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바울서신의 배경사가 되는 뛰어난 소설
바울서신의 배경사가 되는 뛰어난 소설
신약학자가 이렇게 소설을 잘 쓸 수 있을까? 책을 통해 로마가 지배했던 고린도의 상황과 역사와 배경을 아는 것도 유익했지만 역사를 재구성하는 저자의 상상력에 더 감탄했다. 한 편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고 드라마를 보는듯했으며 고린도가 머릿속에 그려지기도 했다. 최고의 권력자인 아이밀리우스의 양자의 제안에 갈등하고 고뇌하는 니가노르의 모습이 그려진다. 알렉시아의 얼굴을 보며 달아오르는 그의 얼굴이 보이고, 그의 친구 검투사 크라쿠스의 든든한 모습이 느껴진다.
책을 추천한 한 교수께서는 타임캡슐을 타고 그 시대를 여행한 것 같다고 하는데 틀린 말이 아니다. 사도 바울이 살고 사역했던 고린도의 배경과 문화를 마음껏 느낄 수 있다. 당시의 법과 신화와 의술과 화폐와 목욕탕과 사법제도와 노예제도 등을 상세히 알 수 있다. 챕터마다 읽을거리로 그 시대를 더 깊이 이해하고 들여다 볼 수 있는 주제는 책을 더 풍성하게 한다. 바울서신의 배경사라 해도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감동이 되었던 것은 줄거리를 이끌어가는 니가노르가 자신이 모시고 있는 에라스도의 가정을 보며 하나님의 사랑을 눈으로 보고 경험하고 예수님을 더 알고 싶다고 다짐하는 장면이었다. 특별한 회심을 체험하고 경험하여 믿기로 작정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섬기고 사랑하는 가정과 믿는 자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보고 성도가 되고 싶어 하고 예수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오늘날 교회라고 하면 머리부터 흔들고 부정하고 너희나 잘 믿으라고 하는 시대에 1세기에 예배하는 공동체의 모습과 예배자의 모습이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필자는 책을 통해 바울시대의 사회적 역사적인 배경과 다양한 문화를 많이 볼 수 있지만, 예수님을 믿는 가정의 모습을 보고 변화되는 니가노르의 모습이 우리 자신과 교회를 돌아보게 한다. 무언가 특별한게 있는 게 아니다. 노예라고 차별하지 않고 한 가족으로 여기고 성찬에 같이 참여하도록 기다려주고 이해하고 사랑하며 배려하고 연약한 자에게 예언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의 교회를 떠올려보게 된다.
오늘날은 교회에서 더 상처받고 싸우고 낙심하는 일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교회에 대해 실망하고 교회를 떠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교회를 떠나서 가나안교인이 되는 것이 자랑이 아니겠지만 더 이상 교회다움을 기대할 수 없기에 오랫동안 썩었던 것이 드러나는 일은 아닐까? 이 땅에 교회는 꼭 필요한데 세상에서 불필요한 기관이 된 것 같다. 교회를 떠올리면 감동이 있고 가고 싶어야 하는데 힘들고 슬프고 기대마저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성도와 예배자를 떠올리면 예수님의 향기가 느껴지고 마음을 나누고 싶은 감동이 있어야 하는데 더 독하고 이기적이며 교만하게 사는 것 같다. 예수님을 섬기려 하기보다 예수님의 이름을 이용해 신의 권위로 자신의 배를 불리고 있다. 에라스도의 가정은 예수님의 사랑이 가득하고 성령의 열매가 가득한데 우리의 가정과 교회는 하나님의 권위를 끌어와 자신의 욕망과 꿈을 이루어가고 있는 것 같다.
니가노르가 보고 감동한 에라스도와 카밀라의 가정은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니가노르에게 그런 본이 되는 사람이 있었기에 아이밀리우스의 유혹이 있어도 자신을 지킬 수 있었고 하나님의 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신약시대를 배경으로 쓰여진 소설, 필자는 은혜로운 교회와 경건한 성도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강요와 억압과 협박과 폭력이 없고 자유와 존중과 배려와 온유가 있는 교회와 시기와 질투와 미움과 거짓이 없고 관용과 이해와 관심과 정직이 있는 성도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