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김성욱개혁신학을 사랑하여 관련 서적과 교회사를 통해 신앙선배님들이 걸어갔던 발자취에 관심이 많고, 조국 교회에 참된 말씀으로 인한 부흥이 일어나길 소망하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소재 삼송제일교회에 출석하며, 중고등부 부장을 맡아서 봉사하고 있다.

모든 성도는 신학자(성경의 전문가)여야 한다.

김성욱 | 2021.08.21 18:25
< 모든 성도는 신학자(성경의 전문가)여야 한다 >

이 시대에 성경을 열정적으로 연구하는 이들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크게 존재하는 것을 바라보며, 성경연구나 경건서적을 탐독하는 것에 있어 너무 지식적으로 많이 알게 되는 것은 좋지 않다는 지적을 반박한다.

이것은 무지로 대표되는 이 시대에 정확히 반대되는 주장이다.
사실상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종교활동으로 대체했는데,
그 이유는 삼위 하나님에 대한 엄청난 무지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과 구원의 방법을 누구나 알 수 있도록 문자를 통해 계시해 주신 것은, 이 특별 계시를 아주 부단히 연구하여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라는 것을 전제한다.
그리고 오직 이 성경을 통해 예배를 중심으로 신앙의 유일한 기준과 방법이 제시된다.

이 시대에 기도나 찬양으로 먼저 하나님께 나가려 하는 시도들이 존재하고, 그 방편들에 치중하여 신앙생활을 해나가려는 모습들도 많이 보인다.

그러나 성도의 출발점은 성경이요.
성도의 종착지도 언제나 성경과 함께 있다(마5:18).

성경의 인물들을 포함해 교회사의 위대한 신앙인들은 모두 "그책(성경)의 사람들"이었다.

신약에서는 사도들로부터 시작해 교부들, 종교개혁자들, 청교도들을 비롯해 근대의 개혁신학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철저하게 성경에 매인 사람들이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묵상하고, 성경을 가지고 기도하고, 성경을 가지고 삶의 규범을 삼고, 성경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았다.

몇가지 구체적인 사례들을 소개한다.

마틴 루터와 존 칼빈은 성도는 성경의 박사여야 한다고 했으며,
조나단 에드워즈는 모든 성도는 신학자여야 한다고 했다.

리차드 십스의 조언에 귀를 기울여 보자.
"종교 그 자체는 깊은 신비이다. 그래서 굉장한 양의 학문을 요구한다."

다음은 "퓨리탄의 힘" 이라는 책의 일부다.

뉴잉글랜드의 청교도 존 카튼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보통 하루에 12시간 연구했는데, 그는 "그것을 학자의 하루로 간주하였다."

윌리엄 브리지는 보통 하루에 17시간 공부 하였다.

조셉 얼라인은 동시대의 학도에 의하면, "열심에 빠진 정도가 아니라 지독하리 만큼 수고의 노력을 하였다."

웨스트민스터 회의의 의장 윌리엄 트위세는 임종시에
"이제 마침내 나는 영원 세계에 가서 계속 공부할 여가를 갖게 되었다" 라고 고백했다.

앤워쓰의 언약도 사무엘 러더퍼드는 보통 새벽 3시에 일어났다. 그리고는 (성경을) 비교적 깊이 탐닉하였다.

존 프레스톤은 하도 공부를 많이 하느라 잠잘 시간까지도 아까워 하였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프레스톤은 "침구를 늘어지게 해놓고 밤에 잘 때는 침구가 떨어지게 해서 추위 때문에 잠을 깨도록" 하곤 했다.

이상의 퓨리탄 목사들은 현대의 복음주의 계통 목회자들에게서 좀처럼 보기 힘든 철저함과 남자다움을 가지고 직무에 몰두했다.
그들은 온갖 수단을 다 사용했으며, 안 읽은 책이 없고,
연구 검토하지 않은 구절이 없을 정도였다.

이처럼 성경을 그냥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 파고들어 학자들이 연구하듯 공부하는 자세가 꼭 필요하다.

로이드존스 목사님의 조언과 같이 성경을 아는 지식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것이 모든 성도들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 과목이기 때문이다!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로마서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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