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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참 제자, 참 교회 없는 지상명령은 없다

조정의 | 2020.11.09 11:53
참 제자, 참 교회 없는 지상명령은 없다 지상명령 바로알기/마크 데버/김태곤/개혁된실천사/조정의 편집위원

대부분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잘 안다. 교회 생활을 좀 해본 사람은 ‘지상대명령’ 혹은 ‘지상대위임령’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전도에 관한 대표적인 말씀,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말씀을 외우는 성도도 많을 것이다(마 28:19-20).

그런데 막상 ‘전도’가 얼마나 중요한 사명인지 알면서도 말하기 꺼려지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전도’를 잘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잘하는 것은 고사하고 하고는 있는지 죄책감이 생긴다. 접촉하고 있는 비그리스도인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정작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가 생각해보면 부끄럽게도 그렇지 못하고 있다. 그럼 삶으로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나타내고 있는가? 잘 모르겠다. 전도는 그냥 목사로 교회에서 전임 사역을 하는 사람이나 정말 모든 민족을 찾아간 선교사가 적극적으로 하고, 나는 돕는 역할을 하면 되지 않을까? 함께 살고 있는 가족에게 복음 전하는 것이 가장 쉬울 것 같은데 가장 어렵기도 하다.

워싱턴 D. C. 캐피톨힐 침례교회에서 교회와 예배를 강조하며 계속해서 건강한 교회 세우기 운동을 하고 있는 마크 데버 목사는 <지상명령 바로알기: 지상명령의 개혁된 실천>을 통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익숙한 지상명령을 교회와 제자화라는 관점에서 설명한다. 전도는 개인이 실천해야 할 명령이지만 교회가 교회를 낳는 사역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전도가 단지 지옥에 가는 영혼에게 천국 가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장기적인 제자화 과정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왜 이것을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할까?

마크 데버 목사가 개인의 전도 생활을 무시하거나 간과하는 건 아니다. 그는 <복음과 개인전도>라는 책을 통해 이를 분명히 강조했다(부흥과 개혁사, 2009). 그가 전도의 교회적 책임을 강조한 것은 지상명령 안에 포함된 예수님의 가르침 때문이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명령하셨다. 이는 가서 전도한 영혼이 그리스도의 참 제자가 되었다는 것을 공적으로 선언하는 것뿐만 아니라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공동체에 포함되었다는 것을 확증한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3).

교회는 교회를 낳아야 한다. 그래서 세워진 교회가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제자를 낳고 공적으로 교회 공동체 안으로 영접해야 한다. 지상명령은 열한 사도 각 사람에게 주어진 명령의 측면을 무시할 수 없지만 동시에 그들 공동체에게 주어진 명령이라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초대 교회의 전도 활동이 기록된 사도행전에서 우리는 빌립과 흩어진 성도, 사도가 전파한 복음의 열매를 볼 수 있고 동시에 그 과정을 통해 예루살렘 교회가 여러 지역에 교회를 세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상명령은 이처럼 교회에게 주어진 명령이다.

두 번째로 가장 획기적인 관점의 전환을 마크 데버가 일으키는데, 바로 지상명령의 핵심이 되는 명령이 ‘제자로 삼으라’라는 사실이다. ‘가라’, ‘세례를 베풀라’, ‘가르치라’는 분사이고, ‘제자로 삼으라’가 지상명령 본문(마 28:18-20)의 유일한 명령형 동사이다(물론 분사도 명령형 성격이 없지 않지만). 이런 문법적 구조를 강조한 데버는(카슨과 오스본 외 여러 주석가들도 이를 지지한다), 전도가 단지 구도자에게 접근하여 복음을 전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선교 전략에 있어서도 일단 ‘가라’에 많은 강조점을 두는데, 사실 선교의 장기적인 비전을 생각하면 ‘가라’가 아니라 지상명령이 강조하는 대로 ‘제자로 삼으라’에 집중하는 것이 옳다. 건강한 교인으로 구성된 교회를 세우지 않고 흩어진 영혼 몇몇 사람에게 접근하여 전도한 것의 열매는 오래 가지 않기 때문이다.

마크 데버는 또한 이 책의 9장에서 “머무를 것인가 갈 것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전도에 참여하기 전에 고려해야 할 열두 가지 요소를 소개한다. ‘이동하는 목적’, ‘복음 전도’, ‘신학과 목회 철학’, ‘당신과 이웃의 덕을 세움’ 등 독자가 건강한 교회를 선택하여 그곳에서 함께 지상명령에 힘쓸 수 있도록 돕는 좋은 기준점을 제시한다. 여기에서도 교회와 제자화가 강조된다. 전도에 더욱 힘쓰기 위해 건강하고 교리적으로 바른 교회를 찾는 것, 그 교회에 속하는 것을 강조한다. 본인이 그 교회에서 제자화될 수 있는지, 자기 은사를 가지고 누군가를 제자로 삼을 수 있는지 분별하도록 돕는다. 

존 파이퍼는 <열방을 향해 가라>에서 ‘예배가 없기 때문에 선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데버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것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참된 예배 공동체를 세우셨다. 바로 교회이다. 예수님은 지상명령을 교회에게 주시면서 예배가 없는 곳에 또 다른 예배 공동체 즉 교회를 세우라고 명령하셨다. 교회의 힘은 구원받은 사실만 있는 흐지부지한 교인들에게서 절대 나올 수 없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예수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힘써 지키는 참된 예배자, 참된 제자로 구성된 교회가 진짜 힘 있는 교회다. 바로 그런 교회를 통해 주님은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신다.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오는 여러 세대에 드러내신다. 그러므로 교회의 위기는 곧 전도의 위기라고 말할 수 있다. 전도 폭발이 일어난다고 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지는 것은 아니다. 장기적으로 건강한 성도(제자), 건강한 교회가 지상명령을 오래 지속해서 힘 있게 수행할 수 있다. 

마크 데버가 이 책을 통해 강조한 바른 교회관과 제자도를 회복하여 그리스도께서 맡기신 대사명, 대위임령에 충성하는 교회가 더 많이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말세의 고통하는 세대를 거슬러 그리스도께서 분부한 것을 신실하게 따르는 제자가 많이 양육되기를 기도한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의 부제가 말하는 이 시대 꼭 필요한 “지상명령의 개혁된 실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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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미를 추구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인간은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그 아름다움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의식적으로나 고의적으로 창조적인 행위를 한다. 예술은 특정 계층과 인물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의 전유물이다. 수많은 예술가, 예술 이론가, 철학자들이 예술이 무엇인지에 답하기 위해 애썼다.   <예술인간의 탄생>에서 저자는 근원적인 질문들을 던진다. “누구나 예술가”가 된 현실이 우리 삶에 가져온 영향은 무엇인가? 엘리트 예술, 제도예술이 아직 건재해 보이는데 예술은 모두의 것이 되었나? “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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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 요한계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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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신약분야에서는 로마서 다음으로 많은 연구물들이 나오고 있는 유력한 분야이다. 한국 지반에서 발생한 이단의 대부분은 요한계시록 본문을 왜곡한 산물로 자기 체계를 삼고 있다. 시한부 종말론주의자, 과격한 세대주의자들은 요한계시록 해석을 자기 가치로 삼고 있다. 수많은 저술이 나온다는 것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만,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이필찬 교수가『요한계시록 1-11』(2021년)을 출판했는데, 페이지 분량으로는 그레고리 비일(Gregory K. Beale)의『요한계시록 상』(새물결플러...
십자가와의 만남 십자가와의 만남
십자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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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얽혀 있는 다양한 인물들.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간다.십자가로 뚜벅뚜벅 걸어가시는 예수님. 그 도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저자들은 능숙하게 만남의 현장으로 우리를 초청한다. 그 사건은 우리에게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우리의 오감을 자극한다.그때 그 현장을 지금 이곳에서 목도한다.내면에 일어나는 많은 역동을 어떠한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어떤 설교가 기쁨과 고통의 역설을 이렇게 포착할 수 있을까? 저자들의 신학적 깊이와 내공은 자연스레 드러난다.평이한 문체에서 겸손하게 묻어난다.각 ...
대화하고 참여하는 교리를 위하여 대화하고 참여하는 교리를 위하여
교리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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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한가운데서 살아갈 때 소통의 부재를 경험한다. 교회는 세상에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교회의 언어는 세상과는 동떨어져있는 듯 보인다. 교회의 언어는 교회 안에서만 머문다. 교회의 언어는 세상의 언어와 많이 다르다. 우리는 세상과 소통할 수 있을까?헬머(Christine Helmer)의 『교리의 종말』은 역설적이다. 교리의 새로운 시작을 위해, 교리의 진정한 '목적'에 이르기 위해, 기존의 관점을 과감하게 바꿀 것을 요구한다. 저자는 닫혀 있고, 대화할 수 없...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지혜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지혜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
아타나시우스/오현미/죠이북스/모중현 편집위원


소통에는 고통이 뒤따른다. 서로의 상황이나 가치관이 비슷하다면, 어느 정도의 소통은 일어난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 하더라도, 서로의 감정과 생각을 이해하는 일에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동반된다. 혹여나 서로의 성향이 잘 맞지 않으면,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소통이 잘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더군다나 이 관계가 조물주와 피조물이라면 어떻겠는가? 직접적인 소통은 불가능하다. 초월하는 실체와 직접적인 관계를 갖는 것은 어렵다. 영적 실재와 어떻게 대화할 수 있겠는가? 본래 인간은 영적 존재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에...
두려움을 통과하여 그리스도를 만나는 용기 두려움을 통과하여 그리스도를 만나는 용기
십자가를 통과한 용기
러셀 무어/정성묵/두란노/조정의 편집위원


러셀 무어는 참 매력적인 저자이다. 워싱턴 정계에 영향력 있는 인물이자 서던 신학대학원 기독교 윤리학 교수, 미국 남침례교 윤리와 종교자유 위원회 위원장으로 공적인 일을 많이 하고 있지만, 저자로서 러셀 무어는 사적인 자리에서 자기 이야기를 자유롭게 꺼내놓으면서 명쾌하고도 깊은 감동을 가져다주는 이야기꾼 같은 자질을 보여준다. 전에 만난 책 <왜 우리는 유혹을 이길 수 없는가>, <입양의 마음>, <폭풍 속의 가족>에서 러셀 무어의 독특하고 매력적인 문체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이 책 <십자가를 ...
주일학교 위기는 어디서 오는가? 주일학교 위기는 어디서 오는가?
미래교회교육 지도 그리기
문화랑/생명의말씀사/정현욱 편집인


코로나 이후 주일학교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엄밀하게 말하면 관심이기보다는 걱정이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곳이 바로 주일학교이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시작된 지 일 년 지난 지금 한국교회 안에 주일학교는 길을 잃었다. 적지 않는 교회의 주일학교가 이미 문을 닫았고, 겨우 유지되는 주일학교는 50% 가까이 줄었다. 코로나가 떠나지 않은 상황에서 주일학교가 다시 예전처럼 회복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적지 않은 부모들이 코로나 감염의 위험을 안고 교회를 보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
일일독서, 열혈독서, 독서광인 일일독서, 열혈독서, 독서광인
열혈독서
박종순/나침반/고경태 편집위원


독서(讀書), <크리스찬북뉴스>(대표 채천석 목사)는 "책을 읽는 그리스도인을 위해서 사역하는 기관"입니다. 독서가 과연 중요한 일일까요? 독서는 누구에게나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과거에는 왕이 될 사람만 책을 읽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하들이 책을 읽기 시작했겠죠. 그리고 학자들이 형성되며 왕에게 간언(諫言)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왕이 무력화되고,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책이 쥐어지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왕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책을 읽어야 ...
봄이 내민 손길 봄이 내민 손길
지하실에서 온 편지
제행신/세움북스/모중현 편집위원


너무 어두워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작은 불빛은 큰 도움이 된다.무너지는 삶이 감당하기 힘들어, 작은 도움의 손길을 기다려본다.   내면과 관계를 다루는 많은 에세이들. 아쉬움이라면 정작 자신들도 답을 모른다는 것.지혜로운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그 대안은 때로 한 책 안에서도 맞부딪힌다.   가령,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라고 했다가, 어떤 챕터에서는 그 관계를 과감하게 끊어내란다. 인생이란 정답이 없어 때로는 모호하고 울퉁불퉁하다.   그 답답함이 때로는 동감되지만, 애타는 ...
언택트 시대에도 교회를 세우는 킬러 콘텐츠 언택트 시대에도 교회를 세우는 킬러 콘텐츠
언택트와 교회
김도인/글과길/고경태 편집위원


설교와 글쓰기, 설교와 콘텐츠... 김도인 목사가 주요하게 외치는 주장이다. 김도인 목사는 아트설교연구원에서 설교와 글쓰기 사역으로 한국 교회의 설교 사역에 한 획을 이루고 있다. 이제는 “글과 길” 출판사를 설립해서 본격적인 글쓰기의 실체를 한국교회에서 보여주려 하고 있다. 필자는 “말과 글” 혹은 “글과 말”을 좋아해서 출판사 검색을 해보았는데, 이미 등록되어 있어서 등록하지 못했는데, 김도인 목사도 그러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필자는 “글과 길”은 생각하지 못했다. 글과 길, 글길, 글쓰기에 길이 있다. 김도인 목사의 사상이 ...
참된 개혁자가 되기 위하여 참된 개혁자가 되기 위하여
철학자의 신학수업
강영안/복있는사람/방영민 편집위원


참된 개혁자가 되기 위하여   저자는 현 시대를 포스트 트루스(post-truth) 시대라고 정의한다. 이 시대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이 어떠한지 이 단어를 통해 충분히 알 수 있다. 어느 유명 가수의 노래 가사처럼 영원한 것은 절대 없고 결국에는 자신만 남는다는 사상이 이 시대의 진리이다. 참된 것이 있으면 그른 것이 있고 좋은 것이 있으면 나쁜 것이 분명히 있는데 그러한 절대가 없고 기준 마저 제각각이다. 이미 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감정이 기준이 된 것이다.   필자는 생각하기를 현 시대의 ...
복음과 구원의 진수를 밝혀주는 메시지 복음과 구원의 진수를 밝혀주는 메시지
믿는 자에게 현재의 고난은 변장된 축복
유종호/크리스챤서적/송광택 편집고문


저자는 젊은 시절 한때는 세상 욕심을 좇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정체성을 찾아 무한히 고민하다가 30대 후반에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만났다. 그는 40대 중반 인생 행로의 뱃머리를 돌려 진리를 전파하는 일에 몰입하고 있다. “이 진리를 이미 알고 있는 기신자들에게는 더욱 심화되도록, 구도자들에게는 진리를 깨닫고 구원받도록” 돕기 위함이다.저자는 일차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캠퍼스에서, 다음에는 고교 동기 13명의 장로들과 ‘빛고을 신우회(信友會)’를 결성하여 함께 복음 메시지를 주로 고교 동기들에게 매달 전하는 문서 선교를 계...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게 우리의 의가 되시나요?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게 우리의 의가 되시나요?
내게는 영원한 의가 있다
호라티우스 보나르/지평서원/송광택 편집고문


“우리가 의롭다 여김을 받는 것은 복음을 믿는 것의 직접적인 결과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칭의에 대하여 아는 것은 이런 기쁜 소식을 믿는 모든 사람을 의롭게 칭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데서 비롯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증거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증거를 받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생명을 확신시켜 주는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호라티우스 보나르).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로마서야말로 신약의 핵심이며 가장 분명한 복음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로마서1:17의 말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구원하소서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구원하소서
정치적 제자도
빈센트 반코트/성석환/새물결플러스/방영민 편집위원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구원하소서!   서론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교회가 사회적 신뢰를 잃었다는 것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어떻게 이 신뢰를 회복할 것인가를 생각하기보다 과연 교회가 존립할 수 있을지 아니면 어떻게 존립해야 될지를 고민하게 된다. 한국교회 초기에는 여러가지 기적과 신비한 능력을 나타내며 사람들에게 치유를 주고 희망을 주었던 교회였는데 이제는 위로와 희망보다는 불쾌감과 절망감을 주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독교가 공적인 삶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고 어떤 방...
한 번뿐인 나의 삶 이렇게 사는 것이 맞나? 한 번뿐인 나의 삶 이렇게 사는 것이 맞나?
어떻게 살 것인가: 남자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
패트릭 몰리/김광남/CH북스/조정의 편집위원


성별을 초월하여 인권을 보호하려는 거대한 움직임은 분명 성차별을 어느 정도 해소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지만, 남성에게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권위와 책임을 계속해서 빼앗아 가는 부정적인 영향도 끼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가부장적인 문화가 만든 악을 제거하는 것은 정말 좋지만 가장의 역할과 책임이 함께 제거되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가정을 책임지고 보호하고 양육하며 권위를 가지고 섬기는 자로서 가족 구성원을 끝까지 헌신적으로 사랑하려는 남자는 어디에 있을까? 지금 이 세상은 그런 남성상을 추구하고 길러내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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