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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의 위로와 피난처
코로나-19가 이렇게 강력할 줄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서 예배가 중단되고, 사람과의 관계가 어려워지고, 사회 전반에 걸친 어려움과 절망이 이렇게 심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2019년 말 중국 정부가 원인 불명의 폐렴이 발생되었고, 2000년 1월에 국내에 첫 번째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삶을 우리가 살게 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서 새벽부터 줄을 서야 했고, 대형마트마다 사재기 열풍이 불었다.
또한 정부의 행정명령으로 비대면 예배라고 하는 새로운 용어가 들어오게 되었고, 학교는 방학이 연기되고, 비대면 수업을 통한 온라인 수업이 이제는 일상생활이 되었다. 그러면서 극단적인 목회자들은 코로나-19의 원인을 극단적으로 설교하기 시작했다. 중국이 선교사를 추방하고, 교회를 탄압함을 통한 하나님의 저주가 전염병으로 임하게 되었다고 하는 저주의 설교가 나타나기도 했다. 그런 설교를 듣고, 찬반 여론이 일어나게 되었고, 성경적으로 코로나-19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나오게 되었다. 여론은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정치에 포스트 코로나에 대한 예측을 쏟아냈다.
그렇다면 역사 속에서 수많은 전염병에 의한 팬데믹은 존재했는데, 그때 종교지도자들은 팬데믹을 어떻게 바라보았고, 어떻게 대처했고, 성경 속에서 전염병이 발생하게 된 원인과 전염병을 어떻게 대처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혼란스러운 이 시대의 물음에 효과적인 해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총신대학교 신학대원원 구약학 교수인 김지찬 교수는 이런 물음을 성경에서 나타난 전염병의 발생원인과 해결점, 종교개혁자의 삶, 특히 루터가 흑사병이 온 도시를 임했을 때, 어떤 행동을 했고, 흑사병이라고 하는 죽음의 팬데믹을 시편 46편을 통해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지를 정리했다. 저자는 성경의 계시(성경)와 역사적인 교훈(루터가 흑사병으로 대처한 교훈)을 신학적 사색을 통해 오늘날 코로나-19 팬데믹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를 정리했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인 성경에서 배우는 교훈에서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전염병의 예를 12개로 정리를 했다. 전염병은 성경의 3대 재앙이라고 했다. 성경의 3대 재앙은 칼(전쟁), 기근, 전염병을 뜻한다. 저자가 전염병에 대한 한계를 구약으로 제한한 것은 구약성경에는 전염병에 대한 언급이 82회가 등장하는데, 신약성경에는 딱 두 번 나온다. 신약은 1세기 정도의 짧은 기간에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전국적이거나, 세계적인 규모의 전염병은 그 시대에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12개의 전염병에 대한 사건의 정리는 구약 성경으로 제한했다. 전염병은 구약성경에서 세 개의 단어가 본문에서 나타난다. “deber:데베르, maggepah:게파, negef:네게프”가 바로 그것이다.
구약에서 나타난 12개의 전염병의 원인
출애굽기에 나타난 전염병의 출발은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광야로 사흘길을 가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게 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에서 전염병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한다. 왜 모세와 아론은 광야로 나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지 못하면, 전염병이나 칼로 자신의 백성을 치실 것이라고 했을까? 이것인 히브리인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히브리 백성은 애굽 땅뿐 아니라, 세계 어디를 가든지 유일하신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 방법이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었고, 이스라엘의 존재이유였다. 다시 말하면, 누가 누구를 섬기느냐는 이스라엘의 정체성의 가장 핵심적인 가치였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노예의 삶으로 더 이상 있기를 원하지 않으셨고, 해방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셨다. 그래서 히브리인의 하나님은 애굽 땅에서도 여호와이심을 나타내기 위해서 전염병을 보내신 것이다.
두 번째 전염병은 이스라엘의 인구조사와 연관되어 있다. 인구조사와 관련된 전염병은 생명은 누구에게 속한 것인지를 묻고 있다. 속전은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의 생명을 다시 사오는 상징으로 내는 돈이다. 그러므로 인구조사를 통한 전염병은 생명이 누구에게 속한 것이지를 알려주는 경고이다.
세 번째 전염병은 레위인의 성막봉사와 연관되어 있다. 레위인의 성막봉사와 관련된 전염병은 하나님의 거룩성을 침범함으로 생긴 재앙의 성격으로 보아야 한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경계를 침범하는 자는 죽임을 당한다는 것이다.
네 번째는 축복과 저주에 대한 언약을 어길 때, 전염병이 언급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과 율례를 기록한 후, 출애굽기 24장에서 피의 언약을 하나님과 맺는다. 그 언약의 핵심은 언약을 지키지 않으면, 언약의 저주를 받겠다고 자기 저주의 맹세를 한 것이다.
다섯 번째는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을 때 전염병이 임하게 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불신앙을 보일 때, 전염병을 내리겠다고 했지만, 모세의 중보기도를 통해 전염병으로부터 구원을 받게 되었다.
여섯 번째는 고라당 사건을 통한 모세의 리더십에 대한 반역사건이다. 여기서는 누가 거룩한가에 대한 논쟁이다. 고라당은 왜 아론과 모세만 제사를 드릴 수 있는지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택하지 않는 자가 하나님께 다른 불을 가지고 나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침범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이 사건도 모세와 아론의 중보를 통해 전염병을 해결되었다. 고라당 사건으로 14,700명이 전염병으로 죽게 되었다.
일곱 번째는 바알브올과 전염병 사건이다. 광야와 약속의 땅 사이의 경계선에서 이스라엘은 언약의 요구를 지키지 못했다. 이때,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는 바알브올을 섬기는 예배자를 창으로 찔러 죽였다. 그러자 전염병이 그쳤다. 이 전염병으로 24,000명이 죽게 되었는데, 하나님은 이 일을 내 질투심으로 그들을 소멸하지 않게 했다(민수기 25:10-11)고 말씀하셨다.
여덟 번째는 블레셋 땅으로 들어간 법궤 사건이다. 블레셋이 당한 사망의 환란은 독한 종기와 죽음이었다. 블레셋 사람들은 법궤를 돌려보내면서 속건제로 금 독종 다섯과 금 쥐 다섯을 보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독한 종기의 죽음을 흑사병으로 본다. 여기서도 거룩성의 침범의 문제 때문이었다.
아홉 번째는 다윗의 인구조사다. 다윗은 인구조사를 했다는 이유로 하나님께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7년 기근, 3개월 동안 칼에 쫓김, 3일간의 전염병. 여기서 다윗은 전염병을 택하고, 자신이 큰 고통 중에 있다(삼하24:14)고 고백한다. 그렇다면 그 고통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긍휼밖에 없다. 그래서 다윗은 사람의 매보다 하나님의 매를 선택한 것이다. 전염병으로 70,000명이 목숨을 잃게 되는데, 이 사건을 통해 다윗은 목자의 심정을 회복하게 된다.
열 번째는 솔로몬의 성전 봉헌 때 한 기도이다. 이 기도의 목표는 용서에 있다. 솔로몬은 백성들이 어디에 있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할 때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달라고 했다. 특히 솔로몬은 전염병에 대한 기도를 할 때(왕상 8:38-39), 자기의 마음에 재앙을 깨달아 회개의 마음을 허락해 달라고 기도했다.
열한 번째와 열두 번째는 예레미야와 에스겔에 나타난 전염병이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애통의 마음을 요구하셨고, 에스겔을 향해서는 아내의 죽음과 예루살렘 성의 멸망을 같은 날에 일어나게 하심으로 아내의 죽음의 고통이 곧 하나님의 고통임을 알게 하셨다. 이런 애통과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고통당하는 자의 심정을 우리에게 숙제로 남겨 주셨다.
2부에서는 역사에서 배우는 교훈이다. 역사 속에서 저자는 루터가 경험한 흑사병을 예로 들었다. 흑사병은 지사율이 75%에 해당할 만큼 치명적인 병이었다. 흑사병이 온 유럽을 강타할 당시 스위스의 츠빙글리는 자신이 흑사병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환자를 돌보고, 위로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역을 쉬지 않았다.
루터 역시 자신이 살던 비텐베르크에 흑사병이 닥쳤음에도 불구하고, 프리드리히 선제후가 비텐베르크를 떠나라고 하는 명령에도 그곳을 떠나지 않고 흑사병에 걸린 사람들을 치유했다. 그러면 왜 루터는 비텐베르크를 떠나지 않았을까? 그 이유를 루터가 1527년에 동료 목사들에게 보낸 편지인 “우리는 치명적인 전염병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가?”라는 편지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또한 흑사병이 주는 죽음의 문제를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 근거를 흑사병을 치유한 후 루터가 지은 ‘내 주는 강한 성이요’에서 찾고 있다. 이 찬송은 시편 46편을 근거해서 작사 작곡을 했다.
루터가 보낸 편지
루터는 이 편지를 통해서 흑사병을 피해 떠난 사람을 정죄하지 않았다. 흑사병은 하나님의 형벌이기 때문에 생명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죽음으로부터 피신하는 것을 비난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만일 흑사병에 걸린 사람을 도우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일은 하나님이 나를 필요로 하셨다는 증거이고, 어떤 사람을 만나든, 어디를 가든 피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스도인은 서로에게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또한 모든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기 때문에 기도해야 함을 강조했다.
또한 루터 자신이 도시에 남아 있는 이유는 신학적인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사랑이 있는지를 시험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래서 환자가 만약 예수님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질문했다.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는 이웃과 함께 살 수 없다고 하는 것이 루터의 이웃 사랑의 신학이다.
시편 46편을 통한 위로와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준동하는 사탄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위로는 신자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184페이지).
여기에서 루터는 흑사병에서 자신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그 말씀을 시편 46편과 연결시켰고, 그 말씀을 통해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작곡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나 큰 도움이시라,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고 시작하는 시편 46편의 위로를 루터는 받았다. 그래서 루터는 인간의 재앙과 자연 재해를 하나로 연결시키면서, 이런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위로는 하나님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3부에서는 성경과 역사에서 배우는 지혜를 말한다. 저자는 1부와 2부에서 말한 사실을 다시금 정리하면서, 어떻게 오늘날의 코로나-19의 상황에 맞설 수 있는지를 말한다. 구약성경에서 나온 전염병은 하나님의 거룩성과 백성의 정체성에 대한 반기로 나타난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염병을 통해 우리를 멸하시려고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긍휼의 하나님임을 기억해야 한다.
실천적인 방안으로는 대면예배와 비대면예배를 언급한다. 어느 것이 옳다 그르다를 말하는 것보다 루터가 중요하게 여긴 것은 교회의 하나됨이었다.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 교회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배는 드려도 되고 안드려도 되는 선택의 문제는 아니다. 예배는 생사의 문제다. 비대면예배는 비상대책이지, 이것이 뉴 노멀(New nomal)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인데, 그 힘의 원천을 우리가 하늘로부터 받지 못한다고 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탄을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부록으로 루터의 공개 서신 전문이 있다. 이 서신을 통해서 흑사병이 창궐하는 곳에서 루터가 어떻게 전염병을 대처할 수 있는지를 배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