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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요약본

확신, 지상에서 누리는 천국

김재윤 | 2004.08.11 20:11
확신, 지상에서 누리는 천국


토마스 브룩스 지음 / 지평서원  

이 책은 하나님이 주신 풍성함을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하는 ‘확신’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저자는 ‘확신’에 수반되는 본질적인 문제들과 우리 삶에서 부딪치는 ‘확신’의 영향력을 정교하고 치밀한 논리로 풀어 내어 독자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정결하고 신령한 ‘확신’으로 들어서게 한다. 저자가 말하는 ‘확신’을 우리의 삶에 적용한다면 분명 자신의 신앙에 확신을 갖지 못해 이 세상을 단지 천국으로 가는 하나의 여정에 불고하다고 생각하며 기뻐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 모두에게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를 위하여 예비해 놓으신 지상에서의 천국을 누릴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구원에 수반하는 지식은 역사하는 지식, 활동하는 지식이다.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후 4:6). 신적인 빛은 머리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얼굴을 통해 영혼에 비치는 신적인 빛의 광채는 매우 실제적인 도움을 준다. 다시 말해서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마음에 영향을 끼치며 마음을 새롭게 빚어 준다.
구원에 수반하는 지식은 변화시키는 지식이요, 변형시키는 지식이다. 그것은 영혼을 변화시키고 변형시키는 지식이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마음에 내리쬐는 신적인 빛은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마음을 더 좋은 상태로 만든다. 그것은 마음을 변화시키고 변모시킨다. 그것은 마음을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새롭게 씻으며 만든다.
구원에 수반하는 지식은 체험적인 지식이다. 구원에 수반하는 지식은 거룩하고 천상적인 것들에 대한 신령한 인식과 체험에서 비롯되는 지식이다.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아 1:2). 포도주는 탁월하고 유용하며, 마음을 편하게 하고 기쁨을 주며, 기운을 솟게 하고 원기를 회복시켜 준다.
구원에 수반하는 체험적인 지식을 소유한 사람은 죄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악이라고 자신의 체험으로부터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것을 체험했기 때문이다(롬 7장). 구원에 수반하는 체험적인 지식을 소유한 사람은 그리스도가 자신들에게 필요한 오직 유일한 ‘한 가지’라고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것을 체험했기 때문이다(시 27:4).
구원에 수반하는 체험적인 지식을 소유한 사람은 하나님의 미소만 있으면 그 어떤 현세적 은혜가 없더라도 괜찮다고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것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구원에 수반하는 체험적인 지식을 소유한 사람은 하나님과의 교제만이 성도의 마음에 천국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것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구원에 수반하는 지식은 마음을 감동시키는 지식이다. 구원에 수반하는 지식은 그리스도와 모든 신령한 것들로써 마음을 감동시킨다. 구원에 수반하는 지식은 영혼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께 속한 모든 것들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도록 만든다.
구원에 수반하는 지식은 세상을 경멸하고 세상을 십자가에 못박으며 세상을 멸시하는 지식이다. 구원에 수반하는 이런 지식은 사람으로 하여금 세상을 낮고 비천하며 초라한 것으로 생각하도록 만든다. 이런 지식은 사람으로 하여금 세상을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으로 경시하도록 만들며 세상을 무시하도록 만든다.
만일 여러분의 지식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마음을 온통 사로잡는 그러한 것들을 짓밟도록 만들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영원히 멸망당한 사람이다. 여러분의 지식은 여러분을 하늘로 이끌어 올리기는커녕 지옥의 더 깊숙한 곳으로 여러분을 내동댕이칠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으로 하여금 이 세상을 경멸하도록 만들고, 이 세상과 결별하도록 만들며, 이 세상을 발등상으로 만드는 지식이 아니라면 그 어떤 지식으로도 결코 만족하지 말라. 오직 이런 지식과 이런 빛만이 마지막 날에 여러분을 영원한 빛으로 인도할 것이다.
구원에 수반하는 지식은 대상을 자기 것으로 삼는 지식, 곧 신령하고 천상적인 은혜를 자기 자신의 영혼의 것으로 삼고 적용시키는 지식이다. 욥은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라고 말하며,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보인(保人)이 높은 데 계시니라”라고 말한다(욥 19:25, 16:19).
많은 사람들의 구원에는 적용적인 지식이 수반한다. 그러나 적용적인 지식, 자신이 그리스도께 참으로 속해 있다는 것과 그리스도를 통해서 얻게 되는 복된 은총과 유익에 대한 적용적인 지식이 모든 사람들의 구원에 다 수반하는 것은 아니다. 당신의 영혼은 안전할 수 있다. 당신의 구원은 확고할 수 있다. 비록 당신이 이렇게 신령하고 천상적인 은혜를 자기 자신의 영혼의 것으로 삼고 적용시키는 지식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말이다.
천상적인 지식은 널리 퍼지고 확산된다. 이런 점에서 천상적인 지식은 마치 태양과 같다. 태양은 위로 아래로, 선한 사람에게나 약한 사람에게나 그 빛을 비춰 준다. 이와 같이 은혜로운 영혼 안에 있는 신적인 빛은 겉으로 드러나 친구들과 원수들 모두에게, 본성의 상태에 있는 사람들과 은혜의 상태 가운데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유익과 도움을 주게 되어 있다.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행 4:18-20).
신적인 빛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위한 용기로 충만하게 한다. 신적인 빛은 영혼으로 하여금 놀라울 정도로 두려움도 없고 염려도 없게 만든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 그 결과가 어떤 것이 되든지 우리는 우리의 주인을 바꾸지도 않을 것이며 그를 섬기는 일을 버리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약속은 금으로 된 반지이다. 그리스도는 그 반지에 박혀 있는 진주이다. 믿음은 이렇게 반짝이고 빛나는 진주를 바라보는 것을 제일 기뻐한다. “그들을 떠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그를 붙잡고 내 어미 집으로, 나를 잉태한 자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아 3:4). “머리는 갈멜산 같고 드리운 머리털은 자주 빛이 있으니, 왕이 그 머리카락에 매이었구나”(아 7:5). 믿음은 두 개의 손을 가지고 있다. 믿음은 그 두 손으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진지하게, 그리고 굳게 붙잡는다.
믿음이 가장 중요한 대상으로 삼는 그리스도의 이 영광스러운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라고 불린다. 왜냐하면 믿음은 그리스도의 의를 깨닫고 적용하며, 그것을 양식으로 삼고 그것으로 인해 기뻐하기 때문이다(롬 3:28).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롬 4:13).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롬 9:30).
믿음이 전심으로 추구하는 그리스도의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라고 분린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의가 영혼에 입혀지기 때문이다. 믿음은 영혼을 그리스도의 의로 완전히 감싼다. 그렇게 하여 믿음은 간접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그 영혼을 의롭게 한다.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주지하라. 달고도 신령한 약속들, 절대적인 약소들에 시선을 고정시키라. 신령하고 절대적인 약속들은 마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거룩함을 향하도록 하며, 영원한 행복에 들어갈 준비를 갖추어 줄 것이다.
믿음은 그 자체로 매우 활기 넘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가장 활기 넘치게 만든다. 믿음은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사람으로 하여금 가만히 있지 못하고 무엇인가르 하도록 만든다. 믿음이 있으면 영혼은 결코 게으름을 피우지 못하게 되어 있다. 믿음은 잠언 마지막 장에 나오는 현숙한 여인과 같다. 잠언 마지막 장에 나오는 현숙한 여인은 한시도 쉴새없이 모든 일을 하며 그의 여종까지도 게으름 피우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믿음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동행하도록 만들고 하나님을 수종하도록 만들며, 하나님과 씨름하도록 만들고 하나님을 위해서 어려운 일을 참아 내도록 만들며,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아끼지 않고 내놓도록 만든다. 믿음이 있으면 영혼은 여러 가지 경건한 의무들을 쉬운 것으로 여기게 되고, 즐거운 것으로 여기게 되며, 유익한 것으로 여기게 된다. 믿음이 있으면 영혼은 행실에 있어서 진지하고 양심적이게 되며, 조심스럽고 성실하게 되며, 부지런하고 충실하게 된다.
믿음은 그리스도를 바다, 곧 선량함의 바다로 여긴다. 그러므로 믿음은 그리스도로부터 모든 것을 얻는다. 믿음은 그리스도를 자녀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는 아버지로 여긴다(골 1:19). 그러므로 믿음은 그리스도로부터 모든 것을 얻는다(요 1:16). 그리고 이렇게 그리스도로부터 얻은 신적인 지식과 능력은 영혼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위하여 힘써 일하도록 만든다. 또 영혼으로 하여금 부지런히 활동하고 움직이도록 만든다.
은혜로운 영혼은 만일 자신이 믿음에 부요한 자가 되면 다른 여러 가지 은혜에 있어서 가난한 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은혜로운 영혼은, 믿음이 성장하는 것은 마치 ‘이른 비와 늦은 비’ 같아서 다른 모든 은혜들에게 유익을 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은혜로운 영혼은 믿음에 있어서 성장하는 것 외에는 달리 두려움을 극복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믿음은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죽인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믿음은 “이 세상은 내 집도 아니요, 내 주택도 아니요, 내 가정도 아니다. 나는 더 좋은 나라, 더 좋은 도시, 더 좋은 가정을 기다리고 있다”라고 말한다(고후 5:1, 2).
믿음은 독수리와 같은 눈뿐만 아니라 깔끔한 주부의 손도 가지고 있다. 믿음은 죄를 발견하는 데 능숙할 뿐만 아니라 죄를 씻어 내는 데도 능숙하다. 믿음 안에는 치유하는 특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깨끗케 하는 특성도 있다. 올바른 믿음은 영혼을 정결하게 하여 죄를 사랑하지 않도록 만들고 죄를 기뻐하지 않도록 만들며, 죄의 통치와 지배에서 벗어나도록 만든다(겔 16장).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롬 6:14).
믿음은 사람으로 하여금 기도하게 만들고 말씀을 청종하게 만들며, 성도들과 교제하도록 만들고 공적인 의무에 참여하도록 만들며, 가정에서의 경건의 의무를 준행하도록 만들고 은밀한 의무를 이행하도록 만든다. 이 가운데 믿음은 영혼과 함께 하고 영혼을 정결케 하는 이 여러 가지 규례에 자기 자신을 화합시킨다. 그렇게 하여 믿음은 이런 규례들이 모든 더러움과 부정함으로부터 영혼을 점점 더 정결하게 하는 데 효과적이도록 한다.
그리스도께서 성부 하나님의 영원한 품을 떠나셨다는 사실, 하나님과 동등된 분이시면서도 종의 형체를 입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 영광으로 옷을 입고 계시며 왕으로 태어나셨던 분께서 누더기를 걸치셨다는 사실,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감당할 수 없었던 분이 마굿간의 구유에 누워 계셨다는 사실, 태어날 때부터 죽는 순간까지 그분의 모든 생애가 슬픔과 고난의 생애였다는 사실, 이런 사실들을 믿으며 은혜로운 영혼을 크게 슬퍼한다.
믿음은 세상보다 더 높은 가격을 영혼 앞에 제시한다. 이렇게 하여 믿음은 영혼으로 하여금 세상을 이기도록 한다. 세상은 모세 앞에 온갖 명예와 쾌락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모세의 믿음은 세상이 제시한 것보다 더 귀한 것들을 모세 앞에 제시했다.
그리스도는 모든 선을 총망라하는 유일한 선이시다. 그리스도는 모든 만물을 총망라하는 유일한 분이다. 피조된 모든 것들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모든 아름다움, 모든 진귀함, 모든 탁월함, 모든 부요함, 모든 영광은 그리스도 안에 다 응집되어 있다.
강한 믿음은 사람으로 하여금 섭리적으로는 하나님의 약속과 반대 되는 일들이 자꾸 일어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도록 만든다.
약한 믿음도 이 세상에서 강한 믿음과 똑같이 사람을 그리스도의 소유로 만들며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만든다. 어린 아기도 성년이 된 형과 똑같이 그 아버지의 자식이다. 연약한 믿음도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믿음과 똑같이 사람에게 그리스도와 영원에 속한 모든 보배로운 것들에 대한 완전한 권리를 준다. 연약한 손으로도 거인의 강한 손과 똑같이 진주를 받을 수 있다. 믿음은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다(요 1:12).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혼을 돌보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도 돌봐 주신다. 은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이루신 역사이다. 그러므로 은혜는 그리스도의 돌보심 가운데 성장해야만 한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견고하게 세우고 고쳐 주시는 위대한 건축자요, 위대한 수리공이다. 그리스도는 여러분의 갸날픈 은혜의 불꽃을 화염으로 만들어 주실 것이다. 그리스도는 여러분의 한 방울 은혜를 대양과 같은 풍성한 은혜로 만들어 주실 것이다.
구원에 수반하는 회개는 총체적인 돌이킴일 뿐만 아니라 전적인 돌이킴이다. 모든 죄로부터 돌이키는 것이다. 그 어떤 조건이나 단서를 붙이지 않고 돌이키는 것이다. “내가 거짓을 미워하며 싫어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시 119:163). 에스겔 18장 30절의 말씀도 같은 내용이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국문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겔 18:30). 에스겔 33장 11절에도 동일한 내용의 말씀이 나온다.
구원에 수반하는 회개는 모든 죄로부터 돌이키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기도 한다. 그것은 단순히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일 뿐만 아니라 선을 행하기를 배우는 것이기도 한다. 그것은 단순히 어둠으로부터 돌아서는 것일 뿐만 아니라 빛을 향해 돌아서는 것이기도 하다.
구원에 수반하는 회개는 그 죄인이 회심하기 이전에 이전에 가장 쉽게 빠지고 쉽게 넘어가는 경향이 있었던 한 가지 죄나 여러 가지 죄를 가장 효과적으로, 그리고 가장 특별하게 공략한다. 회개의 손은 죄를 가장 호되게 친다. 회개의 손은 그 영혼이 이전에 가장 크게 곁눈질하던 그 죄를 가장 중차대하게 친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진실하게, 진정으로, 겸손하게, 진심으로 고백한다면 용서는 꼭 따라오게 되어 있다. 사람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면 하나님은 용서하신다. 죄의 고백은 반드시 죄를 죽이는 것과 함께 존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다.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그리스도를 잃어버리며, 천국을 잃어버리고 영원히 영혼을 잃어버린다.
가장 감미로운 기쁨은 가장 쓰라린 눈물을 흘릴 때 오는 것이다. 참회의 눈물은 신령한 기쁨의 원인이다. 한나는 하나님 앞에서 울었고 그 뒤로는 집으로 돌아가 다시는 얼굴에 수색이 없었다(삼상 1:18). 꿀벌은 가장 쓴 풀에서 가장 달콤한 꿀을 채취한다. 그리스도를 맹물을 가지고 가장 감미로운 포도주를 만드셨다. 가장 강력하고 가장 순수하며, 가장 진실하고 가장 영구적이며 가장 탁월한 기쁨은 회개의 눈물로 만들어진다.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을 들어 보라.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 126:5).
회개하는 영혼은 자신의 죄가 용서되었음을 볼 때, 하나님의 진노가 가라앉았음을 볼 때, 신적인 공의가 만족되었음을 볼 때 부끄러움으로 주저앉는다. 로마서 6장 21절의 말씀도 동일한 내용이다.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죄와 부끄러움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친구 사이이다. 죄의 외관상 감미로움을 누리는 일이 있으면, 죄에 수반하는 참된 부끄러움을 느끼는 일도 반드시 있다. 하나님은 이 두 가지를 함께 묶어 놓으셨다. 그러므로 온 세상이라도 그들을 갈라 놓을 수 없다.
구원에 수반하는 회개는 죄와 영혼을 완전하게 갈라 놓고 서로 멀리 떨어뜨려 놓기 때문에, 온 세상이 다 들고 일어나도 죄와 영혼이 다시 만나는 일은 한 쌍의 연인이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것처럼 하지는 못한다. 회개하는 영혼은 죄를 친구로서가 아니라 원수로서 여기고, 또 그렇게 대우한다. 회개하는 영혼은 다윗의 아들 암논이 다말을 대하듯이 죄를 대한다. “그리하고 암논이 저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이왕 연애하던 연애보다 더한지라. 곧 저에게 이르되, 일어나 가라”(삼하 13:15). 회개하는 영혼은 죄에 대하여 바로 이와 같은 태도를 취한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마음에 자신의 율법을 새겨 주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지 않을 수 없다. 시편 기자는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거오니”라고 말한다. 시편 기자는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었는가?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시 40:8). 내면에 있는 마음은 외부에 있는 계명에 응답하고 반응한다. 기록된 책이 그 책을 기록한 사람의 반향하는 것처럼 말이다. 얼굴과 얼굴이 서로 닮은 것처럼 말이다. 밀랍에 찍힌 형상이 인장에 새겨진 기호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처럼 말이다.
믿음은 약속을 내신 하나님이 능력 있고 신실하신 분임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믿음은 한 가지 약속뿐만 아니라 다른 약속에 대해서도 응답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진실로 순종하는 영혼은 하나님의 계명을 자기 마음대로 취사선택하지 않는다. 이 계명은 지키고 저 계명은 지키지 않겠다는 식으로 말이다. 진실로 순종하는 영혼이라면, “나는 이 명령에 대해서는 하나님을 순종하겠지만, 저 명령에 대해서는 순종하지 않겠다”라고 감히 말하지 못하며 또 그렇게 말할 수도 없다. 절대 그렇게 할 수 없다.
믿음과 마찬가지로 사랑도 영혼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순종하도록 만든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요 14:23). 시편 119편 48절의 말씀도 같은 내용이다. “또 나의 사랑하는 바 주의 계명에 내 손을 들고, 주의 율례를 묵상하리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사랑은 영혼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준행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모든 무거운 짐도 가벼운 것이 되고 모든 멍에는 쉬운 것이 되며, 모든 계명은 즐거운 것이 된다.
영혼이 하나님의 친절한 얼굴과 천상적인 말씀과 영광스러운 입맞춤과 거룩한 포옹을 경험하면,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거침없이 순종하고 전적으로 순종하려고 한다. 아, 반면에 위선자들과 육적인 신앙 고백자들로 하여금 순종하도록 만드는 모든 동기들은 다만 외적이고 육적일 뿐이다. 가령 다른 사람들의 눈과 귀를 의식한다거나,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보상을 받는다거나, 배를 만족시키고 싶다거나, 단골 고객을 확보하고 싶다거나, 야망을 채우고 싶다거나 하는 그런 동기들뿐이다(호 7:14).
자신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뜻을 언제나 순종하는 것과 자신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일을 언제나 수행하는 것은 성도의 양식이다. 그것은 성도의 기쁨과 면류관이다. 그것은 성도의 영혼에게 있어서 기쁨과 낙원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시 40:8). 태양이 자신의 길을 즐겁게 가는 것처럼 성도들도 순종의 길을 즐겁게 달려간다.
구원에 수반하는 순종은 단호한 순종이다. 여호수아는 백성들 앞에서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 여호수아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대해서 완전히 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지 여호와를 섬기겠다는 것이다. 앞에 모든 위험과 어려움과 장애물과 낙심할 만한 일들이 첩첩이 있지만 여호와께 순종하고 여호와를 섬기겠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 그리스도의 모든 약속, 그리스도의 임재, 그리스도의 나타나심, 그리스도의 모본, 그리스도께서 제시하는 보상은 올바른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모든 난관과 죽음 앞에서도 꿋꿋하게 지속적으로 순종의 길을 걸어가도록 만든다. 살고 싶다는 소망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주인을 바꾸거나 자신의 일을 외면하도록 만들지 못한다.
사랑은 사랑을 이끄는 자석이다. 그리스도는 온화하고 사랑스럽다. 그분은 저명하고 눈에 잘 띄는 분이다. 그분은 그 명성과 그 성품과 직분과 그 은혜와 그 은사와 그 계시와 그 현현과 그 규례에 있어서 한 점 흠도 없고 비길 데가 없는 분이시다. 그분은 진지함과 위엄과 긍휼과 영광으로 가득 차 있다.
사랑은 믿음으로 하여금 그리스도로부터 은혜를 얻어 내도록 하며, 인내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기다리도록 하며, 겸손으로 하여금 그리스도께 굴복하도록 하며, 경건한 슬픔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해서 애통하도록 하며, 자아(自我) 부인으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위하여 가장 가깝고도 가장 소중한 안락함들을 포기하도록 만든다.
본성적인 사랑은 자녀와 종업원과 아내로 하여금 순종하도록 만든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적인 사랑도 영혼으로 하여금 논쟁하는 것보다는 순종하는 것을 더 잘 하도록 만든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영혼을 죽을 때까지 순종하는 일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성도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열정적인 사랑이요, 뜨거운 사랑이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아버지의 품을 떠나셨고, 우리를 위하여 천상의 화려한 옷을 벗으셨으며, 우리를 위하여 피 흘려 죽으셨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이런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연스럽게 열렬하고 뜨거운 사랑을 불러일으킨다. 그리스도께서 누군가를 사랑하시면, 그분은 언제가 자기 자신과 비슷한 그 무엇을 그 사람 안에 생기게끔 하신다.
구원에 수반하는 사랑은 지속적인 사랑이요, 영구적인 사랑이다. 구원에 수반하는 사랑의 대상은 영구 불변하다. 그 사랑의 동기와 이유도 영구 불변하다. 그 사랑의 본질도 영구 불변하다.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죽기까지 자신들의 생명을 아끼지 않았다(계 12:11). 박해자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헌신한 순교자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향한 순교자들의 사랑은 조금도 파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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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아이들의 회심 이야기 김재윤 2004.09.02 21:18
40 기독교 중심 김재윤 2004.08.23 18:42
>> 확신, 지상에서 누리는 천국 김재윤 2004.08.11 20:11
38 사도신경 강해 1 김재윤 2004.08.02 22:20
37 칭의 교리의 진수 김재윤 2004.07.11 20:16
36 창세기3장 주해(나됨) 107p 사람창조 과정중 "생기"에 대한 부분을 이홍기 2004.07.07 22:29
35 놀라운 회심 이야기 김재윤 2004.07.05 20:16
34 함께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헨리 블랙커비/NCD) 조영민 2004.07.02 10:53
33 창세기3장 주해 (나됨. 448p) 이홍기 2004.06.30 13:54
32 복음 잔치 오라, 강청하시는 그리스도 김재윤 2004.06.10 19:26
31 책 읽는 방법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 채대광 2004.06.09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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