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참는 것과 품는 것의 차이

배영진 | 2023.01.20 10:42
참는 것과 품는 것의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누군가와 결혼하여 부부로 살거나, 누군가의 리더로 살아가는 경우,
우린 원치 않게 상대방의 미숙함을 알게 되고 필히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혹 어떤 경우 상대의 미숙함이 아니라도 그것이 내게 편하지 않은 상황이
자주 발생합니다. 그렇게 불편한 상황에 오면 우리 자신이 대응하는 방식은
대개 세가지입니다. 1. 참는다. 2. 그건 아니라고 말한다. 3. 품는다.
이 중 최악의 대응이 참는다 에 해당합니다.

왜냐하면 참는 것은 자신을 억누름을 의미하는 것으로 백해무익입니다.
상당히 참았다 해도 언젠간 폭발합니다. 상대방의 미숙함을 보고 참으면
그 억눌린 스트레스는 몸으로 퍼져 병이 되거나 마음에 질병이 됩니다.
내가 참았다고 생각했으나 그 억눌림이 엉뚱하게 다른 쪽으로 흘러가
파괴적 형태로 분출 확산되기 때문입니다. 오랜 시간 말이 안되는 상황을
참으면 홧병이 되거나 우울증이 된다.

더군다나 신자의 경우, 오래참음이라는 성령의 열매가 있는데 큰 오해가
있습니다. 오래참음의 열매가 바로 참는 것을 말하는 줄로 여기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오래참음은 사랑의 다른 표현입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이것은
그냥 할 수 없이 꾹 참는 억누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왕왕
상대방의 말도 안되는 행동을 참으면서 그것을 내 신앙으로 그런 것으로
아는 경우, 더 큰 문제가 됩니다. 분명 순종했는데 홧병이 도지는 것입니다.

참는 것이 아니면 대안은 뭔가? 품는 것입니다. 품는 것은 자기 내면의 용량을
넓히는 것으로 그걸 성경은 온유라고 합니다. 그게 선으로 악을 이긴다는 뜻입니다.
아까 얘기한 것, 오래 참음이 바로 품는 것입니다. 엄마가 아기를 품듯이, 상대의
미숙함을 내가 품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 자신이 미숙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성숙으로 나아갈 때만 상대의 미숙을 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품을 수 없다면 참기보다는 차라리 아니라고 표현하는 게 낫습니다.
내가 품을 수 있는 용량이 안되면 이건 아니다 말하여 내 의사를 드러내는 편이
참는 것보다는 더 건강합니다. 물론 다툼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참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품을 수 없는데 그냥 참으면 내면에 속병이 듭니다.
참았는데 품은 줄로 착각하는 경우에 내면에 큰 혼란이 발생합니다.

내가 상대의 미숙함을 보고 그를 품었는지 참았는지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
품었다고 생각했는데 억울하고 화나 난다면 품은 게 아니고 참은 것입니다.
품는 것은 오래참음이라는 성령의 열매이며 주님의 마음으로 그를 용납한 것이
맞습니다. 주님이 나를 오래 참아주셨다는 것을 깨달아야 상대를 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상대를 품으면 속이 상할지는 모르나 화가 쌓이지는 않습니다.

부부사이에는 품을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품을 수 없으면 싸우는 게 더 낫습니다.
참으면 내 속에는 병이 되고 둘의 관계도 보이지않게 속으로 병이 듭니다.
목양은 어떤가요? 품을 일이 태반입니다. 내 목양을 받는 이는 미숙한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그가 나보다 성숙하다면 왜 내가 그를 목양하겠습니까? 그래도 매번 상대방에게
당신 이건 아니라고 훈계와 책망을 할 순 없습니다. 그렇다고 매번 참으면 문제입니다.
그냥 오래 꾹 참기만 하면 그는 속병 중병이 듭니다.

그러니 결혼생활이니 목양은 품는 것이 유일한 대안입니다. 어떻게 품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단 한가지입니다. 주님이 나를 오늘까지 품으셨음을 매일 깨닫는 것입니다.
그게 은혜입니다. 결혼생활과 목양은 은혜로 합니다. 은혜 떨어지면 품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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