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어둠속에서 진리의 빛을 밝힌 이들
누군가에게 종교 개혁사는 ‘점수’이고, 누군가에게 종교 개혁사는 ‘피’다. 지상의 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많은 헌신과 희생이 필요하다. 하물며 종교개혁은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던 것일까? 종교 개혁사를 ‘루터’라는 한 사람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절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루터와 함께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함께 개혁에 동참한 이들이 있었고, 곁에서 보이지 않게 지원하고 후원한 수많은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또한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키기 위해 발판이 되어준 이들이 있다. 얀 후스를 비롯하여, 존 위클리프 등이 바로 그들이다. 종세교회의 타락한 교회를 바로 세우고, 오직 성경으로 교회를 세우려 했던 이들이 흘린 피가 ‘때가 차매’ 루터에 의해 종교개혁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종교개혁사 문헌들을 살펴보면서 종교개혁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것도 아니고, 루터의 탑의 경험을 통해 갑자기 일어난 것도 아님이 분명해졌다. 저자는 그동안 존 위클리프와 얀 후스에게만 한정되었던 개혁 정신의 뿌리를 발도인들에게서 찾아낸다. 발도인들의 정신은 존 위클리프에게 전해졌고, 위클리프의 정신은 다시 얀 후스에게 전해진다. 그리고 얀 후스의 예언처럼 100년 후, 루터라는 백조가 날아오른다.
종교개혁사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공부해본 이들이라면 저자의 집요함이 얼마나 대단한지 단박에 알 수 있다. 머나먼 2차 또는 3차 문헌에서만 희미하게 읽혀지던 종교개혁의 뿌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줄 뿐 아니라 종교개혁가들과 상관성을 밝힌다. 박응규 교수는 저자에 대해 ‘오랜 기간 프랑스에 살면서 선교사로서 또한 개혁 교회의 역사 연구자로서 치열하게 살아 왔다’(12쪽)고 평한다. 그렇다! 저자는 ‘치열함’으로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 그 치열함은 그동안 점으로서의 종교개혁 이전의 교회사를 ‘선’으로 만들었다. 필자는 ‘선’이라는 표현도 좋지만 ‘통로’ 또는 ‘수로’라고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상이 오염되어도 지하 깊은 곳에서는 오염되지 않는 지하수가 흐른다. 교리가 오염된 중세교회가 천년을 교회사를 지배했지만 알바인들과 바울인들은 진리의 수로가 되어 정통 교리를 지켜왔다.
이 책은 루터의 종교개혁이 중세 교회 속에서 순수한 교리를 지켜왔던 발도인, 알비인, 바울인, 카타르인들의 사상을 전승 받아 일어난 것임을 밝히기 위해 저술되었다. 위클리프와 후스를 넘어보지 못한 필자에게 그들은 낯설고 어색하다. 종교개혁은 부패한 중세교회에서 떨어져 나가 새롭게 일어난 교회가 아니라 초대교회가 지켜온 전통을 다시 회복한 사건임을 알려준다. Part1-2에서는 종교개혁이 중세교회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 아니라 원래의 초대교회로 다시 돌아간 것임을 증명한다. Part2는 종교개혁이 일어나기까지 교회사를 간략하게 정리하여 서론 역할을 한다. 중세교회는 초대교회의 전통을 지킨 것이 아니라 ‘새로운’ 수많은 거짓된 전통을 만들어 냈다.
“이처럼 로마주의자들은 자신들이 고대로부터 기원하는 척 주장하지만, 그들의 혁신(반동 종교개혁)과 그들이 고안하여 도입한 대부분의 주요 교리들은 고대성과는 전혀 무관한 신제품들이다.”(90쪽)
참으로 그들은 진리의 말씀을 ‘부식’시켰고, 순수한 신앙에 거짓된 교리를 양념처럼 ‘추가’했다. 종교개혁은 ‘탄생’이나 ‘설립’이 아니라 ‘회복’(91쪽)인 것이다. Part3-4에서는 루터가 등장하기 전까지 개혁교회의 역사를 살핀다. Part4에서 개혁사상의 뿌리가 되는 발도인들의 역사를 추적한다. 발도인들은 사도 바울이 전파한 복음을 순수하게 간직한 공동체였다. 콘스탄티누스 이후 기독교가 국교화 되면서 교회는 급속히 타락의 길을 걷는 이 때, 순수한 복음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만드는데 이들이 바로 발도인들인 것이다. 베즈에 의하면 ‘120년경에 이미 발도인들의 기원이 되는 공동체’(206쪽)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피에몽 계곡에 보두아 교회를 설립하고 10세기 이상 지내왔다.(207쪽) 프랑스가 강력한 가톨릭교회였지만 수많은 개혁주의자와 개혁 정신을 고수한 위그노가 출현한 이유가 발도인들이 고대로부터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종교재판으로 순교한 수많은 위그노들은 고대 발도인들을 뜻하는 ‘레옹인들(Leonisters)’이었다. 발도인들의 신앙 고백은 종교개혁가들의 고백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1120년에 나온 발도인들의 신앙고백의 일부이다.(92쪽에서 요약 발췌)
*우리는 사도신경의 열두 조항에 담긴 모든 것을 믿고 단호하게 지켜 왔으며, 이와 일치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 이단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삼위일체이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믿는다.
*우리는 권 받는 자와 저주 받는 자를 위한 천국과 지옥 두 장소만 믿는다. 연옥은 고안된 상상의 장소이며, 진리를 반대하기 위해 고안해 낸 것임을 믿는다.
*축일, 성인을 위한 예식, 성수, 특정한 날의 금식들은 속죄를 위하여 고안한 인간의 발명품들이다.
*우리는 성례전을 거룩한 것들의 표식 또는 보이지 않는 축복의 상징으로 여기며 세례와 성만찬만을 인정한다.
발도인들은 존 위클리프에게 영향을 주었고, 위클리프는 얀 후스에게, 얀후스는 루터에게 초대교회로부터 흘러 내려온 진리의 생수를 흘려보냈다. 초대교회 전통을 가장 명징하게 드러낸 종교개혁가들이 대부분 프랑스 출신인 이유는 ‘거기에 발도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Part4에서는 바울인들을 다룬다. 프랑스를 중심은 남동부에 자리한 이들은 발도인들이며, 남서부에 머물렀던 이들을 카타르인들로 부른다. 바울인들은 시리아 서부에서 초대교회 전통을 지킨 이들을 말한다. 저자는 필립샤프와 에드워드 기번 등의 역사가들에 의해 발도인인과 그 비슷한 부류의 신앙인들이 마니교도들이라는 오명이 씌워졌다고 말한다. 기번에 의하면 바울인들은 콘스탄틴이란 사람에 의해 653년경에 시작되었다. 동방정교회가 성경에서 벗어나 점점 수많은 의식과 오류로 점철되어질 때 콘스탄틴은 직접 성경을 읽고 가르치기 시작한다. 콘스탄틴은 바울의 동료였던 실바누스(실라)의 이름으로 개명하고 바울을 존경하며 그를 따랐다고 한다. ‘성경에 집중’(362쪽)했던 콘스탄틴의 가르침은 동방정교회에서 나와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게 되고, 핍박도 더불어 받게 된다. 바울의 가르침과 삶을 모방하여 철저한 성경 중심의 삶을 지향했고, 바울의 전도여행을 모방해 전도 여행을 떠났다.
이 책은 종교개혁의 뿌리를 살핀 책이다. 대개 종교개혁은 중세교회로부터 떨어져 나간, 아니면 중세교회에 반대하여 다시 초대교회로 돌아간 운동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초대교회로부터 참교회는 은밀하게 숨겨진 채 존재해 왔고, 종교개혁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시간적 의미가 아니라 ‘순수한 복음’(65쪽)을 회복하고,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말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참 교회가 끊어지게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순수한 진리를 ‘계승하고, 보존하며, 계대하고, 전도하기 위해’(66쪽) 사람들을 사용하셨다.
지금까지 읽은 그 어떤 책보다 현장성이 뛰어나다. 역사적 장소를 찾아가 직접 확인하기를 마다하지 않은 흔적이 역력하다. 이처럼 귀하고 탁월한 책을 필자의 어눌한 글로 인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그동안 전혀 생각지도, 들어보지도 못했던 진리에 헌신한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형언할 수 없는 감동과 기쁨을 선물 받았다. 하나님은 아무리 어둡고 탁한 시대라 할지라도 우상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을 남겨 놓으신다. 이 책은 그것을 역사적으로 증명해 보인다. 부디 많은 이들이 이 책을 통해 교회를 지키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