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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요약본

성령의 신학자 존 칼빈

김재윤 | 2005.04.26 13:04
김재성 지음, 성령의 신학자 존 칼빈, 생명의 말씀사

이 책은 칼빈의 신학 전반에서 우리 한국교회가 깨달아야 할 중요 주제뿐만 아니라, 그와 연관된 성령의 역사와 사역을 특별한 관심 속에서 다루었다. 칼빈이 정립한 주요 신학사상을 정리하면서도, 그가 체계화한 주요 주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성령의 역사하심에 대한 설명을 시도한 것이다.

Ⅰ. 하나님의 영광과 경건한 삶

회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진정으로 돌이키는 것이요, 그분에게 진정하고도 순수한 두려움으로 인하여서 돌이키는 것이다. 이는 육체와 옛사람의 죽임과 성령으로 인한 살려냄으로 구성되어진다.

따라서 우리는 칭의를 단순하게 받아들이심이라고 정의하는 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로운 사람들로 그의 호의 가운데서 받아 주신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에는 죄의 제거와 그리스도의 의로움의 전가로 구성되어졌다고 말한다.

중생의 목표는, 우리가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신자들의 순종 사이에 하나의 완벽한 조화와 일치를 성도들의 생활 속에서 입증하는 일이며, 그리하여 그들이 자녀로서 받아들여졌다는 양자 됨을 확증하는 것이다.

착한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나 모두 다 현재 세상의 어려움들과 불행한 일들을 같이 나누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경건치 않은 자들에게는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진노의 상징들이다. 왜냐하면 그런 일들은 죄악의 결과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이 가지는 단 하나의 충고는 하나님의 진노이며, 아담의 파멸 속에서 우리가 가진 것과 그것들의 결과는 영혼을 망치는 일이다.
그러나 믿는 자들은 이런 고난들로 인하여서 주님에게 더욱 다가가게 되며, 그들의 몸 속에 주님의 죽으심을 짊어지게 되어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들 속에 어느 날 입증되어지게 만들어질 것이다. 나는 지금 고통당하심에 대해서 말하는 것인데, 그것들은 그리스도의 증거를 위하여 짊어져야만 하는 것이다.……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고난을 당하지 않는 한, 베드로전서 4장 13절에서 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고난을 나누어 가졌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바울이 말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항상 자신의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자기와 함께 임재해 계셨다는 뜻이다. 그는 자신의 연약함을 주님의 위로함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그리하여 자신을 무너뜨릴 만한 병들로 인하여서도 정복당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바른 신학자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이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않아야 하며, 말장난이나, 의심이나, 내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성경은 우리의 생활을 변혁시켜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소망을 가지며, 우리 자신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며, 그의 선하신 뜻을 따라서 우리가 행동하기를 알게 한다.

Ⅱ. 설교와 성령의 기름부음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사실상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요, 또한 장차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후 신약 교회에 성령으로 크게 역사하실 일에 대한 하나의 그림자입니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계시며, 우리를 밝히 인도해 주시고 계십니다.
이제 신약시대에 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그렇단 말이에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보호해 주시며,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밝히 인도해 주시며,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언제나 주님이 말씀으로서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실 때에 그는 우리의 모든 내적인 감각들에게 전부 영향을 미치도록 매우 심각하게 우리를 취급하신다. 우리 영혼의 그 어떤 부분도 예외 없이 말씀의 영향을 입지 않는 부분이란 없다.……
바울 사도가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은 성령의 권능이다(고후 10:4). ……더욱이 사도가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가르치고 있는 바는, 사람들의 사역에 의해서 우리에게 가져다 준 말씀이라는 점을 주목해야만 한다.
사람의 입술에서부터 나온 것은 죽은 것이요, 어떤 효과적인 면도 결여되어 있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요, 매우 위험한 사고 방식이다. 나는 그 교화는 결코 사람의 언어에 좌우되지 않으며, 그 목소리에 좌우되는 것도 아니라, 오직 성령께 전적으로 기인하는 것임을 분명히 확신한다. 그러나 성령은 선포되는 말씀 가운데서 그의 권능을 가져다 주신다는 사실을 결코 방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령은 친히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까닭에, 전달하는 사역자들이 사람인 연고로 그의 교훈이 경멸을 받지 아니하도록 성령은 엄청난 주의를 하고 계신 것이다. 따라서 바울이 복음을 하나님의 능력(롬 1:16)이라고 말했을 때에, 그는 그 자신의 설교를 어떤 사람들은 받아들이고 어떤 사람들은 거부하는 것을 그가 지켜보았다는 설명을 결들이면서 의도적으로 영화롭게 하고 있다.
그가 다른 곳에서도(롬 10:8-10) 우리의 구원은 믿음의 교훈에 의해서만 우리들에게 주어진다고 설명할 때에도 그는 분명히 자신이 설교한 교리를 의미하였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항상 인간이 노력에 의해서 우리에게 전파되는 가르침, 그로 인해서 우리들이 그분을 항상 공경하도록 유지시켜 주도록 공개적으로 명령하고 있음을 주목해 보아야만 한다.

강단에서……종종 오염된 설교를 듣는다. 사실 거기서의 설교 그 자체는 그 말하는 바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보여지는 바, 결국 본문이 선포되어서 들려지는가의 여부를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 바울 자신의 요점은 새롭게 들어야 할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위험은 그 방법과 내용에 들어 있을 수 있으니, 항상 단 한가지만은 생각되어져야만 한다: 즉 복음은 연약한 인간을 통해서 선포되지만, 그러나 성령의 강력한 사역이 동반됨으로써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을 통해서 삶이 변화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설교에서 진행되는 과정을 설명하기가 매우 어려운 바, 그러나 이것은 여전히 참된 기독교 설교에 있어서 진실되게 요청되는 바이다.

하나님의 성령이 그대의 영과 더불어 그대가 하나님께로서 났음을 계속 증거하시기 전까지는 안식하지 말라. ……먼저 믿음이 성장하면, 사랑, 온유함, 상한 심령, 경건한 슬픔, 의지의 포기, 겸손, 거룩한 두려움, 경성함, 양심의 부드러움, 그 외 다른 모든 덕들도 성장할 것이다.

이 단어[온유함]를 가지고, 그가 의미를 부여하려고 했던 것은 주님을 배우려고 준비된 마음의 겸손과 단순함이다. 이사야는 이 점에 대해,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사 57:15)고 했다. 따라서 하나님의 학교에서 진보를 이룬 자는 매우 적다. 왜냐하면, 자기 영의 광포함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고요히 복종하기란 백 명 중에서 한 명도 채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살아 있는 배움을 흠모한다면, 우리 마음을 겸소하게 복종시키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고, 우리 자신들을 우리의 목자에 의해서 지배되어져야만 하는 그의 양들로 허용하는 것이다.

우리가 설교를 들으러 오거나, 성경을 읽거나 할 때에, 우리가 듣는 것이나 읽는 것을 우리들이 자신 재치로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속단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도리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존중하며, 기다리는 마음으로 나아오자. 우리는 성령님에 의해서 가르침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을 잘 인식하자, 그분이 없다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우리에게 보여진 것들을 이해할 길이란 전혀 없다.

요즈음, 많은 설교자들이 스스로 너무 허영심에 차서, 오직 즐겁게 할 것만을 추구하며, 은혜와 환대만을 찾으려고 하고, 다른 쪽에 있는 청중들도 역시, 설교자들을 바른 길에서 벗어나도록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 왜 이런가? 그 이유는, 사도 베드로가 말한 바와 같이, 사람들이 귀가 가려워서 즐거운 이야기와 익살 혹은 “늙은 아내들의 우화”등으로 채워지기를 바라고 있다. 그들을 사도 바울도 여기서 말한다. [이 본문은 딤후 4:3이다]. 사람들이 그런 욕망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마치 임신한 여인들이 가진 열망이 비정상적이듯이-이것은 어떤 설교자들이 퇴보하고 있으며, 스스로 겉치레만 하고 있고, 하나님의 가르침을 변질시켜 파괴할 정도로 나쁘게 변질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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