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신성욱계명대 영문학, 총신신대원,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구약 Th.M 수학), Calvin Theological Seminary(신약 Th.M), University of Pretoria(설교학 Ph.D), 「이동원 목사의 설교 세계」(두란노, 2014), 현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교수

하나님 전상서!

신성욱 | 2021.01.27 22:29

지금으로부터 약 60여 년 전. 전라남도 해남군 산정리 산골마을에 한 소년이 살았다. 구슬치기를 하도 잘해서 대장소릴 듣던 개구쟁이었다. 놀기만 잘한 게 아니라 공부도 잘했다. 특히 주산을 잘 놓아서 셈본시간을 제일 좋아했다. 그런데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저보다 공부를 잘 못하는 아이들도 모두 중학교에 간다는데 소년은 하릴없이 지켜보고 있어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부르셨다.

 

우리는 가난해서 넌 중학교엘 못간다. 오늘부터는 지게를 지고 풀을 베어라.” 소년의 아버지는 머슴이었다. 기운이 장사라서 장날 씨름판에 나갔다 하면 송아지를 몰고 오곤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물려준 수 십 마지기 논밭과 산을 술과 노름으로 다 날리고 머슴이 됐다.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공부는 비쩍 마르고 힘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다. 우리처럼 힘 좋은 사람들은 일을 해야 마땅하다.”

 

초등학교 졸업 후 2년 동안 소년은 아버지 말씀대로 지게를 지고 풀을 베었다. 책이나 글이라고는 성경만 읽었다. 그리고 오로지 공부를 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다. 소년은 세 살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서 교회에 다녔다. 1955년 그해 여름. 열다섯 살 소년은 여름성경학교에 가서 한 선생님으로부터 이런 가르침을 듣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부르고 계신다.”

 

소년은 꼬박 40일간 기도를 했다. “하나님 제 이름을 불러주세요라고. 그리고 편지를 썼다. ‘하나님 전상서란 제목으로.

하나님 전상서. 저는 지금 공부를 무척 하고 싶습니다. 공부하고 싶은 갈증이 나서 못 견디겠습니다. 굶어도 좋고 머슴살이를 해도 좋습니다. 누구라도 제게 공부할 길을 열어주십시오. 그 길이 열린다면 신명을 바칠 테니 부디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것처럼 도와주십시오.”

 

겉봉투에 수신자 이름과 주소를 쓰고 발신자엔 하나님 전상서라고 쓴 그 편지를 우체통에 넣었다. 우표 값이 없어서 우표는 붙이지 못했다. 그리고 소년은 도회지 목포에 나갔다. 골목골목 상점을 헤집고 다니며 일자리를 구했다. “야간중학교만 보내주면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게요!”라고 애원을 했다. 100군데도 넘게 돌아다녔지만 애석하게도 일자리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체통에서 하나님 전상서를 발견한 우체부는 한동안 고민을 했다.

 

어느 고학생의 애절한 사연이 담겨 있었지만 배달할 곳이 없었으니 말이다. 궁리 끝에 상관인 우체국장에게 편지를 건넸다. 국장은 고심 끝에 자신이 다니던 해남읍 교회 이준묵 목사에게 편지를 전했다. 목사님은 소년을 읍내로 불렀다.

편지를 쓴 지 5개월 후쯤. 소년은 그렇게 목사님을 만났다. 목사님이 소년에게 말했다. “편지를 보고서 이처럼 감동한 것은 처음이다.

 

앞으로 내가 너를 지도하고 안내할 테니 그대로 따르면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평생을 아버지로 모시게 된 은인과의 첫 만남이었다

소년은 목사님네 과수원에서 기거하며 틈틈이 과수원일을 도우면서 꿈에도 그리던 중학교에 다니게 됐다. 매일 시오리길을 통학하며 정말 눈물 나도록 고맙게 공부를 했다. ‘영어를 마스터하겠다는 굳은 작심으로 통학 길 내내 손바닥을 훑어보며 걷고 또 걸었다.

 

단어장 대신 손바닥에 날마다 열개씩 영어 단어를 써서 외운 것이다. 줄곧 우등생과 장학생으로 중고등학교를 마친 소년은 의사를 꿈꿨다. 마침내 전남대 의대에 합격했다. 그런데 어느 선배의 한마디가 진로를 바꾸는 계기가 됐다. “올바른 의사가 되려면 먼저 신학을 배워라. 슈바이처 박사도 그랬다.” 그래서 후기대 입시를 한 번 더 거쳐 지금 한신대의 전신인 한국신학대학에 입학했다.

 

62학번. 학교에서 등록금을 받지 않아 이상했는데 누군가 말했다. “오영석, 1등으로 입학했으니 등록금을 안 내도 된다.” 과수원을 떠나 학교 기숙사로 옮겼지만 해남 목사님의 보살핌은 여전했다. 수시로 학비며 용돈이며 옷가지를 챙겨 보내주시며 따뜻한 격려말씀을 아끼지 않았다. 헤밍웨이를 유난히 좋아했던 대학생. 청년이 된 산골소년 오영석은 역시 피눈물나게공부를 했습니다. 철학·문학·신학, 그리고 영어·히브리어·라틴어·독일어까지.

 

책을 볼 때는 언제나 하나님 전상서를 떠올렸습니다. ‘지금 이 공부가 내게 어떻게 주어진 것인데, 얼마나 소중하게 얻은 것인데.’

청년은 대학 4학년 때인 65년에 또 한 번의 중요한 인생 전환점을 겪는다. 어느 날 청년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떠올렸다. “악인에게도 선()이 있고 위대한 성인에게도 악()이 존재한다. 그것을 망각해선 안 된다.”

 

이전까지는 의사가 최종 목표였지만 그때 목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고 세상을 밝게 하는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제대 후 대학을 졸업한 청년은 고향의 해남읍 교회에서 3년간 목회자로 일하다 스위스 바젤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거기서 박사학위를 받고 84년 모교 교수로 돌아왔다. 그리고 20019월 총장 자리에 올랐다.

한신대 오영석 총장(당시 59).

 

그 옛날 하나님 전상서를 썼던 소년은 결국 대학 총장이 되었다. 오 총장은 그때 우체국 직원이 어째서 편지를 버리지 않았을까 하고 지금도 늘 생각해본다, “뜻이 있어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면 길은 반드시 열린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얘기를 후학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다고 간절한 표정으로 인터뷰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오영석 총장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요셉을 보라. 그가 태어나 자라면서 스스로 애굽의 총리가 될 꿈을 꾸었던가?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이다. 오 총장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꿈과 열망이다. 그런데 그걸 이룰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간절한 마음을 담아 하나님 전상서란 편지를 우체통에 넣은 것이다. 그 소원을 하나님이 응답해주신 것이다. 그래서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늘은 스스로 도울 수 없는 자를 돕는다”(Heaven helps those who ‘cannot’ help themselves)이다.

 

요셉은 꿈을 통해 비전을 갖게 하셨지만, 오늘 우리는 대부분이 계시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꿈을 갖게 하신다. 성경을 읽다가 가슴이 뜨거워지고 마음에 간절한 열망이 불타오르는 구절이 있는가 보라. 그건 바로 내게 주신 말씀이다.

모든 성경 구절이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특별히 개인적으로 자신에게 강하게 임하시는 말씀이 있다. 그 말씀을 마음에 품고 새기고 살아야 한다.

 

아무리 현실이 암담하고 불가능에 가깝다 하더라도 요셉처럼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꿈을 신뢰한 채 꿋꿋이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야 한다. 소년 오영석처럼 하나님이 자기 가슴에 부어주신 소원을 열망하며 하나님 전상서!’를 써서 부쳐야 한다.

오늘 우리에겐 어떤 꿈과 비전을 주셨는지 생각해보라. 그것이 부정적인 현실에 부딪쳐 사장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소원을 접고 포기해버린 것은 아닌가?

 

나도 당장 하나님 전상서!’란 편지를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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