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필리핀 장기선교사역을 마치며

채천석 | 2018.03.31 22:17

필리핀 장기선교사역을 마치며(선교편지)

 

안녕하세요. 필리핀에서 사역해온 채천석 · 조미숙 부부선교사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3년 전, 그러니까 지난 20051016일에 저희 가족은 제가 강의를 하고 있던 평양신학교 파송으로 필리핀 선교사로 떠나오게 되었습니다. 2002년 필리핀 단기선교사로 1년여 간 정탐하였던 일이 계기가 되어 결국 필리핀 장기 선교사로 파송을 받게 되었습니다. 처음 계획은 선교후보생들의 선교훈련을 감당하는 것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보다는 필리핀 현지인들을 위한 교회사역과 교육사역을 주로 하게 되었습니다.


필리핀 선교사로 있던 3년째에 제가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해왔던 광성교회의 지원으로 GMS 선교사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훈련을 마치고 인준과정에서 GMS 임원이 사역지를 바기오에서 마닐라로 옮길 것을 강권하는 등 여러 이유로 제가 속한 교단의 선교부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그때 교단 선교부에 들어갔었다면, 국내로 철수하는 시기가 이렇게 쉽게 다가오지는 않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해봅니다

 

사실, 저희 가정은 그동안 선교지에서 끊임없이 경제적인 문제와 싸워야만 했습니다. 제가 성격도 그리 활달하지 못하고 또한 선교사로서 제대로 훈련을 받지 못해서 후원을 요청하는 데 힘들어 했고, 결국 국내 기독교 출판사들의 도움으로 선교지에서 버티면서 선교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선교사님들이 선교지에서 살아남아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선교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와 같이 교제하며 지냈던 많은 필리핀 선교사들이 경제문제로 인해 국내로 철수하는 것을 볼 때면, 저도 어쩌면 언젠가 그런 대열에 합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지금껏 살아온 게 사실입니다. 그러다가 그동안 저희 가정을 위해서 나름 최선을 다해서 후원을 해왔던 평양신학교가 학교 사정으로 인해 작년에 저희 가정에 대한 파송을 철회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새로운 파송교회를 찾는 일과 국내로 철수하는 일을 두고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으나, 작년 후반기에 국내로 철수하는 쪽으로 최종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저희 가정이 국내로 철수하게 되더라도, 제 나이가 한국 나이로 60(1959년생, 호적상으로는 1961년생)에 이르게 되어 사실상 국내에서 목회를 새로이 시작하는 일은 어렵다고 판단이 됩니다. 그리하여 저는 국내로 철수하더라도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선교와 관련된 일을 계속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우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제가 발행인으로 있는 크리스찬북뉴스를 좀 더 활성화시켜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크리스찬북뉴스는 기독교 관련 출판소식을 전하는 서평사이트로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기독교 출판계와 독자들을 돕는 기관입니다. 앞으로 저는 국내에서 이 사역을 좀 더 충실하게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또한, 저희 내외가 그동안 해외에 거주하며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선교사역을 해왔기 때문에, 이 사역을 국내에서도 계속해서 감당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국내에 다문화 가정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이 늘어나면서 한국어에 대한 효용가치가 더욱 늘어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내외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을 매개로 외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또한, 저는 필리핀에서 철수하더라도 1년에 두어 차례 정도 필리핀을 방문하여 선교를 돕는 순회선교사역을 계속할 예정입니다.


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참으로 놀랍고 큽니다. 날아가는 새도 들에 피는 꽃도 눈동자처럼 지키시는 하나님, 그 말씀이 저희 가정에 딱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늘 선하시고 올바른 길로 저희 가정을 인도하셨습니다. 사실, 10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선교사역에 매진하느라 대학에 진학한 아이들의 학비와 생활비를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경제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두 아이들 모두 등록금이 유난히 비싸기로 이름난 대학교 학과에서 전액장학금으로 공부하고 있고, 부모의 지원 없이도 스스로 생활비를 벌어가며 모두 상급반에 재학(첫째 아이는 4학년 2학기, 둘째 아이는 3학년 1학기)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저희 가정이 이토록 무더운 지방에 살면서도 한 번도 큰 병에 걸리지 않고 지낼 수 있게 하셨습니다. 특히, 다바오에 거주하시는 선교사님들이 다들 한두 번 정도 댕기열병에 걸려 몸이 많이 쇠약해지셨다는 말을 들을 때면, 하나님이 저희 가정의 어려운 형편을 아시고 얼마나 많이 돌봐주셨는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아내와 저는 43일 비행기로 한국으로 귀국합니다. 돌아보면, 필리핀 사람들을 위한 선교사역에 좀 더 열심을 내지 못한 지난 세월이 한편으론 부끄럽기도 합니다. 좀 더 많이 베풀었으면, 좀 더 많이 그들과 어울리며 동고동락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저의 부족한 선교사역을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저의 형편을 모두 아시는 하나님이 저의 부족함을 용서하시고, 국내에서의 새로운 출발을 축복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제가 선교사로 떠나오기 직전에 협동목사로 섬겼던 교회 앞에서 인사말을 하면서 “4년 한 텀 정도 필리핀 선교사로 봉사하다가 다시 돌아오겠습니다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4년 정도 필리핀에서 선교하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 사이 어언 13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사실, 아내와 저는 이곳 필리핀이 이제 고향같이 느껴집니다. 그만큼 정이 많이 들었고, 너무도 익숙한 곳이 되었습니다. 저는 다시 한 번 이렇게 말씀드려봅니다. ‘4년 한 텀 정도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파송된 것처럼 살아보겠습니다.’ 지금은 이런 계획이지만, 어느 새 돌아보면 또 다시 10여년의 세월이 훌쩍 흘러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더라도, 마지막 한 가지 소망은 노년기를 선교지에서 보내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한결같이 부족한 저희 가정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물심양면으로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하나님이 그 모든 수고에 보답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필리핀에서 이렇게 마지막 선교편지를 쓰면서, 그중 몇 분들께는 특별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먼저, 저희 가정을 2005년 필리핀으로 파송해주시고 제가 이곳을 떠나는 시점까지 최선을 다해주신 평양신학교와 김일심 학장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학장님은 지금까지 제가 만난 여성 지도자들 가운데 최고의 믿음의 여장부셨습니다. 작은 신학교이지만, 큰 신학교가 부끄러울 정도로 정직과 신앙으로 학교를 운영해 오셨습니다.


다음으로, 제가 어려서부터 자라왔던 광성교회의 목사님들과 교우들께 특별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광성교회는 제게 늘 아련한 추억이 남아있는 교회입니다. 특별히, 저희 가정의 선교편지를 교회에 전달하면서 저희 가정을 위해 늘 헌신해주셨던 윤효심 집사님 내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이외에도 언급해야할 많은 분들이 계시지만, 선교편지가 너무 길어지는 관계로 이만 줄이겠습니다.

끝으로, 하나님께 이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솔리 데오 글로리아.’

 

2018331 

채천석 · 조미숙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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