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서구 중심의 기독교에 울리는 역사, 선교 신학적 경종
Bantu 교수는 Fuller 신학교의 교회사 조교수로, 흑인/중동/아시아 교회사 연구 전공입니다. 본인이 African American 으로서 복음주의 명문 휘튼 대학 학사, 고든 콘웰 목회학 석사, 프린스턴 신학교 석사, 미국 카톨릭 대학 석, 박사로 교회사와 셈족/이집트 언어를 전공한 이 분야에 특화된 학자입니다.
그가 올 3월에 출간한, [Multitude of All Peoples](모든 민족들의 수많은 무리들)이라는 책은, 이 분야에 거두가 될 만한 젊은 신학자의 야심찬 저작이며, 소위 고대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교회들에 대한 신선한 역사적 개요와 이 책이 다루고자 하는 논제(thesis)의 무게감이 이 시대 결코 쉽게 흘려버릴 수 없는 것이기에 서평으로 소개합니다.
책의 각 장별 논점
서론: 저자는 기독교는 이미 그 시초부터 "세계적 종교" (global religion)였다고 말한다. 19-20 세기 일어난 세계 선교 운동으로, 마치, 서구를 제외한 전세계는 복음을 알지 못하는 암흑의 세계인 것처럼 외친 구호들은 사실 "백인 중심의 종교관" (White man's religion)을 반영한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성경 시대 예루살렘으로 부터 시작한 복음과 교회의 확장이, 2세기 동방 시리아를 거쳐 아프리카로 퍼져나갔고, 이는 3세기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 교회보다도 훨씬 넓고 영향력 있었으며, 그 기독교의 확장은 실크로드를 통해 인도와 중국에 까지 이르렀던 고대 기독교회사를 개괄한다.
저자는 잊혀진 고대 동방/아프리카/아시아 기독교회를 재발견하며, 서구/로마/백인 중심의 기독교 역사 독점(monopolizing)을 비판한다. 그리고 이렇게 도전한다: "1세기 예수께서 제자들을 모든 백성들에게 보내시던 때로 돌아가라. 그리고, 어떻게, 그들이 주의 명령에 순종하여 모든 백성들, 수많은 무리들에게 이르렀는지를 살펴보라!"
그 때, 우리는 본래 기독교의 모습 - 서구 백인 중심의 편협한/교만한 기독교가 아닌 - 진정으로 다양하고, 말씀에 충실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복음으로 섬겼던 고대 기독교인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1장: 서구 기독교의 편가르기 정치 신학의 뿌리(Roots of Western Christian Identity Politics). 저자는 동서방 교회의 분리를 콘스탄틴의 정치적 편가르기에서 찾는다. 물론, 교회는 이전에도 신학적 논쟁거리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기독론이 형성되던 시기, 동방과 서방교회는 다양한 신학적 논의가 가능했다. 그러나 콘스탄틴은 정치적 통합을 원했고, 니케아 공의회를 열어 신학적 합의문을 도출해 내었다. 그것은, 동방과 서방 교회를 구분하는 편가르기 정치 (identity politics)로 작용했으며, "다름"(heterogeneity)에서 "이단" (heresy)로 부르는 기준으로 작용했다.
칼세돈 (451) 공의회는 이러한 편가르기 정치 공방의 화염에 불을 지르게 되는데, 동서방의 가장 큰 난제였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에 대해 서방은 "일 인격 이 본성" 을 정립하고, 동방은 다양성 속에서 "단일 본성" 을 고수한다.
저자는, 서방교회가 그리스 철학의 영향으로 사변적 사고를 받아들여 "그리스도를 한 본체에 두 본성을 늘 가지신 존재"로 고안했고, 동방교회는 오직 성경에 나오는대로(sola scriptura) "예수는 인간으로 나신 인성을 가지시고 신성으로 합하여져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심플한 설명을 선호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동방교회는 이 단성론이 서방/로마 교회에 의해 정죄 당함으로 인해 5세기 후반부터 이단으로 몰리고 정치적 핍박을 받게 된다.
2장-4장은 각각 고대 아프리카 교회들, 중동의 교회들, 그리고 아시아의 교회들을 역사적으로 추적한다.
2장: 고대 아프리카 교회들 - 알렉산드리아 중심으로 하는 이집트,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풍성한 신학적 유산을 가진 누비아, 그리고 모세의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 받아 진정한 유대인 크리스천들이라고 스스로 불렀던 이디오피아 - 를 다룬다.
3장: 중동지역 고대 기독교는 시리아 언어를 쓰는 안디옥, 두레, 레바논, 아리비아 등의 교회들이다. 무척 활발하고 복음적으로 왕성했던 이 교회들은 인도와 중국에 까지 교회를 확장했던 고대의 선교사들이었다. 서기 640년 이슬람의 발흥과 함께 무슬림들이 들어오지만, 이들은 오히려 로마를 중심으로 하는 서방 교회 보다 이들을 선대했다고 한다. 서방 교회는 중동 교회를 이단이라며 핍박했지만, 무슬림들은 큰 갈등 없이 기독교 신앙을 유지하며, 세금도 더 적게 내며 살게 하는 평화의 시대가 십자군 원정 전까지 약 300 년 이상 지속되었다고 한다.
저자에 의하면, 이 고대 중동교회에서 서기 340년 경 아라비아어로 된 성경과 신학서적들을 출간했는데, 그것은, 아라비아어 코란 보다 무려 200년 이상 앞선 기독교 서적이었고, 마호멧이 서적들을 통해 기독교를 접했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코란의 30% 는 신구약 성경의 내용을 인용 해설한다).
4장: 실크로드를 통해 퍼진 고대 아시아 교회들은 이라크, 이란, 아프카니스탄 고대 교회들을 탄생시키고, 도마에 의해 인도에 교회가 세워지며, 이어, 중국과 티벳, 그리고 몽골에 고대 기독교회의 뿌리를 내린다. 약 300 여년 간(서기 618-907) 중국 당나라 시대부터 원나라 대까지 "대진경교류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가 세워질 정도였다. 징기스칸의 첫 아들의 아내, 즉, 그의 며느리가 크리스천이었는데 그렇게 정숙하고 여성의 본이 되어 원나라 황실에서 크리스천의 수가 상당히 많았다 전한다.
결론: 저자는 서구/백인 중심의 교회가 아닌 고대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의 교회들을 개관하며 기독교의 복음 자체가 가지는 "세계성"(global Christianity) 에 주목한다. 서구 신학/ 백인 중심 크리스천이 가져왔던 신학적 기준 및 헤게모니는 반성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백인 우월주의(White supremacy)는 교회사 안에서는 사라질 때가 되었다는 주장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저자는, 상황화의 신학과 현지 리더십을 제시한다. 즉, 서구신학으로 특정된 하나의 표준이 아닌(not imposing monolithic template), 다양한 언어와 문화와 민족을 통해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기독교의 가능성 (민족마다 다양한 문화와 맛을 내는 음식을 가지듯이) 그런 다원화된 글로벌 기독교의 비전을 제시한다. 예수님은 "너희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고 하셨기에, 우리가 만들어가는 기독교도 모든 족속의 많은 무리들이 만들어가는 다양한 모습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짧은 감상평
이상이 책의 사뭇 긴 요약입니다. 저는 이 책의 공감 포인트가 많고 위에 요약한 부분들은 좋은 공부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책에서, 내내 기독교 역사를 기독론 논쟁(두 본성이냐 단성론이냐) 의 틀 속에서 너무 단순화(oversimplifying)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동서방 신학이 단절 보다는 대화와 교류 속에서 정립이 되었다는 것을 어거스틴의 신학에서 확인할 수 있고, 이후, 종교개혁 신학 (루터, 칼빈 등)도 서방신학에 경도되기 보다는 동방신학에 귀를 기울였던 점을 볼 때, 서방 중심 교회를 무조건 청산해야 할 적폐로 몰 필요까지는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19세기 이후 나타난 백인 중심의 복음주의 세계선교도 폐해도 적지 않았지만 그 시대사적 의의와 기독교 지형의 확장에 공헌한 점(특히 한국교회의 출현) 등은 인정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저자의 명쾌한 논제 - 서방/백인 중심의 기독교를 탈피하여 고대 기독교회의 모습대로 각 민족과 언어와 문화로 꽃 피우는 다양한 기독교회를 구현하자는 주장 - 은 새겨들어야 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