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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하나님의 광기어린 여정
하나님을 향한 여정/프레드릭 뷰크너/이문원/요단/[나상엽]
본서는 하나님을 찾아 방황했던 젊은 날의 기억들을 담았다.
필립 얀시가 말하는 내 영혼의 스승 13인의 하나인 그가 이제 한국 독자들과 처음 만난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자살, 버뮤다의 낙원, 전쟁, 그리고 삼촌의 자살... 그의 글쓰기는 냉정하리만큼 무심하게 흘러가는 인생의 강물 속에서 섬광 처럼 반짝이는 하나님의 언어를 포착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렇게 깊은 사유로 일상의 영적 신비를 아름답고 섬세하게, 또 솔직하게 묘사해 내는 작가는 이제껏 없었다!
● 저자 프레드릭 뷰크너(Frederick Buechner)
필립 얀시는 "내 영혼의 스승들"(Soul Survivor)에서 "회의론 자들과 타종교인들이 가득한 회의장에 초대받아 자신의 신앙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면 함께 가고 싶은 13인의 영적 멘토 중 한 사람으로 그를 꼽는다.
1930년대의 대공황 시절, 삶의 중압감에 시달리던 아버지가 자살로 삶을 끝 맺음으로써 오즈의 나라를 꿈꾸던 그의 어린 시절은 막을 내렸다. 가차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내던져진 그는 뒤이어 일어난 2차 대전의 소용돌이 속에 휩싸였다.
감수성 강한 열 세살의 소년은 내면의 어두움과 싸우고, 무언가 궁극적인 존재의 부재감에 목말라하며, 이때 부터 글쓰기에 관심을 기울인다.
예기치 못한 삼촌의 자살, 그리고 군 입대... 그는 격변하는 흐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찾는 데 몰두했으며, 첫 소설[긴 하루의 죽음 A Long Day's Dying] 으로 대성공을 거두면서 뉴욕 문단의 새로운 별로 떠올랐다. 그러나 계속되는 실패와 슬럼프 속에서, 어느날 예배중에 계시처럼 언급된 '큰웃음'이란 말에 자신이 그토록 찾던 존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깨닫고 무릎을 꿇는다. 그후 그는 신학도의 길로 들어섰으며, 목사이자 작가로서 과거의 추억과 미래의 희망, 현재의 삶 속에서 선물로 주어진 하나님의 현현(顯現)을 섬세한 언어로 담아내는 작업을 계속해 왔다.
그의 작품은 많은 설교자들과 기독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무의미한 인생의 종착지를 찾아 헤매는, 상처입은 많은 이들에게 그의 깊은 사유와 글쓰기는 인생 가운데 충만한 그분의 언어를 발견케 하며, 영적, 문화적 감수성에 목말랐던 그리스도인들에게 시원한 단비가 될 것이다.
소설 분야에서는 퓰리처 상 후보에 올랐던 [고드릭 Godric]과 내셔널 북 어워드 후보에 올랐던 [사자의 나라 Lion Country]등이, 비소설에서는 [은혜의 알파벳The Alphabet of Grace], [진실을 말하다Telling the Truth]등 모두 40여 권에 달하는 작품이 있다.
● 서평
"내가 발견한 것은 그리스도였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아니면 그분이 나를 발견하신 것일까." -p. 179
하나님은 "영원"하시다. 하나님의 영원하심은 우리의 시간 개념에서나 우리의 공간 개념에서는 이해 불가능하다.
그것은 끝없는 시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너머를 뜻하며, 또한 모든 도덕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 영원자께서 또 다른 도덕적인 존재를 창조하시고, 도덕적인 시공간을 지으신 것이다.
또한 영원자께서는 "창세전부터" 계획을 갖고 계셨다. 이것은 영원자의 영원한 섭리이시다.
창세전에 자신의 어린양을 계획하셨고(벧전 1:19, 20),
창세전에 어린양의 죽음을 계획하셨으며(계 13:8),
창세전에 자신의 몸을 택하실 것을 계획하셨고(엡 1:4),
창세전에 자신의 나라를 계획하셨다(마 25:34).
"창세전에"라는 말 역시 시간개념뿐만 아니라, 영원자의 무한한 지혜와 계획과 섭리와 통치와 사역의 의미를 포함한다.
그렇다면, 시간을 너머 존재하시는 영원자는 또한 지혜와 섭리와 일하심에 있어서도 영원하셔야 하며, 그것 역시 우리의 지혜와 인식 너머에서의 사건들이어야 한다. 이것은 한 마디로 신비(mystery)이다.
이 신비로운 사건은, 영원자 자신이 인간을 향하신 그 영원전부터의 자신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하셔서 시간 세계 가운데 오시는 모험을 감행한 데에서 시작한다. 영원자가 유한자로 오시다니! 이 영원자의 광기를 유한한 인간 어느 누가 짐작이나 했으랴?
이 영원자께서 먼저는 천지에 충만하심으로 자신을 시간 세계에 나타내셨고, 나아가 친히 육신으로 나타내셨으며, 나타내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그분의 교회 가운데, 그 교회인 "나(I)" 가운데 거하신다!
그렇다면 그 결국의 종착점(place)은 어디인가? 그것은 다시 영원자 그분 자신에게로이다.
이렇게 시간 너머에서 먼저 시간 세계로 찾아오신 그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에서 출발해서, 다시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곳은 내 아버지의 집이요, 몸된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가 좌정하신 곳이다. 그리고 우리의 시공간 너머의 그 곳(place)의 실제는, 영원자와의 완전한 연합이라는 곳이다.
프레디는 시간 너머에서 먼저 우리를 찾아온 영원자의 여정을 그의 모든 마음을 다해 섬세하게 그려냈다. 일상의 소리와 일상의 풍경, 일상의 사람들 가운데 오셔서 말씀하시는 영원자의 언어는 부드럽고 세미하며, 달콤하고 심지어 낭만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때로 격동적으로 구비치다가 침잠하며, 이내 피할 수 없는 무게로 다가오는 영원자의 언어에는 실로 "광기"가 어려있다.
아주 사소해서 미처 깨닫지 못하는 그런 때에나, 너무 강렬해서 애써 부인해야만 그런 때에도, 영원자는 우리의 인생이라는 시간 세계가운데 언제나 거기 계셨으며 말씀해오셨다. 이 신비스런 진리를 불현듯 깨달은 순간, 광기 어린 여정의 끝에 그 앞에 서 있는 영원자를 발견하고 "고백과 눈물과 큰 웃음"으로 그분을 맞이하는 프레디의 모습에서, 우리 역시 "내 앞에 서 있는 그분", 이미 "내 안에 계신 그분"으로 말미암은 경이감을 가지고, 가야 할 더욱 먼 길의 첫 발, 곧 그분을 향한 여정을 그분과 함께 내딛어야 함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여정! 하나님이 함게 하시는 일상! 이 황홀한 경이감! 이 일상의 신비!
이것이 내가 일상으로 가득찬 우리의 삶이 희열이라고 어떤 순간에라도 말할 수 있는 분명한 이유이다.
본서는 하나님을 찾아 방황했던 젊은 날의 기억들을 담았다.
필립 얀시가 말하는 내 영혼의 스승 13인의 하나인 그가 이제 한국 독자들과 처음 만난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자살, 버뮤다의 낙원, 전쟁, 그리고 삼촌의 자살... 그의 글쓰기는 냉정하리만큼 무심하게 흘러가는 인생의 강물 속에서 섬광 처럼 반짝이는 하나님의 언어를 포착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렇게 깊은 사유로 일상의 영적 신비를 아름답고 섬세하게, 또 솔직하게 묘사해 내는 작가는 이제껏 없었다!
● 저자 프레드릭 뷰크너(Frederick Buechner)
필립 얀시는 "내 영혼의 스승들"(Soul Survivor)에서 "회의론 자들과 타종교인들이 가득한 회의장에 초대받아 자신의 신앙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면 함께 가고 싶은 13인의 영적 멘토 중 한 사람으로 그를 꼽는다.
1930년대의 대공황 시절, 삶의 중압감에 시달리던 아버지가 자살로 삶을 끝 맺음으로써 오즈의 나라를 꿈꾸던 그의 어린 시절은 막을 내렸다. 가차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내던져진 그는 뒤이어 일어난 2차 대전의 소용돌이 속에 휩싸였다.
감수성 강한 열 세살의 소년은 내면의 어두움과 싸우고, 무언가 궁극적인 존재의 부재감에 목말라하며, 이때 부터 글쓰기에 관심을 기울인다.
예기치 못한 삼촌의 자살, 그리고 군 입대... 그는 격변하는 흐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찾는 데 몰두했으며, 첫 소설[긴 하루의 죽음 A Long Day's Dying] 으로 대성공을 거두면서 뉴욕 문단의 새로운 별로 떠올랐다. 그러나 계속되는 실패와 슬럼프 속에서, 어느날 예배중에 계시처럼 언급된 '큰웃음'이란 말에 자신이 그토록 찾던 존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깨닫고 무릎을 꿇는다. 그후 그는 신학도의 길로 들어섰으며, 목사이자 작가로서 과거의 추억과 미래의 희망, 현재의 삶 속에서 선물로 주어진 하나님의 현현(顯現)을 섬세한 언어로 담아내는 작업을 계속해 왔다.
그의 작품은 많은 설교자들과 기독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무의미한 인생의 종착지를 찾아 헤매는, 상처입은 많은 이들에게 그의 깊은 사유와 글쓰기는 인생 가운데 충만한 그분의 언어를 발견케 하며, 영적, 문화적 감수성에 목말랐던 그리스도인들에게 시원한 단비가 될 것이다.
소설 분야에서는 퓰리처 상 후보에 올랐던 [고드릭 Godric]과 내셔널 북 어워드 후보에 올랐던 [사자의 나라 Lion Country]등이, 비소설에서는 [은혜의 알파벳The Alphabet of Grace], [진실을 말하다Telling the Truth]등 모두 40여 권에 달하는 작품이 있다.
● 서평
"내가 발견한 것은 그리스도였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아니면 그분이 나를 발견하신 것일까." -p. 179
하나님은 "영원"하시다. 하나님의 영원하심은 우리의 시간 개념에서나 우리의 공간 개념에서는 이해 불가능하다.
그것은 끝없는 시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너머를 뜻하며, 또한 모든 도덕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 영원자께서 또 다른 도덕적인 존재를 창조하시고, 도덕적인 시공간을 지으신 것이다.
또한 영원자께서는 "창세전부터" 계획을 갖고 계셨다. 이것은 영원자의 영원한 섭리이시다.
창세전에 자신의 어린양을 계획하셨고(벧전 1:19, 20),
창세전에 어린양의 죽음을 계획하셨으며(계 13:8),
창세전에 자신의 몸을 택하실 것을 계획하셨고(엡 1:4),
창세전에 자신의 나라를 계획하셨다(마 25:34).
"창세전에"라는 말 역시 시간개념뿐만 아니라, 영원자의 무한한 지혜와 계획과 섭리와 통치와 사역의 의미를 포함한다.
그렇다면, 시간을 너머 존재하시는 영원자는 또한 지혜와 섭리와 일하심에 있어서도 영원하셔야 하며, 그것 역시 우리의 지혜와 인식 너머에서의 사건들이어야 한다. 이것은 한 마디로 신비(mystery)이다.
이 신비로운 사건은, 영원자 자신이 인간을 향하신 그 영원전부터의 자신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하셔서 시간 세계 가운데 오시는 모험을 감행한 데에서 시작한다. 영원자가 유한자로 오시다니! 이 영원자의 광기를 유한한 인간 어느 누가 짐작이나 했으랴?
이 영원자께서 먼저는 천지에 충만하심으로 자신을 시간 세계에 나타내셨고, 나아가 친히 육신으로 나타내셨으며, 나타내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그분의 교회 가운데, 그 교회인 "나(I)" 가운데 거하신다!
그렇다면 그 결국의 종착점(place)은 어디인가? 그것은 다시 영원자 그분 자신에게로이다.
이렇게 시간 너머에서 먼저 시간 세계로 찾아오신 그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에서 출발해서, 다시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곳은 내 아버지의 집이요, 몸된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가 좌정하신 곳이다. 그리고 우리의 시공간 너머의 그 곳(place)의 실제는, 영원자와의 완전한 연합이라는 곳이다.
프레디는 시간 너머에서 먼저 우리를 찾아온 영원자의 여정을 그의 모든 마음을 다해 섬세하게 그려냈다. 일상의 소리와 일상의 풍경, 일상의 사람들 가운데 오셔서 말씀하시는 영원자의 언어는 부드럽고 세미하며, 달콤하고 심지어 낭만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때로 격동적으로 구비치다가 침잠하며, 이내 피할 수 없는 무게로 다가오는 영원자의 언어에는 실로 "광기"가 어려있다.
아주 사소해서 미처 깨닫지 못하는 그런 때에나, 너무 강렬해서 애써 부인해야만 그런 때에도, 영원자는 우리의 인생이라는 시간 세계가운데 언제나 거기 계셨으며 말씀해오셨다. 이 신비스런 진리를 불현듯 깨달은 순간, 광기 어린 여정의 끝에 그 앞에 서 있는 영원자를 발견하고 "고백과 눈물과 큰 웃음"으로 그분을 맞이하는 프레디의 모습에서, 우리 역시 "내 앞에 서 있는 그분", 이미 "내 안에 계신 그분"으로 말미암은 경이감을 가지고, 가야 할 더욱 먼 길의 첫 발, 곧 그분을 향한 여정을 그분과 함께 내딛어야 함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여정! 하나님이 함게 하시는 일상! 이 황홀한 경이감! 이 일상의 신비!
이것이 내가 일상으로 가득찬 우리의 삶이 희열이라고 어떤 순간에라도 말할 수 있는 분명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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