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조정의초등학교 5학년 때 유평교회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2007년 유평교회에서 보내심을 받아 미국 아이오와 주에 있는 엠마오 성경 대학교에서 성경공부 일년 코스를 마치고 2008년부터 2013년까지 LA에 있는 The Master’s Seminary(마스터스 신학대학원)에서 M.Div와 Th.M(신약전공) 과정을 마쳤습니다. 2013년 6월부터 유평교회에서 청년회교사와 주일설교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2015년 12월 27일 공식적으로 유평교회 목사로 임명되었습니다. 아내 김선미 자매와 2008년 결혼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강해서인 <야고보서>와 칼럼집 <정직한 크리스천의 솔직한 질문들>이 있습니다.

코로나와 언약(4): 코로나를 겪는 우리에게 다윗이 한마디 한다면

조정의 | 2021.03.22 10:06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면서 정부의 책임은 막중해졌다. 국민의 건강을 책임져야 할 국가가 얼마나 또 어떻게 재난을 잘 이겨내는지 모든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재난지원금 정책을 통해 국민경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것에 대하여 찬반이 갈리고, 코로나 검진 및 예방 방침이 세워지거나 변경될 때마다 말들이 많다. 권력과 권한을 위임받은 지도자에게 국민은 지금 상황을 완전히(완벽하게는 아닐지라도 최대한으로) 통제해주길 바란다.

하지만 당신이 만일 대통령이라고 생각해보라. 대한민국 원수가 되어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책임이 당신에게 있다. 단지 질병과 싸우는 것만이 아니다. 정치, 경제, 안보,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당신에게 모든 책임이 있으니 어떻게 좀 해 봐라’는 압력을 받는다. 왕의 자리에서 선한 정치를 펴는 왕은 그런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백성을 돌본다. 다윗은 인구 조사를 하면서 하나님께 받은 심판으로 백성이 질병에 걸려 죽어갈 때 이렇게 하나님께 탄식하며 부르짖었다.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삼하 24:17)

백성이 아닌 나에게 차라리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지기를 바라는 마음. 능력의 한계를 여실히 느끼는 선한 왕이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절망감이다. 정직한 지도자는 절대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자신의 한계 앞에 늘 죄책감을 느낀다. 모든 악과 그 결과를 통제할 만큼 강력한 왕은 이제껏 없었다(사실 왕 자신의 죄도 완벽히 통제하지 못했다).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다.

”인간 지도자에게 완벽함을 기대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나라 이스라엘,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왕 다윗, 완벽한 조합으로 이루어진 이 나라에 문제가 있을 수 있을까? 하지만 성경을 펼쳐 다윗의 왕국을 자세히 살펴보면 좋았던 것만큼 좋지 않은 것도 많이 있다. 다윗 개인의 범죄로 국가가 위태로웠던 적이 있었고 다윗 왕가에 피바람이 불기도 했다. 다윗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로 하나님 앞에서 즉시 회개하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말씀을 순종했지만, 아담의 범죄 이후 타락한 세상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일에는 턱없이 부족한, 무능력한 왕이었다. 이스라엘 나라에 일어나는 범죄나 질병, 죽음을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는 말이다.

다윗은 하나님께 간구한다.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그들의 목자가 되시어 영원토록 그들을 인도하소서(시 28:9)

왕인 자신이 해야 할 일이지만, 결코 그 일이 자신의 손에 달려있지 않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다윗은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다윗 이후에 세워진 왕들은 더 절망적이다. 솔로몬은 최고의 지혜와 부를 자랑하며 이스라엘을 절정의 시기로 인도했지만, 우상숭배와 함께 국가를 내리막길로 몰아넣었다. 솔로몬 이후 쪼개진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각각 19명의 왕이 세워졌지만 38명의 왕 중에 30명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나쁜 왕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섬기며 결국 참된 진리를 떠나 하나님을 반역했을 뿐만 아니라 권력과 부를 가진 이들은 가난하고 헐벗은 자들을 착취하고 이용했으며, 백성들은 의로 인도받지 못하고 서로 악을 행하며 점점 부패했다.

하나님이 선택한 나라의 왕들이 줄줄이 실패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인간 지도자에게 완벽함을 기대할 수 없다는 교훈을 얻는다. 사울을 시작으로 분열 국가 마지막 왕들까지 각각의 왕들은 건축, 안보, 경제, 종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각각 업적을 쌓기도 했다. 백성에게 유익을 끼친 일도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있어서는 철저한 한계를 드러냈다. 가장 선한 왕도 이 땅에 뿌리 내려 인류를 전적으로 타락하게 만든 죄의 열매를 모두 없애지는 못했다. 많은 왕들은 오히려 악이 빠르게 증식되는 일에 힘썼다.

코로나 19는 아담의 죄로 인해 저주받은 땅에 내려진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질병과 죽음은 하나님의 창조물이 아니다. 당신은 어쩌면 의술과 기술이 극도로 발전한 이 시대 왕이 그 죄의 저주를 끊어주길 기대하고 있을지 모른다. 질병으로부터, 가난으로부터, 불공평으로부터, 미움과 시기로부터, 살인과 범죄로부터. 어떤 면에서 지금 세워진 국가 지도자가 실제로 그 일을 잘하고 있다고 느끼는 영역이 있을 것이다. 많은 업적과 선한 영향력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당신은 반드시 실망할 것이다. 지도자의 철저한 무능력 때문에. 때론 지도자의 이해할 수 없는 정책과 비전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는 당신은 더욱더 실망할 것이다. 하나님의 기준에서 어떻게 이렇게 멀어질 수 있는지 탄식하면서(어떤 정당에서 지도자가 세워지든 마찬가지다).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 다윗이 오늘날 우리에게 한마디 한다면, 그는 진심으로 고백하며 “인간 지도자에게 완벽함을 기대하지 말라”라고 말할 것이다. ‘나도 최선을 다해 해봤지만, 나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다. 심지어 내 삶도 통제할 수 없었다’라고 말할 것이다.

”약속된 완벽한 왕이 오셨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참 흥미로운 약속을 하셨다.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고 싶어 했고, 그런 다윗을 하나님은 이렇게 축복하시며 언약을 맺으셨다(대하 7:18).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삼하 7:12-13)

다윗의 자손 곧 그의 씨로 다윗 뒤를 이어 왕이 된 사람,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거룩한 집, 성전을 건축한 사람은 솔로몬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솔로몬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는 약속은 솔로몬에게 한정하기 힘든 약속이다. 그러면 누가 다윗의 자손으로 나서 영원히 나라를 다스릴 왕이 될 사람인가?

시대를 빠르게 건너 신약시대로 넘어오면, 신약성경 첫 책인 마태복음 가장 첫 구절에서 우리는 그 힌트를 만난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마 1:1). 흥미롭게도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 예수를 찾았다(마 2:2).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천사가 뭐라고 말했는가?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 1:33). 다윗의 자손, 다윗의 씨로 나라를 영원히 견고하게 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신약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서 우리는 다윗과 맺은 언약대로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다스리실 나라의 완성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사망과 음부가 불못에 던져진다(계 20:14). 죄의 저주로 내려진 사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죄의 대가를 치르는 음부도 영원한 불못에 던져졌다.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죄인들과 악한 천사들(귀신)도 모두(계 20:15).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을 것이다(계 21:4). 보좌에 앉으신 왕이 선포하시기를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하신다(계 21:5). 무엇이든지 속된 것,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 믿지 아니하는 자, 흉악한 자, 살인자, 음행하는 자, 점술가, 우상 숭배자는 그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불못에 던져진다(계 21:8, 27).

하나님은 나라를 백성에게 상속으로 주시고 백성을 아들로 삼으신다(계 21:7). 그 나라는 각종 보석으로 빛나는 성과 같고(계 21:11-22), 백성은 어린 양의 보좌 앞에서 그분을 섬기고 그의 얼굴을 보며 세세토록 왕 노릇 할 것이다(계 22:1-5).

시적인 표현으로 그려낸 그리스도의 나라의 모습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은 더 이상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악은 뿌리째 뽑혀 불못에 던져진다. 악의 결과물이었던 범죄, 죽음(사망), 음부까지 모두 다(마귀와 그 졸개들까지). 하나님의 온전한 영광이 조금의 어두움도 없이 밝게 비추는 곳, 그분의 사랑과 공의와 거룩과 선하심이 찬란하게 빛나는 곳, 그 나라가 다윗에게 하나님이 오래전 약속하신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다스리실 나라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완벽한 왕이 이미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당신이 눈으로 보고 있는 모든 악과 그 결과물을 제거하기 전에 먼저 당신을 그 죄로부터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다윗이 오늘 당신을 찾아와 한마디 한다면 그는 분명 당신의 시선을 이 땅에 세워진 혹은 앞으로 세워질 어떤 지도자에게서 돌이켜 하나님이 그에게 약속하신 완벽한 왕을 주목하여 볼 수 있도록 전심으로 외칠 것이다. “약속된 완벽한 왕이 오셨다.”

”영원히 다스릴 왕의 나라를 구하라”

코로나 19를 겪는 우리는 일상생활의 위협을 받으며(심지어 호흡과 기본적인 인간관계의 위협을 받으며) 많은 염려에 사로잡혀 있다. 누구를 만날까 누구를 만나면 안 될까 어디에 갈까 어디에 가면 안 될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매일의 삶 속에 반복되는 기본적인 일들도 모두 염려 거리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영원히 다스릴 왕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하신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왕으로 삼고 따르는 이들에게 이 명령은 지극히 당연한 명령이지만(자신이 소속된 나라를 구하는 것이니 말이다), 코로나 19를 겪으며 그리스도인은 피부로 와닿도록 이 말씀의 무게를 느끼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불안정하고 불공평한 이 세상에 미련을 많이 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시민권이 이 땅에 영원히 있다고 믿는 사람처럼 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소유하고 있는 재물과 주장할 수 있는 권리를 따지며 보이는 것들에 마음을 두고 안심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 모든 것이 흔들리는 코로나 19 시대를 경험하며 우리는 불완전한 세상과 그 지도자가 아니라 견고하고 무궁한 나라와 영광스러운 왕이 필요하다는 것을 더욱 간절히 느낀다. 그 왕을 구하는 것이 단지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서가 아니라 영혼 깊숙이 갈망하고 기뻐하는 일임을 깨닫고 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약속을 기대하며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말씀하신 왕을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기대하며 구하고 있다(계 22:20). 다시 말해 우리는 왕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는 데 필요한 모든 걸 주십사 하는 마음으로 명령하신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영원히 다스리실 그 왕을 구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그 나라에 머물다 잠시 우리에게 찾아와 다윗이 한마디 한다면 그 역시 우리에게 말할 것이다. ‘이 세상에 큰 기대를 걸지 말고, 이 세상 왕에게 소원을 두지 말고, 영원히 다스릴 왕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스도인은 코로나 19가 절대로 빼앗을 수 없는 소망을 가지고 산다. 그 어떤 환난,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위험, 칼, 사망, 생명, 천사들, 권세자들, 현재 일, 장래 일, 능력, 높음, 깊음, 그 어떤 피조물도 끊을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롬 8:31-39). 그리스도가 다스리실 그 영원한 나라에서 영원히 그리고 온전히 맛볼 수 있는 그 사랑을 당신은 구하고 있는가?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 영원히 다스릴 왕의 나라를 구하는 자,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간절히 구하는 자는 바울과 같이 이렇게 고백할 수 있을 것이다.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다”(빌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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