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자살, 그 불행한 일을 막는 데에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책
자살, 그 불행한 일을 막는 데에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책
몇 년 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한 친구는 어릴 적 자살하려고 수면제를 몇 알 먹었다고 했다. 수면제를 먹고 잠이 들었을 때 양쪽이 낭떠러지 같은 곳에서 자신이 걷는 꿈을 꾸었는데 거기서 한 발자국 실수하면 죽는구나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고 한다. 수면제를 먹은 것이 몇 알 안 되어 다행히 푹 자다가 깨고 말았지만 당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전에 어느 아는 지인은 초등학교 전부터 자신이 미운오리 새끼 같다며 옥상에 올라가서 자살에 대한 충동을 받았다는 고백을 들은 적이 있다.
지금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유명한 CEO가 된 중고등학교 때 교회 친구도 대학교 입시 때 원하던 학과가 안 되고 2차 지원 학과가 되어서 자살시도를 했다는 이야기를 친구한테 들은 적이 있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은 어떤 때 앞선 친구가 꾸었던 꿈 마냥 한 걸음 차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살아가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거나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할 것 같은 상황에 내몰리는 경험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전에 사역하던 교회에서 자살한 청년이 있었다. 그의 장례식을 치르고 화장터에서 한 줌의 재로 떠나보내고 화장터 의자에 앉아 비록 청년부 담당은 아니었지만 같은 교회 공동체에 있으면서 그를 지켜주고 돌봐주지 못했다는 많은 안타까움이 있었다. 잘 알지 못하는 청년이긴 했지만 그리 크지도 않은 교회에서 그늘진 영역에 머물고 있는 이를 보지 못했다는 것 자체가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내의 성경공부도 있고 여러 가지 양육 프로그램도 있고 모임도 잘된 편이지만 정작 한 사람의 추락을 교회는 놓쳤던 것이다.
이런 자살의 문제는 한국사회의 커다란 문제 중 하나다. 교회도 여기서 벗어나지 못한다. 설혹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까지는 아니더라도 삶의 무너짐 속에서 이미 삶을 포기한 것처럼 살아가는 이들, 커다란 외적 내적 데미지 속에서 살아있지만 죽은 듯 살아가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본다. 단지 우리는 그들이 죽음이라는 선택을 하기 전까지는 외면하고 살아가곤 하고, 또 죽음을 선택했더라도 잠시 눈물 한 방울 흘리거나 잠시 마음에 동정을 가진 후 그들을 잊어버리는 경우들을 적지 않게 본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자살한 이들이 구원받을까 이야기하며 또 다른 상처를 사랑하는 이를 잃은 이들에게 주는 경우도 있다.
이번에 읽은 「그대, 죽지 말아요―자살 위협에 노출된 사람을 돕는 방법」(캐런 메이슨 저, 새물결플러스)은 이런 자살의 문제를 논하고 또 그 위기에 놓인 이들을 돕는 방법을 논하고 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데에 있어서나 신학적으로나 교리적으로 한 번쯤 논하거나 고민해야 될 문제들은 많다. 그런데 그 문제들이 중요하긴 하지만 정작 그것이 머리에서만 머물거나 사변적으로만 그치는 경우들이 많다. 신학이나 교리가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이 사람의 영혼과 아픔을 돌보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학과 교리는 그저 서재에 꽂힌 두꺼운 책이나 공부방에서 머무는 토론의 뜨거움이 되고 말 것이다. 그 교리와 토론이 지금 내 곁에서 죽어가는 이들, 삶아가는 것의 의미를 잃어가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잠시 접어두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고통 받고 있는 욥, 아마도 자살 충동에 시달리고 있었을 욥 옆에서 잠시 같이 슬퍼하긴 했지만 곧 욥의 신음에 짜증내고 고통의 문제를 교리적 접근으로만 다가가는 세친구들은 일정부분 그들의 이야기가 옳은 면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욥에게는 무의미함을 넘어 더욱 고통 속으로 몰아가는 일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대, 죽지 말아요」는 자살에 관한 신학적 접근도 하고 자살에 대한 여러 가지 관점도 다루지만 단순히 자살에 대한 신학적 토대를 세우고자 하거나 정의를 내리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내 앞에서 자살을 고민하는 이들을 돕기 위한 신학적 고민이고 그들을 돕는다는 미명하에 더욱 극단으로 몰거나 이미 사랑하는 이를 자살로 잃은 이들을 상처 주는 잘못을 범하지 않기 위한 고민과 그 해결책을 내놓는 책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자살에 관한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을 넘어 실제적이고 유용한 도움을 준다. 사실 어떤 면에서 자살이 일어나면 그것이 이슈가 되고 화제가 되지만 자살을 고민하는 이를 돕고 상담하는 것은 그렇게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다. 내 자신 여러 형태의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상담하곤 하는데 어떤 이들은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상담하는 경우도 있다. 그로 인해 특별한 이득을 얻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내가 상담하고 만나 줌으로써 그가 더욱 나쁜 길로 가는 것을 멈추게 하거나 지연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나쁜 일이 벌어지지 않기에 사람들이 모를 뿐이지만 어느 것이 더 유익한 일일까?
이전에 있었던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일할 때나 청년 때 청년부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그것이 자살문제는 아니어도 가정문제라든가 심각한 자녀 문제 등―상담하거나 이야기를 나눌 때 수고한다는 이야기도 듣지만 소득 없는 일보다는 정작 더 우선순위가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겠냐는 비판을 받거나 왜 쓸데없이 갈등과 어려움에 뛰어 드느냐는 핀잔도 들었다. 일견 맞는 말이다. 어떤 때는 피하고 싶고 내가 그런 일들을 자주 접하다 보니 내가 트러블 메이커는 아닐까 하는 낙심도 들 때가 있다. 괜한 오해를 받거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마음이 들 때는 많이 지치고 힘들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다 행한 것은 아니어도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돕고 더 위험한 사태를 조금이나마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위안이 힘을 얻게 된다. 자살의 문제도 그러하다. 누군가가 돕지 않으면 결국 불행한 사태는 일어날 것이다.
모든 자살 충동자가 다 죽는 것은 아닐 것이다. 죽음까지 가는 사람은 극히 드물지 모른다. 문제는 우리가 구분해낼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유익하다. 이 책에는 자살을 고민했지만 상담을 요청할 수 있는 목회자가 있어서 그 도움을 받아 자살을 멈추는 이의 사례가 나온다. 그런 목회자나 상담자가 갈등을 겪는 이의 곁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일 것이다. 공동체나 신앙의 건강성은 자신의 문제를 내어 놓을 수 있음일 게다. 목회자만 아니라 많은 성도들이 읽어보았으면 하는 책이다. 자살에 대처하는 것은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다가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