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신성욱계명대 영문학, 총신신대원,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구약 Th.M 수학), Calvin Theological Seminary(신약 Th.M), University of Pretoria(설교학 Ph.D), 「이동원 목사의 설교 세계」(두란노, 2014), 현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교수

My favorite poem

신성욱 | 2023.01.10 23:58

[1]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시가 있다.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제일이라면 최고또는 ‘No1’란 뜻이기에 하나라 생각할 수 있지만, 두 가지이다. 이유는 뭘까? 내용은 비슷하지만 다른 시이고 저자가 같기 때문이다. 왜 그 두 시를 좋아할까? 간결 그 자체라서. 둘 다 달랑 석 줄 뿐이다. 석 줄밖에 안 되는 내용인데, 그 의미는 바다를 담고 있다.

세상에 위대한 시인들이 많다.

 

[2] 중고등학교 때 라이나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의 시를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그의 감미로운 시도 지금 이 시인의 시를 따라올 수 없다. 세상 어떤 시도 이 두 시에 비할 순 없다. 노벨문학상에 가장 근접하다 해서 해마다 노벨문학상 발표 시즌이 되면 그의 집 앞엔 한 주 전부터 기자들이 장사진을 이룬다. 그러다가 훅 가버렸다. 성추행 사건에 연루되면서 그냥 끝나버렸다. 아주 허무하게.

 

[3] 그래도 그의 시만큼은 노벨문학상에 조금도 부끄럼 없다고 본다. 아니, 단언컨대 인류 최고의 시라고 확신한다. 저자가 누굴까? 고은이다. 고은은 1933년 군산에서 출생했다. 이후 1958<현대문학>을 통해 등단을 하였고, , 소설, 평론, 평전 등 150여 권의 저서가 있다. 그가 쓴 수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단연 으뜸은 지금 소개할 두 시이다. 바다보다 깊은 의미를 단 두 줄과 석 줄에 담을 수 있다는 건 믿을 수 없는 일이다.

 

[4] 이제 그 두 시를 하나씩 소개해보자. 첫 번째 시를 소개한다.

 

<그 꽃>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5]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꽃을 내려갈 때 보았단다. 살아오면서 숱한 날들을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러다가 은퇴할 때쯤 되니 그동안 놓친 것들이 많음을 절감하게 된다는 뜻이다. 다음 시를 소개해보자.

 

<노를 젓다>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6] 첫 번째 시와 별 차이 없는 내용이다. 짧고 간결한 문장들이나 그 의미는 정말 깊다. 은퇴한 이들이 후배들에게 남길 만한 시이다.

실제로 2014년 지구촌교회 이동원 목사의 7순기념예배 시 친한 선배 교수가 은퇴한 그에게 바친 헌시(獻詩)이기도 하다.

나 역시 은퇴가 5년 남아 있다. 세월이 너무 빨리 흘러간다.

 

[7] 어릴 땐 몰랐으나 나이가 드니 눈 깜빡할 사이에 10년이 후딱 지나간다. 4학년이 끔찍해보일 때가 있었는데, 벌써 6학년에 진학하고 말았다. 2023년 새해 송구영신예배 드린 적이 어저께 같은데 벌써 10일째 새벽이 되어버렸다. 이러다가 파아란 싹들이 움트는 봄이 오고 무더운 여름이 가고 나면 가을 단풍과 함께 어느새 추운 겨울이 찾아올 것이다.

오늘 페친 한 분의 글을 보니 탄자니아 선교사 두 분이 우리 앞서 천국에 입성하셨더라.

 

[8] 여기선 슬퍼하고 아쉬워하겠지만 천국에선 환영 파티가 벌어졌을 것을 상상해본다.

솔로몬의 고백처럼 우리 인생 어찌 보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1:2). 바라고 꿈꾸던 소원 넘치게 다 이뤄봐도 유수같은 세월에다 유한한 인생길이라면 허무하기 짝이 없으리. 하지만 천지를 창조하시고 나를 자녀 삼으신 아버지의 나라가 기다리고 있으니 어찌 아니 기쁘리오.

 

[9] 고은 시인의 말대로 앞만 보고 달려온 시간들이 많았다. 일에 열중하다 보니 소중한 것들 많이 놓쳤음을 절감한다. 사랑하는 가족, 친구, 은사(恩師), 일가친지, 믿지 않는 불신자들,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이웃들, 청소부 아줌마, 관리사무실 아저씨, 여행, 선교지 탐방, 온천, 운동, 고향 방문 등등, 열심히 올라가고 노를 저을 땐 몰랐는데, 내려가며 노를 놓쳐버릴 즈음에 가만히 헤아려 보니 돌아다 볼 것들이 무수함을 깨우친다.

 

[10] 아직도 다 이루지 못한 골(goal)을 향해 계속 가야겠지만, 이젠 쉬엄쉬엄 주위도 좀 돌아보며 잰걸음 잡아채서 천천히 가야겠다.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5가지속에 나오는 한 가지가 있다. ‘아등바등 그렇게 열심히 살지 말고 여유 좀 가지다 갈 걸...’이다. 비록 짧은 인생길이라 하더라도 영원을 향해 가는 순례자로서, 여유 갖고 돌아볼 일과 돌 볼 사람들 좀 챙기면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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