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신성욱계명대 영문학, 총신신대원,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구약 Th.M 수학), Calvin Theological Seminary(신약 Th.M), University of Pretoria(설교학 Ph.D), 「이동원 목사의 설교 세계」(두란노, 2014), 현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교수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건

신성욱 | 2020.11.26 18:14

며칠 전 페북에서 기막히고 충격적인 글을 하나 보았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아래 사진).
“한국교인들!! 모두 십자가 목걸이를 해주세요. 일반인들이 알아서 피해 다닐게요, 부탁합니다.”
기독교인들은 다닐 때 십자가 목걸이로 표시내고 다니라는 말이다. 이유는 피해 다닐 수 있게 란다. 아, 정말 수치스럽고 가슴 아픈 말이다. ‘개독교’ 소리 들을 때도 이만큼 부끄럽진 않았거늘, 이건 정말 낯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다. 


어쩌다 한국 교회나 성도들이 이런 취급을 받게 됐단 말인가? 나 자신부터 돌아보고 자성해야 마땅하겠지만, 우선은 몇 가지 변명 좀 늘어놓고 싶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한국 교회나 성도들이 이런 대우를 받을 만큼 문제가 많거나 악한 것은 아니란 점을 얘기하고 싶다.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옴으로 경제적으로 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개선되고 성장한 걸 절대 무시할 수 없다. 남성위주의 문화에서 여성의 권리가 동등하게 강조된 점도 속일 수 없는 일이다.


사회에 대한 구제나 기부는 타종교들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통 크게 하고 있다. 탈북민들 돕다가 북한에 억류되거나 순교 당하는 이들 중 신부들이나 스님들은 단 한 명도 찾아볼 수가 없다. 모두가 목사님이나 선교사들뿐이다. 일제 36년간의 지배에서 해방된 것도 기독교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이 컸음을 부인하지 못하리라. 미신과 우상과 무지로 가득 찼던 이 나라에 기독교가 없었다면 지금쯤 어찌 되었을지 상상해보라.


물론 지금의 기독교가 이전 우리 선조들의 기독교에 비해 여러 면에서 뒤처지게 된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기독교인들이 세인들로부터 짐승이나 죄인 취급 받을 만큼 문제가 심각한 것은 아니란 점을 분명히 해두자.
그런 점들을 감안하더라도 우리는 세인들이나 타종교인들로부터의 조롱과 비판을 달게 받아야 할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최근 책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란 베스트셀러 저자로 유명세를 타고 있던 혜민 스님에 대한 기사가 자주 회자되고 있다. 그간 ‘무소유’의 가치를 설파해왔음에도 정작 자신은 ‘풀소유’를 했기 때문이다. 구설수에 오르자 혜민은 자신의 SNS를 통해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비판은 연일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나는 혜민을 비판할 마음이 전혀 없다.


첫째 이유는, 혜민은 사과라도 했지만 그보다 더 문제 있음에도 사과는커녕 인정조차 하지 않는 목회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보다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다. 기독교와 타종교의 차별성 때문이다. 타종교는 종교가 아니다. 불교는 철학이다.
과거 부목사 시절 해인사에 있는 서점에서 동국대 여자 교수가 쓴 『불교학개론』을 사서 읽은 적이 있다. 불교에 대해서 그렇게 명쾌하게 쓴 책은 여태 보질 못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 ‘철학’이다. 불상을 세우고 시주를 하고 극락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가짜 불교란 것이다. 그렇다. 불교는 내세가 없는 철학이다. 생명 없는 철학을 신봉하는 이들의 윤리와 생명 있는 참 종교를 신앙하는 기독교의 윤리엔 분명 차이가 있어야 한다. 혜민이 아무리 좋은 말을 많이 했어도 생명 없는 종교의 신봉자이다. 그런 사람이 표리부동하거나 부도덕한 삶을 살았다고 해서 입에 거품을 물고 비난할 일은 아니지 않는가!


문제는 나 자신, 그리고 우리 기독교인들의 모습이다. 소망 없는 이들의 들보를 탓하기보다는 참 생명의 도를 믿고 영원한 나라까지 바라보며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살피는 것이 바른 자세라 생각된다.
기독교가 유일한 참 생명의 종교이기 때문에 우리를 재고 진단하는 세상의 기준이 더 엄격하고 깐깐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하자. 그럼 우리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사도행전에 우리 한국 교회와 성도들이 꿈꿔야 할 이상적인 모델이 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4-47)


초대교회 성령공동체의 모습으로 바뀌어 이 나라 온 백성에게 더 이상 개독교로 비판받지 않고 그리스도를 닮은 의인들이란 칭송만 받는 기독교와 성도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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