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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요약본

하나님, 기도를 가르쳐 주세요

김재윤 | 2005.01.05 23:35
존 맥아더 지음, 하나님 기도를 가르쳐 주세요, 요단

왜 기도해야 하는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리 기도하기가 어려운지... 이 책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교제를 풍성히 누릴 수 있도록 그 기초를 잡아주는 책이다. 간결하게 쉬우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존 맥아더의 문체와 통찰이 초보신자뿐 아니라 오랫동안 기도생활을 해 온 사람에게도 자신을 돌아보고 재정비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무엇보다도, 기도를 처음 배워 가고 있는 갓 태어난 그리스도인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Ⅰ. 기도의 장애물

D. A. 카슨은 그의 책 ‘영적 개혁으로의 부르심’의 서문에서 기도가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때때로 기도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본질적으로 이것은 놀라운 일도, 울적한 일도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배워야 할 것이 많은 순례자들이기에, 그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또한 그러한 문제들을 안고 씨름하는 것이 우리가 배워가는 방법의 일부이기에, 그것은 우리를 울적하게 하는 일도 아니다.”
죄는 기도에 장벽을 쌓는다(사 59:2). 우리의 삶을 조심스럽게 살펴보면, 아마도 우리의 기도를 방해하는, 때로는 우리가 전혀 기도하지 못하게 만드는 어떤 특별한 죄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1. 육욕과 무관심
육체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기도하는 것과 다른 훈련을 하는 데 있어 심각한 장애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온갖 종류의 죄악된 행위와 태도를 특징으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회심을 통해 새로운 성품을 갖게 될 때에도, 우리의 죄악된 옛 성품, 곧 육체는 남아 있다. 그것은 우리가 영광을 받을 때까지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며(롬 8:18-25), 계속해서 우리의 새로운 성품을 방해하고 저지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어떤 그리스도인도 육체와의 싸움에서 예외는 아니다. 우리가 새로 태어났을 때, 하나님은 우리 죄의 형벌을 그리스도가 대신 치르도록 하셨고, 지배하는 죄의 권세를 제거하셨다. 그러나 악의 성향은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다. 우리 육체의 특징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한 단어는 ‘이기주의’, 곧 하나님의 뜻과 관심을 거스르고 우리의 뜻과 관심에 초점을 맞추려는 성향이다. 그것은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 줄곧 죄의 중심에 있어 왔고, 그러한 자기 중심성은 우리로 하여금 마땅히 기도해야 하는 대로 기도하지 못하게 방해한다.
기도의 목적은, 어떤 요구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거나 그분의 목적을 무시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에 상관하지 않고 그것을 하나님께 이기적으로 요청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성경은, 우리가 이기적으로 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 4:3). 대신에 우리는 항상 예수님이 아버지께 기도하셨던 것처럼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내 원래도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 예수님이 우리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신 대로, 우리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라고 말해야 한다.
우리의 정욕에 따른 이기주의는 또한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대해서 전적으로 무관심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생활을 방해한다.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하나님도 당신의 필요에 무관심하실 것이다. 기도로 주님께 나아가기 전에, 당신이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무관심한 것은 아닌지, 또 다른 하나님의 백성들과 고립되어 자신만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 확인하라.

2. 용서하지 않는 마음
기도를 방해하는 또 다른 구체적인 죄는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은,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 ”(막 11:25)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기도의 전제조건이다. 하나님이 당신의 기도를 들으시기 전에, 당신은 자신에게 죄를 범한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 분노와 비통함을 품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할 수 없거나 그분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기를 기대할 수 없다. 그분의 사랑과 자비와 은혜를 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죄인들로서, 똑같이 그럴 만한 가치가 없는 다른 죄인들을 용서하고 화해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모든 사랑과 자비와 은혜가 우리에게 부어지기를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겠는가?
“네 형제가 자매가 네게 어떤 원한을 품고 있다”는 구절은 당신을 향해 어떤 분노나 미움을 품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당신은 그의 용서와 화해를 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 분명 하나님만이 사람의 마음이나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지만, 우리는 기도하기에 앞서 화해를 구하기 위해 인간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 우리가 동료신자들을 기꺼이 용서해 주지 않으면서 우리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정당한 일일 수 없다.
마태복음 18:23-35에서 예수님은 종들(아마 지방관원들이었을 것이다)을 모두 불러서 거래를 청산하려 했던 왕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 왕은 종들 가운데 한 사람이 자신에게 엄청난 빚을 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종이 왕에게 간청하며 조금만 참아주면 빚을 모두 갚겠다고 약속하였을 때, 왕은 그 종의 빚을 모두 없애 주었다. 그런데 이 종은 은혜로운 왕 앞을 떠난 즉시 자신에게 훨씬 적게 빚진 사람에게 빚을 갚을 것을 요구하였다. 그것을 받지 못하자, 이 불의한 종은 그 사람을 감옥에 집어넣었다. 그래서 왕 또한 이와 똑같은 방법으로 그 불의한 종에게 응수해 주었다.
용서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고백의 기도를 무효로 만드는 것이며, 하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우리에게 베푸시는 용서로부터 스스로를 단절시키는 것이다. 용서하기를 거절할 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주님이 주셨을 내적인 평화와 영적 능력과 영적 성장도 상실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기 전에, 당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받기를 원하는 것과 같은 은혜롭고 용서하는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대우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자신을 점검해 보라.

3. 가정에서의 다툼
기도를 방해할 가능성이 있는 또 다른 잠재적 장애물은 가정에서의 불화, 혹은 가족관계의 갈등, 특히 남편과 아내의 갈등이다. 베드로는 이것을 기도의 장애물로 언급하고, 남편들에게 그들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일이 없도록 아내와 하나님을 공경하는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7). 맥락상 이 구절은, 베드로가 구원받지 않은 배우자를 가진 남편과 아내에게 주는 훈계의 결론부분이지만, 그의 훈계는 그보다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기도의 응답을 보장받기 위해서 그리스도인 남편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베드로는 세 가지를 언급한다.
1) 남편은 아내의 필요를 깊이 생각하고 그 감정에 민감해야 한다. 헬라어로 ‘함께 살다’라는 단어는 누군가와 친밀하고 가깝게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칠십인역(헬라어 구약성경)은 이 단어를 성교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한다. ‘이해’는 깊고 경험적인 지식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파생된 것이다. 그러므로 남편들은 아주 친밀하고 존중하는 자세로 아내와 더불어 살아가며, 아내들의 가장 깊은 육체적, 감정적 필요에 민감해야 한다.
2) 남편은 가정에서 기사도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그는 자기 자신의 연약함을 기억해야 하며, 아내는 육체적으로 더 약한 존재임을(“연약한 그릇”)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남편들을 자기 아내를 보호하고, 필요한 것을 공급하며, 복돋우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
3) 남편들은 아내와 진정한 반려임을 명심해야 한다-“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을 사람”, 간단히 말하면, 결혼한 부부의 신분은 삶이 제공해 주는 지상 최고의 선물 가운데 하나님을 인정하면서, 그 신분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들은 인생의 모든 중요한 문제들 가운데 의미 있는 우정과 교제와 파트너십을 통해서 관계를 키워 가야 한다.
관계에 심각한 갈등이 있고, 가정의 머리가 베드로가 말한 자세를 보여주지 못할 때,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대화는 심각하게 방해를 받고 어쩌면 막혀 버릴지도 모른다.

4. 의심
마지막으로, 의심은 기도를 막는 중요한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야고보서 1:6-7은 주님께 지혜-또는 다른 어떤 것-을 구하는 신자들의 기도에 관해서 이렇게 말한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께 나올 때 올바른 요청을 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의심없이 구해야 하는데, 그것은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성품과 목적과 약속에 대한 진정한 신뢰를 수반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어떤 신자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관심, 또는 그분의 공급하심을 의심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럴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거나 그들의 필요가 하나님의 관심을 받을만하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론적으로는 이 두 가지 생각이 모두 맞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자녀들의 삶 속에서 벌어지는 지극히 작고 정말 중요하지 않은 문제들에게까지 엄청난 관심을 기울이시기로 주권적인 선택을 하셨기 때문에, 그것은 맞는 생각니 아니다. 또 다른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논쟁하며, 그들이 왜 그런 고난을 겪고 있는지, 또는 왜 그분이 그들의 문제에 대해서 즉가적인 해답을 주지 않으시는지 질문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않거나, 그분의 능력을 의심하는 기도는 하나님을 지독히 모욕하는 것이다. 그러한 의심을 품는 대신에, 이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히 11:6).
죄악된 육체의 권세와, 용서하지 않는 마음과, 가정의 갈등과, 의심하는 태도, 이 모든 것은 기도하는 데 있어서 심각한 장애물들이다. 다행히도 당신은 한 번에 이 모든 것을 처리해 버릴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해야 하는 첫 번째 일, 곧 죄를 자백하는 것이다. 일단 우리가 그렇게 하고 나면, 우리는 깨끗한 채널로 주님과의 대화를 즐길 수 있고, 그분을 찬양하고, 우리의 기도제목을 그분께 알리며, 그분과 더불어 막힘이 없는 교제의 유익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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