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내 생각과는 많이 다르신 하나님

서상진 | 2019.09.16 05:07

세상의 많은 종교는 복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그 복을 받기 위해서 신을 찾아 다니고, 신에게 빌고 또 빕니다. 세상의 종교는 정성을 다해서 자신의 원하는 바를 빌면 됩니다. 복을 비는 것과 정성을 다하는 것이야 말로 신을 찾는 인간에게 요구하고 응답하는 공식과도 같은 것입니다. 여기에 영적인 카타르시스가 더해지면 금상첨화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영적인 효험이 있다고 하는 산을 찾아다닙니다. 어떤 사람이 그곳에서 신비한 체험을 경험했다고 하면 그 곳을 성스럽게 여겨서 자신도 그 장소에서 신비한 체험을 하기 위해 공을 드리고, 정성을 드리는 일도 많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 그 원하는 것을 주는 신을 만들고, 그곳에 정성을 다해 비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여기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런 종교적인 생각들은 우리의 삶에서도 그래도 있습니다. 내가 노력하고, 내가 열심을 내면 반드시 그에 따른 보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콩 심은데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납니다. 내가 한만큼 보상을 받고, 내가 노력한 만큼 결과를 바라는 것은 어쩌면 합리적인 생각일 것입니다. 노력도 하지 않고 어떤 결과를 바라거나, 열매를 바라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비합리적인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내가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잘 나올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내가 생각하는 성적을 얻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땀을 흘려서 일을 해도 내가 원하는 돈을 소유하기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바는 이렇게 되기를 바라는 데, 결과는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 이 세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노력과 정성과 지성으로 움직이시는 분이 아닙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우리의 상식대로 움직이시는 분이 아닙니다. 내가 무슨 일을 많이 해서, 또한 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결과를 냈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준이 있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내 상식이라고 한다면, 나의 기준에 맞기 때문에 사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우리의 기준을 다 무너뜨려 버리십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보시고, 나를 사랑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거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향해 아빠라고 부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빠를 부르고, 찾고, 구하면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이루어진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구하는 모든 것을 더 해주신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이 프레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내 기준과 내 프레임에서 하나님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내 기준을 하나님 앞에서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기준으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바른 신앙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 은혜라고 하는 것은 기복적인 것도 아니고, 체험적인 것도 아닙니다. 지성적인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로 아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면 오해도 사라집니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오해하고 살아갑니까?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고 있으면 콩을 심어도 팥이 나는 현실을 믿음으로 받아드릴 수 있습니다. 죽을 힘을 다해서 소득이 없어도, 반대로 많은 소득을 얻었음에도 수치를 경험할지라도,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라고 하는 큰 테두리 안에서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해석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그 뜻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인간의 작은 지식으로 어찌 모든 것을 알 고 계시는 하나님을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나의 작은 지식이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에 대한 오해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바로 알아갈 때, 바른 믿음이 생기고, 작은 것 하나를 심었음에도 풍성함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냥 하나님을 아빠로 여기시고, 아빠이신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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