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하나님 크신 사랑은

서상진 | 2019.09.11 06:07
<하나님 크신 사랑은~>



관계는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모르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서로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맺음을 통해 사회는 형성이 되어집니다. 그런데 어떤 관계이든 그 관계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계속 이어지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반대로 약속을 어기게 되면 관계는 깨어지게 됩니다. 관계라고 하는 것은 서로 간의 신뢰가 밑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중요한 약속을 했는데, 한쪽에서 그 약속을 어기게 되어 굉장히 서먹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약속을 깬 사람이 약속을 한 사람에게 사과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 관계는 예전과 같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서로 간의 신뢰에 금이 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서로 용서를 하고 용서를 한다고 하지만,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용서란 완전할 수 없는 용서입니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찾아오신 그 사람을 사랑하셨습니다. 사랑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람에게 약속을 주셨습니다. 사람은 자신을 찾아오신 하나님, 자신을 사랑해 주신 하나님, 자신과 약속해 주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게 됩니다. 이 구조가 하나님과 사람과의 언약적 관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약적인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 관계의 틀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이드 라인을 허락하셨습니다. 그 가이드 라인을 잘 지키기만 하면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는 영원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그 가이드 라인을 자꾸만 넘어갑니다. 그리고 지키는 것도 싫어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멀리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번 맺은 관계를 깨뜨리기 싫어하셨습니다. 끝까지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것이 사람의 용서와 하나님의 용서의 차이점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용서입니다. 사람은 관계가 깨어지고 용서를 하고 용서를 받아드린다고 해도 사람의 기억 한쪽에 늘 깨어진 신뢰에 대한 생각을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용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완전한 용서입니다. 더 이상 기억하지 않는 용서입니다. 주홍 같은 붉은 죄라고 할지라도 눈과 같이 희게 하는 용서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이유는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의 절정은 자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어 주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이심으로 우리를 완전히 용서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도, 받아드리지도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 제도를 보면, 너무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복잡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이렇게 다양한 제사 제도를 만드셔서 제사를 드리는 데 힘들게 하셨을까? 라고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횟수도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반복적이고, 복잡하게 만든 제사 제도이지만, 이런 반복을 통해서 우리가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를 깨닫고, 다시금 새로운 관계를 맺고자 하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이 그 안에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사는 용서와 사랑을 기반으로 합니다. 제사를 드리는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제사를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다시 새로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완전한 용서와 사랑을 선언하신 그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사랑을 우리가 이제 실천하면 됩니다. 내 마음을 다해서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경험한 우리가 해야 할 삶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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