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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추천도서

칼뱅주의 목사가 본 웨슬리 신학

정현욱 | 2019.10.22 23:48
칼뱅주의 목사가 본 웨슬리 신학 웨슬리안 실천교리/김민석/샘솟는기쁨/정현욱 편집인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는 장로교회 목사인 나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다. 교회사에 조금만 관심을 갖는다면 웨슬리가 조지 윗필드와 함께 영국 대각성 운동을 일으킨 주역이라는 것을 많이 들었을 것이다. 칼뱅주의 교리 때문에 조지 윗필드를 선호하는 사상이 한국교회 안에 잔존하지만 웨슬리를 빼 놓고 영국의 대각성 운동을 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종교개혁 이후 루터에 의해 시작된 종교개혁은 인간의 행위와 공로를 부정한 것으로 규정하고 터부시해왔다. 루터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칼뱅에 이르러 구원 이후 삶에 대한 질문이 일어났고, 결국 성화론에 집중하게 된다. 18세기 영국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영국교회는 영적으로 무능함을 넘어 죽어 있는 상태였고, 도덕은 땅에 떨어져 야만인이 되었다. 산업혁명이 가져온 결과는 무서웠다. 수공업자는 몰락과 사양의 길로 떨어졌고, 개인의 도덕성은 생존 경쟁과 물질주의에 함몰되어 상실되고 말았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했던가. 조지 윗필드와 웨슬리 형제는 혜성처럼 일어났고, 영국을 개혁해 나갔다. 조지 윗필드가 개인적으로 행동했다면, 웨슬리 형제는 조직적이었다. 무엇보다 땅에 떨어진 도덕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성화와 실천을 강조하게 된다. 칭의를 강조했던 윗필드와 실천을 강조한 웨슬리와의 긴장 관계는 죽을 때까지 이어진다. 두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어 나갈 필요가 있다. 필자는 저자가 제시한 일차 독자인 목회자, 신학생, 교회학교 교사, 그리고 웨슬리안 전통에 익숙한 교인’(19)의 관점에서 본서를 살펴볼 것이다. 장로교회(합동) 소속의 신학적 관점으로 비판적으로 읽기보다는 저자의 주장을 따라가는 것을 우선할 것이다. 성결 신학에 거의 접해 보지 못한 필자로서 본서는 웨슬리 신학의 정수를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배움의 기회로 삼고자 한다. 이제 저자의 주장을 따라 가보자.

 

Part1Part2로 나누었지만 Part2는 웨슬리의 두편의 논문을 번역해 붙인 것으로 부록에 가깝다. 저자의 논지는 Part1에 담았다. 모두 13장으로 나누어 웨슬리의 교리를 빼곡히 설명하고 해석한다.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3장까지는 서론부에 해당되며, ‘소명’ ‘교리의 필요성’ ‘신학 방법론을 다룬다. 4-13장까지는 웨슬리의 교리를 신론에서 종말론까지 다룬다. 웨슬리 신학의 정수는 케네스 J. 콜린스가 단권으로 출간하기도 한 성경적 구원의 길에 있다. 루터와 칼뱅으로 대표되는 종교개혁 신학에 익숙한 이들에게 웨슬리 신학은 익숙한듯하지만 몹시나 낯설다. 필자의 경우 선행은총이란 단어에서 루터가 그토록 싸웠던 중세의 공로사상과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 김민석 교수의 주장을 따라가 보자. 아마도 웨슬리 신학이 주는 맛을 느낄 수 있으리라.

 

우리는 아직 살아 있습니까?

 

18세기 부흥운동의 시작은 당연한 찰스 웨슬리다. 그러나 웨슬리 홀로 부흥운동을 주도하지는 않았다. 수많은 헌신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부흥은 철저히 하나님의 주도에 의해 시작되고 진행되지만 헌신된 사람들을 사용하신다. 18세기 부흥운동의 형태는 교회 밖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교회 밖에 있는 이들을 찾아 설교하기 시작한 것이다. 야외설교자들로 불리는 그들은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드렸다. 그러나 헌신의 대가는 너무나 컸다. ‘복음을 전하다 병으로, 낙마로, 테러로, 강도 상해’(24) 등으로 수많은 전도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 해 보았던 이들을 그해는 보지 못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통일찬송가 280생전에 우리가는 바로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원가사를 직역하면 이렇다.

 

우리가 아직 살아 있습니까? 그리고 서로 얼굴을 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에 예수께 영광과 감사를 돌립시다!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여기 충만한 구원으로 인도된 우리는 그 분 앞에서 예수를 찬양하기 위해 모여 있습니다.”(25)

 

쉽게 간과(看過)할 수 없는 이 이야기는 웨슬리신학이 갖는 독특성과 정체성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절대적 헌신과 실천적 신앙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하고 하나님 나라의 부흥을 꿈꾸었던 웨슬리안들의 마음을 담고 있다. 루터의 이신칭의 교리를 기반으로 하는 칼뱅주의 신학은 신론에 중심을 둔다. 츠빙글리 역시 신론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개혁주의 사상의 기저(基底)를 보여준다. 그러나 웨슬리 신학은 많은 부분은 개혁주의적 관점을 견지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이들의 결단과 헌신, 그리고 삶의 목적대로 살아가려는 성화에 집중한다. 어떻게 구원 받았는가?’보다는 구원 받은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에 골몰한다. 웨슬리 신학이 실천적 성향을 강하게 갖는 이유는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이백년을 넘긴 시대라는 것과 기독교 국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음에도 도덕적으로 심각한 퇴보가 일어난 사회적 현상과 맞물린다. 웨슬리 신학을 들여다볼 때 이러한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메소디스트의 설교자들의 소명은 개혁성결로 압축된다. 개혁은 국가 개혁과 교회 개혁으로 구분된다. 성결은 개인의 변화와 세상의 변혁’(27)의 수단이다. 성결의 개념은 칼뱅주의가 정의하는 바와 약간 다르다.

 

성서적 성결이란 다름 아닌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을 받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모든 피조물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온 땅에 성서적 성결이 전파된 상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실천을 통해 온 땅이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으로 충만해진 상태이다.”(28)

 

칼뱅주의 신학이 성결을 개인의 성화적 차원에 집중한다면, 웨슬리는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한다. 웨슬리안들이 사회적 차원의 헌신과 실천적 사랑을 강조한 이유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담겨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교리를 무시하고 실천에만 몰입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분명 실천적 성향이 강했지만 웨슬리 역시 교리를 중요하게 여겼다.

 

웨슬리의 신학과 교리의 중요성

 

웨슬리는 교리와 실천 사이에서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교리가 우상화 되거나, 교리 없는 삶의 맹목으로 떨어지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기독교 교리를 핵심 교리(fundamental doctrine)와 의견(opinion)’(39)으로 구분했다. 신학자보다는 운동가에 가까웠던 탓에 웨슬리는 핵심 교리를 명징한 표나 저술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의 저술 속에 전반적으로 나타난 핵심 교리는 원죄와 칭의, 마음과 삶의 성결 교리로 추측할 수 있다. 웨슬리는 칭의를 정적인 정의를 넘어 삶이라는 동적의 형태로 정의하고 싶어 했다. 즉 칭의가 마음과 삶의 성결로 나아가야 한다’(40)고 강조했다. 교리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삶의 기준’(41)이다. 또한 변증 기능’(42)훈련의 가이드라인’(43) 기능을 가진다.

 

웨슬리는 성경의 각 본문은 성경 전체와 상응하는 평이한 의미’(50)를 가지며,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인 구원 사역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할 때 구속의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함을 말한다. ‘삼위 하나님께서 성경적 진리를 체험하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과 거룩한 삶으로 인도하신다’(51)는 성경관은 교리와 삶을 놓치지 않으려는 웨슬리의 성향과 닮아 있다. 그렇다면, 웨슬리에게 있어서 이성은 어떤 대상일까? 저자는 웨슬리가 일반 이성을 이해를 위한 영혼이 능력이며 도구’(55)로 보았고,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하다’(56)라고 말했다고 한다.

 

첫 사람의 타락으로 인해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의 손상과 상실’(96)이 일어났다. 그 결과는 도덕 형상의 상실로 이어졌다. 두 번째 결과는 단절과 죽음’(96)이며, 세 번째 결과는 삼중 욕망으로 가득 찬 존재’(97)가 되었다. 삼중 욕망이란 육신의 소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말한다. 삼중 욕망은 치명적 질병이며, 삼중 욕망을 만족시키려는 노력은 이 세상에 대한 사랑’(97)으로 정의한다. 웨슬리는 인간의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것으로 보는 동시에 거듭남의 순간에 도덕적 형상이 본격적으로 회복되기 시작한다’(98)고 말한다. 웨슬리는 구원이 곧 도덕적 회복으로 나아간다고 강조한다.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에 중심에 도덕적 형상’(98)이 있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성경적 구원이란 무엇인가?

 

이제 웨슬리 신학의 핵심 중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성경적 구원의 길을 살펴보자. 칼뱅주의 신학과 현저하게 다르게 나타나는 부분이 바로 이곳이다. 웨슬리는 구원 이전에 선행 은총을 허락하심으로 다가오셨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콜린스의 주장을 인용하여 선행은총의 다섯 가지 유익을 이렇게 설명한다.(119-120)

 

선행은총으로 하나님에 관한 가장 기본적 지식을 얻게 된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라고 대답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선행 은총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어느 정도 자유 의지를 주신다.

 

선행은총을 통해 이 세상에 도덕법(하나님의 법)이 어느 정도 다시 주어졌다.

 

선행은총을 통해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초자연적 선물로 양심을 주셨다.

 

선행은총의 유익들을 잘 활용하면 인간과 사회의 사악함을 어느 정도 제약할 수 있다.

 

칼뱅주의 신학을 따르는 필자로서 가장 난해하고 모호한 부분이 바로 이곳이다. 웨슬리는 거듭나기 이전에 어느 정도의 이 가능한 것처럼 이야기 한다. 루터나 칼뱅의 경우는 거듭나기 이전에 이성과 지성의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을 향한 선의 개념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다만 중생 이전에도 보편은총의 개념으로 하나님에 관한 신지식이 아닌 자연적 지식과 일반적 도덕성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선행은총의 문제는 웨슬리와 윗필드의 가장 뜨거운 논쟁의 주제였던 하나님의 예정으로 확장될 수밖에 없다. 만약 선행은총의 개념이 인간의 자유의지의 문제로 연결된 경우 하나님의 예정은 논리적 모순을 갖게 되고 구원의 주도권이 하나님 미리 아심이 아닌 인간의 선택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웨슬리는 이중예정론을 부정한다. 이중예정론(Predestination)은 창세 이전의 하나님의 작정과 유기(버려둠)가 이미 결정되었다는 칼뱅주의 교리이다. 웨슬리는 이중예정론이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이 충돌할 뿐만 아니라 거룩한 사랑을 뒤로 밀어내는 경향이 있다’(128)고 본다. 또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책임성이 훼손되며, 인간의 어떠한 행위도 불필요하게 만들며, 성화와 설교의 필요성을 약화시키고, 결함이 있는 해석에 기초하며,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들이 결정론적 예정의 가르침에 파괴된다고 보았다. 저자는 토마스 오덴의 입을 빌려 이렇게 주장한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역사를 미리 아셨다. 따라서 세상이 시작되기 전의 영원부터 성자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시는 것을 결정하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에게 제안을 하나 하시기 위해서였다.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믿거나 믿지 않을 것을 선택할 수 있다. 그 선택의 결과로 영원한 생명을 받거나 혹은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된다.”(129-130)

 

오덴의 주장을 분석하면 웨슬리의 주장은 확연히 알미니안적이며, 에라스무스의 자유의지와 닮아 있다. 그런데 그들과 결정적인 차이를 갖는 것이 바로 선행은총이다. 저자는 타락 때문에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께 응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130), 선행은총을 통해 하나님께 응답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초대하셨지만 사람들의 응답 여부에 의해 구원받거나 멸망 받는 것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131)이라고 말한다. 이 부분은 칼뱅주의 5대 교리 중의 하나인 불가항력적 은혜와 대치(對峙)된다. 어떤 면에서 칼뱅주의 교리는 모순적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동시에 인간의 책임을 묻기 때문이다. 웨슬리는 이러한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최종결정을 인간의 손에 맡긴다.

 

저자는 웨슬리 신학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성경적 구원의 길’(9-11)에서 깊이 있게 다룬다. 선행은총은 하나님께 응답하기 위해 조건을 갖추는 것부터 성화의 모든 단계에서 역사한다. 선행은총은 양심을 일깨워 하나님을 인지하도록 도우며, 양심은 자유의지를 도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게 한다. 믿는 순간 그리스도의 의가 덧 입혀지고, 그리스도의 의는 우리 구원의 공로적 원인으로 작용한다.(151) 구원의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의 인간적 의(칭의)가 덧입혀진다. 덧입혀진 의는 다시 새겨짐(거듭남)’로 나아간다.

 

칭의는 용서, 용납, 화해를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 변화를 의미하는 반면에 신생은 그리스도를 닮으로 나아가게 하는 실제적 변화의 첫 시작, 즉 성화의 시작을 의미한다. 칭의는 관계의 변화인 반면에 신생은 실제적 변화이다.”(153)

 

신생, 즉 거듭남은 성화의 시작이며 성화로 들어가는 문’(155)이다. 웨슬리는 지속적인 믿음’(160)을 통해 신자 안에 남겨진 죄를 치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죄는 신자의 타락의 결과이며, 타락하지 않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자녀 됨을 끊임없이 점검받아야’(160) 할 필요성이 상존한다. 점검의 방법은 경건의 행위자비의 행위로 구분된다.(161) 주의 만찬, 예배, 금식, 기도, 성경 연구, 성경 묵상, 경건의 글 읽기, 찬송, 설교, 그리고 말씀 묵상 등과 같은 것이다. 자비의 행위는 긍휼을 베풀고, 나그네는 환대하는 것들을 말한다.

 

나가면서

 

교회사에 중요한 인물이었음에도 칼뱅주의 목회자였기에 웨슬리 읽기는 2차 문헌이나 조지 윗필드의 이야기 속에서 읽은 것 외에는 없었다. 기껏해야 <존 웨슬리의 일기>를 단편적으로 읽은 것뿐이었다. 김민석 교수의 저작물을 통해 접한 웨슬리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확실히 웨슬리는 신학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후대의 학자들이나 메소디스트들에 의해 체계화 시키려는 노력들이 있기는 했지만 웨슬리 신학이 이것이다라고 정의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이 책 역시, 필자의 오독이 아니라면 적지 않은 부분에서 모호하다. 아마도 칼뱅주의 신학에 익숙한 탓이기도 하고, 웨슬리 신학 자체가 갖는 실천신학적 측면 때문일 수도 있다. 두 번째는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책임을 다하려는 몸부림이 느껴진다. 적지 않은 부분에서 필자가 몸담고 있는 칼뱅주의 신학과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웨슬리 신학에는 장로교단이 잃어버린 성화의 갈망과 사회변혁에 대한 열정이 담겨있다. 지성적 믿음으로만 구원과 중생의 의미를 담으려는 이들에게 불편함이 느껴진다. 심각한 도덕의 타락과 실천 없는 종교적 타성에 안주해있던 영국 교회 안에 불을 지폈던 웨슬리 신학은 변혁을 요구하고 있고, 사랑의 실천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마이너스 성장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는 헌신과 사랑의 부재 탓은 아닐까? 주일학교가 무너지고 있다는 염려와 통계는 끊임없이 나오고 있지만, 주일학교를 위해 기도하고 재정을 투자하며 교사로 헌신하는 이들은 계속하여 줄고 있는 이유는 무엇을 말하는 걸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지으신 목적대로 살아가려는 몸부림으로 점철된 웨슬리의 생애는 교리는 있으나 실천을 상실한 현대교회에 던지는 도전이다.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거룩한 목적을 위해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도전 받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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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구원받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에 의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세상을 향해 일할 때, 감정적으로 행하시는 분도 아니며, 순간적인 느낌으로 행동하시는 분도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때, 창세 전부터 구원에 계획을 세우시고, 우리를 선택하시고, 그 선택함을 통해 우리가 구원받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을 우리가 알 때,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사랑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조영민 목사는 작년에 『하나님을 선택한 구약의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구약에 나오는 열 세 명의 사람에 대한 인물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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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랬다. 우리는 싱글에 관하여 많은 오해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독신의 삶은 고달픈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독신은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만 영위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독신은 가정을 이룬 자들보다 친밀감을 얻기 힘들 거라고 판단했고,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결혼이라는 전제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믿었다. 독신이 성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참거나 죄를 짓는 것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은가? 그래도 독신의 삶은 가정을 이룬 사람의 삶보다는 쉽고 편하지 않을까?영국의 차세대 기...
잘 쉬지 못하는 '이미 안식에 들어간 자'들의 필독서 잘 쉬지 못하는 '이미 안식에 들어간 자'들의 필독서
잘 쉰다는 것
애덤 마브리/김보람/좋은씨앗/조정의 편집인


복음은 안식을 약속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안식은 죄가 망친 인간의 삶에 어쩔 수 없이 요구되는 필요악이 아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죄 없는 세상을 바라보시며 ‘보시기에 심히 좋다’고 평가하셨다. 그리고 안식하셨다. 창조 사역에 지친 하나님에게 쉼이 필요했기 때문이 아니다. 만물이 하나님 안에서 온전히 하나님과 함께 안식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시고, 만물은 모든 생명과 온갖 좋은 은사를 내려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으로 ...
절대 물러서지 말고 복음을 위해 전진하라 절대 물러서지 말고 복음을 위해 전진하라
물러서지 마
데이비드 플랫/정성묵/두란노/조정의 편집인


충격이었다. <래디컬>의 저자이자 앨라배마주 브룩힐즈교회(2006-2014) 그리고 워싱턴 D. C. 맥린바이블교회(2014-) 담임목사이자 국제적인 복음 선교 센터 ‘래디컬’을 설립한 데이비드 플랫이 자신의 영적 위기가 래디컬의 성공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말한 것이. 하나님을 향해 획기적인 돌이킴과 철저한 헌신을 부르짖은 플랫 목사는 오히려 그 메시지에 전 세계가 환호하고 그 메시지를 듣기 위해 자신을 여기저기서 초청할 때,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친밀한 시간을 누리는 데 실패했다. 하나님을 얻기 위한 사역이 아니라 자신을 ...
시장에서 기도하는 영성을 가지기 위해 시장에서 기도하는 영성을 가지기 위해
수도회, 길을 묻다-제국의 가치에 저항하는 삶의 방식
최종원/비아토르/문양호 편집위원


  교회에 말하는 이들은 많다. 세련되고 현학적으로 말하는 이들도 많다. 기도회와 찬양도 많다. 단순하게 말하면 시끄럽고 조용할 시간이 없다. 하지만 그 시끄러움 속에 정작 깊이는 느껴지지 않고 마치 잎은 무성하긴 한데 열매는 보이지 않는 커다란 나무 같아 보일 때가 있다. 차라리 그 정도면 집안잔치이고 집안 일로 볼 수 있겠지만 그 나무가 온갖 해충들로 가득해 나무 주변에 사는 이들을 괴롭히듯 교회가 세상에 그런 모습일 때가 있는 듯싶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마치 과거의 불교처럼 산속에 ...
교리의 목적은 인격적 변화다 교리의 목적은 인격적 변화다
교리와 삶은 하나입니다: 삶을 바꾸는 12가지 기독교 핵심 교리
폴 트립/윤종석/디모데/조정의 편집인


건강한 신학은 반드시 실천을 목적으로 삼는다. 머리만 채워 교만하게 하는 지식은 쓸데없고, 사랑을 낳는 지식만이 영원한 가치를 갖는다. 유명한 사랑장에서 사도 바울이 ‘내가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라고 말한 것처럼(고전 13:2). 하지만, 조직신학만큼은 예외로 분류되어 왔다. 성경이 다루는 하나님, 예수님, 죄, 구원, 성령을 연구하고 분석하는 설명서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되어 왔다. 폴 트립의 <교리와 삶은 하나입니다>...
성경 문화와 풍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성경 문화와 풍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성경시대 사람들의 일상은 어땠을까
유재덕/브니엘/고경태 편집위원


서울신대 유재덕 교수는 기독교 역사와 성경 배경 그리고 인문학적 글쓰기 등 왕성한 학문 활동을 전개하는 연구자이다. 이번 유 교수는「성경시대 사람들의 일상은 어땠을까?」1, 2 합본으로 출판했다. 1, 2권으로 집필할 때에 150여 가지의 자료를 제시해서, 합본은 300여 가지 자료로 구성되었다. 성경배경에 관심있는 독자는 매우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유 교수는 이번 책에서 구약과 신약시대 사람들의 가정생활부터 교육, 여가, 손님 대접, 여행, 주거, 노동, 일상 등 성경을 읽을 때에...
보장된 관계 속에서 약속된 은혜를 풍성히 누리게 하는 기도 보장된 관계 속에서 약속된 은혜를 풍성히 누리게 하는 기도
응답이 보장된 기도: 하나님이 언제나 응답해주시는 7가지 기도원리
찰스 스펄전/서경의/터치북스/조정의 편집인


영국 메트로폴리탄 타버나클 침례교회의 목사, 찰스 해던 스펄전(1834-1892)은 기도보다는 설교로 잘 알려졌다. “설교의 황태자”라고 불리기까지 한다. 설교(예언)의 은사는 성령의 능력과 지혜가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을 칭송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지만, 정식 신학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수많은 회중 앞에서 누구보다도 하나님 말씀을 담대하고 강력하게 선포했던 사람 중 하나로 스펄전을 꼽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설교 비결에 관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이 묻고 연구했겠는가? 흥미롭게도 스펄전은 어떤 사람에게 그 비결을 직접 보여준 ...
‘예수님의 이야기’를 통해 본 탈교회 시대 속에서 한국교회가 가야할 길 ‘예수님의 이야기’를 통해 본 탈교회 시대 속에서 한국교회가 가야할 길
하나님의 나그네 된 교회들에게
김승환/비아토르/문양호 편집위원


미카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에서 주인공인 바스티안 발타자르 북스가 우연히 읽게 된 책의 내용 이야기와 교감을 이룬다는 것을 느끼다가 그 책속으로 뛰어들게 된다. 그런데 책 속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가기 위해 그 여정을 더하면 더할수록 점점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며 자신이 누군인지 조차 잃어버리게 된다. 이번에 읽은 <하나님의 나그네된 교회들에게>(김승환, 비타토르)는 바스티안의 모습과 고민처럼 이 세상을 나그네로서 살아가는 교회와 성도들의 정체성의 상실과 갈등의 문제를 현 시대의 대표적 신학자라 할수 있는 스텐리 하우어...
아직은 희망이 있기에... 아직은 희망이 있기에...
믿음을 묻는 딸에게, 아빠가
정한욱/정은문고/모중현 명예편집위원


교회와 목회자, 교인들의 잘못과 실수들이 쌓여, 한국의 기독교는 강압적이고 배타적이며 소통 불가능한 종교로 비치는 듯하다.기독교의 핵심인 사랑과 포용, 환대와 공감은 사라지고, 편견과 차별이 더욱 부각되는 종교 집단으로 보이는 것은 아닌지.질문할 수 없는 경직된 문화는 더욱 깊이 하나님을 경험하고 누릴 수 있는 길을 차단했다.무조건적 순종이 아름다운 미덕으로 여겨지고 다양한 의견은 묵살될 때가 많다.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소통은 불가능하고 탐욕과 이데올로기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가장 큰 문제는 현실에 대한 객관적 인식보다 현상 ...
본회퍼의 그리스도인 삶 안내서 본회퍼의 그리스도인 삶 안내서
십자가에서 세상을 향하여: 본회퍼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삶
스티븐 니콜스/김광남/아바서원/조정의 편집인


에릭 메택시스는 디트리히 본회퍼 전기의 부제를 “목사, 순교자, 예언자, 스파이”라고 지었다. 독일의 악명 높은 히틀러 치하에서 독일 교회 성도에게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 무엇인지 가르치고 직접 본으로 보이고 글로 써서 강력하게 촉구했던 본회퍼에게 ‘스파이’라는 오명(?)이 남은 이유는 무엇일까? 발키리 작전으로 알려진 히틀러 암살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 본회퍼는 그 일에 가담한 이름들 사이에 언급되어 투옥되었고 결국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 실제로 본회퍼가 스파이 활동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스파이는 그의 가...
보내심을 받은 자들 보내심을 받은 자들
열두 제자 이야기
이진경/kmc/채천석 발행인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예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열두 제자들이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 과연 어떠한 삶을 살았을까 하는 궁금증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본서는 사도들의 삶에 대해 저자가 그의 상상력을 발휘하면서도 최대한 객관적으로 조명함으로써 독자들의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주고 있다.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을 소개하는 각 장의 전반부는 서신과 회고록 형식을 빌려 그들의 삶을 조명하고 있고, 후반부는 제자들의 삶에서 특징적인 한두 가지 사실에 초점을 맞추면서 저자가 가진 학문적인 소양을 바탕으로 그것을 뒷받침하는 형태로 그들의 삶을 추적한...
성령께서 전도하시는 원리를 알자 성령께서 전도하시는 원리를 알자
구원 프로세스
김홍만/생명의말씀사/이종수 편집고문


목회자의 주요 임무는 영혼을 구령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목자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영혼 구령하는 일에 최우선권을 두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고 말씀하셨고, 이어서 죽은 영혼들을 다시 살리는 것을 아버지와 자신의 일로 언급하셨다. 그러므로 “죽은 영혼을 살리는 일”, 이것은 그야말로 지상에서 최고의 영예로운 사역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이처럼 급박하고도 중차대한 영혼 구령보다는 매주일 설교를 준비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으로 목회자의 주요 ...
영혼을 깨우는 선지자적 외침, "하나님만 바라라" 영혼을 깨우는 선지자적 외침, "하나님만 바라라"
하나님을 갈망하다
A. W. 토저/이용복/규장/조정의 편집인


<하나님을 갈망하다>는 규장에서 출간한 A. W. 토저의 마이티 시리즈(Mighty Series) 33번째 작품으로, <예배인가, 쇼인가!>를 시작으로 <하나님을 갈망하다>까지 총 33권의 책을 통해 토저가 외쳤던 뜨겁고 강력한(mighty) 메시지를 이 시대 말씀과 성령으로 개혁되어야 할 필요성이 분명한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목표를 지향한다. 영문판을 편집한 제임스 스나이더의 말에 따르면, <하나님을 갈망하다>는 무명이었던 토저를 알려지게 하고, 시대의 영적 지도자로 드러나게 만든 1...
사역자가 지켜야 할 사역하는 마음 사역자가 지켜야 할 사역하는 마음
사역하는 마음
마이클 리브스/송동민/복있는사람/조정의 편집인


사역자의 마음이 가장 잘 드러나는 성경 구절 중 하나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권면하는 내용일 것이다. 마이클 리브스는 이 본문에서 많은 사역자가 놓칠 수 있는 당부에 주목하는데, 바로 “여러분은 자신과 온 양떼를 잘 살피라”에서 ‘자신을 잘 살피라’는 첫 번째 권면이다. 20년 이상 선교 사역에 힘쓴 네팔 선교사가 선교사의 자기 돌봄(self-care)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한 적이 있다. 맡겨진 주님의 양들을 돌보는 일에 모든 시간과 물질과 정신과 에너지를 다 쏟다 보면 정작 자신을 돌볼 시간이 없어 우울증이나 자만...
성경은 사회정의를 정의라 말하지 않는다 성경은 사회정의를 정의라 말하지 않는다
사회정의는 성경적 정의인가
스콧 D. 알렌/조평세/개혁된실천사/조정의 편집인


사회 정의를 다루는 기독교 서적이 매우 드물다. 복음주의적인 관점에서 성경을 원칙으로 사회 정의 운동을 비판한 책은 올해 11월에 개혁된실천사에서 출간된 <사회 정의에 대한 기독교인의 12가지 질문>이 유일하다(타데우스 윌리암스). 같은 출판사에서 한 달 후 <사회정의는 성경적 정의인가>라는 책을 내준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스콧 알렌). 한국 기독교 안에서 이렇게 집약적으로 연구하고 저술한 사회 정의 비판 자료가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이다. 스콧 D. 알렌은 DNA(Disciple Nations Allia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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