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신성욱계명대 영문학, 총신신대원,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구약 Th.M 수학), Calvin Theological Seminary(신약 Th.M), University of Pretoria(설교학 Ph.D), 「이동원 목사의 설교 세계」(두란노, 2014), 현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교수

원수 사랑의 비결은?

신성욱 | 2022.02.19 12:17

어제 손양원 목사님의 사모님에 관해 구체적으로 기록해놓은 결국엔 사랑이란 책에 나오는 내용 일부를 소개한 바 있다. 손 목사님과 두 아들의 믿음보다 정양순 사모님의 믿음이 더 컸다는 지인들의 공통적인 얘기도 보여드렸다.

글을 쓴 뒤 떨리는 손으로 손 목사님의 손자와 통화를 했다. 그러잖아도 어머님과 같이 만나고자 먼저 연락하려 했다고 한다. 다음 주 모친 사모님이 편하신 시간에 뵙자고 했다.

 

오늘은 그의 외할아버지 손양원 목사님의 얘기를 소개할까 한다.

요셉이 나오는 창세기 37장 이후의 본문으로 강의를 하거나 설교할 때 반드시 질문하는 내용이 하나 있다. ‘요셉이 형들을 용서했느냐?’라는 질문 말이다. 모두가 예스!’라 답한다.

하지만 나는 요셉이 형들을 용서한 적이 없다고 답한다. 그러면 모두가 의아해하며 나를 쳐다본다. 요셉이 형들에게 원수 갚은 일이 없기에 그런 표정은 너무도 당연하다.

 

하지만 요셉은 정말 형들을 용서한 적이 없다. 이것을 깨달은 지는 약 25년쯤 된다. 요셉이 형들에게 원수 갚지 않고 용서했다는 생각은 기독교인이라면 다 아는 상식에 해당되는 내용이다. 하지만 잘못 알고 있는 상식도 꽤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요셉의 사전에는 용서란 단어가 없다. 왜냐하면 그의 사전에는 미움이라는 단어도 없기 때문이다. 미워했어야 용서하거나 말거나 하지 않겠는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과 별 차이 없이 남들을 미워하고 원수같이 지내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더러 용서하라는 말씀을 하신 게 사실이다. 하지만 주님은 원수를 용서하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수를 사랑하라’(5:44)고 하셨다. 그렇다. 용서보다 위대한 것은 사랑이다.

요셉은 하나님의 약속과 섭리란 관점에서 모든 사건을 이해한 사람이다.

 

비록 형들이 자기를 미워해서 애굽에 팔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선용하셔서 자기 아비 야곱과 형제들과 그 후손들의 살 길을 마련해 주셨음을 알았다. 그랬기에 아비가 죽고 나서도 형들에 대한 요셉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원수 갚지 않았단 말이다.

모든 걸 하나님의 선하신 약속과 주권 아래 있는 것으로 해석할 줄 아는 사람은 작은 개인의 감정으로 사고치거나 죄를 범하지 않는다.

 

손양원 목사님이 두 아들을 짐승같이 두들겨 패고 총살시킨 범인 안재선을 양자로 삼은 것 또한 그런 관점에서 보았기 때문이라 추측했다. 처음엔 생명보다 소중한 두 아들을 죽인 범인이 미웠으나, 설교 준비를 하다 보니 목사가 그런 맘으로 설교하기 힘들기에 독하게 기도해서 어쩔 수 없는 맘으로 그를 용서했으리라고 보지는 않는다.

안재선이 잡혀서 진압군 부대 내에 있다는 소식을 차 집사란 사람이 손 사모께 전해줬다.

 

그때 사모님이 남편 손 목사님께 하신 말씀을 책의 내용 그대로 소개한다.

여보, 얼른 가서 한 번 만나 보십시다. 빨리 서둘러야 됩니다.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동안 사형이라도 당하면 우짭니까. 지금 차가 있을지 모르지만 빨리 가면 해가 지기 전에 당도할 수 있을 겁니다.”

역시 그 남편의 그 아내, ‘부창부수’(夫唱婦隨). 그래서 두 분이 황급히 진압군 부대로 갔다.

 

손 목사님이 계급이 높은 사람에게 찾아온 의도를 간절히 말했다. 하지만 듣는 이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며 손사래를 쳤다. 간신히 만난 부대장에게 손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안재선은 내 두 아들을 죽인 원수요. 하지만 그를 회개시켜 내 양아들로 삼겠소.”

역시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며 일언지하에 거절당했지만 손 목사님은 물러나지 않았다.

그분의 진심어린 얘기에 감동을 받은 부대장은 우선 안재선을 만나 보라고 권했다.

 

힘 잃은 사자처럼 두려움에 가득 찬 눈빛으로 면회실로 나온 안재선을 세차게 껴안으며 손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재선아, 내가 동인 애비다. 나는 너를 용서한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이제부터 나는 너를 내 아들로 삼기를 원한다. 반드시 너를 살려내겠으니 아무 걱정 말고 안심하거라

그 후 손 목사님은 큰딸 손동희를 나덕환 목사와 함께 진압군 부대로 보냈다.

 

죽어도 거긴 가기 싫다고 거부하는 큰딸에게 손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동희야, 성경을 자세히 보아라. 분명히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였다. 용서만 가지고는 안 된다. 원수를 사랑하라 했으니 사랑하기 위해 아들을 삼아야 한다. 안재선을 죽인다면 네 두 오빠의 순교를 값없이 만드는 것이 되지 않겠느냐?”(손동연결국엔 사랑』 (서울헤럴드Boooks, 2018), 96).

원수인 재선을 용서한다고 하셨지만 사실은 용서를 넘어선 사랑을 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말씀을 듣고 큰딸은 찢어질 듯한 마음을 억누른 채 아버지의 뜻을 전하며 두 오빠를 죽인 원수 안재선을 사면시켜 주기를 간청했다고 한다. 이것이 받아들여져 사형장으로 향하는 안재선을 살려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어찌 두 아들을 죽인 철천지 원수를 악으로 갚거나 미워하지 않고 용서를 넘어선 사랑으로 양자 삼을 수 있었을까? 그 의문을 손동연 사모님의 책에서 확인해볼 수 있었다.

 

저자가 손 목사님 장례식 때 반주를 했던 박은국이라는 분의 딸을 통해 들은 증언이다. 그분의 부친이 손 목사님 옆집에 살 때 어떤 일로 목사님 댁 다락에 잠시 몸을 피한 적이 있었다 한다. 어두운 다락에서 손에 잡히는 게 있어 가만히 보니 손 목사님의 일기장이었다.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에 비추어 조금씩 읽어 내려가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전체를 다 읽고 크게 감동을 받았다 한다. 그 중에 기억에 남는 한 가지를 손동연 사모에게 해줬다 한다.

 

일기장 속엔 남을 미워하는 것을 무서워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최우선 순위로 여기는 손 목사님의 신앙철학이 적혀 있었는데, 세월이 지나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손동연, 결국엔 사랑, 110).

이 대목에서 나는 손 목사님이 원수인 안재선을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신 비결이 어디에 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었다. 악인이건 선인이건 이웃을 몸과 같이 사랑하고 원수마저 사랑하고 미워해서는 안 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을 그렇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사랑의 원자탄은 그리 쉽게 얻을 수 있는 별명이 아니다. 그렇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란 노래도 있지만, 원수 사랑은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함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가 다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다.

부모님의 명이라도 들어야 하건만, 내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그 어떤 악한 원수라도 용납하고 사랑해야 하지 않겠는가?

 

모세, 다윗, 다니엘, 바울, 리빙스턴, 무디, 허드슨 테일러, 주기철, 손양원 목사 등, 수없이 많은 성경 속 위인들이나 현대 신앙의 거성들을 우리는 모두 존경한다. 하지만 그들을 닮을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존경만 하고 사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

위대한 신앙의 선진들의 모습 닮기도 해야겠지만, 그분들을 재껴낼 정도로 탁월한 신앙의 인물들이 계속 많이 출현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주여, 이 글을 쓰는 나부터 그런 인물이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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