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김민석 작가의 작품은 만화라는 도구로 성경과 신학을 접목하여 대중과 현대인들에게 기독교를 소개한다. 이러한 작업은 믿음의 초보자들과 일반인들에게 기독교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소개하는 좋은 초청장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신앙 초창기에 있는 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기존 성도들에게도 신선한 자극과 도전을 준다. 이미 세상의 뉴스를 통해 고발당하고 빌라도의 법정에서 수치를 당하는 기독교와 교회에게 그의 작품은 잠자는 영혼을 깨우는 확성기가 되고 있다.
이 책은 이미 온라인을 통해 연재되었고 책으로도 출판되었지만 조금의 수정과 보완을 거쳐 새로운 옷을 입고 새물결출판사에서 재판되었다. 저자의 교회에 대한 고민과 상처와 소망들이 책을 통해 드러난다. 비단 그가 가진 아픔과 희망이 아니라 지금 교회에 속해 있는 성도와 교회를 떠나있는 모든 성도들의 마음을 대신한 것이라 여겨진다. 필자 또한 학생 때 다녔던 교회를 떠올리면 관계에서는 기쁨이 있지만 진리에 있어서는 질식이고 모범에 있어서는 불량이었음을 고백하게 된다.
독재시대와 경제성장시대를 거친 교회들은 시대의 한계 속에서 그러한 세상의 가치를 분별하며 저항하지 못하고 그대로 답습했다. 교회가 권력의 핵심부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인 것처럼 가르치고 기독교가 권력화 되어 힘을 갖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여겼다. 복음의 참된 의미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삶의 원리를 알지 못하고 세상을 지배하고 정복하는 힘의 논리로 교회의 정체성을 보여주었다.
이 책은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회복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지어진 책이다. 교회를 세워가기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하고 사람이 그 역사를 이어가지만 그 사람은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사람이어야 한다. 자기의 욕망을 교회 안에서 이루려는 사람은 교회를 훼손할 수 있고 병들게 할 수 있다. 세상의 방법으로 교회를 운영하는 사람은 교회의 본질을 왜곡하고 교회의 정체성을 흐릿하게 할 수 있다.
저자는 ‘에끌’이라는 소녀 주인공을 통해 현대교회가 얼마나 나쁜 약을 먹고 있는지 보여준다. 마치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생명나무 열매를 먹는 것이 아니라 먹지 말라고 하신 열매를 먹는 것 같다. 저자도 성경 속에 이 언약과 명령을 사용하여 자신의 스토리를 전개한다. 교회가 먹어야 할 음식은 오직 생명의 말씀이며 진리가 교회의 인격이 되도록 해야 한다. 에끌을 통해 표현되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임을 기억하여 신실한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한다.
현대교회가 먹고 있는 나쁜 알약은 무엇일까? 저자는 콘스탄틴 후에 높은 강단 중앙에 서서 목사의 설교에만 의존하는 제도화된 극장식 예배를 말하고 있다. 이것은 실제 중세 시대 라틴어로만 설교될 때 하늘을 향한 음성을 닫아버리는 것이 되었고 성도를 무지하고 영적으로 잠자게 만드는 무서운 형식이 되었다. 목사의 설교를 통해 교회가 부흥해야 하는데 오히려 잘못 맺어진 관계와 제도를 통해 교회는 사람들의 욕망이 모이는 곳이 되었다.
또한 교회의 건물을 화려하게 짓고 성공과 번영신학을 추구하는 공동체가 된 것이다. 기독교가 국교화 된 이후 교회의 거룩성과 교회의 보편성은 상실되었다. 교회는 갈수록 약자를 향하는 하나님의 심정이 담긴 삶과 예수님께서 베푸신 긍휼의 삶을 살아내지 못하고, 복음은 자신의 인생을 위해 이용하는 도구가 되었다. 겉으로는 몸집이 커져가고 있었지만 속은 병들어가고 있었고 교회와 성도는 약해져가고 있었다.
그리고 교회 안에 회개 없는 교회와 회심이 없는 삶을 다루고 있다. 교회는 몸만 나오면 되고 자신을 더 있어보이게 하는 장신구가 되었다. 몸에 있는 모든 장신구를 떼고 하나님의 앞에 성결이라는 장신구를 붙여야 할 텐데 값싼 복음 값싼 기독교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이 부분이 제일 큰 문제라 여겨진다. 바울신앙보다 디모데신앙이 교회 안에 대부분이라지만 그래도 자신의 죄와 비참함을 모르고 살아가는 신앙생활이 많다는 것은 교회가 영적인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세 가지의 치유책을 제시한다. 근원으로 돌아가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라, 막연한 믿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신실함을 회복하라는 것이다. 한 교회에 세워진 목사는 분명히 그 공동체에서 말씀의 정점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능력있고 하나님의 심정을 보여주는 설교를 전해야한다. 그리고 성도는 그 말씀을 통해 깨어지고 회개하고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을 전부로 여기는 신앙이 되어서는 안되고 초대교회처럼 그 말씀이 어떠한지 상고하고 역동적인 성경공부와 풍성한 나눔이 있어야 할 것이다. 목회자가 우상화 되고 설교가 상품취럼 취급되고 소비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진리는 독점이 되어서는 안되고 공유되고 확인되어져야한다. 설교가 교회 안에서 너무 중요하지만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지 작지만 무거운 만화를 통해 다시 점검하게 된다.
시편을 보니 세상의 방법이 높임 받을 때 악인들이 곳곳에서 활개를 친다는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은 교회에서도 적용이 될 것 같다. 교회가 주님께서 교회를 어떻게 사랑하셨고 교회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알지 못하고 세상의 논리와 방법을 따를 때 교회에는 주님이 주신 십자가의 길을 가는 신실한 제자는 없어지고 자신의 꿈과 욕망을 이루려는 탐욕의 공동체가 될 것이다. 교회 안에 주님의 방법이 높임받지 못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성도가 붙잡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에스겔이 이것을 배에 넣고 창자에까지 채워 말씀이 인격이 되게 한 것처럼 성도는 그 말씀을 먹어야하고 살아내야 하는 사람이다. 이 땅 어디에도 안전지대는 없다. 오직 주님의 말씀순종만이 성도의 안전지대이다. 그러니 성도는 그리스도의 신실함을 기억하여 그분처럼 한 방향으로의 오랜 순종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그럴 때 그 한 명의 성도를 통해 교회는 건강해질 것이고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의 모습을 회복해 갈 것이다.
교회는 예수님이 세우는 것이다. 사람의 생각도 세상의 방법과 논리가 다스리는 곳이 아니다. 주님이 피로 사신 교회이고 직접 세우신 곳이다. 이곳은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곳이다. 그러나 교회의 머리가 주님이 되지 못하고 사람이 될 때 하나님의 영을 거부하는 일들이 일어난다. 내가 교회를 세워가는지 주님께 순종함으로 세워가는지 늘 말씀에 입각하여 점검해야 할 것이다. 내가 내 교회를 세운다는 주님의 말씀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져가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