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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요약본

놀라운 회심 이야기

김재윤 | 2004.07.05 20:16
조나단 에드워즈 지음, 놀라운 회심 이야기, 기독교문서선교회

이 책은 뉴잉글랜드를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사 성령께서 주권적으로 역사하여 1734-35년과 1740년에 일어난 영적 대각성을 그리고 있는 책이다. 밤이면 거리를 메우던 청소년들이 가정적인 사람들로 변했고, 음담패설이 사라졌으며, 술마시는 사람들로 가득 찼던 술집은 텅텅 빈 반면, 교회는 구원받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순식간에 가득 찼다. 예배를 마쳐도 집으로 돌아갈 줄 모르고 계속 기도하거나 집집마다 모여서 그날 들은 말씀을 함께 나누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이야기했으며 심지어는 결혼식에 참여해서도 그렇게 하였다. 거룩한 영의 물결이 휩쓸고 지나갔던 것이다. 그렇게 교만했던 교인들도 자신이 진정으로 회심하고 구원받았는지를 자문하기 시작했고 구원에 이르는 회심을 사모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밤낮으로 근심하고 우울해 하기까지 했다. 그 어둠의 터널을 빠져 나온 성도들의 심령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으로 충만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서도 자신들의 신분 상태에 대해서 무지하고 또 자신들을 하나님이 여전히 싫어하시는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 은혜는 겨울철의 나무들처럼 말라 버렸다. 아니면 봄철에 딱딱한 흙덩어리 아래에 파묻혀 눌려 있는 씨앗과 같았다. 그런 경우에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즐겁고 유쾌한 생각들로부터 자신의 생각을 딴 데로 돌려 보려 하고, 얻은 위로들과 은혜스러운 열정들을 억눌러 보려고 온갖 애를 다 썼다. 그들의 마음속에 은혜가 들어왔을 때 그것이 참된 은혜이든 아니든, 그 은혜를 일반적인 감정의 불꽃과 혼돈하지 않고 잘못된 소망을 가지지 않으려고 대단히 두려워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회심하게 된 소식만큼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역사를 불붙이는 그런 좋은 수단이 있다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 소식은 죄인들을 각성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그들로 하여금 동일한 축복을 갈구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성도들을 깨우는 일을 했다.
특별한 사람들의 체험들에 대해서 목사가 판단을 내리는 것이 정당하지만,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리고 다른 사람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얼마나 불안한지를 나는 내 교인들에게 자주 강조하여 주었다. 나타난 열매로써 진실성을 증명하는 것이 말로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낫다고 누누이 주장했다. 열매 없는 영적 체험들을 했다는 것은 헛소리다. 나의 모든 회중이 이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대개 자신이 속을까봐 그리고 잘못될까봐 벌벌 떨며 진지할 정도로 두려워하였다.
회심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하나님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사역이다. 단번에 마음을 변화시키기도 하며 죽은 영혼에게 생명을 불어넣기도 한다. 그때 그 은혜가 어떤 사람들에게 유달리 점차 더욱 강하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처음으로 은혜를 받게 되었던 시기를 정확히 확정지을 수는 없다. 사람에 따라 각각 다르며 많은 차이가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 시간이 언제였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그렇게 보면, 은혜를 받고서도 그것이 회심의 은혜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종종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것이 은혜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회심하였다는 큰 소망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리고 은혜가 처음으로 임하기 시작했을 때 체험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그 회심이 세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단순하고 일반적인 도덕적 변화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가 하여 의아해 한다. 혹은 그들이 차후에 하게 된 어떤 더 분명하고 주목할 만한 체험이야말로 구원에 이르는 회심 체험이 아닌가 하여 스스로 의아해 한다. 가끔씩 특별하게 하나님의 영혼 사역은 매우 신비하다. 회심한 사람의 마음에서 나타나는 것과 하나님의 나라에서 나타나는 것은 동일한 것이다.
회심케 하는 영향력들은 신앙의 위대한 일들의 실재성과 확실성에 대한 놀라운 확신을 가져다 준다. 어떤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처음보다는 회심한 이후 어느 시점에 더 큰 확신을 갖게 된다. 그들은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탁월하심을 주목하고 맛보게 된다. 그런 맛을 보지 못한 채 많은 관련 논문이나 서적들을 읽는 것보다는, 그렇게 맛보아 아는 것이 오히려 더 효과적이다. 많은 경우에 기독교 진리들의 영광이 사람들 앞에 제시되고 그리고 그 진리들의 신적 성격을 맛보고 느끼게 되었을 때에는, 마치 태양의 존재를 의심하였던 것처럼 진리에 대한 모든 의심이 사라져 버린다. 그들의 눈이 열리고 하나님의 빛이 강하게 비췄을 때에 그 모든 의심과 반대들은 잠잠케 괸다. 그런데 우리가 그들 중의 많은 사람들에게 왜 그것들이 사실이라고 믿는지 물어 보아야 하겠지만, 묻는 이에게 충분한 이유를 시원스럽게 대답할 만한 사람들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들은 그것들이 사실이라고 믿는다는 것 밖에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과 특별한 대화를 나눠 봄으로써 그들의 대답 속에 있는 뜻에 대해서, 그리고 신성에 대한 가장 생생하고 강력한 체험의 증거라고 하는 그들의 직관적인 주장과 즉흥적인 느낌에 대해서 곧장 수긍하게 될 것이다.
회심한 사람들은 자신의 상태에 대한 소망과 만족하는 정도에 있어서 많은 차이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대단할 정도로 거의 중단되지 않고 만족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확인해 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리스도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완전한 확신 때문에 기뻐한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과 풍성한 은혜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깨달음을 실제적으로 누리는 동안에 은혜의 특별한 역사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들의 영이 죽을 지경에 빠져 드는 동안 자신의 심령 상태에 대한 가책과 두려움을 느꼈을 때에 역사가 일어났다.
현재 회심하였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내적인 변화를 겪은 흔적이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과 잘 알고 지낸다. 그들은 대개 만사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과 그리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속성들과 복음의 위대한 일들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진리에 대해서 새롭게 깨닫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러한 것들을 새로운 자세로 대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항상 동일한 감동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자기들 마음대로 언제든지 감동을 다시 소생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마음은 자주 감동을 받았다. 때로는 새로운 달콤함과 기쁨들로 충만케 되었다. 과거에는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열정과 마음의 불이 붙어 있었다. 때때로 단지 그리스도의 이름만 혹은 하나님의 완전하신 성품 중 어느 하나만 언급하여도 그렇게 되었던 것 같다. 그들에게 새로운 의욕이 생겼다. 마음에는 새로운 종류의 갈망과 사모함이 생겨났다. 또한 감동을 받을 때는 억지로 강요한다고 해서 낼 수 없는 신음 소리와 같은 “오~아!”하는 탄성을 발한다. 그리고 하늘과 거룩을 사모하여 스스로 영혼의 새로운 종류의 내적 수고와 투쟁을 한다.
한때 기질적으로나 행동적으로나 매우 거칠었던 몇몇 사람들이 놀라울 정도로 부드럽고 상냥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역을 하시던 일상적인 방법을 그만두신지 오래 되었을 때, 몇몇 사람이 엄청난 빛과 사랑과 그리고 평안으로 충만케 되고 압도되었다. 그리고 또 일부 사람들은 이전에 자기들이 경험해 보지 못했던 전혀 새롭고 더욱 위대한 경험들을 하게 되었다. 이 마을에서는 늙은이와 젊은이 사이에 지금도 여전히 신앙적인 대화가 게속되고 있다. 그리고 신앙적인 관심이 우리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새롭게 변화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확실히 사람들을 새롭게 만들어 주셨다. 물론 무가치하게 살았던 사람의 실례가 전혀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서 판단을 내리는 데 있어서 전혀 실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부질없는 일이다. 그리고 양을 잡기 위해 양의 탈을 쓰고 우리 가운데 지난간 이리가 전혀 없었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언젠가 그들의 열매로 보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라고 해서 그렇게 썩 순수하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우리도 순수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고 겸손하게 되고 부끄러워할 수 있는 요인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우리는 더군다나 대단한 신앙의 사람들이 아니므로, 우리의 불완전한 모습들을 지켜본 사람들은 몇 가지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우리 자신과 신앙을 책망할 기회를 잡게 될 것이다.
아무튼 이곳 사람들 거의 모두가 회심과 성화의 위대하고 놀라운 역사에 참여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하나님의 사역의 도구들로 쓰임받는 축복을 받았던 사라들에게 합당한 존경심을 나타내었다. 젊은 층과 늙은 층 모두가 강단에서 내가 하는 충고뿐 아니라 심지어는 내가 하는 책망까지도 듣고자 하는 열심을 나타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 나라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일에 대해서 가장 바람직한 가르침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시기와 편견을 가지고 있다. 나는 우리 마을에서 사용되었던 도구가 형편없고 보잘것없어 그러한 역사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낳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내게는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때의 환경들은 서로 비슷하다. 하나님의 역사하실 때 다양한 방식을 취하셨다. 하나님의 자기 사역이 특별하고 직접적인 것임을 돋보이도록 하며 주목하게 하며 나타내시기 위해서 다양한 방식을 취하셨다. 그리고 그 사역의 영광이 빛나게 하기 위해서 전적으로 자기 자신의 전능한 능력과 주권적 은혜로 하셨다.
비록 환경과 도구가 어떠한 것이라 하여도, 즉 우리는 보잘것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기꺼이 역사하시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분명히 주님의 복을 받은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이곳, 이 세상의 한구석 모퉁이에도 하나님은 거하시며 자기 영광을 나타내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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