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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디셀러

처음 맛보는 체스터턴의 시원한 변증

정말 힘들게 읽었다. 책이 쉽게 읽히지 않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체스터턴의 책이 읽기 힘들었던 이유는 그 특유의 문체와 위트 그리고 문화적 서사를 파고들며 역설을 가지고 설명해 나가는 방식이 정말 탁월하면서도 풍자적이어서 충분히 이해하고 그 맛을 느끼면서 읽으려면 상당한 집중과 노력과 에너지를 요구하기 때문이었다. 복있는 사람에서 출간된 <영원한 인간>에서는 그래서 “체스터턴은 하나의 장르다”라고 평가했는데, 그 말이 옳다. 아직 그 장르에 익숙해지지 못한 탓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바서원에서 출간된 같은 저작의 또 다른 번역서, <영원한 사람>을 같이 읽었다. 이쪽에서 덜 이해된 부분이 있으면 저쪽에서 더 얻어내고 싶어서. 체스터턴은 C. S. 루이스, J. R. R. 톨킨 등 많은 그리스도인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천재 저널리스트로 신학, 철학, 문학, 역사 등 다방면에 풍부한 지식과 통찰력을 자랑한다. 100권이 넘는 책을 쓴 체스터턴은 기독교를 힘 있게 지지하고 변호하지만, 엄밀히 분류하자면 로마 가톨릭교회 신자다. 체스터턴의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윌리엄 퍼킨스 전집을 같이 읽었는데(도서출판 새언약, 2025), 퍼킨스는 로마 가톨릭을 교황 주의로 지적하며 성경의 올바른 교리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 열렬히 비판했다. 어떤 면에서 그래서 체스터턴의 화려한 문체와 기가 막힌 역설 중에서 복음주의 기독교 교리에 반대하는 요소가 있는지 면밀히 따져보느라 더 오랜 시간을 들여 읽게 된 것일 수도 있다.
<영원한 인간/사람>은 한 마디로 변증서다. 저자는 기독교가 왜 참 종교인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1) 인간이라 불리는 피조물에 대하여, 2) 그리스도라 불리는 사람에 대하여. 1부에서는 기독교와 크게 상관없이 인간의 역사를 일반적인 상식과 역사를 통하여 분석한다. 기독교가 말하는 인간의 역사는 터무니없는 신화처럼 여기면서 진화론이나 여러 철학 및 신화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시대정신을 비판한다. 체스터턴은 기독교를 반대하거나 의심하는 자들에게 겸손하고 친절한 설명으로 해답을 주려 하지 않는다. ‘역설’의 대가 답게 기독교가 정말 거짓이라면, 만들어낸 신화라면, 그래서 세상 문명과 종교와 철학과 나머지 신들이 말하는 설명을 따른다면 인간의 역사가 얼마나 더 우스꽝스러워지고 상식 밖으로 떨어져 나가는지 철저하게 입증한다. 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기독교를 변증하는데, 마찬가지로 기독교가 특별하지 않다는 가정 아래 그러면 어떻게 오늘날 서양 문명이 이렇게 발전하게 되었는지 역으로 묻는다. 동양 종교가 말하는 영원에 관한 설명과 끝없이 순환되는 운명에 관한 설명이 서양 철학에서도 그대로 발견되지만, 기독교는 서양 문화와 신념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고 평가한다. 그러면서 그 어떤 종교 창시자나 신화 속 우상들도 이렇게 시대와 종교와 민족과 나라와 사상을 초월한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면서 기독교의 탁월함을 드높인다. 기독교가 종교 중 하나라고 하더라도 현실을 다루는 참 종교인 것이고, 기독교 교리가 신화 중 하나로 들린다고 해도, 진리를 말하는 유일한 신화라고 결론 내린다.
오늘날 기독교 변증학은 주눅이 든 모양새다. 철저히 종교적인 영역에서만 변호를 하려다가 그 밖의 역사 및 문화적 반격에 속수무책으로 그 무지함과 무력함을 드러내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항복을 선언하기도 한다. ‘다른 건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성경은 그렇게 읽힌다. 또 그렇게 대다수가 받아들인다’는 식으로 말끝을 흐리는 것이다. 하지만 체스터턴은 아주 담대하다. 반 틸은 전제주의 변증법을 추구하기 때문에 체스터턴의 방식을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겠지만, 체스터턴은 그의 풍부한 상식과 통쾌한 논증으로 기독교를 반대하는 자들을 기독교 핵심 교리를 애써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압도한다. ‘너희가 기독교를 비판하는 기반으로 삼는 그것으로 나는 기독교가 옳다는 것을, 기독교와 같은 것은 세상에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라고 호언장담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바서원과 복있는사람에서 각각 출간된 번역본의 차이는 크지 않다. 복있는사람에서는 옮긴이 전경훈의 짧은 글과 체스터턴의 대략적인 연보가 본문 끝에 실려있다(각주도 굉장히 길고 많다). 아바서원에서 나온 책은 송동민과 서해동 두 사람이 함께 번역한 것으로, 전체적인 느낌으로는 조금 더 편안히 읽힌다(각주도 거의 없다). 복있는사람에서는 체스터턴의 <이단> 그리고 <정통>을 시리즈로 같이 출간했다. 나머지 두 권의 새로운 장르를 접하는 즐거움과 행복한 고통(?)이 기대되면서, 누구든지 체스터턴의 책을 잃어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한 번은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특별히 영원한 사람/인간을 통하여 그가 기독교를 어떻게 변호하는지 보고 배우고 또 기독교가 어떻게 모든 역사와 문화와 종교와 철학을 아우르고 압도하는지 느껴보기를 원한다. 체스터턴은 당신에게 충분히 그만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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