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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정통은 이단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아름답다
정통/G. K. 체스터턴/전경훈/복있는사람/조정의 편집인체스터턴의 글을 읽을 땐, 끈기가 필요하다. G. K. 체스터턴 탄생 150주년 기념판으로 복있는사람에서 출간된 체스터턴의 책들, “영원한 인간”, “정통”, “이단”을 번역한 전경훈은 체스터턴의 글은 “앞부분에서부터 천천히 읽어 가다 보면 뒷부분에 가서야 작가가 진짜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가 드러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하면서 “그러니 체스터턴의 방식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약간의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 하지만 그 약간의 인내심만 발휘한다면, 곧 무릎을 치며 미소짓게 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라고 확신했다(304-5pp). 전경훈은 체스터턴의 태도와 방식을 귀류법이라고 불렀는데, 기독교를 부정하는 이들의 모순을 드러냄으로서 기독교 교리의 탁월성을 변증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체스터턴은 자신이 회심을 경험한 경로로 독자를 인도한다. 기독교를 우습게 여기고 반대하던 입장에서 그들의 논리와 사상에 따라 사유하다가 오히려 그것이 더 큰 모순과 더 어두운 운명을 약속한다는 사실에 기독교로 회심하게 된 것이다.
특별히 “정통”(“Orthodoxy”)를 쓴 이유는 그 전작인 “이단”에서 비판한 현대 지성인들의 반론과 비평에 따른 긍정적 대답을 주기 위함이다: “내가 모두를 향해 자기 자신의 우주론을 확실히 주장하라고 한 것은 무척 잘한 일이지만, 정작 나 자신은 실례를 들어 자기 자신의 수칙들을 뒷받침하는 일을 교묘히 피했다는 것이었다”(13-14pp). 그래서 체스터턴은 자신의 우주론—그러나 자신이 직접 만든 것이 아니라 발견한 정통—을 이 책을 통하여 설명하려 한다. 그가 말하는 정통은 “사도신경과, 그러한 신조를 간직했던 이들의 역사적 행위 일반”을 가리키지만(20p), 그는 “자신이 얻은 것에 한하여 기록했다”라고 말했다(20p). 그가 싸웠던 현대 사상들은 여전히 오늘날 시대 정신의 뿌리가 되고 있다. 쉽게 함락되지 않을 것 같은 그 견고한 사상들은 체스터턴의 담대한 논박에 그 한계와 모순을 드러낸다. 그래서 우리가 같은 “정통”을 붙들고 이단에 맞서 싸울 수 있도록 힘껏 돕는다.
그가 공격한 이단 사상 중 하나는 유물론이다. 유물론은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믿는 사상인데, 체스터턴은 유물론이 “다른 어느 종교보다 훨씬 더 제한적”이라고 평가한다(41p). 진화론은 성경과 타협할 수 없는데, 이는 진화론이 기본적으로 유물론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만일 여기 신비주의가 접목된다면(오늘날 유신 진화론자들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계시지 않아도 큰 상관이 없을 정도로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신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체스터턴은 유물론이 사람의 정신을 온전히 지켜주는지 묻는다. 오히려 “신비”를 받아들일 때, 사람은 온전한 정신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다. 유물론은 모든 신비를 찾아 제거한다. 그것이 사람을 더욱 자유롭게 하고 큰 만족을 가져다주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썩어질 육신을 가진 존재로 짐승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살다가 소멸하는 인생이 어떻게 자유롭고 만족스럽겠는가? 헛되고 헛될 뿐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체스터턴이 ‘자유주의 신학’을 비판했다는 점이다. 그는 “교회에 자유를 들여오겠다는 오늘날의 거의 모든 제안은 세상에 폭정을 불러들이겠다는 제안에 불과하다”라고 비판했다(227p). 그가 자유주의 신학을 반대한 이유는 그 근본에 유물론이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 기록된 기적을 자유주의 사상은 철저히 배척하고 부정한다. 왜 그런가? 유물론적 세계관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를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속박한다. 자신이 절대 원칙이라고 믿는 유물론을 가지고 기독교 사상을 통제하겠다는 폭정인 것이다. 체스터턴은 “하나님이 인격적이며 세상을 자신으로부터 분리되도록 만드셨다”는 교의적 주장을 발견하고 이것이 톱니바퀴처럼 맞아들어갔다고 자신의 회심 과정을 설명했다(142p). 정통은 칼빈이 주장한 것처럼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지식과 그것을 통하여 나를 포함한 세상을 바르게 아는 지식에 관한 것이다. 체스터턴은 “그리스도교를 생각할수록, 나는 그리스도교가 규칙과 질서를 세웠으나 그 질서의 주된 목적은 좋은 것들이 맘껏 펼쳐질 공간을 마련하는 데 있었음을 더욱 깨닫게 되었다”라고 고백한다(171p). 정통은 우리를 속박하는 폭정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은혜다.
체스터턴은 “정통”을 말하면서 성경 교의를 체계적으로 정확하게 기술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오늘날 조직신학이나 교리 서적과는 차이가 분명 있다. 어떤 면에서 그의 책은 소설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 풍부한 상상력과 탁월한 문체를 인내심 있게 소화하면, 그가 발견하고 적극적으로 변호하고 있는 정통이 얼마나 다른 사상에 비하여 아름답고 자유로우며 이치에 맞고 소망을 가져다주는지 독자가 직접 느낄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자기의 우주론과 성경의 정통 우주론을 비교할 수 있기를, 그리고 저자가 개인적으로 발견한 것처럼 성경의 정통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우주를 가장 아름답고 의미와 가치 있게 다루고 있음을 깨닫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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