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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행복하다!
존재의 이유/자끄 엘룰/박건택/규장/[이종수]
이 책은 자끄 엘룰의 40년 전도서 묵상의 결과이다.
저자는 자신이 학자도, 주석가도, 해석학자도, 신학자도 아님을 밝힌다. 그럼에도 이 책을 쓴 이유와 자격에 대해, 자신이 전도서를 반세기가 넘도록 읽고 묵상했으며, 전도서에 관해 많이 기도했다고 피력한다. 그리고 이 책을 쓴 방식은 일반적인 글쓰기와는 달리, 초안을 잡고 요점을 잡는 등의 준비절차 없이, 오직 본문과의 일대일 만남을 고수하면서 힘겹지만 꾸준하게 히브리어 텍스트를 읽었으며, 아홉 개의 번역본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일까? 이 책은 초반부터 예리한 통찰력으로 번쩍이면서도, 때로는 논리적 미궁에 한없이 빠져들어간다. 읽는 독자로 하여금 말의 진위를 파악할수없을 만큼 혼돈에서 방황하도록 하기도 한다. 저자는 ‘전도서는 끊임없이 자가당착에 빠진다.’고 말하면서도, ‘전도자(코헬레트)는 생명체와 존재와 사회의 내부에 파고들어 인간의 이해할 수 없는 집요한 모순의 난처함을 절대적으로 온전히 드러나게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책을 이끌어가는 노선 가운데 하나는 정확히 집요한 모순’이라고 말하면서, 바로 인간 자체가 모순적 존재임을 밝힌다.
저자는 우리가 전도서나 또는 이 책을 읽어가는 과정에서 결론들을 고정시키지 말고 맥락을 묵상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맥락이야말로 전도서의 주요 구성요소라고 말한다. 이러한 맥락 읽기가 전도서를 여는 열쇠임을 알았다면, 코헬레트의 진술 속의 모순들이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코헬레트는 말한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따라서 인간사에 진보도 발전도 없다. 권력도 헛되다. 돈도 헛되다. 노동도 헛되다. 행복도 헛되다. 선도 헛되다. 지혜도 헛되다. ‘나’ 자신도 헛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로힘, 곧 인격적인 창조주 하나님이 등장하면서 모든 것이 바뀐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아담이 ‘어떤 신적 존재가 되기보다는 정신을 잃어버림으로써 퇴행했기에’, 모든 것이 헛되게 되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 곧 구속을 통해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는 자에겐 모든 것이 의미있게 된다. 따라서 저자는 ‘선물에 대한 주장을 통해 코헬레트는 우리로 하여금 간접적으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유롭게 주시는 구원을 생각하게 한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헛된 인간이 모든 것이 의미있는 인간이 되는 순간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만일 인간의 삶이 온통 하나님 경외와 말씀 청취에 있다면 이러한 삶은 분명 심판으로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여기서 심판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한다. 즉 여기서 심판이란 즐거움의 날개를 자르기 위함이 아니라 반대로 즐거움의 의미와 깊이와 지속을 주기 위함이라고 한다. 인간은 심판되지 않는다. 심판받는 것은 그의 삶이다. 심판의 대상은 그가 전념한 업적, 그가 자신의 삶이라고 믿었던 업적임을 지적한다. 사실 하나님의 심판이 우리의 몫이 아닌 이유는 바로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담당하신 몫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행복하다. 저자의 말처럼 이 경외 자체가 하나님의 임재이고, 그것을 경험하는 자에게 주님의 임재를 확인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코헬레트는 아직 모든 가능성이 우리 앞에 열려 있는 때, 저자의 말처럼 ‘아직 유동적인 상황’의 때에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에 돌아오도록 권고한다. 인간은 하나님 밖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하나의 호흡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코헬레트는 모든 것을 비판했으나 전도서의 독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규례로 돌려보내면서 전 성경 읽기로, 특히 모세오경으로 돌아가도록 한다. 그리고 모세오경, 곧 토라는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만 보호되는 기쁨을 명하기 때문에, 코헬레트는 마지막으로 희락을 칭송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도서를 하나님으로 만족하며 누리는 기쁨의 책, 하나님의 절대적 왕권의 책,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가 하나님의 백성에겐 기쁨이 되는 책으로 귀결되는 것을 보게 된다. 전도서는 과연 어떠한 책인가!
이 책은 전도서에 대한 놀라운 통찰들을 풍성히 담고 있지만, 때론 저자의 논조를 따라 잡기 어렵기 때문에, 좀 지루한 느낌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진리의 편린들을 주울 때, 그 찰나적인 기쁨은 영원으로 이어질만한 기쁨이다. 요즘 가벼운 책들이 서가들을 채우는 이때에, 그래서 우리 영혼이 풍성히 채워지지 않아 무언가 부족함을 느끼는 이때에, 이런 책을 붙들고 씨름할만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저자 자끄 엘룰 (Jacques Ellul)
1912년 프랑스 보르도에서 태어났다. 1937년 스페인 내전에 참여했고, 1940-1944년 반나치 레지스탕스 운동에 가담했으며, 2차대전 종전 후 2년 동안 정치에 참여했다. 프랑스 보르도대학의 법학과 사회학 교수로 오래 봉직하다가 1980년 은퇴했다. 1994년 세상을 떠났다.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책으로 <요한계시록 주석>(한들 역간), <도시의 의미>(그리심 역간), <뒤틀려진 기독교>,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이상 대장간 역간) 등이 있다.
이 책은 자끄 엘룰의 40년 전도서 묵상의 결과이다.
저자는 자신이 학자도, 주석가도, 해석학자도, 신학자도 아님을 밝힌다. 그럼에도 이 책을 쓴 이유와 자격에 대해, 자신이 전도서를 반세기가 넘도록 읽고 묵상했으며, 전도서에 관해 많이 기도했다고 피력한다. 그리고 이 책을 쓴 방식은 일반적인 글쓰기와는 달리, 초안을 잡고 요점을 잡는 등의 준비절차 없이, 오직 본문과의 일대일 만남을 고수하면서 힘겹지만 꾸준하게 히브리어 텍스트를 읽었으며, 아홉 개의 번역본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일까? 이 책은 초반부터 예리한 통찰력으로 번쩍이면서도, 때로는 논리적 미궁에 한없이 빠져들어간다. 읽는 독자로 하여금 말의 진위를 파악할수없을 만큼 혼돈에서 방황하도록 하기도 한다. 저자는 ‘전도서는 끊임없이 자가당착에 빠진다.’고 말하면서도, ‘전도자(코헬레트)는 생명체와 존재와 사회의 내부에 파고들어 인간의 이해할 수 없는 집요한 모순의 난처함을 절대적으로 온전히 드러나게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책을 이끌어가는 노선 가운데 하나는 정확히 집요한 모순’이라고 말하면서, 바로 인간 자체가 모순적 존재임을 밝힌다.
저자는 우리가 전도서나 또는 이 책을 읽어가는 과정에서 결론들을 고정시키지 말고 맥락을 묵상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맥락이야말로 전도서의 주요 구성요소라고 말한다. 이러한 맥락 읽기가 전도서를 여는 열쇠임을 알았다면, 코헬레트의 진술 속의 모순들이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코헬레트는 말한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따라서 인간사에 진보도 발전도 없다. 권력도 헛되다. 돈도 헛되다. 노동도 헛되다. 행복도 헛되다. 선도 헛되다. 지혜도 헛되다. ‘나’ 자신도 헛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로힘, 곧 인격적인 창조주 하나님이 등장하면서 모든 것이 바뀐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아담이 ‘어떤 신적 존재가 되기보다는 정신을 잃어버림으로써 퇴행했기에’, 모든 것이 헛되게 되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 곧 구속을 통해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는 자에겐 모든 것이 의미있게 된다. 따라서 저자는 ‘선물에 대한 주장을 통해 코헬레트는 우리로 하여금 간접적으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유롭게 주시는 구원을 생각하게 한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헛된 인간이 모든 것이 의미있는 인간이 되는 순간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만일 인간의 삶이 온통 하나님 경외와 말씀 청취에 있다면 이러한 삶은 분명 심판으로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여기서 심판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한다. 즉 여기서 심판이란 즐거움의 날개를 자르기 위함이 아니라 반대로 즐거움의 의미와 깊이와 지속을 주기 위함이라고 한다. 인간은 심판되지 않는다. 심판받는 것은 그의 삶이다. 심판의 대상은 그가 전념한 업적, 그가 자신의 삶이라고 믿었던 업적임을 지적한다. 사실 하나님의 심판이 우리의 몫이 아닌 이유는 바로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담당하신 몫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행복하다. 저자의 말처럼 이 경외 자체가 하나님의 임재이고, 그것을 경험하는 자에게 주님의 임재를 확인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코헬레트는 아직 모든 가능성이 우리 앞에 열려 있는 때, 저자의 말처럼 ‘아직 유동적인 상황’의 때에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에 돌아오도록 권고한다. 인간은 하나님 밖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하나의 호흡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코헬레트는 모든 것을 비판했으나 전도서의 독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규례로 돌려보내면서 전 성경 읽기로, 특히 모세오경으로 돌아가도록 한다. 그리고 모세오경, 곧 토라는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만 보호되는 기쁨을 명하기 때문에, 코헬레트는 마지막으로 희락을 칭송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도서를 하나님으로 만족하며 누리는 기쁨의 책, 하나님의 절대적 왕권의 책,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가 하나님의 백성에겐 기쁨이 되는 책으로 귀결되는 것을 보게 된다. 전도서는 과연 어떠한 책인가!
이 책은 전도서에 대한 놀라운 통찰들을 풍성히 담고 있지만, 때론 저자의 논조를 따라 잡기 어렵기 때문에, 좀 지루한 느낌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진리의 편린들을 주울 때, 그 찰나적인 기쁨은 영원으로 이어질만한 기쁨이다. 요즘 가벼운 책들이 서가들을 채우는 이때에, 그래서 우리 영혼이 풍성히 채워지지 않아 무언가 부족함을 느끼는 이때에, 이런 책을 붙들고 씨름할만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저자 자끄 엘룰 (Jacques Ellul)
1912년 프랑스 보르도에서 태어났다. 1937년 스페인 내전에 참여했고, 1940-1944년 반나치 레지스탕스 운동에 가담했으며, 2차대전 종전 후 2년 동안 정치에 참여했다. 프랑스 보르도대학의 법학과 사회학 교수로 오래 봉직하다가 1980년 은퇴했다. 1994년 세상을 떠났다.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책으로 <요한계시록 주석>(한들 역간), <도시의 의미>(그리심 역간), <뒤틀려진 기독교>,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이상 대장간 역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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