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서중한총신대 신학과
    총신대학원(M.Div.)
    연세대연합신학대학원(Th.M.)
    총신대학원 박사 과정 마침(Ph.D.Cand.)
    다빈교회 담임목사

No Jesus phobia(예수중독)

서중한 | 2019.03.01 20:29

지난 2월 설 연휴에 안타까운 죽음의 소식을 접했다.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었던 윤한덕 의사의 죽임이다. 그는 우리나라의 열악한 응급체계를 개선하려고 오랜 시간 외로운 길을 걸어 왔다. 그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응급의료 전용 헬기 도입과 재난 응급의료상황실 운영, 국가응급진료정보망구축이 이루어졌다. 설 연휴에도 권역별외상센터 13곳과 전국의 응급실 532곳의 병상을 관리하느라 부모님을 찾지 못하고 4평짜리 집무실 의자에 앉아 51세의 나이로 과로사하였다. 그는 25년간 의사 일을 했지만 집 한 칸 없이 전세를 살고 있었단다. 응급의료 분야는 일이 많고 힘들어 의사들의 기피 대상이다. 윤한덕 의사가 일주일에 5일을 집무실 간이침대에 잠을 잤다고 하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시신을 발견한 것도 병원에 근무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 설인데도 연락이 닿지 않아 병원을 찾은 그의 아내였다. 모든 사람은 그는 그렇게 언제나 밤을 새고, 휴일도 없이 일하는 사람으로 무심히 보아 넘긴 것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그를 국가 유공자로 지정해야 한다고도 하고, 그의 집무실을 기념실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아내가 한 사람만이라도 그와 함께 했더라면 남편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 우리의 자화상인양 부끄럽고 아프지만 그렇게라도 그를 기억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오늘 우리 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다움이 사라지고 있다. ‘공직자 다움’, ‘교육자 다움’, ‘성직자 다움’, ‘정치가 다움’, ‘의사 다움그런 다움말이다. 우리말 '다름다움'의 의미가 바로 이 다움에 있다. 남들이 아무리 손가락질하거나 빈정거려도, 출세에 보탬이 되든 말든 다움의 길을 자국걸음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이 스러지고 있다. 이 시대에 다움의 길을 걷는 것은 맨 정신으로는 힘든 일이다. 적어도 자신의 일에 제대로 미친 사람들에게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박제가는 홀로 걸어가는 정신을 갖추고 전문의 기술과 지식을 갖추는 것은 벽()이 있는 자만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은 곧 ’()를 말한다. 우리가 흔히 백치(白痴), 천치(天痴)라고 말하는 ''말이다.

 

20년 전 쯤 사랑의 교회 제자훈련을 받은 적이 있는데 5일 동안의 교육에서 제일 첫 강의가 옥한흠 목사님의 광인론’(狂人論)이었다. 1980년에 40의 나이로 9명과 함께 서초동에서 교회를 개척한 이야기부터 목사님이 어떻게 제자훈련에 미치게 되었는가를 말씀하시면서 목회의 본질에 미쳐야 한다고, 그렇게 미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외치시던 목소리가 아직도 쟁쟁하다. 의사이든, 목사이든 다움의 길을 걷기 위해 천치’(天痴)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 이들이 결국 사람을 살리고 영혼을 살린다.

 

자신이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를 변론하는 바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베스도는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26:24)고 소리친다. 여기서 미쳤다는 말은 오늘날 흔히 말하는 마니아’(maniva)를 뜻한다. 당시 마니아는 요즘처럼 취미활동이나 동호회 수준이 아니라 신이 내려주신 신적광기를 의미했던 말이다. 한 마디로 신들린’(enthusiasm) 상태이다. 베스도가 바울에게 좋은 뜻에서 미쳤다고 말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베스도가 바울을 예수 마니아로 인정한 셈이다.

사람들이 알콜중독, 마약중독, 약물중독, 도박중독에 빠지면 안절부절 못한다. 휴대폰 과의존 혹은 과사용자도 마찬가지이다. 휴대폰과 관련해서 노모포비아’(Nomophobia)란 말이 있는데 노 모바일폰 포비아(No mobile-phone phobia)’의 줄임말이다. 휴대전화가 없을 때 초조해하거나 불안감을 느끼는 휴대전화 금단현상을 뜻한다. 휴대전화를 수시로 만지작거리거나 손에서 떨어진 상태로 5분도 채 버티지 못한다면 노모포비아 증후군이다. 휴대전화 사용을 제지당했을 때 폭력적인 반응을 보이면 역시 노모포비아에 해당한다. 이들은 휴대폰 착신음에 지나치게 주의를 기울여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다. 중세의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사람은 기쁨 없이 살 수 없다. 그래서 영적인 기쁨이 없는 사람은 세속적인 쾌락에 중독된다.”고 했다. “나는 무엇에 미쳐 살아가는가?”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순교자 손양원 목사의 예수 중독자라는 글이다. “나 예수 중독자 되어야 한다/ 술 중독자는 술로만 살다가/ 술로 인해 죽게 되는 것이고,/ 아편 중독자는 아편으로 살다가/ 아편으로 죽게 되나니./ 우리도 예수의 중독자 되어/ 예수로 살다가 예수로 죽자./ 우리의 전 생활과 생명을/ 주님 위해 살면 주 같이 부활된다./ 주의 종이니/ 주만 위해/ 일하는 자 되고/ 내 일 되지 않게 하자.”

 

나는 바울처럼 예수 마니아인가. 예수님이 한순간이라도 곁에 계시지 않으면, 그 분과 잠시라도 손잡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하고 고통스러운가. 두려움에 손을 떠는가. 내게 ‘No Jesus phobia’ 증상이 생겼으면 좋겠다. 세상의 그 어떤 것이 없어서 불안하고 두려운 것이 아니라 예수가 없어 두렵고, 예수가 없어 불안한 삶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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