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신성욱계명대 영문학, 총신신대원,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구약 Th.M 수학), Calvin Theological Seminary(신약 Th.M), University of Pretoria(설교학 Ph.D), 「이동원 목사의 설교 세계」(두란노, 2014), 현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교수

‘Doing’ 이전에 ‘Being’

신성욱 | 2022.03.14 07:58

릭 워렌이 교도소에서 약 5,000명의 재소자들에게 설교를 전했을 때 일이다. 그때 분위기는 집중하는 사람 하나 없이 어수선했고, 워렌은 달랑 마이크 하나만 든 채 연단도 없이 평평한 땅바닥에 서 있었다. 시장 같이 시끌벅적한 상황에선 설교가 불가능했다. 잠시 생각에 빠진 워렌은 갑자기 주머니에서 50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높이 들고 소리쳤다.

50달러를 갖고 싶은 사람 있습니까?”

 

그러자 5,000명 모두가 일제히 손을 들었다. 단번에 모두의 관심을 집중시키는데 성공했다. 이번에는 그가 그 지폐를 구겨서 살짝 찢은 뒤에 이렇게 말했다.

여전히 이 50달러를 갖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까?”

이번에도 5,000명 모두가 손을 들었다. 그러자 그는 돈에 침을 뱉은 다음 바닥에 던져 구두 발로 짓밟은 뒤에 다시 물었다.

 

이래도 이 돈을 원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번에도 5,000명이 전부 손을 들었다.

그때부터 워렌의 설교는 불을 붙기 시작했다. “바로 이것이 여러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해주신 일입니다. 학대를 받으셨습니까? 이용 당하셨다고요?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모욕을 당하셨어요? 물론 여러분은 잘못을 저지르고 죄도 지어서 그에 대한 값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러분은 구겨지고 찢기고 짓밟혀서 더러워진 이 지폐와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의 가치는 단 1달러도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설교에도 떠들고 주목하지 않은 죄수가 있었을까? 이 설명에도 성경의 복음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있었을까?

예증이나 예화가 이래서 필요한 것이다. 사람들의 이해를 쉽게 해주는 수단으로 최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미 재무장관의 낙인이 찍혀 있기만 하면 지폐가 구겨지거나 더럽거나 좀 찢어져 있어도 그 가치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좀 착하게 살거나 그러지 못하게 살거나 가릴 것 없이 생명책에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으면 모두가 천국 백성으로서의 가치를 가진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 앞에서 제대로 잘 살지 못했다고, 죄를 좀 지었다고, 허물이 많은 사람이라고 죄책감에 사로잡혀 기죽어 살고 있는 이가 있는가?

 

더는 그리 살 필요가 없음을 기억하라. 예수님은 의인을 구원하러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다. 죄인을 불러 천국 백성 만들기 위해서 오셨다. 그분은 허물투성이인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셨다. 그래서 그분의 보혈을 믿고 의지하는 자는 누구든지 의인이 될 수 있다.

그런 말로 다할 수 없는 은혜를 받았음에도 여전히 죄책감에 시달려 살아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

 

서양 사람들은 복음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별로 없다. 예수님 덕에 우리가 공짜로 구원받게 됐다고 하면 그냥 쉽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복음 이해가 참 어렵다. 우리의 문화는 체면문화요 공로문화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는데 공짜로 어떤 것을 선물 받음이 되게 부자연스럽다. 그것도 값비싼 것을 무료로 받는다는 개념이 선뜻 와 닿지 않는다. 그러니 성경에 나오는 복음 이해가 쉽지 않은 것이다.

 

타종교는 모두 도덕과 윤리’(Doing)가 핵심이다. 하지만 기독교는 그와는 달리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신 것’(Done)으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분’(Being)임을 믿고 받아들이는 생명 종교이다. ‘신분의 문제가 해결돼야 도덕의 문제도 풀려진다.

요즘 오일 값이 천정부지로 솟구쳤다. 7만 원이면 가득 채우던 것을 11만 원 어치 이상을 넣어야 꽉 들어찬다.

 

오일 없는 차가 움직일 수 있을까? 불가하다. 차를 움직이는 원인과 원동력은 기름에 있다. 마찬가지로 의롭고 경건한 삶으로의 추구나 노력만으론 변화된 삶을 살 수 없다. ‘자신의 신분에 대한 깊은 자각이 선행됐을 때라야 거룩한 삶과 성숙한 열매가 가능하다.

신분’(Being)이 강조되지 않는 행함’(Doing)은 효력발생이 불가하나, ‘신분’(Being)에 대한 확고한 자각은 행함’(Doing)을 향해 쉽게 나아갈 수 있게 한다.

 

‘Being이냐 Doing이냐?’ 이것은 양자택일’(Choice)의 문제가 아니라 우선권’(Priority)의 문제이다. 반드시 ‘Doing 이전에 Being’이라야 한다.

아직도 자신의 허물과 죄로 인한 죄책감으로 기를 펴지 못한 채 당당하게 살아가지 못하는 이가 있다면, 하나님과 우리 주님이 우리 위해서 행하신(Done) 일과 그로 인해 변화된 자신의 신분(Being)을 떠올리면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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