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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신조 없는 교회는 없다

‘너희 교회는 사도신경 암송해?’라는 질문을 종종 받으며 자랐다. 그 질문은 “건강한 교회를 세우기 위한 신조와 신앙고백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한 질문이기보다는 괴상망측하게도 ‘사도신경을 외우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주문처럼 여겨지는 상황에서 어떻게 교회가 사도신경을 소홀히 여길 수 있느냐는 책망으로 전달됐다. 정작 의문을 제기한 사람들이 사도신경이 담고 있는 역사적 신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신조와 신앙고백은 형식주의에 빠진 교회들이 병적으로 집착하는 고대 문서쯤으로 여긴 것이 사실이다. 교회사를 공부하면서 선입견이 생긴 원인이 신조와 신앙고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잘못 활용한 사람들에게 있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됐다. 공식적인 문서로 신앙을 고백하지 않더라도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자기 신앙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어떤 교회도 ‘무엇을 믿느냐?’는 질문에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를 읽는 것으로 답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마주했다.
“확신의 위기: 개인주의와 정체성 정치 문화에서 역사적 신앙 선포하기”를 쓴 칼 투르먼은 신조와 신앙고백이 무시당하는 현실에 영향을 끼친 현대 문화로 “표현적 개인주의”를 꼽았다. 표현적 개인주의란 “모든 사람이 일련의 내적 감정, 욕구, 정서에 의해 구성된다는 개념이다”(15p). 트랜스젠더리즘이 그 대표적인 예로, 사람들은 주관적 감정, 욕구, 정서에 최고 권위를 부여하고 외부 현실을 거기에 맞춘다. 극단적인 개인주의의 한 형태로 나타나는 현대 문화 속에서 ‘공적으로 정립된 교리에 개인의 정체성을 맞추라고 설득하는 신조와 신앙고백의 인기가 줄어드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한편, 모든 교회는 자신만의 신조를 가지고 있다. ‘오직 성경만이 우리의 유일한 신조이자 유일한 신앙고백서다’라고 아무리 외치더라도, 아무도 기록하여 공적으로 발표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들이 믿고 있는 교리엔 분명한 정체성이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교회는 자신들이 믿는 성경적 교리를 신조로서 간직하고 전수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현대 문화나 독단적인 고집에 따라 신앙고백을 따로 정립하지 않는 것이 옳은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교수이자 코너스톤 정통장로교회 목사였던 칼 트루먼은 탁월한 통찰력과 분석력으로 교회의 역사 가운데 신조와 신앙고백이 어떻게 정립되고 전수되었는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오늘날 교회가 건강함을 유지하려면 반드시 그 전통을 이어받아야 한다고 설득한다. 그는 먼저 네 가지 가정을 하는데, 1) 인간은 하나님 형상으로 지음받은 피조물이며, 하나님과 다른 인간과의 외부적 관계에 근거해 정의된다, 2) 과거는 중요하며 우리에게 긍정적인 교훈을 줄 수 있다, 3) 언어는 시간과 지리적 공간을 넘어 진리를 안정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이어야 한다, 4) 신조와 신앙고백서를 권위 있게 작성하고 시행할 수 있는 단체 또는 기관이 존재해야 한다(34-5pp). 이와 같은 기본적인 토대를 시작으로 트루먼은 초대 교회에 신조가 어떻게 강조되었는지 성경을 근거로 설명하고, 이후 종교개혁 시대 여러 신앙고백서를(성공회 신조, 벨기에 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도르트 신조,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 등) 분석하여 고전적 정통 개신교에 풍부한 신앙 고백의 유산이 있다고 결론내린다(197p).
트루먼은 또한 신앙고백이 단순히 교리에 관한 정보 나열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그 고백으로 정체성을 규정할 수 있는 단체 또는 기관, 대표적으로 교회가 궁극적으로 예배하고 찬양하는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담고 있다고 말한다. 신조는 단순히 교리가 아니라 예배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자는 신조와 신앙고백서의 유용성을 제시한다. 공적인 신조를 가지고 있는 교회는 그렇지 못한 교회보다 성경의 최고 권위를 더 공정하게 다룰 수 있다. 신조가 없으면 각자의 주장에 권위가 부여되지만, 신조가 있으면 성경에 최고 권위를 두고 신조를 판단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신조는 교회의 권력을 제한한다. 목사의 말이 아니라 성경을 기초로 세운 신앙고백이 교회의 권력이 되고, 목사는 자신에게 주어진 범위 내에서만 권위를 사용할 수 있다. 신앙고백은 또한 교회가 무엇을 믿는지 간결하고 면밀한 요약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 요약은 교회가 따르고 가르칠 도덕적 지침이 된다. 신앙고백은 교회의 정체성을 밝히고 다른 교회와의 차이를 보여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조와 신앙고백은 교회의 일치를 가져다준다.
신조와 신앙고백에 관한 선입견은 교회사를 정직하게 연구하고 나서 말끔히 사라졌지만, 그것의 필요성과 가치는 트루먼의 이 책을 통하여 더 확증된 것 같다. 오늘날 ‘사도신경’을 중언부언하듯 외우는 모든 성도에게 트루먼의 이 책이 필요하다. 그리고 신조가 없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독단적인 교회에도 이 책을 권장한다. 신조나 신앙고백이 없는 교회는 없다. 교회는 다만 어떻게 하면 오랜 세월 많은 이들의 검증을 거쳐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교회의 유산을 지키고 전수할 것인지, 그리고 성경의 아름다운 교리를 어떻게 정립하고 노래할 것인지 그것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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