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조정의초등학교 5학년 때 유평교회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2007년 유평교회에서 보내심을 받아 미국 아이오와 주에 있는 엠마오 성경 대학교에서 성경공부 일년 코스를 마치고 2008년부터 2013년까지 LA에 있는 The Master’s Seminary(마스터스 신학대학원)에서 M.Div와 Th.M(신약전공) 과정을 마쳤습니다. 2013년 6월부터 유평교회에서 청년회교사와 주일설교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2015년 12월 27일 공식적으로 유평교회 목사로 임명되었습니다. 아내 김선미 자매와 2008년 결혼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강해서인 <야고보서>와 칼럼집 <정직한 크리스천의 솔직한 질문들>이 있습니다.

질의응답(1): "아이들에게 자존감을 갖게 하라"는 말에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요?

조정의 | 2019.02.04 10:30

질문(1): 세상에선 ‘아이들에게 자존감을 갖게 하라’고 하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남도 사랑할 줄 안다’고 가르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무어라 대답해야 할까요?

개념을 명확하게 정리하지 않으면 좋은 말도 좋지 않은 말로 오해받고, 해로운 사상도 나쁘지 않게 들리게 됩니다. “자존감”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가 그래서 필요합니다. “자존감”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야 그것을 가져야 하는지 버려야 하는지 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자존감”(自尊感)이라는 단어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등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자존”이라는 말은 등록되어 있는데 첫째로 “자기의 품위를 스스로 지킴” 그리고 둘째로는 “자기를 높여 잘난 체함”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자존감을 갖게 하라”는 권면 안에서 “자존”의 의미는 첫 번째 의미를 가집니다. 남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품위를 지킬 수 있게 해주라는 말입니다.

자존감은 영어로 셀프 이스팀(“Self-Esteem”)이라고 하는데 옥스포트 영어 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에서는 이를 “자신의 가치와 능력에 대한 확신”(“confidence in one’s own worth or abilities”)이라고 정의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과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자신의 “품위”를 지키려는 마음이 자신의 “가치와 능력에 대한 확신”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자존감의 정의가 이렇다면 우리는 “개인의 가치와 능력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의 품위를 지키려면 자기의 품위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가치와 능력에 대해 확신을 하려면 자신의 가치와 능력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기독교의 자존감에 대한 정의를 소개하려 합니다. 홀맨 일러스트 성경사전(Holman Illustrated Bible Dictionary)는 “자존감”(Self-Esteem)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Respect for and confident acceptance of oneself as a person created by and useful to God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하나님께 유익을 끼치는 사람으로서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확신 있게 받아들이는 것

하나님 없이 개인의 가치와 능력을 측정한다면 이는 그가 가지고 있는 환경과 다른 이들의 반응에 철저히 의존적일 것입니다. 가정의 배경, 사회적 지위, 인간관계 속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과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 이런 것들이 자신의 품위를 결정하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그래서 보통 자존감이 낮아서 고민인 자녀를 둔 부모는 자녀가 어렸을 때부터 겪어야 했던 환경을 탓합니다.

반대로 여러 가지 주변 환경이 잘 갖춰진 곳에서 자란 사람은 대체로 자존감이 높은 아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자존감은 보통 “자기를 높여 잘난 체” 하는 것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또한, 그들이 의지했던 것들이 사라지면 자존감 역시 사라집니다.

참된 자존감은 하나님 없이 올바르게 세워질 수 없습니다. 인간 본연의 가치는 하나님이 정해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인 인권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데에서 비롯됩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바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시 8:3-8). 야고보는 말로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죄를 지적하면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약 3:9-10)고 말합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바 그 자체로 존엄하고 존귀합니다(창 1:26-27).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올바른 자존감의 필요조건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내가 가진 환경, 사회적 지위, 사람들과의 관계와 아무런 상관 없이 나는 존귀한 사람입니다.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그 누가 뭐라고 말해도, 그 누가 나를 무시하거나 업신여겨도 만물을 창조하신 천지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나를 당신의 형상대로 빚으시고 당신의 유익을 위해 나를 창조하셨습니다. 그것만으로 나는 충분히 존재 이유가 있으며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지켜야 할 품위가 있고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가치가 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봅시다. 자신의 가치와 능력에 대한 확신이 더욱 분명해지는 성경의 진리를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진리 안에서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자존감을 부여받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가치와 능력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 그 죄로 인해 하나님이 창조하셨으나 심판이 예정된 그리고 영원한 멸망을 기다리고 있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만일 그리스도가 없었다면 우리가 내세울 자존감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죽을 영혼을 살리셨습니다. 죽음으로 우리를 대신하셨고 그 피로 우리 영혼을 사셨습니다(고전 6:20).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할 정도로 우리를 가치 있게 보셨습니다(요일 4:10; 롬 8:35-39).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은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고(고후 5:17)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분의 영광과 기업과 존귀를 함께 이어받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밖에서 우리는 참된 자존감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무한한 자존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가치와 능력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져야만 우리는 열매를 맺는 생명을 가질 수 있습니다(요 15:5).

사도 바울과 같은 자존감이 우리가 가져야 할 자존감입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9-10)

세상이 정의하는 “자존감”으로 보면 바울은 무명하고 죽은 자 같이 징계를 받고 근심하며 가난하고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자존감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는 유명하고 살아 있으며 항상 기뻐하고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며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의 가치와 능력은 무한했습니다. 이 진실에 대한 확신이 바울이 가진 “자존감”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자존감을 갖게 하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봅시다. 그 말은 그 아이들이 스스로 더 자신감 넘치게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과 가치에 확신을 하게 하자는 말인가요? 아니면 아이들 자신의 연약함 그대로를 인정하면서 그가 신뢰해야 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무한한 가치와 능력에 대해 확신을 갖게 하라는 말인가요?

자신감이 없어 하고 항상 소극적이며 열등감을 느끼고 스스로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부정적인 말을 반복적으로 하는 등 “자존감”이 낮아서 생기는 일은 결국 그리스도 예수를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불신과 불순종의 증거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내 하나님이 되어 주셨는데 불행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되셔서 나를 눈동자처럼 보호하시고 돌보고 계시는데 무엇이 부족하다 말하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기까지 나를 사랑하셨는데 외롭다고 불평할 수 있겠습니까? 바울처럼 “모든 것을 가진 자”라고 확신에 차서 당당하게 외치는 것이 정상 아닙니까?

맞습니다. 아이들에게 자존감을 갖게 해야 합니다. 그들 스스로에게 있는 가치와 능력을 발견하여 자신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무능력함과 악독함을 발견하고 그들에게 모든 가치와 능력을 부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이 누리는 가치와 능력에 대해 확신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것이 올바른 자존감을 갖게 하는 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를 사랑해야 남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도 정확한 의미가 있습니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 자신의 가치와 능력을 사랑한다는 것이 아니라(이는 모든 죄인이 이미 너무도 잘하고 있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 자신을 바로 보고 자신의 모든 가치와 능력되시는 그리스도를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은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신의 가치와 능력에 대해 확신하는 것으로 올바른 자존감을 갖고 내 모든 것 되시는 그리스도를 온 맘 다해 사랑하는 사람이 남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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