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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왜 부흥이 지체되는가
부흥의 세대여, 통곡하라/레오나드 레이븐힐/규장/[김재윤]
이 책을 신뢰할 수 있는 중요한 이유는 에이든 토저가 이 책을 추천했기 때문이다. 물론 저명한 사람들의 추천 가운데에도 우리가 신뢰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어떤 신학자의 경우에는 너무 많은 책들을 추천하여 신학의 정체성에 의문이 들 정도이기도 하다.
반면에 신실한 목회자(마틴 로이드죤스 같은)들이 추천한 책에 흥미와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저자인 레오나드 레이븐힐은 1907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그의 동지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에이든 토저는 레이븐힐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레이븐힐의 메시지를 들으면 그에 대한 맹렬할 적대자가 되든지 열렬한 지지자가 되든지 하지, 중립적인 태도는 취할 수 없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헨리 마틴의 예화는 우리들에게 큰 도전이 된다.
헨리 마틴(1781-1812. 인도에서 활동한 영국 선교사)의 동료 선교사들은 그의 영성을 부러워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그의 탁월함, 그의 깊은 경건, 그의 부지런함, 세상을 이기는 그의 능력, 영혼들을 향한 그의 사랑, 그의 아름다운 인격 그리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의 삶을 본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라고 말했다. 헨리 마틴이 인도에서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이런 장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내게 하나님의 지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아름답고 소중해 보인다. 하지만 세상의 지혜는 너무나 무미건조하고 짜증스러워 보인다"라고 말한 후, 다시 "은밀히 기도할 때, 특히 이교도들을 위해 기도할 때, 내게 능력과 열정이 부족하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내 안에 빛이 점점 차오르지만 그에 상응하는 뜨거움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도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라고 덧붙였다.
저자가 말해주는 데이비드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 1718-1747. 북아메이카에서 인디언들에게 선구적 선교 활동을 펼친 선교사)를 통한 놀라운 역사로 우리들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그의 뜨거운 기도생활의 불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기도와 전도의 불을 붙였고, 그들은 별처럼 빛나는 복음 전도자들이 되었다. 윌리엄 캐리(1761-1834. '영국 침례교 선교협회'의 창설자, 인도 선교사 및 교육자)가 브레이너드의 전기를 읽었을 때 그의 마음에도 불이 붙었다. 이렇게 붙은 불이 그를 인도의 산호빛 해안으로 몰고 갔다.
브레이너드를 본받은 사람은 또 있다. 그는 브레이너드의 일기를 읽고 기도에 힘쓴 로버트 머리 멕체인(Robert Murray McCheyne, 1813-1843. 스코틀랜드의 탁월한 설교자로서 눈물의 목회자로서 유명하다)이다. 브레이너드에 관한 책을 읽었을 때, 그는 즉시 인간의 영혼의 활동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 즉 기도의 매력에 완전히 사로잡히고 말았다.
브레이너드의 딸과 함께 그의 임종을 지킨 사람이 저 위대한 전도자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 미국의 신학자이자 철학자 및 복음전도자)였다. 후에 에드워즈는 "브레이너드가 내 집에서 숨을 거둔 것은, 내가 그의 기도 소리를 듣고 그의 경건한 모범을 보고 감동을 받도록 배려하신 하나님의 섭리이다. 내게 이런 놀라운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찬양한다"라고 썼다.
이 책을 통하여 우리는 저자의 부흥에 대한 불타는 심정을 잘 느낄 수가 있다. 번역상의 문제인지, 저자의 신학상의 문제인지 검토해 보아야 하겠으나, 몇몇 용어상(예를 들면 불세례, 성령의 불을 받아라 등의 표현들)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한번쯤 읽어볼만한 가치를 지닌 책이라 평가되어진다.
토저의 책에서도 자주 발견되듯이 현대의 허약하고 잘못된 기독교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 표현들은 적실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나치다 싶을(비판의 강도나 내용보다는 표현상의) 정도의 표현들도 보인다. 좀더 온유하고 잘 다음어진 용어로 표현되었다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감화력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114면에 저자에 의해 평가되어지고 있는 찰스 피니(1792-1875. 19세기 초 미국에서 신앙부을 운동을 이끈 중심인물)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에는 나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구프린스턴 신학교에서 무디의 사역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었으나, 챨스 피니의 복음전도 방식에는 분명한 반대와 우려를 표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피니는 훗날 자신의 회심자들이 자신에게 부끄러움이 되었다고 고백했으며, 그의 청중들을 초청하는 제도나, 회중들을 '불안의 좌석'에 앉게 만들었던 처사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러한 면에서 이안 머레이가 쓴 부흥과 부흥주의라는 책이 큰 도움이 될 것임에 틀림 없다.
'부흥의 세대여, 통곡하라'이 책을 걸러서 읽는다면 도움을 얻게 될 것이다.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저자에 의해 쓰여진 책은 아니지만 이 책의 일독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또한 읽을만한 책이 출간된 것은 크게 반가운 일이다. 수없이 쏟아지는 기독교계의 책들의 홍수 속에서도 오히려 해악을 주는 책들이 많은 실정을 감안한다면 말이다.
저자 레오나드 레이븐힐
이 시대의 마지막 선지자, 레오나드 레이븐힐(Leonard Ravenhill)은 1907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그는 영적 폭발력이 있는 복음전도자로서 열정적으로 사역했다. 그는 중년의 나이에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와서 좀더 폭넓게 그의 사역을 전개했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지닌 최강의 부흥 메신저”라는 평가를 들으며 사역했다.
레오나드 레이븐힐은 성경적 부흥의 원리들을 전혀 타협 없이 전한다. 오늘날의 교회가 신약의 교회와 너무 다르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레이븐힐은 격렬하고 철저하고 대담한 메시지를 던진다. 진정한 부흥을 촉구하는 강력한 그의 메시지는 자본주의와 세속주의에 절은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에게 엄청난 전율과 충격으로 다가갔다. 세상의 방법에 아첨하기를 거부하는 그의 메시지는 엘리야의 음성처럼, 세례 요한의 음성처럼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회개를 촉구한다.
그의 동지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A. W. 토저는 레이븐힐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레이븐힐의 메시지를 들으면 그에 대한 맹렬한 적대자가 되든지 열렬한 지지자가 되든지 하지, 중립적인 태도는 취할 수 없다.” 인간의 부흥이 아닌 하나님의 부흥을 위하여 우리의 죄를 통렬히 지적하는 그의 사자후(獅子吼)를 듣는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자신의 옷을 찢지 않고 마음을 찢으며 통회자복하게 될 것이다.
불꽃 부흥을 달라고 눈물로 주께 간구할 것이다. 그의 모든 저서들은 좌우에 날선 검(劍)과 같아서 독자들의 심령 골수를 찔러 쪼갤 것이다. 그는 1994년 그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주님의 품에 영원히 안겼다.
이 책을 신뢰할 수 있는 중요한 이유는 에이든 토저가 이 책을 추천했기 때문이다. 물론 저명한 사람들의 추천 가운데에도 우리가 신뢰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어떤 신학자의 경우에는 너무 많은 책들을 추천하여 신학의 정체성에 의문이 들 정도이기도 하다.
반면에 신실한 목회자(마틴 로이드죤스 같은)들이 추천한 책에 흥미와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저자인 레오나드 레이븐힐은 1907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그의 동지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에이든 토저는 레이븐힐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레이븐힐의 메시지를 들으면 그에 대한 맹렬할 적대자가 되든지 열렬한 지지자가 되든지 하지, 중립적인 태도는 취할 수 없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헨리 마틴의 예화는 우리들에게 큰 도전이 된다.
헨리 마틴(1781-1812. 인도에서 활동한 영국 선교사)의 동료 선교사들은 그의 영성을 부러워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그의 탁월함, 그의 깊은 경건, 그의 부지런함, 세상을 이기는 그의 능력, 영혼들을 향한 그의 사랑, 그의 아름다운 인격 그리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의 삶을 본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라고 말했다. 헨리 마틴이 인도에서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이런 장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내게 하나님의 지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아름답고 소중해 보인다. 하지만 세상의 지혜는 너무나 무미건조하고 짜증스러워 보인다"라고 말한 후, 다시 "은밀히 기도할 때, 특히 이교도들을 위해 기도할 때, 내게 능력과 열정이 부족하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내 안에 빛이 점점 차오르지만 그에 상응하는 뜨거움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도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라고 덧붙였다.
저자가 말해주는 데이비드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 1718-1747. 북아메이카에서 인디언들에게 선구적 선교 활동을 펼친 선교사)를 통한 놀라운 역사로 우리들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그의 뜨거운 기도생활의 불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기도와 전도의 불을 붙였고, 그들은 별처럼 빛나는 복음 전도자들이 되었다. 윌리엄 캐리(1761-1834. '영국 침례교 선교협회'의 창설자, 인도 선교사 및 교육자)가 브레이너드의 전기를 읽었을 때 그의 마음에도 불이 붙었다. 이렇게 붙은 불이 그를 인도의 산호빛 해안으로 몰고 갔다.
브레이너드를 본받은 사람은 또 있다. 그는 브레이너드의 일기를 읽고 기도에 힘쓴 로버트 머리 멕체인(Robert Murray McCheyne, 1813-1843. 스코틀랜드의 탁월한 설교자로서 눈물의 목회자로서 유명하다)이다. 브레이너드에 관한 책을 읽었을 때, 그는 즉시 인간의 영혼의 활동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 즉 기도의 매력에 완전히 사로잡히고 말았다.
브레이너드의 딸과 함께 그의 임종을 지킨 사람이 저 위대한 전도자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 미국의 신학자이자 철학자 및 복음전도자)였다. 후에 에드워즈는 "브레이너드가 내 집에서 숨을 거둔 것은, 내가 그의 기도 소리를 듣고 그의 경건한 모범을 보고 감동을 받도록 배려하신 하나님의 섭리이다. 내게 이런 놀라운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찬양한다"라고 썼다.
이 책을 통하여 우리는 저자의 부흥에 대한 불타는 심정을 잘 느낄 수가 있다. 번역상의 문제인지, 저자의 신학상의 문제인지 검토해 보아야 하겠으나, 몇몇 용어상(예를 들면 불세례, 성령의 불을 받아라 등의 표현들)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한번쯤 읽어볼만한 가치를 지닌 책이라 평가되어진다.
토저의 책에서도 자주 발견되듯이 현대의 허약하고 잘못된 기독교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 표현들은 적실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나치다 싶을(비판의 강도나 내용보다는 표현상의) 정도의 표현들도 보인다. 좀더 온유하고 잘 다음어진 용어로 표현되었다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감화력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114면에 저자에 의해 평가되어지고 있는 찰스 피니(1792-1875. 19세기 초 미국에서 신앙부을 운동을 이끈 중심인물)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에는 나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구프린스턴 신학교에서 무디의 사역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었으나, 챨스 피니의 복음전도 방식에는 분명한 반대와 우려를 표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피니는 훗날 자신의 회심자들이 자신에게 부끄러움이 되었다고 고백했으며, 그의 청중들을 초청하는 제도나, 회중들을 '불안의 좌석'에 앉게 만들었던 처사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러한 면에서 이안 머레이가 쓴 부흥과 부흥주의라는 책이 큰 도움이 될 것임에 틀림 없다.
'부흥의 세대여, 통곡하라'이 책을 걸러서 읽는다면 도움을 얻게 될 것이다.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저자에 의해 쓰여진 책은 아니지만 이 책의 일독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또한 읽을만한 책이 출간된 것은 크게 반가운 일이다. 수없이 쏟아지는 기독교계의 책들의 홍수 속에서도 오히려 해악을 주는 책들이 많은 실정을 감안한다면 말이다.
저자 레오나드 레이븐힐
이 시대의 마지막 선지자, 레오나드 레이븐힐(Leonard Ravenhill)은 1907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그는 영적 폭발력이 있는 복음전도자로서 열정적으로 사역했다. 그는 중년의 나이에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와서 좀더 폭넓게 그의 사역을 전개했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지닌 최강의 부흥 메신저”라는 평가를 들으며 사역했다.
레오나드 레이븐힐은 성경적 부흥의 원리들을 전혀 타협 없이 전한다. 오늘날의 교회가 신약의 교회와 너무 다르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레이븐힐은 격렬하고 철저하고 대담한 메시지를 던진다. 진정한 부흥을 촉구하는 강력한 그의 메시지는 자본주의와 세속주의에 절은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에게 엄청난 전율과 충격으로 다가갔다. 세상의 방법에 아첨하기를 거부하는 그의 메시지는 엘리야의 음성처럼, 세례 요한의 음성처럼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회개를 촉구한다.
그의 동지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A. W. 토저는 레이븐힐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레이븐힐의 메시지를 들으면 그에 대한 맹렬한 적대자가 되든지 열렬한 지지자가 되든지 하지, 중립적인 태도는 취할 수 없다.” 인간의 부흥이 아닌 하나님의 부흥을 위하여 우리의 죄를 통렬히 지적하는 그의 사자후(獅子吼)를 듣는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자신의 옷을 찢지 않고 마음을 찢으며 통회자복하게 될 것이다.
불꽃 부흥을 달라고 눈물로 주께 간구할 것이다. 그의 모든 저서들은 좌우에 날선 검(劍)과 같아서 독자들의 심령 골수를 찔러 쪼갤 것이다. 그는 1994년 그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주님의 품에 영원히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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