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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추천도서
근대 서구문화에 도전하는 담대한 복음

『죽은 시인의 사회』의 피터 위어가 감독하고, 짐 캐리가 주연한 『트루먼쇼The Trueman Show』라는 유명한 영화가 있다.
현대 미디어의 가공할 위력에 대한 문제의식을 독특하게 담아냈다며 수많은 평론가들과 관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던 영화다. 한 평론가는 다음의 말을 통해 이 영화의 핵심을 얘기한다: “이 영화에서 트루먼만이 유일하고 진실된 인간(True-Man)이다. 그 외의 모든 것은 쇼다!”
본서를 읽으면서 이 영화가 떠올랐다. 계몽주의 이후 합리성이라는 거대한 타당성 구조로 둘러싸여 있는 “근대 서구 문화”라는 골리앗에 감히 도전하는, 그래서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하는 본서의 담대함과 용기는 뉴비긴 자신이 경험하여 확신하고 있는 진실의 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 진실은 트루먼 쇼에서 유일하고 진실된 한 인간이 곧 트루먼 밖에 없었듯이, 역사상 참으로 유일하고 진실된 한 인간이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다.
“합리성”으로 대표되는 타당성 구조는 근대 서구 문화의 “제작자이자 아버지이며, 그리고 전능한 신”이기도 하다. 근대 이후 현대와 탈현대를 살고 있는 인간들은 여기에 자신을 적응하며 살아왔을 뿐, 비평적 거리를 유지하지 못해왔다. 아니 더 가혹하게 말하자면 그 자신들이 이 타당성 구조를 떠받드는 재료들로 역할했을 뿐이다. 이 타당성 구조가 과연 실재에 부합한 것인지 질문을 던지는 이들이 없지는 않았으나 근대 서구문화라는 괴물은 그들을 집어 삼켜왔었다. “합리성”이라는 그럴 듯한 옷을 입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근대 서구문화야 말로 어쩌면 합리성(자신들이 말하는) 외의 것들을 무시하고 짓밟는 독재자인지도 모른다.
적절한 비평자의 자격으로는, 그 비평 대상에 대한 직접적 체험을 가진 이면서, 현재 그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이를 들 수 있는데(따라서 그들은 대개 경계선에 있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이 근대 서구 문화를 가장 적절하게 비평할 수 있는 이들은 “지금 여기”에서 살고 있으면서 동시에 “지금 거기”에서도 살고 있는 자들이어야 할 것이다. 누가 있는가?
바로 복음 공동체이다. 본서는 복음 공동체에게 전의와 용기를 북돋아준다. 그 전의는 무지막지한 총칼로 무장된 것이 아니라, 진실의 공동 경험자로서의 관용과 논리로 다듬어진 것이다. 복음 공동체가 공유하고 있는 성경과 복음, 그리고 그 공동체 자신은 사실 본질상 그들이 만나는 모든 문화에 도전하는 성격을 갖고 있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오늘날 모든 문화가 그러하듯 타락한 인간에게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온전하고 진실한 한 인간과의 만남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만이 온전하고 진실한 인간이라는 진리를 확신하기 위해서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도약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우선적으로 본서는 이미 도약한 이들에게 그 도약이 참으로 합리적인 결단이며 순종이었음을 확신시켜준다.
본서는 성경의 타당성 구조가 서구문화의 통찰을 충분히 포용하고도 남는 더 큰 구조라는 사실을 차분하게 설득한다. 그 차분함 속에는 근대 과학에 대한 예리한 논박-사실과 가치를 구분하는 이분법의 모순을 지적-이 있으며, 현대 정치사회에도 여전이 유용한, 아니 유일하게 타당한 성경의 유효성을 개인 차원을 넘어 공적인 진리로서 확장시키고 있으며, 그에 따른 결론으로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통치와 주권을 선포하는 복음의 담지자로서의 교회의 소명을 천명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구성은 ‘앎-행동-존재’라고 도식화할 수 있을 만큼 점층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모양인데, 이는 근대 서구문화가 자꾸만 더 작은 것으로만, 또는 부분으로만 파고드느라 놓치고 있는, 전체를 바라보는 적절한 시각으로도 보인다.
본서가 대단히 논리적이고 설득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원적 사회의 일반 독자를 위한 직접적인 책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 같다. 오히려 본서는 현대 서구문화의 타당성 구조 안에 살고 있는 복음 공동체를 위한 책이다. 근대 서구문화에 적지 않은 열등감-특별히 지적인 부분에서-을 갖고 있는 복음 공동체에게 주어진 그분의 지혜가 얼마나 광대한 것인지 확인시켜준다. 따라서 담대하고 거리낌 없이 증언의 언어를 사용하여 근대 서구 문화와 적극적으로 만날 것을 고무한다. (회심이라는 공동체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증언은 사적 진리가 아니라 공적 진리로서 충분한 합리성을 갖고 있는 독특한 경험이다.) 합리성을 외치고 있긴 하지만 참으로 불합리성이 판치고 있는 세상에서 복음 공동체야말로 합리성을 지켜나가야 할 보루라는 사명감을 심어준다.
따라서 본서의 결론으로서의 마지막 장(우리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교회의 소명)은 독자들이 더욱 마음에 새겨야 한다. 마지막 장은 교회가 세속 문화로부터 적절히 구별되는 동시에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연구에 따른 결과물이다. 저자는 이를 위해서 일곱 가지 핵심 사항을 열거하고 있는데 이는 대단히 유용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그중 종말론에 관한 참된 교리의 회복을 첫째로 삼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복음이란 결국 하나님 나라에 관한 좋은 소식이기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오늘날 인간 나라 가운데에서 복음 공동체를 구별시키면서 동시에 책임을 수행하도록 하는 출발점이기에 이를 첫째로 삼지 않았나 한다. 또한 교파주의의 이론과 관행을 극복하면서, 평신도들이 정련된 신학을 바탕으로 신앙과 세상 일 사이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게 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특별히 오늘날의 한국 복음 공동체들(교회들)이 반드시 귀담아 들어야 할 외침이다. 또한 교회는 여전히 배우는 과정에 있음을 겸손히 인정하면서, 동시에 그분만이 진정한 나라의 왕이심을 증언의 언어로서, 행동으로서 담대하게 나타내야 한다는 주장도 그러하다. 이 사실이 증명될 날이 이를 때까지 교회는 이 같은 “겸손한 담대함과 소망에 찬 인내”의 태도를 붙들어야 할 것이다.
열패감에 사로잡혀 있는 복음주의 지성인들이 있는가? 근대 서구문화의 언저리를 기웃거리며 그들이 버린 쥐엄열매 따위나 주워 먹고 있는가? 본서를 통해 담대한 복음을 회복하자. 복음 공동체로서 당당하게 서구문화를 담아내자. 참된 합리성(곧 진리) 가운데로 그들을 인도할 소명을 불태우자. 머지않아 참된 합리성으로 이 땅을 다스리실 참된 분(True-man)이 오시리니,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을 철저히 살자. 우리의 가슴에는 진리가 새겨져 있고, 우리들 양손에는 진리가 쥐어져 있다.
저자 레슬리 뉴비긴 (Lesslie Newbigin)
WCC를 중심으로 한 에큐메니컬 운동의 지도자. 인도에서 35년 간 선교사로 사역하였고, 은퇴 후에는 서구 사회의 기독교 변증과 복음 전도에 힘쓰고 있다. 지은책으로 <현대 서구 문화와 기독교>(대한기독교서회), <선교신학개요>(한국신학연구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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