에서 우리는 몇 가지 풀어야 할 중요한 숙제를 발견한다. 먼저, ‘하나님의 아픔은 무엇인가를 밝혀야 한다. 또한 하나님 자신의 아픔으로 인간의 아픔을 해결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세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상처로 우리 인간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뜻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 하나님의 아픔과 예수 그리스도의 상처가 인간의 문제, 즉 아픔과 상처를 해결하고 치유한다는 공식이 만들어진다. ‘구원은 우리의 부서진 현실을 하나님이 끝까지 감싸 안으신다는 소식’(33)이라는 정의에 주목해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픔은 무엇인가? 저자는 에두르지 않고 곧바로 하나님의 아픔은 바로 하나님의 아픔에 기초한 사랑’(34)이라고 밝힌다. 하나님의 아픔에 기초한 사랑은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을 사랑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35)에서 나오는 아픔이다. 즉 공의로 죄인을 죽여야 하는 동시에 사랑으로 죄인을 구원하려는 마음의 격동에서 오는 아픔이다. 하나님의 내재한 마음의 발현이 곧 그리스도이며, 십자가이다. 즉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자신을 죽음에 내주(심으로)... 그 자신이 부서져 상처 입고 아프신 것이다.’(36) 기타모리 가조는 첫 장에서 자신의 모든 주장을 요약한다. 앞으로 이어질 내용들은 1장의 풀이 내지 해설이라 할 수 있다.

 

아픔의 신학을 정의하는 기조는 곧바로 아픔이 없는 하나님을 가르치는 신학에 대하여 절복’(37) 시키야 한다며, 서구 신학과 철학을 비판한다. 바르트, 리츨, 슐라이어마허, 헤르만, 하르나크 등의 신학을 언급하며 비록 적지 않는 부분에서 공감할 수 있지만 벗이여, 이 곡조는 아니오!’(40)라고 말한다. 그는 2하나님의 아픔과 역사적 예수를 언급하며, ‘하나님의 아픔으로부터 역사적 예수로’(62)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예수는 수단이 아닌 하나님의 아픔이란 개념 그 자체 속에 이미 역사적 예수의 필연성’(63)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는 하나님의 진노를 극복하는 하나님의 사랑’(68)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다시 하나님의 아픔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픔에 기초한 사랑’(69)이 된다. 2장까지는 내용을 통해 저자는 하나님의 아픔예수의 상처를 연결한다. 3하나님의 본질로서의 아픔에서는 하나님의 아픔이 곧 예수의 죽음임을 밝힌다. 그는 히 2:10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이 하나님에게 상응하는 것’(85)으로 풀어낸다. ‘상응필연적이며, 아들의 고난은 아버지의 아픔이 된다.

 

복음의 하나님은 아들을 죽게 하는 아버지로서의 하나님, 그리고 그 행위에서 아프신 하나님이다. 아버지가 그 사랑하는 아들, 그것도 독자를 죽게 한다.”(89)

 

그러므로 하나님의 본질은 하나님의 아픔이며, ‘십자가의 언어로부터 해석’(89) 되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하나님의 아픔을 부끄러워하는 영광의 신학과 하나님이 아픔을 품고 있는 십자가의 신학은 길을 달리한다. 4하나님의 아픔에 대한 섬김에서 십자가 신학의 길을 제시한다. ‘자기의 아픔으로써 하나님의 아픔을 섬기라.’(97)고 충고한다. 그렇다면 자기의 아픔즉 우리의 아픔은 무엇인가? 저자는 자기의 사랑하는 자를 괴로움 속으로 보내어 그를 죽게 한다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 가장 큰 아픔’(103)이라는 모호한 표현을 사용한다. ‘어버이와 자녀 사이’(103)를 인간의 가장 큰 아픔으로 보고 있다는 것은 의아하다. 왜냐하면 인간이 가장 사랑하는 존재는 자녀가 아닌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마도 후에 일본의 문학을 인용하며 인간의 비참을 설명하기 위한 저자의 일본식 사유일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저자는 우리의 아픔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우리의 아픔이 성화되는 것이며, 그 아픔으로 하나님을 섬길 때 올바르고 의의 있는 것이 된다’(105)고 말한다. 좀 더 풀어낸다면 인간의 아픔으로 하나님의 아픔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내어줌(버리고 죽임)으로 사람을 섬겼듯, 사람도 자신의 가장 중요한 자녀를 버림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약간 모호한 이 설명은 다음 장인 5장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5장은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를 다룬다. 31:20을 통해 하나님의 아픔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픔은 본래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으나 사랑을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실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으로 본다. 인간이 하나님의 아픔을 알고, 동참하는 것은 인간 자신의 아픔을 통해서’(116)이다. 여기서 인간의 아픔은 하나님의 아픔의 상징이 되고, 그 아픔을 매개로 하나님과 인간이 결합’(119) 한다. 하나님과 인간의 결합은 인간의 아픔을 하나님의 아픔(십자가)으로 치유하게 한다. 하나님의 아픔은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이며, 동시에 사랑이다. 저자는 이것을 하나님의 아픔에 기초한 사랑’(124)으로 정의한다. 인간이 자신의 아픔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예수의 죽음이 항상 우리 몸에 짊어지워져 있어야만 한다’(고후 4:10)는 바울의 충고를 따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 결합을 곧장 6장에서 아픔의 신비주의로 이끈다. 6장은 다음 문장으로 요약된다.

 

우리의 아픔은 하나님의 아픔과 합일하기 위한 통로가 됨으로써 비로소 치유되고 구원되며, 또 의의 있는 것이 되기에 이른다. 우리의 상처는 주님의 상처에 의해 치유되는 것이다.(벧전 2:24)”(159)

 

7하나님의 아픔과 윤리에서는 이웃과의 관계를 다룬다. 그가 주창하는 아픔의 윤리는 하나님의 아픔을 공유함으로 이웃과 이어질 수 있다. 죄는 사랑을 배반하는 것’(179)의 다름이 아니다. 아픔의 신학은 자신을 배신한 죄인들을 사랑한 것에 기초하듯, ‘아픔의 윤리역시 상대가 우리의 사랑을 배반하여 원수가 될 때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 상대를 계속하여 더욱더 사랑’(185)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픔의 윤리는 단회적이지 않고 항상성에 있다. 저자는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명시(明示) 한다. 아픔의 윤리는 항상 실패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거절하는 이들을 끝까지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력해야 하고, 애달프고, 미완성으로 남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숙명적 패배’(188)로 정의한다.

 

이 윤리가 패배한 까닭에 우리는 끊임없이 반복하여 죄의 용서로서의 하나님의 아픔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사랑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아픔에 기초한 사랑이기 때문이다.”(188)

 

기타모리 신학의 모순과 한계

 

필자의 논지를 더 이상 따라갈 필요는 없는 듯하다. 8장부터 10장까지는 독자들에게 맡긴다. 저자의 한계이자 모순이 드러나는 부분은 바로 11장이다. 여기부터는 역자의 해제를 따를 필요가 있다. 이 책의 출판 연도는 일본이 미국에 무조건 항복한 직후인 1946년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일본인들이 가지는 패전 후의 우울함과 피해 의식을 감싸 안는 작업을 하게 된다. 저자의 의도이든 아니든 이 책은 그 역할을 충실히 해 나간다. 1987년 양서각에서 출간된 처음 출간될 때 역자인 박석규 목사는 기타모리 가조에게 직접 배운 제자이다. 이 책이 출판된 시기는 패전 직후, 아픔과 죽음, 그리고 상실이 일본 열도를 지배하고 있었다. 이 책은 아픈 일본인들에게 하나님께서 당신들과 함께 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지금까지 살펴본 논지를 따라가보면 아픔을 가진 일본인들은 아픈 하나님과 깊은 연대 의식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그것은 보편화된 당시의 정서였다.

 

11장인 하나님의 아픔과 복음사라는 제목으로 억지스러운 주장을 한다. 그는 초대교회의 신학을 그리스-로마적인’(259)으로 규정한다. 초대교회 가장 중요한 신조였던 니케아 신조와 아타나시오스 신조를 언급하며 정작 그리스-로마적 교회의 신학은 이른바 내재적 삼위일체라는 형태로 결정화’(260) 되었다고 단언한다. 구속사적 의미를 가진 경륜적 삼위일체는 원시교회로부터 계승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이 교회의 고유한 발언이 아니다.’(260)라고 강조한다. 또한 종교개혁을 통해 이루어낸 게르만 신학역시 전혀 발전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의 말을 직접 인용하며 그리스인의 마음은 하나님의 아픔을 보는 눈이 결여되어 있, 게르만 신학 역시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픔이 관심을 끌었다고 생각할 수 없다’(262)고 주장한다. 그럼 무엇이 문제일까?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것은 다름 아닌 일본의 비극 문학이다. 또한 일본 비극은 다른 나라의 비극과 현저히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266)으며, 일본인만의 특유한 인간관계의 비극은 쓰라림つらさ이란 것이다.

 

일본 비극의 근본인 쓰라림은 타자를 사랑해서 살리기 위해 자기를 괴롭히고 죽게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사랑하는 자녀를 괴롭히고 죽게 하는 데서 실현된다.”(271)

 

일본 비극 속에서 나타난 쓰라림은 하나님의 아픔에 가장 깊이 호응한다’(271)고 말한다. 필자는 4하나님의 아픔에 대한 섬김을 설명하면서 저자가 인간의 아픔을 자녀를 버림으로 해석한다. 필자의 이러한 주장은 11장에 나타난 일본의 비극에서 인간의 아픔과 하나님의 아픔의 결합’(5)을 저자가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는 복음사를 고찰하며, 앞서서는 거주의 경계로서의 공간적 계기에 입각해서 이루어졌고, 다시 시기의 한계로서 시간적 계기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272) 그리스-로마적 신학과 게르만적(루터) 신학의 완전하지 못한 이유는 그 시대가 아픔과 죽음이 희소한 까닭이다. 저자는 당돌하게 이렇게 주장한다.

 

하나님의 아픔의 복음은 영원한 진리인 까닭에 그것은 어떠한 시대에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 그리스적 신학이나 근대주의적 신학이 탄생했던 시대는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픔을 파악하기 곤란한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은 가장 우세한 의미에서 죽음의 시대이자 아픔의 시대이다. ... 여기에 복음사가 시기의 한계를 그 계기로 삼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된다. 하나님의 아픔은 아픔의 시대에서 야말로 파악될 것이다.”(273)

 

우린 여기서 저자의 억지스러움과 모순을 발견한다. 저자의 의식 속에는 일본식 신학이야말로 가장 완전한 신학이며, 완성된 단계에 있다고 본다. 바로 이 부분에서 기타모리 가조가 일제 강점기 시절의 일본이 조선에 심은 식민주의 사상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불교의 용어와 사상을 그대로 가져옴으로 서구 신학의 퇴보를 무의식중에 강요하며 일본의 불교 정신이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에 더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저자의 기저에는 서구를 비판하고 동양, 특히 일본만을 찬양하는 전형적인 일본인의 천황 숭배 사상이 전제되어 있어 보인다. 단 한 번도 가해자로서의 일본을 비판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피해자로서의 하나님의 아픔과 연대하려는 성향은 비겁해 보인다. ‘하나님이 아픔은 일본의 마음에 의해서야말로 선명하게 우러러보게 될 것’(274)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오직 일본이라는 자만(自慢)이 숨겨져 있다.

 

나가면서

 

기타모리 가조의 이 책은 탁월하다. 그의 책은 몰트만을 비롯해 적지 않은 신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동안 영원한 하나님은 곧 불변의 하나님의 하나님, 또는 무정의 하나님으로만 상정되었다. 그러나 기타모리 가조 덕분에 새로운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아파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공의와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며 고뇌하는 하나님의 아픔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결미에서 민족 주위로 환원했고, 가해자이면서 피해자 코스프레로 하나님의 아픔과 일본의 패전을 결합시켰다. 그는 아픔사랑으로 새로운 복음을 제시했지만 현저하게 신학을 축소시켰다. 서구 신학에 함몰되어 한국의 신학을 만들지도 못한 우리나라에 비해, 기타모리 가조는 서툰 방법으로 서구 신학을 일본 신학으로 변형 시키려 했다. 우리나라는 빵을 굽기 시작하지도 않았다면, 기토모리는 너무 태워버린 격이다.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은 시대의 요청이다. 아픔을 간직한 이웃을 섬겨야하고 복음을 전해야 한다면 이제 아픔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약간의 난해함을 주기는 했지만 시대를 통찰하는 귀한 책이다. 저자의 일본식의 전제와 결론을 제하고 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 분명하다. 시대를 고민하고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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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참으로 독특합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놀라운 위로를 받습니다.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영광과 위엄을 느낍니다. 우리의 어떠함보다 존재 자체를 받아주고 귀하게 여깁니다. 그 안에서 한없는 평안과 사랑을 누립니다. 함께 울고 웃는 사람들로 인해 진정한 하나 됨을 경험합니다.반면 교회에서 우리는 좌절과 실패, 억울함의 기억도 있습니다. 세상보다 더하다고 생각들 때가 있습니다. 배제와 혐오, 편견과 차별이 만연합니다. 그것이 거룩함이라고 포장됩니다.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 보입니다. 탐욕으로 눈...
이제야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 이제야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
따름, 그 회복의 여정
오지영/Ivp/모중현 편집위원


'만남'은 우리 인생을 변화시킵니다. 누구를 만나는지와 그 만남의 깊이와 친밀함의 정도에 따라 변화의 폭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인생의 막다른 길에서, 더 이상 나의 방법으로 헤어 나올 수 없을 때, 누군가의 만남이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음을 기억합니다.'복음'은 교리의 모음이 아닙니다. 해야 할 것들의 목록도 아니지요. '복된 소식'은 '만남'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우리에게 가장 큰 '좋은 소식'입니다. 하나님이 인간 되셔서 친히 우리에게 만나자고 말씀하시며, 손을 내밀어 주시고, 함께해 주시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그 ...
함께 눈물 흘릴 수 있다면.. 함께 눈물 흘릴 수 있다면..
우리의 춤은 변하여 슬픔이 되고
전원희/지우/모중현 편집위원


기쁨과 행복이 강요받는 시대입니다. 힘들어도 기뻐하라 합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감사하라고 합니다. 눈물을 빨리 닦고 다시 일어서라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충분하게 울어보지도 못한 채, 경쟁의 틈바구니 속으로 재차 들어갑니다. 소리 내어 크게 충분하게 울고 싶었는데 말입니다.우리에게 어쩌면 슬픔에 오롯하게 잠기어 있는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한 시간은 고요하게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이 됩니다. 아픔을 부둥켜안고 오랫동안 울어본 사람만이 타인의 고통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그들의 눈물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성경에도 기쁘고...
온전함을 위한 발걸음 온전함을 위한 발걸음
역설
파커J.파머(Parker J. Palmer)/김종훈 /템북/모중현 편집위원


세상 한복판에서 살아가지만 세상과 같지 않아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 자체로 역설입니다. 강렬하게 통합된 삶을 원하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은 우리의 실제 삶과는 많이 다릅니다. 우리는 현실의 문제 앞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존재의 연약함으로 좌절하곤 합니다.개인적인 모순과 역설로도 벅찬데, 세상으로 나가면 더 큰 혼돈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자신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부분이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가장 큰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겸손은 나약함으로 보이기도 하고, 진취적인 모습은 교만으로 비치기도 합니다.작가이자 교사, 활동가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여정에 동참하는 일상 예수 그리스도의 여정에 동참하는 일상
고난은 사랑을 남기고
김기현/두란노/모중현 편집위원


해마다 사순절이 되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평소보다 더 많이 묵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십자가의 의미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시간이 갈수록 십자가가 보다 분명하게 우리의 삶 한가운데로 들어와야 한다고 느껴집니다. 우리 삶에서 십자가가 해석되고 적용돼야 한다는 말입니다.사순절의 기간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고난을 마음 깊숙이 새길 수 있는 유익한 절기입니다.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이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선명하게 우리의 일상과 맞닿을 수 있는 고난과 십자가에 대한 묵상이 우리에게 요구됩니다.말씀 자체의 묵상도 ...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
버텨 줘서 고마워
한미연/세움북스/모중현 편집위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치유하는 일은 지금도 일어납니다. 공개적으로 추천하지는 않지만, 절체절명의 순간에 내밀하게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은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은사 자체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깨어 있는 열린 마음이겠지요.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면, 때로는 미련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적당하게 지혜롭게 살아가도 괜찮을 텐데 말이죠. 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은 다양하고, 하나님께서는 각자의 성향과 은사에 맞게 필요한 것들로 채워주십니다. 인내와 순종의 삶에 하나님은 세밀...
그림을 통해 꿈꾸는 세상 그림을 통해 꿈꾸는 세상
교회 옆 미술관
구미정/비아토르/모중현 편집위원


예술에 관심은 많지만, 듣고 보는 것을 잘 이해하고 누리지는 못하는 듯합니다. 중학생 때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던 피카소 작품전이 생각납니다. 처음으로 접하는 그림이 하필 피카소라니요. 뭔가 모를 꿈틀거림이 있었지만, 그것을 표현하기에는 여러모로 어렸습니다.작품을 대할 때는 사전 지식과 더불어 직관적으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 두 가지가 공명할 때 제대로 작품을 알 수 있습니다. 음악이나 미술이 우리에게 말을 건네며, 그것을 통해 우리는 깊은 감동을 경험합니다.특별히 성경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한 '성화...
하늘과 땅을 잇대는 교회 하늘과 땅을 잇대는 교회
우리는 날마다 교회가 무엇인지 묻는다
이재학/샘솟는기쁨/모중현 편집위원


개인적으로 신학의 각론 중에 가장 어려운 부분은 교회론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과 우리가 경험하는 실제적 교회의 차이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실재로서 교회가 존재해야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슬프고 암담하기까지 합니다.물론 성경에서 나오는 초대 교회도 말도 많고 탈도 많았습니다. 그 갈등을 중재하고 새로운 해법을 모색하고자 바울은 편지를 적었습니다. 바울은 완벽하게 정리된 교리 모음집을 주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 교회의 어려움과 문제에 대처하고자 그 상황에 가장 걸맞은 처방전을 제...
장벽을 넘으시는 예수님 장벽을 넘으시는 예수님
비트 주세요, 주님
지푸, 최재욱, 이창수/이야기가 있는 집/모중현 편집위원


참 많은 장벽이 존재합니다. 역설적이게도 교회에 더 많은 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교회에서 '거룩'이라는 단어는 좀 더 정제되고 점잖은 표현이나 태도를 뜻하게 된 듯합니다. 기존의 문화와 다르면 재빨리 선을 그으며, 세속적이라 비난할 때도 있습니다.그 틈을 메우려 했던 사람들 중에서도 성속의 이분법을 완전하게 넘어서지 못한 사람들이 보입니다. 가령 힙합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지만, 언어는 부드러워야 하며, 내용은 복음적이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물론 아직도 힙합이나 랩이라는 도구를 불편해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습니다....
죄인과 소외된 사람들이 환대 받는 교회 죄인과 소외된 사람들이 환대 받는 교회
어쩌다 거룩하게
나디아 볼즈웨버(Nadia Bolz-Weber)/윤종석/바람이불어오는곳/모중현 편집위원


교회에 대해 고민이 많아지는 요즘입니다. 교회는 무엇이며, 어떠한 모습이어야 할까요? 정답은 보이지 않는 듯합니다. 다양한 이론만큼이나, 실재하는 교회는 저마다 다른 모습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은혜를 누리기도 하지만, 실패와 좌절을 맛보기도 합니다.중요한 요소들이 많이 있겠지만, 교회에 무엇보다 우선되는 것은 죄인을 환대할 수 있는 은혜의 능력일 것입니다. 소외된 이웃, 불편한 사람일지라도 너끈하게 감당하며 포용할 수 있는 모습 말입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교회조차도 깨어진 죄인들의 모임이니까요.결국 죄인이 죄인을 수용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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