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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새로운 목회자가 오고 있다

방영민 | 2022.05.14 09:37
새로운 목회자가 오고 있다 우리는 일하는 목회자입니다/김재완/이레서원/방영민 편집위원

새로운 목회자가 오고 있다

 

한국교회는 포스트-성장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코로나를 겪으며 교회는 교회의 본질과 교회의 위치를 재정비하고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교회가 예수님이 펼치셨던 치유와 가르침과 축귀의 사역을 이어가기보다는 세상을 따라가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았다. 대형화되고 상업화되고 기업화된 교회는 과연 성경적일까? 그렇다고 소형화되고 전통적인 교회의 모습을 추구하는 것은 성경적인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사회에도 부익부빈익빈이라는 극심한 양극화가 있듯 교회도 심각한 양극화가 있다는 것이다. 일반인들은 소수의 대형교회와 그 교회의 목사들을 보며 목사는 부유하고 잘 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10%도 안되는 교회와 목회자만 남들이 부러워하는 위치에 있지 나머지의 목회자들은 생계를 위협받을 정도로 찌들리게 가난하고 목회를 포기할 정도로 소명의 위기를 겪고 있다.

 

이것은 목회자의 사례와 처우를 보아도 분명하다. 담임목사와 부목사의 경제적이고 복지적인 차이를 보면 괴리감과 박탈감이 느껴질 정도이다. 어느 정도 위치에 따른 책임과 권위와 무게감을 인정하여 대우가 다른 것을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나 누가 봐도 상대적인 소외감과 비상식적인 격차는 교회는 무엇이고 목회자는 누구인지 고민하게 된다. 교회가 기업이고 이윤을 위한 공장이라면 이해가 되어도 그것과 상관없는 생명공동체라면 본질적인 의문을 갖게 된다.

 

교회의 성장이 멈추었고 교인의 수도 줄고 반면에 목회자는 넘친다는 것은 기정 사실이다. 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어느 교단은 대대적인 프로젝트로 동행기도회도 하고 신학교마다 여러 가지 연구와 세미나도 열리고 교회마다 간절하게 기도를 한다. 우리나라 경제의 부흥과 함께했던 교회의 부흥은 멈추었고 산업과 문화의 성장과 함께했던 교회의 성장은 정지를 넘어 하향선을 그리고 있다.

 

교회의 수요와 목회자 공급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교단 신학교도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대부분 운영을 하니 학생들이 줄어드는 것에 불안해한다. 기본적인 소양과 실력과 자격을 갖춘 자들을 엄격하게 선별해야 하는데 이미 대량화 되어서 기본과정만 이수하면 5-6년에 목사 안수를 받는다. 안수 후에는 전임교역자로 교회의 직원이 되어야 하는데 교회가 그들을 다 받아줄 수가 없다. 게다가 비인가 신학교에서도 많은 목사가 배출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목회자가 다른 일을 선택하여 이중직을 겸하고 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고 부름을 따라 목회를 감당하기 위한 것이다. 중대형 교회에서 사역하는 목사들은 다른 일을 가질 수 없다. 합당한 사례를 주어서라기보다 그에 따른 사역량이 많기 때문이다. 새벽기도부터 교회에 나가서 정해진 심방과 일과를 감당하고 저녁에 심방까지 있는 날은 10시가 되어 퇴근한다. 그리고 다음날 또 새벽기도회에 나간다.

 

그러니 이런 중대형교회에 목회자들은 이중직은 가질 수가 없다. 사역과 목회를 은혜롭고 능력있게 감당하기 위한 기도시간과 말씀준비 시간도 턱없이 부족한 경우가 있는데 이중직은 꿈에도 꿀 수 없다. 이 고귀하지만 힘들고 무겁게 여겨지는 소명이 주는 부담감과 중압감을 늘 지니고 살아간다. 게다가 정말 바쁘고 쉼없이 돌아갈 때는 삼디 업종에 근무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외 작은 교회나 미자립교회에서 목회하는 분들과 경제적인 자립이 안되는 목회자들은 다른 직업을 택하여 가정을 꾸리고 소명을 이어간다. 이들이 실력이 미천하거나 목회적 소명이 부족하고 믿음도 약해서가 아니다. 한국교회의 성장에 따른 양극화 현상과 교단의 무()대안과 교회의 어긋난 가치관 등으로 살아갈 길이 막힌 것이다. 누가 그들을 향해 소명이 부족하고 노력을 안해서라고 함부로 말할 수 있겠는가.

 

물론 목회자들 중에는 교회를 섬기기에 턱없이 부족하고 형편없는 자들이 있다. 여러 가지 중독에 허덕이는 자들도 있고 성경지식도 없고 사람에 대한 이해도 없이 목회한다고 달려든 자들이 있다. 자신의 상처에 얽매여 사람을 품지 못하는 자들도 있다. 자신이 괴로워 동역자들을 괴롭히고 교회를 힘들게 하는 자들도 있다. 순수하고 선한 마음이 아니라 불순하고 세속적 욕망으로 교회를 섬기는 직원도 있다.

 

그런데 이런 자들은 이중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교회를 섬기는 자들 중에도 있다. 그렇다고 이중직을 선택하는 자들은 그들에게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믿음이 없고 기도가 없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벼랑 끝에 몰려 있으니 기존 목회자들보다 더 많이 기도하고 매달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목회 외에 다른 일을 선택하게 한 것일까? 저자는 이것을 인류학적으로 풀어간다.

 

인류학적 접근이라고 하여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사회학적으로 접근하고 우리나라 역사적 배경과 교회의 배경을 비교하며 설명한다. 아울러 일하는 목회자들의 인터뷰와 현실을 조사하여 그들의 의식과 문제를 연구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필자가 이 연구와 노력을 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의 핵심부를 조사한 것이 아니라 가장자리에 있는 자들을 중심으로 끌어들여 연구하여 문제를 분석하고 대안을 내는 저자의 문제의식과 고민과 대안에 깊은 존경을 표한다.

 

그러나 필자는 저자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일하는 목회자가 죄도 아니고 이들이 목회생태계를 흐리고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교회의 왕좌에 앉아서 교회를 기업화하고 교회를 독점하여 권력화하는 목회자가 더 문제이고 여러 성적인 문제와 무속적이고 비성경적인 프로그램으로 교회를 운영하는 목회자가 더 목회환경을 더 어렵게 한다. 목회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은 이중직이 아니라 세속에 찌든 목회자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중직을 가진 자들을 향해 정죄하고 비판해서는 안될 것이다. 성과 속의 경계를 허무는 자라는 판단은 섣부른 생각이다. 물론 이중직에 있는 자들도 루터의 만인제사장을 언급하면서 자신이 하는 일 또한 목회라고 주장하는 것을 삼가야 할 것이다. 루터는 직업의 평등과 만인제사장을 주장했지만 목사를 통해 교회를 세워가는 막중한 사명과 책임을 강조했다. 그래서 목사의 고유성과 사명은 유효하기에 이것을 일반직업으로 연결해서는 안될 것이다.

 

저자는 이중직을 선택하는 자들이, 그들의 인터뷰와 함께, 새로운 교회를 원해서라고 한다. 기존 교회의 불합리함과 모순과 문제를 벗어나 평등하고 합리적이고 인격적인 교회를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진정한 교회는 안전한 교회이고 교회에서 안전한 관계가 맺어지기 위해서는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이 방법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진정한 교회는 목회자가 경제적으로 독립되어야지만 가능한 것일까?

 

재정적 독립과 관련된 여러 사례들을 저자는 모아놓았고 저자 또한 이 경제적 자립을 안전한 교회로서의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목사가 이중직을 겸해서 교회로부터 손을 벌리지 않고 교회의 헌금으로 사례를 받지 않으며 자신의 은사로 재정을 채워가며 사역하면 더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자신의 수입으로 교회에 헌금하고 사역하면 교회가 더 안전해질까?

 

필자는 이중직에 대한 문제와 연구와 그들의 아픔과 우리의 현실을 보며 충분히 공감하고 아픔도 느낀다. 그리고 이중직을 하고 있는 목회자와 나라는 목사도 별반 차이 없는 자이고 나도 그렇게 될 수 있는 사람이기에 그들에 대한 비판은 전혀 없다. 오히려 기존 교회의 문제와 한계를 절감하고 새로운 교회를 원하고 자신의 은사와 노동으로 생을 살아가는 그들이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또한 이중직을 겸하며 찾아오는 여러 가지 환멸과 비난과 정체성 혼란이 있음에도 꿋꿋하게 버텨가는 그들을 공감하며 오히려 힘내주어 새로운 길을 만들어주길 응원한다. 저자도 이중직 목회자보다는 일하는 목회자라는 표현을 쓰며 이들이 포스트-성장한국교회에 돌파구를 열어줄 대안이라고 한다. 외부로부터의 개혁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개혁을 끌어낼 수 있는 동력이라는 것이다.

 

일하는 목회자에 대한 저자의 생각에 공감한다. 그러나 과연 새로운 교회와 사람들이 원하는 교회, 인격적인 교회는 목회자가 재정적인 독립을 하면 이루어진다는 인터뷰들과 저자의 생각은 약간 나이브한 것 같다. 한편으로는 그만큼 돈으로 인해 목회자들이 너무 신음하고 교회 또한 재정에 있어서 합리적이지 못했기에 이러한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 예상한다. 목회자가 눈치를 많이 봐야 하는 구조와 목회자에 대한 잘못된 기대 또한 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그러나 안전한 교회는 목회자의 재정 독립으로 성립되지 않고 인격적인 교회는 목회자의 재정 확보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이것만큼 세속적이고 비인격적인 교회가 없는 것 같다. 교회가 목회자에게 사례를 줄 능력이 없으니 돈을 버시며 목회하라는 것이 이해가 되는가? 교회는 재정독립으로 성립되지 않고 목양으로 성립되는 곳이고 재정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목양관계로 세워지는 곳이다.

 

교회라는 곳은 바른 목양관계를 통해 하나님의 뜻과 진리가 세우신 목회자를 통해 교회와 성도에게 전달되고 그 말씀 앞에 교회는 변화하는 곳이다. 목회자는 그 일을 위해 부름받았고 그것을 위해 생명을 걸고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이다. 만약에 성도들이 우리 목회자가 돈을 벌어와 헌금하기를 원한다면 교회일까? 성도들이 목회자의 재정독립을 지원해주지 않고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라고 한다면 성경적인 교회일까?

 

끝으로 우리의 교회가 얼마나 무너졌고 정도를 벗어났으면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고민이 깊어진다. ‘일하는 목회자를 향해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아무도 그들을 비난하고 정죄할 수 없다. 교회의 가장자리에 있지만 교회의 핵심적인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목회자가 은사와 실력을 겸비하여 다른 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이중직이 문제가 아니라 눈물을 흘리고 고뇌하며 그 자리까지 몰리게 된 원인을 알아야한다.

 

일하는 목회자가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교회의 대안이 될까? 저자는 그렇게 주장한다. 그들이 중요한 역할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안은 아닌 것 같다. 교회의 대안은 일하는 목회자가 아니다. 교회다운 교회가 되는 것이고 바른 목양관계가 정립되는 것이다. 더 본질적인 일에 집중하여 시대의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 ‘포스트-성장’, ‘포스트-코로나의 시기에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는 길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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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몬드 딜라드는 WBC 성경 주석 시리즈 중 <역대하>를 집필한 성경학자이고(솔로몬, 2005), 이번에 좋은씨앗에서 출간된 <열왕기, 그리스도 중심 성경 읽기>와 함께 단 두 권의 책이 국내 보급되었다. 출판사는 딜라드에 관하여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데 정평이 난 학자로 알려졌다”고 소개했는데, 그의 책을 추천한 사람 중에서 싱클레어 퍼거슨과 D. A. 카슨, 모세스 실바 등 건전하고 성경적인 교리를 가르치는 데 헌신하고 있는 유명한 학자들이 있어서, 다소 생소한 딜라드 역시 신뢰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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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시간 관리에 관한 신앙 서적을 많이 읽어보진 않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케빈 드영의 <미친 듯이 바쁜>(부흥과개혁사, 2013)이다. 생산성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삶을 오히려 규모 없게, 목적을 상실한 채 살지 않도록 경고하고, 단순한 목표를 세우고 충성스럽게 살라고(왜 바쁜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항상 기억하라고) 권면하는 좋은 책이었다. 2019년에는 팀 챌리스가 쓴 <Do More Better: A Practical Guide to Productivity>를 번역해서 청년들과 함께 읽고 실천해 ...
로마서 강해의 모범 사례 로마서 강해의 모범 사례
로마서 강해1: 로마서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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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교회 담임목사이자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인 김병훈이 쓴 책 중에서 처음 읽어본 것은 개혁된실천사에서 출간된 <슬픈 인생과 그리스도의 위로>였다(2021). 책 제목만 보고 가졌던 선입견이 금세 무너졌다. 저자는 같은 주제를 다룬 여러 신앙 서적이 그렇듯 몇 구절의 성경 본문을 가볍게 훑고 나서 숯한 예화와 쉴 새 없는 권면으로 독자를 위로하려고 하지 않았다. 주해가 풍성한 책이었다. 그 말은 저자가 성경 본문의 의미를 제대로 연구하고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애쓴다는 걸 의미한다. 어쩌면 그런 저자의 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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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신학: 조직신학 관점의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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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은 언제나 현재의 문제점을 전제하고, 기독교 개혁은 언제나 현재지향적이기보다 과거의 가르침을 기반으로 미래를 지향한다. 종교개혁은 루터와 칼빈, 루터교회와 개혁주의 교회로 단순하게 정리할 수 없는 역사적 신학적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종교개혁의 역사와 그 가운데 선포된 종교개혁자들의 통일성 있는 가르침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계속해서 유익을 끼치는 이유가 있다. 종교개혁은 온건한 모양이든지 급진적인 방식이든지 일반적으로 '오직 성경'의 정신을 갖는다. 사람이 만든 전통과 사람이 세운 권위가 아니라 성경에게 모든...
돈에 대한 균형 감각 익히기 돈에 대한 균형 감각 익히기
돈: 탐욕의 대상에서 사랑의 도구로
손성찬/죠이북스/모중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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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교회가 되는 길 마침내, 교회가 되는 길
마침내, 교회가 희망이다
박영호/복있는사람/모중현 편집위원


교회는 참으로 독특합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놀라운 위로를 받습니다.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영광과 위엄을 느낍니다. 우리의 어떠함보다 존재 자체를 받아주고 귀하게 여깁니다. 그 안에서 한없는 평안과 사랑을 누립니다. 함께 울고 웃는 사람들로 인해 진정한 하나 됨을 경험합니다.반면 교회에서 우리는 좌절과 실패, 억울함의 기억도 있습니다. 세상보다 더하다고 생각들 때가 있습니다. 배제와 혐오, 편견과 차별이 만연합니다. 그것이 거룩함이라고 포장됩니다.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 보입니다. 탐욕으로 눈...
이제야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 이제야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
따름, 그 회복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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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은 우리 인생을 변화시킵니다. 누구를 만나는지와 그 만남의 깊이와 친밀함의 정도에 따라 변화의 폭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인생의 막다른 길에서, 더 이상 나의 방법으로 헤어 나올 수 없을 때, 누군가의 만남이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음을 기억합니다.'복음'은 교리의 모음이 아닙니다. 해야 할 것들의 목록도 아니지요. '복된 소식'은 '만남'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우리에게 가장 큰 '좋은 소식'입니다. 하나님이 인간 되셔서 친히 우리에게 만나자고 말씀하시며, 손을 내밀어 주시고, 함께해 주시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그 ...
함께 눈물 흘릴 수 있다면.. 함께 눈물 흘릴 수 있다면..
우리의 춤은 변하여 슬픔이 되고
전원희/지우/모중현 편집위원


기쁨과 행복이 강요받는 시대입니다. 힘들어도 기뻐하라 합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감사하라고 합니다. 눈물을 빨리 닦고 다시 일어서라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충분하게 울어보지도 못한 채, 경쟁의 틈바구니 속으로 재차 들어갑니다. 소리 내어 크게 충분하게 울고 싶었는데 말입니다.우리에게 어쩌면 슬픔에 오롯하게 잠기어 있는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한 시간은 고요하게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이 됩니다. 아픔을 부둥켜안고 오랫동안 울어본 사람만이 타인의 고통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그들의 눈물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성경에도 기쁘고...
온전함을 위한 발걸음 온전함을 위한 발걸음
역설
파커J.파머(Parker J. Palmer)/김종훈 /템북/모중현 편집위원


세상 한복판에서 살아가지만 세상과 같지 않아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 자체로 역설입니다. 강렬하게 통합된 삶을 원하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은 우리의 실제 삶과는 많이 다릅니다. 우리는 현실의 문제 앞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존재의 연약함으로 좌절하곤 합니다.개인적인 모순과 역설로도 벅찬데, 세상으로 나가면 더 큰 혼돈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자신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부분이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가장 큰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겸손은 나약함으로 보이기도 하고, 진취적인 모습은 교만으로 비치기도 합니다.작가이자 교사, 활동가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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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은 사랑을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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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사순절이 되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평소보다 더 많이 묵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십자가의 의미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시간이 갈수록 십자가가 보다 분명하게 우리의 삶 한가운데로 들어와야 한다고 느껴집니다. 우리 삶에서 십자가가 해석되고 적용돼야 한다는 말입니다.사순절의 기간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고난을 마음 깊숙이 새길 수 있는 유익한 절기입니다.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이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선명하게 우리의 일상과 맞닿을 수 있는 고난과 십자가에 대한 묵상이 우리에게 요구됩니다.말씀 자체의 묵상도 ...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
버텨 줘서 고마워
한미연/세움북스/모중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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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통해 꿈꾸는 세상 그림을 통해 꿈꾸는 세상
교회 옆 미술관
구미정/비아토르/모중현 편집위원


예술에 관심은 많지만, 듣고 보는 것을 잘 이해하고 누리지는 못하는 듯합니다. 중학생 때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던 피카소 작품전이 생각납니다. 처음으로 접하는 그림이 하필 피카소라니요. 뭔가 모를 꿈틀거림이 있었지만, 그것을 표현하기에는 여러모로 어렸습니다.작품을 대할 때는 사전 지식과 더불어 직관적으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 두 가지가 공명할 때 제대로 작품을 알 수 있습니다. 음악이나 미술이 우리에게 말을 건네며, 그것을 통해 우리는 깊은 감동을 경험합니다.특별히 성경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한 '성화...
하늘과 땅을 잇대는 교회 하늘과 땅을 잇대는 교회
우리는 날마다 교회가 무엇인지 묻는다
이재학/샘솟는기쁨/모중현 편집위원


개인적으로 신학의 각론 중에 가장 어려운 부분은 교회론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과 우리가 경험하는 실제적 교회의 차이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실재로서 교회가 존재해야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슬프고 암담하기까지 합니다.물론 성경에서 나오는 초대 교회도 말도 많고 탈도 많았습니다. 그 갈등을 중재하고 새로운 해법을 모색하고자 바울은 편지를 적었습니다. 바울은 완벽하게 정리된 교리 모음집을 주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 교회의 어려움과 문제에 대처하고자 그 상황에 가장 걸맞은 처방전을 제...
장벽을 넘으시는 예수님 장벽을 넘으시는 예수님
비트 주세요, 주님
지푸, 최재욱, 이창수/이야기가 있는 집/모중현 편집위원


참 많은 장벽이 존재합니다. 역설적이게도 교회에 더 많은 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교회에서 '거룩'이라는 단어는 좀 더 정제되고 점잖은 표현이나 태도를 뜻하게 된 듯합니다. 기존의 문화와 다르면 재빨리 선을 그으며, 세속적이라 비난할 때도 있습니다.그 틈을 메우려 했던 사람들 중에서도 성속의 이분법을 완전하게 넘어서지 못한 사람들이 보입니다. 가령 힙합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지만, 언어는 부드러워야 하며, 내용은 복음적이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물론 아직도 힙합이나 랩이라는 도구를 불편해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습니다....
죄인과 소외된 사람들이 환대 받는 교회 죄인과 소외된 사람들이 환대 받는 교회
어쩌다 거룩하게
나디아 볼즈웨버(Nadia Bolz-Weber)/윤종석/바람이불어오는곳/모중현 편집위원


교회에 대해 고민이 많아지는 요즘입니다. 교회는 무엇이며, 어떠한 모습이어야 할까요? 정답은 보이지 않는 듯합니다. 다양한 이론만큼이나, 실재하는 교회는 저마다 다른 모습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은혜를 누리기도 하지만, 실패와 좌절을 맛보기도 합니다.중요한 요소들이 많이 있겠지만, 교회에 무엇보다 우선되는 것은 죄인을 환대할 수 있는 은혜의 능력일 것입니다. 소외된 이웃, 불편한 사람일지라도 너끈하게 감당하며 포용할 수 있는 모습 말입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교회조차도 깨어진 죄인들의 모임이니까요.결국 죄인이 죄인을 수용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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