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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메이첸 신학사상의 진수
기독교와 자유주의/그레셈 메이첸/김길성/크리스챤출판사/[홍치모]
잔 그레샘 메이천(J. Gresham Machen)이 쓴 ‘기독교와 자유주의’는 1923년에 간행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 판을 거듭하면서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다. 이 책은 이미 기독교 보수 신학계에서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 책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번역한 이는 우리 교계의 원로이신 조동진 목사이다. 1955년 크리스챤헤럴드사에서 간행한 그 책은 1980년까지 3판이 나왔지만 그 후 절판된 채 오늘에 이르고 있었다. 최초의 번역자이신 조동진 목사는 이런 회고담을 전해준다.
1955년 메이천의 책을 번역하여 서점에 내 보냈을 때 개별적으로 팔리기는 했지만 한국 내에 있는 보수 신학교들 가운데서 그 책을 교재로 사용하기 위하여 다량으로 구입한 학교는 없었다. 그런데 상상치도 못했던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에서 교재로 사용하기 위하여 수십 권을 구입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이화대학교에서 교재로 사용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메이천이 학자로서 일약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저 유명한 ‘바울 종교의 기원’이었다. 그 책도 이미 고전의 반열에 들어있지만, 그 책이 간행되었을 때 신약성경의 고등비평을 받아들이고 있던 자유주의 신학자들도 메이천의 학문적 수준을 높이 평가하여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메이천의 ‘기독교와 자유주의’가 간행되기 3년 전 불행하게도 세계 4대 칼빈주의 신학자 중 세 사람이었던 프린스턴 신학교의 변증학 교수 워필드와 네덜란드의 아브라함 카이퍼와 그의 동료였던 조직 신학자 헤르만 바빙크가 거의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났다. 이 세 사람의 서거는 세계 칼빈주의 신학에 있어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때 프린스턴신학교 교수회에서는 워필드 교수의 후임자로서 메이천 교수를 추천하였다. 그 무렵에 이 책이 간행됨으로서 반응은 찬성파와 반대파로 갈라지게 되었다. 찬성파는 이의 없이 메이천이야말로 가장 적합한 워필드의 후임자라고 지지하였다. 반면에 반대파에서는 메이천이 비타협적이고 포용성이 없는 인물이라고 비난하였다. 이들 중에는 당신 프린스턴신학교의 스티븐슨 교장과 영어 성경을 가르치고 있던 어드만 교수가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당시 미국 안에 있던 모든 교파들 역시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서 신학적 교리적 논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특히 침례교회가 가장 극렬하였다. 이와 같은 신학논쟁의 와중에서 모든 교파의 내부에 있는 보수주의자들은 메이천을 이 싸움을 진두지휘하는 총사령관으로 추대하였던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메이천은 앞서 간행한 신학 저서에서 역사적 기독교의 진리를 대변하였기 때문이었다. 메이천 자신은 결코 근본주의자는 아니었지만 파도와 같이 교회 안으로 밀려들어오고 있던 자유주의 신학사상을 막기 위하여 근본주의자들과 공동전선을 펴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상황이었다.
메이천이나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믿고 또 알고 있는 기독교는 에누리 없는 속죄적 종교이다. 그런데 19세기 후번에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나오자 생물의 진화와 더불어 인간의 도덕도 진보한다는 사상이 기승을 부리게 되자 기독교의 속죄 신앙은 도전을 받게 되었다. 소위 자연주의에 입각한 종교 신앙은 정통적인 기독교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초신자들을 미혹하고 현혹시키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그렇기에 자유주의적 기독교 신앙은 일층 파괴적인 것이다.
메이천은 설교자로 자주 초정을 받았는데, 이 ‘기독교와 자유주의’는 1921년 11월 3일 미국의 체스터 노회 장로친목회의 초청을 받고 연설한 내용을 확대하여 간행한 것이다. 메이천은 처음 책으로 꾸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지만 노회에 속해있는 장로들이 간청하여 1921년 1월호 프린스턴 신학평론에 ‘자유주의 또는 기독교’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이 논문을 읽은 메이천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편지하기를 언젠가 이 논문이 한 권의 책으로 엮어서 출판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어머니의 소원은 곧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 책이 출판되던 1923년에서 1928년까지 5년 동안은 미국 북장로교회 안에서 보수와 진보 그리고 포용주의자(중간파)들 사이의 숨 막히는 싸움의 절정기였다. 1924년 진보파들이 ‘어번 선언’을 발표하는가 하면 뉴욕 제1장로교회의 포스딕 목사와 필라델피아에 있던 장로교회의 목사 매카트니와의 논쟁은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이 무렵 메이천의 ‘기독교와 자유주의’가 출판되자 마치 날개 도친 듯 팔려나갔다. 당시의 보수주의자들에게 메이천의 이 책은 용기를 북돋아주는 활력소의 역할을 하도고 남음이 있었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는 김길성 교수는 한국 신학계에서 메이천의 신학사상을 연구하고 있는 독보적 존재이다. 김 교수가 이번에 새로 번역한 ‘기독교와 자유주의’가 교리에 대한 관심이 희미해가고 있는 오늘의 한국 교회에 좋은 자극제가 되기를 기원해 마지않는다.
이 책의 내용과 목적에 대해서는 메이천 자신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고 서평을 끝맺고자 한다.
“현대의 자유주의 종교와 유서 깊은 기독교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본서에서 시도된다. 저자가 확신하는 바는 한편으로 자유주의와 다른 한편으로 유서 깊은 교회의 종교는 같은 종교의 두 가지 다른 종류가 아니라 전혀 다른 뿌리에서 생겨난 별개의 두 종교라는 것이다. 이런 확신은 하나님과 사람, 성경, 그리스도, 구원,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섬김에 대한 유서 깊은 기독교의 가르침과 근대 자유주의의 가르침을 간결하게 진술함으로써 뒷받침된다. 만약 그 유서 깊은 통념에서의 기독교를 정말로 포기할 수 있다면 적어도 권할 만한 것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포기하고 있는지를 그리고 그들이 그 자리에 무엇을 두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홍치모(총신대 명예교수, 크리스찬북뉴스편집고문)
기독신문제공
잔 그레샘 메이천(J. Gresham Machen)이 쓴 ‘기독교와 자유주의’는 1923년에 간행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 판을 거듭하면서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다. 이 책은 이미 기독교 보수 신학계에서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 책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번역한 이는 우리 교계의 원로이신 조동진 목사이다. 1955년 크리스챤헤럴드사에서 간행한 그 책은 1980년까지 3판이 나왔지만 그 후 절판된 채 오늘에 이르고 있었다. 최초의 번역자이신 조동진 목사는 이런 회고담을 전해준다.
1955년 메이천의 책을 번역하여 서점에 내 보냈을 때 개별적으로 팔리기는 했지만 한국 내에 있는 보수 신학교들 가운데서 그 책을 교재로 사용하기 위하여 다량으로 구입한 학교는 없었다. 그런데 상상치도 못했던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에서 교재로 사용하기 위하여 수십 권을 구입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이화대학교에서 교재로 사용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메이천이 학자로서 일약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저 유명한 ‘바울 종교의 기원’이었다. 그 책도 이미 고전의 반열에 들어있지만, 그 책이 간행되었을 때 신약성경의 고등비평을 받아들이고 있던 자유주의 신학자들도 메이천의 학문적 수준을 높이 평가하여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메이천의 ‘기독교와 자유주의’가 간행되기 3년 전 불행하게도 세계 4대 칼빈주의 신학자 중 세 사람이었던 프린스턴 신학교의 변증학 교수 워필드와 네덜란드의 아브라함 카이퍼와 그의 동료였던 조직 신학자 헤르만 바빙크가 거의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났다. 이 세 사람의 서거는 세계 칼빈주의 신학에 있어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때 프린스턴신학교 교수회에서는 워필드 교수의 후임자로서 메이천 교수를 추천하였다. 그 무렵에 이 책이 간행됨으로서 반응은 찬성파와 반대파로 갈라지게 되었다. 찬성파는 이의 없이 메이천이야말로 가장 적합한 워필드의 후임자라고 지지하였다. 반면에 반대파에서는 메이천이 비타협적이고 포용성이 없는 인물이라고 비난하였다. 이들 중에는 당신 프린스턴신학교의 스티븐슨 교장과 영어 성경을 가르치고 있던 어드만 교수가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당시 미국 안에 있던 모든 교파들 역시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서 신학적 교리적 논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특히 침례교회가 가장 극렬하였다. 이와 같은 신학논쟁의 와중에서 모든 교파의 내부에 있는 보수주의자들은 메이천을 이 싸움을 진두지휘하는 총사령관으로 추대하였던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메이천은 앞서 간행한 신학 저서에서 역사적 기독교의 진리를 대변하였기 때문이었다. 메이천 자신은 결코 근본주의자는 아니었지만 파도와 같이 교회 안으로 밀려들어오고 있던 자유주의 신학사상을 막기 위하여 근본주의자들과 공동전선을 펴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상황이었다.
메이천이나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믿고 또 알고 있는 기독교는 에누리 없는 속죄적 종교이다. 그런데 19세기 후번에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나오자 생물의 진화와 더불어 인간의 도덕도 진보한다는 사상이 기승을 부리게 되자 기독교의 속죄 신앙은 도전을 받게 되었다. 소위 자연주의에 입각한 종교 신앙은 정통적인 기독교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초신자들을 미혹하고 현혹시키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그렇기에 자유주의적 기독교 신앙은 일층 파괴적인 것이다.
메이천은 설교자로 자주 초정을 받았는데, 이 ‘기독교와 자유주의’는 1921년 11월 3일 미국의 체스터 노회 장로친목회의 초청을 받고 연설한 내용을 확대하여 간행한 것이다. 메이천은 처음 책으로 꾸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지만 노회에 속해있는 장로들이 간청하여 1921년 1월호 프린스턴 신학평론에 ‘자유주의 또는 기독교’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이 논문을 읽은 메이천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편지하기를 언젠가 이 논문이 한 권의 책으로 엮어서 출판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어머니의 소원은 곧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 책이 출판되던 1923년에서 1928년까지 5년 동안은 미국 북장로교회 안에서 보수와 진보 그리고 포용주의자(중간파)들 사이의 숨 막히는 싸움의 절정기였다. 1924년 진보파들이 ‘어번 선언’을 발표하는가 하면 뉴욕 제1장로교회의 포스딕 목사와 필라델피아에 있던 장로교회의 목사 매카트니와의 논쟁은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이 무렵 메이천의 ‘기독교와 자유주의’가 출판되자 마치 날개 도친 듯 팔려나갔다. 당시의 보수주의자들에게 메이천의 이 책은 용기를 북돋아주는 활력소의 역할을 하도고 남음이 있었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는 김길성 교수는 한국 신학계에서 메이천의 신학사상을 연구하고 있는 독보적 존재이다. 김 교수가 이번에 새로 번역한 ‘기독교와 자유주의’가 교리에 대한 관심이 희미해가고 있는 오늘의 한국 교회에 좋은 자극제가 되기를 기원해 마지않는다.
이 책의 내용과 목적에 대해서는 메이천 자신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고 서평을 끝맺고자 한다.
“현대의 자유주의 종교와 유서 깊은 기독교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본서에서 시도된다. 저자가 확신하는 바는 한편으로 자유주의와 다른 한편으로 유서 깊은 교회의 종교는 같은 종교의 두 가지 다른 종류가 아니라 전혀 다른 뿌리에서 생겨난 별개의 두 종교라는 것이다. 이런 확신은 하나님과 사람, 성경, 그리스도, 구원,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섬김에 대한 유서 깊은 기독교의 가르침과 근대 자유주의의 가르침을 간결하게 진술함으로써 뒷받침된다. 만약 그 유서 깊은 통념에서의 기독교를 정말로 포기할 수 있다면 적어도 권할 만한 것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포기하고 있는지를 그리고 그들이 그 자리에 무엇을 두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홍치모(총신대 명예교수, 크리스찬북뉴스편집고문)
기독신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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