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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추천도서
피할 수 없는 전쟁
떡의 전쟁/정진호/홍성사/강도헌
인간 존재에 관한 질문 중에 ‘먹기 위해서 사는가?, 아니면, 살기 위해서 먹는가?’라는 말이 있다.
이 질문 속에는 풀리지 않는 인간의 고뇌와 갈등이 숨어 있다. 적어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비웃음과 조소를 지나 아예 무시해 버릴지도 모르겠다.
목사님들의 설교 중에서도 소유보다 존재의 중요성을 끝없이 피력하고 계시지만, 솔직히 나 자신도 그런 소리는 듣기 싫다. 이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존재가 중요하면, 무엇이 어떻게 존재가 중요하단 말인가? 그러면 소유는 또 무엇인가?
어쩌면 오늘날 교회안의 메시지는 두 부류의 청중들에게 그들의 마음에 위안을 주기 위해 궤변 아닌 궤변들로 가득 채워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첫째는 부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십자가를 뺀 영광과 번영의 메시지, 또 다른 한 부류인 가난하고 병들고 눌린 자들에게 그들의 억울함을 약간이나마 대리 만족시켜 주면서(몇몇 부자들의 비리들이나 잘못된 행위에 대한 비판),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능력을 강조하는 메시지들 말이다.
<<미국제 복음주의에 속지 말라>>라는 책의 저자 마이클 호튼은 “우리는 더 이상 죄인들(sinners)이 아닌 구도자들(seekers)이 되어 버렸다.”라고 말했다. 호튼은 직설적으로 “십자가 없는 목회와 심판이 없는 하나님 나라 안으로 진노하지 않는 하나님이 죄 없는 인간들(구도자 : 진리를 찾는 자)을 불러들이시고, 그들에게 약간이라도 위해가 되는 거슬리는 모든 것을 제거해 버렸다.”라고 표현한다.
오늘날 교회가 왜 이렇게 심한 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이런 심한 소리 앞에서 우리는 떳떳하게 ‘우리는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말할 수 없다면 우리 모두는 죄인인 것이 분명하다. 또한 우리는 신령한 영적 존재가 아니라 떡을 먹여야 하는 육체적 인간임을 인정해야 한다. 소위 신령한 영성을 지닌 사람인양, 마치 경건주의 후예 인양 혼자 거룩한 척, 성령은 혼자서 다 받은 것 같이, 하나님의 신령한 세계를 혼자 다 알고 있다는 식의 거들먹거리는 일은 더더욱 없어야 할 것이다. 그 누구도 인간은 인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천사가 타락하여 인간이 될 수 없듯이 인간이 성화하여 천사가 될 수 없는 이것이 본서의 전제이다.
위의 사실을 통해 볼 때 교회를 다니는 사람도, 목회자도, 아니 교회 자체도 떡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서에서도 밝히듯이 떡은 생명의 존재 양식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에덴 동산에서부터 계시록의 새 예루살렘까지 인간은 먹어야 하는 존재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물론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인간은 먹어야 사는 존재로 창조되었으며, 은밀히 말해 그 먹을 것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본서는 13덩이의 떡과 떡고물로 만들어진 책이다. 책 제목을 보면서 ‘기독교 세계관에 관한 책이거니’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가 책 표지의 소갯글을 보면서 ‘간증 책인가?’라고 생각하면서 본서를 펴는 것을 잠시 미루어 왔다. 그러다가 정확하게 5일전에 본서를 펴게 되었다. 본서를 쭉 읽어가면서 네 가지를 놀랐다. 그 첫째는 목회자가 아닌 분이 이렇게 깊이 있는 성경 묵상에 놀랐고, 둘째로는 그 해박함에 놀랐고, 셋째로 그의 솔직한 고백적인 삶에 놀랐으며, 마지막으로 왜곡된 우리의 삶과 또 다른 세계의 처절한 삶을 보면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떡(돈, 경제, 소유, 먹고사는 것)에 관한 이야기는 어렵고 민감한 부분이다. 그러나 매우 중요하며, 놓쳐서는 안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본서가 말하는 떡에 관한 13가지의 관점은 마치 스펙트럼을 통과한 빛처럼 우리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성경이 말하고 있는 떡에 관한 아름답고 영롱한 빛의 하모니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 하모니를 깨뜨리고 있는 우리의 탐욕과 어리석음이 숨김없이 드러난다. 그러나 잔잔한 삶의 파동 속에서 저자가 누렸던 맛있는 삶의 떡고물들이 우리의 영적 삶의 식욕을 돋우고 있다.
저자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떡의 전쟁>>이라는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그의 삶에는 비장함이 숨겨져 있다. 그 비장함이 어쩌면 흔들리고 있는 저자 자신의 마음에 용기와 확신을 주기 위해(저자는 넓은 길이 아닌 좁은 길을 택하였기에 격려해 주는 사람이 없음) 저자 스스로의 외롭고 처절한 포효는 아닌지?, 보통 사람이 아닌 저자도 자신이 철저한 인간임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본서는 간증 이상의 의미가 있는 책이다. 본서는 읽는 독자들에게 깨달음과 감동과 눈물을 함께 주고 있다.
이 시간도 우리는 ‘떡의 전쟁’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 전쟁이 우리 모두에게 피할 수 없는 전쟁이기 때문은 아닐까?
저자 정진호
서울대에서 재료공학을 전공하였고, 미국 MIT 대학에서 박사후과정(Post-Doc.)을 거쳤다. 포항산업과학연구원에 재직한 바 있으며, 포항공대 방문 교수, 한동대 객원 교수를 지냈다. 1990년 미국 코스타(KOSTA 해외유학생수양회)에서 중국으로 부르심을 받고 1994년부터 현재까지 연변과학기술대학에서 학생들을 섬기고 있다. 1996년부터 코스타 강사로 각국의 한국 유학생 또는 교포 청년들을 섬기는 한편 2004년부터 평양과학기술대학 설립 추진 본부장으로서 복음·통일·중국의 세 가지 화두를 가슴에 품고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통한 통일을 꿈꾸고 있다.
20여 편의 재료공학 관련 논문 이외에 소설 「아바」,「예수는 평신도였다」, 「치유의 꿈, 루카스 이야기」(이상 홍성사 간), 「공학에 관한 기독교적 이해」(CUP) 등의 저서를 펴냈다. 아내 최문선(연변과기대 교양학부 음악교수) 사이에 두 아들 의영, 문영이 있다.
인간 존재에 관한 질문 중에 ‘먹기 위해서 사는가?, 아니면, 살기 위해서 먹는가?’라는 말이 있다.
이 질문 속에는 풀리지 않는 인간의 고뇌와 갈등이 숨어 있다. 적어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비웃음과 조소를 지나 아예 무시해 버릴지도 모르겠다.
목사님들의 설교 중에서도 소유보다 존재의 중요성을 끝없이 피력하고 계시지만, 솔직히 나 자신도 그런 소리는 듣기 싫다. 이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존재가 중요하면, 무엇이 어떻게 존재가 중요하단 말인가? 그러면 소유는 또 무엇인가?
어쩌면 오늘날 교회안의 메시지는 두 부류의 청중들에게 그들의 마음에 위안을 주기 위해 궤변 아닌 궤변들로 가득 채워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첫째는 부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십자가를 뺀 영광과 번영의 메시지, 또 다른 한 부류인 가난하고 병들고 눌린 자들에게 그들의 억울함을 약간이나마 대리 만족시켜 주면서(몇몇 부자들의 비리들이나 잘못된 행위에 대한 비판),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능력을 강조하는 메시지들 말이다.
<<미국제 복음주의에 속지 말라>>라는 책의 저자 마이클 호튼은 “우리는 더 이상 죄인들(sinners)이 아닌 구도자들(seekers)이 되어 버렸다.”라고 말했다. 호튼은 직설적으로 “십자가 없는 목회와 심판이 없는 하나님 나라 안으로 진노하지 않는 하나님이 죄 없는 인간들(구도자 : 진리를 찾는 자)을 불러들이시고, 그들에게 약간이라도 위해가 되는 거슬리는 모든 것을 제거해 버렸다.”라고 표현한다.
오늘날 교회가 왜 이렇게 심한 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이런 심한 소리 앞에서 우리는 떳떳하게 ‘우리는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말할 수 없다면 우리 모두는 죄인인 것이 분명하다. 또한 우리는 신령한 영적 존재가 아니라 떡을 먹여야 하는 육체적 인간임을 인정해야 한다. 소위 신령한 영성을 지닌 사람인양, 마치 경건주의 후예 인양 혼자 거룩한 척, 성령은 혼자서 다 받은 것 같이, 하나님의 신령한 세계를 혼자 다 알고 있다는 식의 거들먹거리는 일은 더더욱 없어야 할 것이다. 그 누구도 인간은 인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천사가 타락하여 인간이 될 수 없듯이 인간이 성화하여 천사가 될 수 없는 이것이 본서의 전제이다.
위의 사실을 통해 볼 때 교회를 다니는 사람도, 목회자도, 아니 교회 자체도 떡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서에서도 밝히듯이 떡은 생명의 존재 양식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에덴 동산에서부터 계시록의 새 예루살렘까지 인간은 먹어야 하는 존재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물론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인간은 먹어야 사는 존재로 창조되었으며, 은밀히 말해 그 먹을 것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본서는 13덩이의 떡과 떡고물로 만들어진 책이다. 책 제목을 보면서 ‘기독교 세계관에 관한 책이거니’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가 책 표지의 소갯글을 보면서 ‘간증 책인가?’라고 생각하면서 본서를 펴는 것을 잠시 미루어 왔다. 그러다가 정확하게 5일전에 본서를 펴게 되었다. 본서를 쭉 읽어가면서 네 가지를 놀랐다. 그 첫째는 목회자가 아닌 분이 이렇게 깊이 있는 성경 묵상에 놀랐고, 둘째로는 그 해박함에 놀랐고, 셋째로 그의 솔직한 고백적인 삶에 놀랐으며, 마지막으로 왜곡된 우리의 삶과 또 다른 세계의 처절한 삶을 보면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떡(돈, 경제, 소유, 먹고사는 것)에 관한 이야기는 어렵고 민감한 부분이다. 그러나 매우 중요하며, 놓쳐서는 안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본서가 말하는 떡에 관한 13가지의 관점은 마치 스펙트럼을 통과한 빛처럼 우리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성경이 말하고 있는 떡에 관한 아름답고 영롱한 빛의 하모니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 하모니를 깨뜨리고 있는 우리의 탐욕과 어리석음이 숨김없이 드러난다. 그러나 잔잔한 삶의 파동 속에서 저자가 누렸던 맛있는 삶의 떡고물들이 우리의 영적 삶의 식욕을 돋우고 있다.
저자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떡의 전쟁>>이라는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그의 삶에는 비장함이 숨겨져 있다. 그 비장함이 어쩌면 흔들리고 있는 저자 자신의 마음에 용기와 확신을 주기 위해(저자는 넓은 길이 아닌 좁은 길을 택하였기에 격려해 주는 사람이 없음) 저자 스스로의 외롭고 처절한 포효는 아닌지?, 보통 사람이 아닌 저자도 자신이 철저한 인간임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본서는 간증 이상의 의미가 있는 책이다. 본서는 읽는 독자들에게 깨달음과 감동과 눈물을 함께 주고 있다.
이 시간도 우리는 ‘떡의 전쟁’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 전쟁이 우리 모두에게 피할 수 없는 전쟁이기 때문은 아닐까?
저자 정진호
서울대에서 재료공학을 전공하였고, 미국 MIT 대학에서 박사후과정(Post-Doc.)을 거쳤다. 포항산업과학연구원에 재직한 바 있으며, 포항공대 방문 교수, 한동대 객원 교수를 지냈다. 1990년 미국 코스타(KOSTA 해외유학생수양회)에서 중국으로 부르심을 받고 1994년부터 현재까지 연변과학기술대학에서 학생들을 섬기고 있다. 1996년부터 코스타 강사로 각국의 한국 유학생 또는 교포 청년들을 섬기는 한편 2004년부터 평양과학기술대학 설립 추진 본부장으로서 복음·통일·중국의 세 가지 화두를 가슴에 품고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통한 통일을 꿈꾸고 있다.
20여 편의 재료공학 관련 논문 이외에 소설 「아바」,「예수는 평신도였다」, 「치유의 꿈, 루카스 이야기」(이상 홍성사 간), 「공학에 관한 기독교적 이해」(CUP) 등의 저서를 펴냈다. 아내 최문선(연변과기대 교양학부 음악교수) 사이에 두 아들 의영, 문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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