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채천석서강대 영어영문학과(B. A.)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였다. 국제선교대학원(I. G. S. T., Th. M.)에서 수학한 이후, 총신대학원에서 교회사로 신학 석사(Th. M.)와 신학 박사과정을 마쳤다(Ph. D. Cand.). 총신대학원 교회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한마음교회와 언약교회에서 협동목사로 봉사했으며, 평양신학교와 개혁신학연구원에서 교회사를 가르치기도 했다. 많은 기독교 서적을 번역하였으며, 『조나단 에드워즈의 부흥사상』, 『17인의 회심사건』(상중하), 『원자료 중심의 교회사』시리즈(심창섭 교수와 공저), 『성경의 바다』 등을 저술하기도 했다. 현재 크리스찬북뉴스 발행인 겸 대표로서 출판독서문화 활동과 선교 사역을 병행하고 있다.

강력한 복음설교자 아이언사이드(Henry Allen Ironside, 1876-1951)

채천석 | 2025.04.16 13:42

19세기와 20세기에 뛰어난 설교자이자 작가인 아이언사이드는 1876년에 토론토에서 태어났다. 그는 태어날 때에 난산으로 의사가 죽은 줄로만 알고 그의 어머니만을 돌보다가, 아직 숨이 붙어 있음을 알고 뒤늦게 조치하여 생명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는 아버지를 두 살 때 여위고 어머니와 함께 외롭게 생활했으며 생활고에 시달렸다. 그는 신앙 좋은 어머니의 인도로 어려서부터 교회에 열심이었다. 그는 12살의 나이에 주일학교를 운영할 정도로 총명하고 성경에 해박하였다. 그는 1888년에 드와이트 무디 부흥집회에 참석하여 도전을 받고, 무디와 같은 전도자가 되기를 열망하였다.


14살이 되던 어느 날 그는 문로(Donald Munro) 복음전도자를 개인적으로 만나 신앙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구원의 확신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어머니가 항상 소중히 여겼던 요한복음 3장을 기도와 함께 묵상하다가 구원의 확신을 얻었다. 하지만 그는 이후에도 두 번째 축복이라 일컫는 성령세례를 갈망하였고, 거룩함에 대한 열망으로 한적한 시골마을로 내려가서 하나님과 씨름하다가 환상을 경험하고 성령충만함을 입었다. 그는 이 경험 후에 자주 참석하였던 구세군 모임에 곧바로 가서 자신이 받은 복을 간증하였고, 꼬마 설교자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는 이로부터 1년 뒤에 구세군 사관학교에 들어갔다. 그는 매년 500편 이상의 설교를 하는 순회전도자가 되었다. 하지만 18살이 되었을 때, 과다한 스케줄로 병을 얻어 구세군 사역을 사임하였다.

1896년에 20살이 되었을 때, 그는 장로교 복음전도자인 헨리 발리(Henry Varley)를 돕다가 피아니스트였던 헨렌 스코필드를 만나 결혼하였다. 이 두 사람은 결혼하고 얼마 안 있어 사랑하는 어머니를 하나님 품에 보냈고, 그로부터 1년 뒤에 첫 아들을 얻었다.

구세군을 떠난 후에는 플리머스 형제단과 관계를 맺었다. 그는 형제단과 교제를 통해 설교가로서 명성을 떨쳤고, 한곳에 정착하여 목회하는 것보다 순회전도자의 길을 선택하였다. 그는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였고, 심지어 끼니를 먹을 수 없어서 9끼를 물만 먹고 설교를 하기도 하였다.


그는 공부를 많이 하지는 못했다. 그가 8학년 즉 중학교를 졸업할 정도의 학문이었지만, 누구보다도 글을 많이 썼고, 성경을 분석하는 지혜가 남달랐다. 그는 80여권 이상의 책을 저술하였고, 7,500페이지의 일기를 남겼다.


그는 달라스 신학교에서 교수직을 제안 받았으나, 한곳에 정착하는 직분을 좋아하지 않아 이를 사양하고 다만 틈날 때마다 신학생들에게 강의하였다. 그는 어렸을 적에 무디와 같은 목사가 되기를 바랐던 것을 1929년에 이룰 수 있었다. 그는 시카고 무디 교회에서 1년 동안 임시목사로서 설교하였는데 그가 설교할 때마다 4,000석의 교회 좌석이 모자랐고, 그곳 교인들의 끈질긴 간청으로 담임목사직을 수용하여 18년간 목회하였다하지만 목회하는 중에도 복음전도자로서 많은 곳을 여행하며 설교하였고, 그는 죽을 때까지 125만 명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으며, 7,000편의 설교를 남겼다.


그는 1935년 당시에 유명한 복음전도자인 빌리 선디의 장례식을 집례하였으며, 1942년에는 아프리카 오지 선교회의 의장으로 봉사하기도 하였다. 그는 공부를 많이 하지는 못하였을지라도, 그 어느 학위보다도 영예로운, 1930년에 휘튼 칼리지에서 명예문학박사, 밥 존스 대학에서 명예목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아내 헬렌이 죽은 해인 1948년에 무디 교회를 사임하였다. 그는 말년에 백내장으로 시력이 좋지 않아 사역에 제약을 받았고, 수술 후 1년여 정도 뉴질랜드에서 순회 설교자로 봉사하다가 1951년에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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