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예배의 목적과 선교의 이유에 대한 답변서

존 파이퍼의『열방을 향해 가라』(원제: Let the Nations Be Glad!) 30주년 개정증보판은 현대 선교학의 중요한 이정표로 자리매김한 고전적 텍스트의 귀환을 알리는 작품이다. 이 책은 단순한 선교 방법론이나 전략을 넘어 선교의 근본 목적과 신학적 기반을 성경적 관점에서 재조명하며, 하나님 중심의 선교관을 제시한다. 1993년 초판 출간 이후 30년간 수많은 선교사와 목회자, 신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친 이 책은 파이퍼의 지난 10년간 정제된 사상을 반영한 개정판으로 더욱 풍성해졌다.
선교와 예배: 분리될 수 없는 연결고리
파이퍼는 책의 서두에서 그의 유명한 명제를 제시한다: “선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예배가 없기 때문이다.” 이 단순하면서도 혁명적인 진술은 현대 선교학에 신선한 관점을 제공한다. 파이퍼에 따르면 선교의 궁극적 목표는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고 그분을 예배하는 것이다. 그는 선교를 교회의 궁극적 목적이 아닌, 예배를 위한 수단으로 재정의한다. 이러한 관점은 실용주의적 선교 접근법이 주를 이루는 현대 선교 패러다임에 도전장을 던진다. 파이퍼는 예배가 선교의 “연료이자 목표”라고 주장한다. 이는 예배가 선교의 원동력이면서 동시에 최종 목적지라는 의미다. 예배는 사람들로 하여금 선교 현장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 되고, 모든 민족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선교의 완성이 된다. 따라서 선교는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행위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은 파이퍼의 기쁨의 신학의 연장 선상에 있다. 그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영향을 받아 “인간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며, 이는 하나님을 즐거워함으로써 가능하다”라는 철학을 선교 분야에 적용한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기쁨이 선교의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현대 선교학에 중요한 신학적 깊이를 더한다.
기도와 고난: 선교의 필수 요소들
파이퍼는 선교에 있어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기도는 선교를 위한 전략적 무기라고 정의한다. 그는 하나님 없이는 인간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행위로서의 기도를 강조한다. 기도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인정이며, 선교사역의 궁극적 주체가 하나님임을 고백하는 행위다. 그는 기도의 부재가 현대 기독교의 느슨한 신앙을 반영한다고 지적하며, 진정한 선교적 삶을 위한 기도의 회복을 촉구한다. 선교와 고난의 관계에 대한 파이퍼의 논의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그는 선교에 고난이 따르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적 설계라고 주장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에는 필연적으로 고난이 따르며,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파이퍼는 번영신학에 강력한 반론을 제기하며, 아프리카 등 글로벌 남반구에 침투한 이러한 가르침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구원과 그리스도의 중심성
이 책의 핵심 주장 중 하나는 구원에 있어 그리스도의 중심성이다. 파이퍼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식적으로 고백하는 것이 구원의 필수 요건이라고 단호하게 주장한다. 이는 현대의 포용주의적 경향에 대한 강력한 반론으로, 그는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약화하는 어떠한 시도도 선교의 중요한 신경 하나를 끊어버리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파이퍼의 이러한 입장은 분명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그는 성경적 근거를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을 체계적으로 전개한다. 그의 관점은 신칼빈주의의 특징인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에 대한 강조를 반영하며, 현대 복음주의 선교학에서 중요한 신학적 기반을 제공한다.
민족(nations)의 개념과 선교 대상
파이퍼는 성경에서 말하는 민족(nations)을 단순한 국가의 개념이 아닌 종족집단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관점은 현대 선교학에 중요한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왔다. 하나님은 세계를 200여 개의 국가가 아닌 수천 개의 종족 집단으로 보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선교의 과제는 모든 개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족 집단에게 그리스도의 증거가 전해지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미전도 종족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현대 선교 전략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파이퍼의 이 주장은 세계 선교의 초점을 단순한 지리적 확장에서 문화적, 언어적, 민족적 경계를 넘어서는 방향으로 전환시켰다.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긍휼: 선교의 이중 동기
파이퍼는 선교의 동기에 있어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을 향한 긍휼이라는 이중적 동기를 제시한다. 그는 이 두 동기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라고 주장한다. 에드워즈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그의 견해에 따르면, 하나님을 최고로 영화롭게 하는 것은 그분을 최고로 즐거워하는 것이며, 이는 타인이 하나님을 즐거워하도록 돕는 선교적 행위로 이어진다. 이러한 관점은 하나님 중심의 선교와 인간 중심의 선교 사이의 명확한 통합을 제시한다. 파이퍼는 하나님의 영광 추구와 인간의 필요 충족이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인간의 최고 행복이라는 점에서 일치한다고 본다.
비평적 평가: 장점과 한계
『열방을 향해 가라』의 가장 큰 장점은 선교의 신학적 기초를 튼튼히 세웠다는 점이다. 파이퍼는 방법론적 접근이 아닌 성경적, 신학적 기반에서 선교를 다룸으로써 현대 선교학에 중요한 공헌을 했다. 그의 하나님 중심적 접근은 실용주의와 결과 중심주의에 빠지기 쉬운 현대 선교 패러다임에 중요한 교정을 제공한다. 또한 이 책은 선교의 동기와 목적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파이퍼의 “예배로서의 선교” 개념은 단순한 개종이나 교회 성장을 넘어선 더 깊은 선교적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이는 선교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재정의함으로써, 선교사와 교회가 자신의 사역을 더 넓은 맥락에서 이해하도록 돕는다.
그러나 이 책에도 한계는 존재한다. 일부 비평가들은 파이퍼의 접근이 지나치게 정적이고 교리적이며 엄숙주의적이라고 지적한다. 그의 신학적 깊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나라 전파의 최일선인 선교 현장의 역동성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다. 선교는 이미 알려진 하나님의 영광과 진리를 전파하고 수호하기 위한 엄숙하고 진지한 투쟁"일 뿐만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미지의 하나님 나라의 건설에 동참하는 흥미롭고 역동적인 모험이요 여행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또한 파이퍼의 강한 개혁주의적 관점은 다양한 신학적 배경을 가진 독자들에게 일부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특히 구원에 있어 그리스도의 명시적 고백의 필요성과 영원한 심판에 대한 그의 강력한 주장은 현대의 포용주의적 경향과 충돌할 수 있다.
30주년 개정증보판의 의의
30주년을 맞아 출간된 이 개정증보판은 파이퍼의 지난 10년간 정제된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새로운 판에서는 글로벌 기독교의 변화하는 지형도에 대한 통찰과 번영신학에 대한 경고가 추가되었다. 필립 젠킨스와 마크 놀의 연구를 인용하며, 파이퍼는 글로벌 기독교의 중심이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이동하는 현상과 그에 따른 도전과 기회를 논의한다. 또한 그는 미국 설교자들의 번영신학 가르침이 아프리카를 비롯한 글로벌 남반구에 침투해 교회에 해를 끼치고 있다고 경고한다. 이는 파이퍼가 현대 선교의 실제적 도전에 대해 여전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론: 현대 선교학적 맥락에서의 가치
『열방을 향해 가라』 30주년 개정증보판은 단순한 선교 지침서가 아닌, 선교의 근본 목적과 신학적 기반을 재조명하는 중요한 작품이다. 파이퍼의 하나님 중심적 선교관은 결과 중심주의와 방법론에 치우치기 쉬운 현대 선교 패러다임에 중요한 교정을 제공한다. 이 책은 미셔널 교회(missional church) 운동과 홀리스틱 미션(holistic mission) 등 현대 선교학의 주요 흐름과 대화하면서도, 선교의 궁극적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예배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파이퍼의 신학적 깊이와 열정적인 문체는 이 책을 단순한 학문적 논의를 넘어선 영적 도전으로 만든다. 비록 일부 한계가 있지만, 『열방을 향해 가라』는 선교사, 목회자, 신학생, 그리고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참여하고자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필수적인 읽을거리로 남아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책이 계속해서 새로운 세대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그 내용의 시의성과 중요성을 증명한다. 결국 이 책은 선교책으로 변장한 개혁주의 교리 변증서가 아니라, 선교의 본질을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관점에서 재조명함으로써 선교학에 신학적 깊이를 더하는 중요한 공헌이라 할 수 있다. 30주년 개정증보판은 새로운 세대에게 예배의 불꽃을 심고, 하나님을 가장 귀히 여기는 자들의 선교적 삶을 견인하는 성경적 선언으로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교회와 선교 현장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