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신동수1999-2002년 서울 방배동 기독신학교에서 M.Div.를 수학하고, 2002-2004년 미국 칼빈신학대학원에서 Th.M.으로 조직신학(칼빈연구)을 전공, 2004-2010년까지 미국 휘튼대학원 성경.신학부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할 때까지 개혁신학과 칼빈신학에 대한 연구를 하였습니다. 시카고 지역에서 한인신학교 조직신학 교수와 담임목회 및 도시선교 등을 섬겨왔으며, 학교와 목회, 그리고 이민생활 현장에서 고민하며 묵상한 에세이와 아직 한국어로 번역이 되지 않은 의미있는 개혁파 신학/신앙 관련 서평 등을 지속적으로 쓰고 있습니다.

카톨릭 교회, 우스꽝스러운(?) 판데믹 대처

신동수 | 2020.11.25 06:59
 카톨릭 병원 (St. Vincent's Hospital) 에서 사역하다 보니 카톨릭 신부와 원목에게 오는 편지들을 함께 공유하며 그들의 목회적 대응을 현장에서 목도하게 된다.

바티칸과 발 맞추어 미국 카톨릭 교회들은 이미 판데믹 초기부터 모든 집회 및 접촉 금지를 선제적으로 공표하고 주에 따라 아직도 시행 중이다. 물론, 신부와 성찬사역자들이 매우 특별한 상황에 따라 성례를 직접 집행하는 것도 허하고 있기는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전면 중단이다.

카톨릭의 신학을 생각해 보자! 16세기 트렌트 종교회의 이후 1962 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리기까지 400 여년간 카톨릭 교회는 교회와 교회의 성례가 없이는 구원이 없다는 초대교회의 전통을 고수해 왔다. 

그래서, 카톨릭 교회를 떠나고 성례가 파괴된 개신교회는 450년간 이단으로 낙인 찍힐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개신교인들을 "집 떠난 형제" 로 조금은 받아들인 1962 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도, 사제를 통한 성례는 여전히 구원의 방편이었고, 죽는 자리에서 마지막 성례 (viaticum) 와 사제의 기름부음 (anointing) 이 없으면 구원을 보장할 수 없었다. 그래서, 카톨릭 신자들은 늘 죽음 앞에서 신부를 부르고, 병원의 신부들은 24시간 그들을 위해 대기해야 했다. 

그런데, 전세계적 코로나 바이러스가 2쳔년간 이어오던 "오직 성례 구원" 이라는 신학적 전통에 작은 균열(?)을 초래했다. 성도들의 건강과 생명을 위해 매일 모이던 미사와 성례를 멈춰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너무 놀랍게도,  교황 프란시스와 바티칸 교회는 매우 전향적이고 혁신적인 목회/신학적 대처를 공표하였다.  

교황 프란시스는 지난 3월20일 전세계 카톨릭 교도들을 향한 "만전 면죄" (plenary indulgence) 를 선포했다. 카톨릭 사제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On March 20, 2020, the Apostolic Penitentiary, which is the office of the Church that provides guidance on the forgiveness of sins, decreed, with the authority of Pope Francis, that a plenary indulgence, or a full pardon for sins, be granted to any person who cannot access to the Sacraments of Penance, Eucharist (even Viaticum), or Anointing of the Sick, who seeks God’s mercy, forgiveness, and healing, and who firmly intends to receive any of those sacraments when they are available again, has the assurance of God’s full forgiveness and mercy. It reminds the believer that the Church is praying for that person, “entrusting each and every one to divine Mercy by virtue of the communion of saints and granting the faithful a Plenary Indulgence on the point of death, provided that they are duly disposed and have recited a few prayers during their lifetime.” 

이렇게 읽을 수 있다: "2020년 3월20일을 기해 바티칸 교회 사도적 면죄부서에서는 성도들의 죄사함에 관한 지침에 대해 교황 프란시스의 권위로서 "전적인 죄사함" (a full pardon of sins) 을 위한 "만전적 면죄부" (plenary indulgence) 가 주어짐을 공표한다. 비록 고해성사나 성체성사 (심지어 종부성사), 그리고 병자를 위한 기름부음의 성례를 받지 않더라도, 그 신자가 하나님의 긍휼과 죄사함 그리고 치유를 간구하기만 한다면, 그리고 언제든 다시 이러한 성례들에 참예할 수 있을 때 굳건히 참예하고자 하는 의지가 분명하다면, 하나님의 완전한 용서와 긍휼에 대한 확신 (assurance) 을 가져도 된다. 이는 신자로 하여금 카톨릭 교회가 성도를 위해 기도하고 있음을 상기시키며, "성도의 교통함을 위해 교회는 모든 신자들을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전적으로 맡기고 있으며, 이에 만약 신자들이 일생 성도의 의무들을 지키고자 하는 자세가 있었고 몇몇 기도들을 암송하는 신실함을 보였다면 죽음의 순간에 만전 면죄를 부여한다."

21세기에 웬 면죄부가 있느냐며 도매금으로 넘기고 싶은 분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한 역사 신학적 논의는 차치하고, 다만, 한 개신교 목사로서 도전이 되는 점은, 현 카톨릭 교황 프란시스의 비전에 있다. 교회가 누구라도 쉽게 받아주고 긍휼에 풍성하며 과도히 짐을 지우지 않는, 그래서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용서하는 교회" (ridiculously pardoning) 라는 것이다.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용서하는 교회를 추구함
"To Ridiculously Pardoning Church"

500년간 카톨릭 교회와 개신 교회는 누가 누가 잘하나 경쟁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한국교회가 경쟁하는 카톨릭 교회로 부터 새겨 들어야 할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조국 교회의 소식을 들으면, 한국 교회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꽉 막힌 교회" (ridiculously stubborn) 라고 평가 받고 있다. 과연 한국교회는 현 판데믹 사태를 맞아 성도들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어떤 목회/신학적 고민과 대책을 강구하며 실천하고 있는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양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고 은혜와 사랑으로 받아주고 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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