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힘 좀 뺍시다.

서상진 | 2019.08.19 10:06

지난 여름 한 교회에 초청을 받아 설교를 한 후, 교회 부목사님과 점심 식사를 할 때, 그 목사님이 저에게 질문을 할 것이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개척을 할 때 무엇을 준비했냐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개척을 하기 위해서 준비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개척을 하겠다고 하는 마음을 먹었을 때 사실 용감했고, 순진했었던 것 같습니다. 개척을 하기만 하면, 제 생각은 사람들이 올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부목사 때 어느 정도 사역을 하면서 얻은 경험은 그래도 맡았던 부서마다 열매가 있었고, 분위기도 좋았고, 개척을 할 때, 함께 했던 사역자들에게 물어보았을 때에도 다 긍정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그랬기에 저는 자신만만하게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교회에 재정도 없고, 사람도 없고, 있는 것은 예배당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요? 부목사 때 그렇게 울리던 전화는 일주일이 지나도, 한달이 지나도 교회 성도들에게 오는 연락은 없었습니다. 심방을 할 곳도, 그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곳도 없었습니다. 갑자기 절망이 찾아왔고, 무기력함이 저에게 임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하기는 해야겠는데, 무엇을 해야할지도,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개척에 대한 준비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기에,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그렇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기를 1년이 넘었습니다. 사람도 늘지도 않았고, 재정적인 상황도 그렇게 나아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개척교회에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었습니다. 특히 열악하고, 힘들고, 어려운 목회 현장은 하나님께서 목회자를 온전한 목회자로 만들기 위한 훈련장과 같았습니다. 악기를 배우거나, 운동을 할 때 선생님이 가장 많이 강조하는 것이 힘을 빼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잘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초보자일 수록 힘이 많이 들어갑니다. 그러나 능숙한 사람일 수록 힘을 빼고 합니다. 목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힘으로 무엇을 해보고자 하는 목회자는 다 초짜들입니다.

교회 교인들이 목사의 마음도 몰라주는 것 같고, 기도를 아무리 해봐도 응답도 없고,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내 힘을 빼는 일입니다. 내 힘을 빼는 일이란 결국 신실하신 하나님, 변함없으신 하나님 앞에 내가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내려 놓고, 하나님의 신실함을 의심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내 힘을 빼는 일이었습니다. 개척을 해보니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아무 것도 안된다고 하는 사실을 매일 매일 느끼게 된 것입니다. 개척할 때, 공부, 신학에 대한 준비함들, 목회 철학, 교회의 방향성, 사역에 대한 계획 다 중요합니다. 그런데..막상 해보면, 그런 것 별로 소용없습니다. 그냥 하나님께 힘 빼고 나가는 것,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심 없이 바라보며 버티는 것, 그것만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이겨낼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을 이제야 조금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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