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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신학공부를 위한 최적의 가이드

크리스찬북뉴스 | 2017.11.19 20:07
신학공부를 위한 최적의 가이드 신학공부/김진혁/예책/정현욱 편집위원

공부의 길은 많다. 그러나 어떤 길을 걷느냐에 따라 동일한 목적지라 할지라도 도착은 다르게 한다. 이십 대 후반, 늦게 신학의 길로 들어섰다. 수년을 하나님의 소명을 붙들고 고민했다. 어느 날, 허리가 심하게 아팠고 이대로 계속 주저하다간 더 큰 아픔이 찾아올지 모른다는 순진한 두려움이 소명의 확신으로 이어졌다. 학교에 입학하자마다 도서관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다. 성경은 몇 번 읽은 적이 있지만, 정확하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왜 읽어야 하는지, 성경은 어떤 책인지 등의 수많은 질문을 해결하고 싶은 열망으로 하루 종일 책을 쌓아 놓고 읽어 나갔다. 그렇게 칠 년을 보내고 나서 수천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떻게 신학을 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신학공부 책은 없을까?

 

수십 권의 조직 신학 책을 읽었는데 조직신학의 순서가 성경의 역사와 같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조직 신학은 사도신경의 순서를 기본으로 잡고 있다는 것을 안 것도 최근이다. 실수도 배움이고, 넘어짐도 학습이라 생각하면 뭐든 열심히 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좀 더 친절한 선배님의 가르침이 더해진다면 얼마다 더 훌륭한 신학 공부를 할 수 있을까? 신학 책도 중요하지만, ‘신학 공부책도 필요하다. 신학 책보다는 신학 공부 책이 더 우선인 것이 맞다. 종말론보다 신론이 앞서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은 그런 필자의 바람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신학이 무엇이고 신학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그려지는 신학공부의 가이드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안내서의 수준이 아니다. 신학의 핵심과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는 통찰력 있는 책이다. 필자는 이 책을 전체적으로 훑어 읽기 하고 간략하게 요약할 것이다. 마지막에 비평함으로 좀 더 건설적인 책 읽기를 살펴보자.

 

이 책은 단권이 아닌 총 3권으로 계획된 시리즈다. 첫 책이 출간되었으니 특별한 일이 없다면 모두 3권으로 출간될 것이다. 1(본서)에서는 성부 하나님을, 2권에서는 성자 하나님, 3권에서는 성령 하나님과 관련된 내용이 될 것이다. 1권을 읽으면서 2,3권은 어떻게 펼쳐 나갈지 무척 호기심을 작동한다. 앞으로 설명을 하겠지만 이 책은 약간 독특한 형식을 따르고 있다. 저자는 책의 목적에 대해 그리스도교 신앙이 던지는 중요한 질문에 대해 조직신학적으로 답을 찾아가는 형식’(13)이다. 저자의 의도대로 한다면 이 책은 실존적 대안으로써 신학 공부의 방향을 찾아갈 것이다. 글은 목회신학에 질문으로 푸는 조직신학이란 제목을 연재한 글이지만 원글과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새로운 책이라 봐야 할 것이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책 소개로 들어가 보자.

 

먼저 목차를 따라가 보자. 311장으로 나누었다. 1부에서는 신학의 정의와 자료란 제목으로 신학 공부에 대한 기초 담론으로 채웠다. 2부는 본격적인 신학 공부의 신학으로 신론을 다룬다. 마지막 3부는 하나님과 세계라는 제목으로 창조, 섭리, 신정론을 다룬다. 필자의 사견이지만 신정론은 최근 현대신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신정론은 신론의 한 부분으로 치부하기에는 범위가 너무 넓고 실존주의 영향을 받아 사유의 방향이 상당히 모호해졌다. 그러나 이 책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1부에 있으면 신학 공부에 대한 전반적인 틀과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1부 신학의 정의와 자료

 

1부는 3장으로 이루어진 신학 공부의 서론에 해당된다. 1장에서는 신학의 필요성을 논한다. 2장에서는 신학의 기반, 또는 방법론을 다룬다. 3장은 성경에 대해 다룬다. 1장으로 들어가 보자. 신학이란 무엇이며 왜 필요할까? 엄밀하게 신학 공부 없이도 신앙생활은 가능하다. 의학에 대해 몰라도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신학은 복잡한 어떤 체계나 철학적 사변이 아니다. 오히려 신학의 본질적 정의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고,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실천적 지식에 가깝다’(28)고 할 수 있다. 저자의 정의에 의하면 신학은 신()에 관한 포괄적 공부이기 때문에 총체적이라 할 수 있다. 넓은 의미에서 신학은 신앙생활의 전반적인 것을 말하고, 좁은 의미로 신학교에 들어가 공부하는 신학이 된다. 신학을 하면 신앙을 잃는다는 오해(31), 신학자마다 다른 주장을 하는 이유(35) 등에 답한다. 1장의 마지막 질문인 신학의 종류에 대한 글을 신학생이라면 반드시 읽고 머릿속에 담아 두어야 한다.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렇다(40).

 

철학적 신학: 변증학

역사적 신학: 성서주석학, 교회사, 교의학과 교회론

실천적 신학: 교회 봉사, 교회정치

 

그러나 최근의 구분이 현재 신학의 종류를 정의함에 옳은 듯하다. 현재는 성서신학, 역사신학, 조직신학, 실천신학, 철학적 신학으로 구분한다. 이 외에도 기독교 윤리학, 기독교 교육학, 선교학, 목회 상담학’(43) 등이 있다. 필자의 견해이긴 하지만 신학을 세 종류로 구분하는 것도 좋을 성싶다. 먼저는 성서를 공부하기 위한 전제나 조건으로서 철학과 교육을 공부하고, 그다음은 성서 자체를 다루는 성서학과 조직신학(교리)을 다루고, 마지막으로 응용 신학으로서 정치와 교육학, 상담학 등으로 구분하면 어떨까?

 

신학의 전제 : 철학, 교육, 언어, 역사

신학의 본론 : 성서학, 조직신학(교리), 교회학, 교회사

신학의 응용 : 실천신학, 교회 음악, 기독교 교육학, 기독교 상담학

 

본격적인 신학을 시작하는 목회자 후보생들이라면 이러한 신학의 특징과 방향들을 머릿속에 담고 자신이 전공하고, 집중할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준비하면 유익할 시간을 가질 수 있으리라 본다.

 

2장에서는 신학의 도구라 할 수 있는 책, 이성, 전통과의 상관성을 다룬다. 3장에서는 성경의 형성과 외경, 성경의 영감론 등을 다룬다. 필자의 큰 공감을 일으킨 부분은 3장 맺은 말이다. 저자는 공동체의 책으로서 성서의 재발견’(86)이란 제목으로 성서의 본래 의도인 듣는 말씀에 주의를 기울인다. 초대교회 성경은 한 사람이 읽고 나머지 교인들은 듣는 구조의 낭독용 말씀이었다. 이것은 현대의 홀로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나 개인 묵상 등과는 상당히 다른 개념으로 인식되었다는 것이다. 혼자 읽기는 공동체성을 잃게 하는 데도 한몫했고, ‘부적화 현상’(88)으로 인해 건전한 신학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그렇다면 최소한 성경을 읽을 때 혼자 읽는 것보다 봉독 하거나, 교독하여 눈이 아닌 귀로 읽는 성경을 만들어 간다면 어떨까?

 

2신론3하나님과 세계는 신론을 연구하는 다양한 관점을 소개한다. 2부 첫 장에서는 삼위일체에 대한 언급 한다. 현재 신론은 신학의 중요한 이슈다. 하나님에 대한 정의는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에게 역사하시는가의 문제와 직결된다. 비록 신학적 순서로는 옳지 않지만 3장을 읽고 2장을 읽는 것도 좋아 보인다. 3부는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 통치로서의 신정론을 다룬다. 세월호 사건 이후 신정론은 신학에 있어서 대단한 중요한 주제이다. 최근에 재판된 기타모리 가조의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이나 몰트만의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에 대한 책들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기존의 신정론이 한계를 보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신정론을 3장으로 세분화하여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다룬다. 필자는 신정론 세 번째 부분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우리가 고통당할 때 하나님도 괴로워하시는가?’라는 제목을 가진 이 부분은 기타모리 가조가 말했던 고통당하시는 하나님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라이프니츠에게서 시작된 신정론은 철학적 사변으로서 신에 가깝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감정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신정론의 기저에는 모든 것을 이성으로 분석하려는 근대정신이 존재한다. 저자는 이것을 신은 타자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 없는 자족적 존재라는 독특한 철학적 전제가 깔려있다’(248)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부동의 동자’(249)로 부른다. 이러한 서술의 문제는 신을 궁극적 원동자 개념으로 왜곡시키고 축소시킨다는데 있다. 즉 기독교가 말하는 전인격적 존재로서의 신은 아닌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슬퍼하고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인간적 모습으로 종종 표현한다. 신약의 예수님도 무리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신다. 즉 괴로워한다는 뜻이다. 저자는 이러한 성경의 표현을 하나님은 역사에 참여하심으로써 인간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시며, 심지어 그 아픔의 무게를 함께 지시는 분’(252)으로 소개한다. 문제는 하나님이 어떻게 아파하실 수 있는가이다. 저자는 예리하게 결국 삼위일체론 적이고 기독론적 시각에서 성서 읽어갈 때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253)고 말한다.

 

나가면서

 

한 마디로 전혀 새로운 책이다. 마치 이제 목회의 뒤안길로 돌아서는 원로 목사님과 신학을 이제 시작하려는 신학생들과의 대담 같은 책이다. 난해한 신학적 지식을 다루기 앞서 신학이 무엇이며, 신학의 종류와 방법들을 차근차근 알려 준다. 이 책은 앞으로 깊이 신학의 길을 가려는 신학도들에게 지도와 같다.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지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또한 스스로 신학을 공부하고 싶어 하는 교인들에게도 좋은 가이드가 될 것이다. 최근에 스스로 기독교인으로 자처하지만 교회에 나가지 않는 가나안 교인들이 백만을 넘어섰다고 한다. 초기의 가나안 교인들은 다른 교회를 옮겨 다니거나 몇몇이 모여 성경 공부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니 이제는 어느 정도 안착이 된 것인지 스스로 성경공부를 넘어 신학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적지 않은 가나안 교인이나 일반 교인들이 신학생들이 읽을 법한 신학 책들을 거침없이 읽어내고 있다. 신학생들의 전유물이었던 조직신학 책이나 기독교 철학과 기독교 교육학 서적들이 일반 교인들의 손에 들려지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신학 하고자 하는 일반 교인들에게도 멋진 책이라 할만하다. 공부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곳곳에서 출몰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이들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이십 년 전 나의 손에 이 책이 들려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라도 나와 고맙고, 너무나 늦게 나와 아쉬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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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소중한 일상보혈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며 주님의 보혈이 우리의 일상에 강같이 흐르는 느낌을 받는다. 주님의 죽으심과 십자가에 대한 설교도 아닌데 십자가의 의미가 선명하게 가슴에 새겨지고 부활과 승천에 대한 설교도 아닌데 소망과 확신에 찬 믿음이 생긴다. 중생의 경험을 하면 보는 눈이 달라지고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는데 중생에 대한 메시지도 아닌데 만물과 사람과 세계가 새롭게 보이게 한다. 누군가 자신의 삶을 간증과 신앙으로 풀어낸 글은 거의 읽지 않는데 이 책은 보면서 책장을 계속 넘기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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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참 좋다. 철학에 낯선 독자라도 뭔가 좋은 이야기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에른스트 블로흐와 위르겐 몰트만을 안다면 상당히 호감을 가질 것이다. 두 사람은 2차 자료에 의거해 희미하게 더듬는 필자와 같은 독자들에게도 이 책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몰트만의 경우는 몇 권의 책을 읽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파악이 되지만, 에른스트 블로흐의 경우는 굉장히 낯선 존재다. 수년 전에 블로흐의 <자연법과 인간의 존엄성>을 읽다가 중간쯤에 포기하고 말았다. 굳이 읽어야 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한 데다 익숙하지 않은 블로흐를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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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참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교회 또는 책에서 두 주제를 같이 다루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일까요? 자신의 적이 누군지조차 몰라 엉뚱한 것과 싸우고 있는 교회의 실상 앞에 저자는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자본주의를 향한 싸움을 외치고 있습니다. 죄악이 넘치는 이 시대에 왠 자본주의를 운운하는지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우선 저자가 왜 이 주제를 꺼내드는지 자본주의에 대한 설명과 정의를 들어보겠습니다. 저자는 자본주의를 "돈이 주도하는 사회, 자본주의적인 것은 어느 영역에서든 돈이 주도적인 역할을...
교회는 가정을 회복하고, 가정은 사회와 교회를 세운다 교회는 가정을 회복하고, 가정은 사회와 교회를 세운다
교회를 세우는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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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가정을 회복하고, 가정은 사회와 교회를 세운다 “가정예배모범”(1647년)은 스코틀랜드 교회 에든버러 총회(10회)에서 결정했다(15쪽). 우리는 가정예배의 중요성을 말하지만 그 기원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장대선 목사의 <교회를 세우는 가정 예배>는 그리스도인의 행동인 가정 예배의 근원에 대해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 이전에 가정예배가 있었을까? 1세기 베뢰아에서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중세로마교회는 ‘복음선포(확실한 신앙)’가 아닌 ‘미사(맹목적 신앙)’로 종교 생활을 구성시켰다. 루터와 칼빈...
영적 전투가 열어내는 현실 너머의 현실 영적 전투가 열어내는 현실 너머의 현실
악마 다시 살려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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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다시 살려내기–영적 전투가 열어내는 현실 너머의 현실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 저는 하나님이 아니면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신비한 경험들을 몇 번 했습니다. 예언을 받아 본 적도 있었고, 신학교 졸업식 때 하나님께서 나를 콕 집어서 상을 주셨던 적도 있었습니다. 이런 얘기들을 자세하게 할 필요도 없이, 저는 소위 탈주술화(disenchanted)된 그리스도인은 아닙니다. 저는 복음주의 신앙을 받아들였고, 이제까지 쭈욱 그 신앙 속에서 살아온 사람인데, 복음주의 신앙은 탈주술화된 신앙이 아니기 ...
루터에 대한 변증 루터에 대한 변증
루터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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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에 대한 변증  고등학교를 다닐 즈음에 한국개신교회는 개인성경공부와 소그룹 성경공부 유행이 일어났었다. 수많은 성경공부 교재들이 쏟아져 나왔고, 당시 한국교회는 막 일어나기 시작한 지적인 호기심에 맞추어 다양한 경건서적들도 출판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당시 모든 교회와 성도들은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줄 알고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에 매진하였다(한국보수개신교회의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에 대해서는 차후에 평가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또한 창조과학과 같은 성경과 기독교에 ...
1999년 4월 20일, 미국 고등학교 무차별 총기난사사건 그 이후 1999년 4월 20일, 미국 고등학교 무차별 총기난사사건 그 이후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홍한별/반비/옥은숙


1999년 4월 20일, 미국 고등학교 무차별 총기난사사건 그 이후이 책은 제목 때문에 부담스러워서 최대한 늦추고 미루어 읽은 책이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용기도 없고 내용이 너무 무거울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다 읽고 났을 땐 이 책을 추천해준 동료가 고맙게 느껴졌다. 편한 책읽기보다 불편한 책읽기가 언제나 우리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이 책의 영어 부제는 A mother’s reckoning, living in the aftermath of tragedy이다. 비극의 여파와 후유증을 살아내야 하는 한 가해자...
구약의 여호와, 고대 근동의 신들과 논쟁하다 구약의 여호와, 고대 근동의 신들과 논쟁하다
고대 근동 신들과의 논쟁
존 D. 커리드 /이옥용/새물결플러스/정현욱 편집위원


제목을 오독(誤讀)했다. ‘고대 근동 신들과의 논쟁’에서 ‘논쟁’을 ‘전쟁’으로 읽었다. 필자의 뇌리 속에 남은 신화의 세계는 ‘논쟁’이 아닌 ‘전쟁’이기 때문이다. 표지 가장 윗부분에 적힌 ‘Against the Gods’도 논쟁보다는 ‘전쟁’의 의미가 강하게 읽힌다. 고대 전쟁은 나라와 민족들 간의 전쟁이 아니라 신들과의 전쟁이기 때문에다. 2011년 알렙에서 출간된 김원익의 <신들의 전쟁>을 보더라도, 고대 신화는 대부분 전쟁이야기들이 아니던가. 수년 전에 화제가 된 <신들의 전쟁>이나 <타이탄>...
로이드존스처럼 성경을 설교하자 로이드존스처럼 성경을 설교하자
마틴 로이드존스의 설교를 만나다
스티븐 로슨/황을호/생명의말씀사/정현욱 편집위원


로이드 존스, 그 이름만으로 충분한 사람이 아닐까? 아마도 청교도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로이드 존스의 이름은 이미 전설이라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로이드존스를 좋아하고 존경한다. 로이드존스는 특이하면서도 강력한 흡입력을 가진 설교자다. 이미 1981년 고인이 되었지만, 그의 설교는 여전히 살아 있고, 생동감이 있다. 로이드존스를 추종하는 사람이 어디 나뿐이었을까? Eric. J. Alexander는 로이드 존스를 살아생전에 이미 ‘기독교 세계 최고의 설교자’로 불렀다. 지금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로이드 존스의 설교를 사랑한다. 이 책...
성경, 비평에서 새롭게 읽기로 전환하기 성경, 비평에서 새롭게 읽기로 전환하기
성경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가?
데이빗 B. 가너/신호섭/세움북스


성경, 비평에서 새롭게 읽기로 전환하기성경 논쟁 시대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는 명제는 근대의 유물처럼 느껴진다. 이제 사람들은 성경을 한 권의 책으로, 한 권의 문학 작품으로 대하고 싶어 한다. 물론 그 관점이 ‘틀렸다’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그것으로 한정시키려는 저의(底意)다. 성경 논쟁은 칭만큼 뜨겁고, 교회론 만큼 예민하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시작되기도 전 성경은 고등 비평에 의해 난도질당했다. 성경의 무오성과 더불어 제기된 성경의 영감론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이성의 메스로 성경은 철저하게 해부되었다. 그러...
성경적 세계관으로 세상 읽기 성경적 세계관으로 세상 읽기
믿음은 세계관의 전쟁이다
최재호/힐링북스/정현욱 편집위원


성경적 세계관으로 세상 읽기 책을 읽는다는 것은 역사는 읽는 것이고, 타자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타자의 삶을 공유함은 곧 그 ‘사람의 삶을 사는 것’과 비슷합니다. 물론 직접 사는 것과 글로 읽는 것은 다를 것입니다. 한 권의 책은 타자의 것이기에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것과 같습니다. 비근(卑近)한 예로 친구를 생각해 봅시다. 아무리 친하다 해도 친구는 타자입니다. 목소리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삶을 해석하는 것도 다릅니다. 마음이 잘 맞는 친구라 할지라도 다른 점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물며 낯선 타자의...
종말론적 삶을 살아가는 거룩한 공동체 종말론적 삶을 살아가는 거룩한 공동체
유배된 교회
리 비치/김광남/새물결플러스/정현욱 편집위원


일단 제목부터 강하게 끌린다. 2001년에 마이클 호톤의 <세상에 포로 된 교회>(부흥과개혁사)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기회가 된다면 호튼의 책과 비치의 책을 비교하며 읽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가나안교회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라는 표지 문구가 ‘유배된 교회’만큼이나 강열하게 다가온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낯설다. 먼저 저자인 리 비치(Lee Beach)도 낯설고, ‘유배된 교회’라는 의미도 아직 낯설다. 서평을 위해 먼저 저자를 찾아보았다. 한글로 된 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영문으로 검색했다. 책의 원제는...
르네 지라르, 그는 구원자가 될 것인가? 르네 지라르, 그는 구원자가 될 것인가?
예수는 반신화다
정일권/새물결플러스/방영민 편집위원


르네 지라르, 그는 구원자가 될 것인가?  성경에서는 말한다. 말세에 나타나는 현상 중에 가장 선명한 것은 돈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더 이상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가 이 땅에서 사람의 영혼을 변화시키고 진실된 인격과 풍성한 삶을 위한 도구가 되지 못한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피조물에게는 흥망성쇠가 있는데 기독교에도 그러한 자연스런 원칙이 정해져 있는 것인가? 기독교는 이제 무능한 진리가 되어 역사의 뒷길로 사라져가는 것인가? 모든 종교는 자신의 교리와 가르침이 인류 보편...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정체성의 자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정체성의 자유
팀 켈러의 자기 망각의 자유
팀 켈러/10Publishing/김상일 편집위원


자기 망각의 자유  팀 켈러의 자기 망각의 자유(The Freedom of Self-Forgetfulness)는 아주 얇은 책입니다. 고린도전서 3:21-4:7에서 바울이 일갈하는 복음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의 관계, 그리고 그러한 정체성을 통해서 주어지는 자유에 대해서 아주 짧지만 강력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설교 원고를 옮겨놓은 것 같은 책이어서 읽기도 쉽고 짧은데다가, 그 내용은 굉장히 강력한 복음의 능력을 담고 있어서 효율로만 보면 짧은 시간에 최대의 독서 효과를 낼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
왜 신학이 필요한가? 왜 신학이 필요한가?
신학공부: 하나님과 세계
김진혁/예책/강도헌 편집위원


신학이 왜 필요할까?  가끔 목사님들 중에서도 ‘신학’과 ‘목회’는 다르다는 생각을 가지신 분들을 만나게 된다. 나 또한 과거에 그러한 생각을 잠시 가지고 있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과거에 신학의 불용(不用)을 주장(무용(無用)이 아니다)하던 나의 경우를 돌이켜 보면 ‘바른’ 목회 보다는 ‘빠른’ 목회에 집중하였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솔직히 나의 부목사 시절은 철저하게 ‘목회성공’에 집중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내목회의 성공이 곧 하나님의 성공이라는 당위적 믿음가운데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목회에 큰 도움이...
성화를 위한 거룩한 성경 읽기 성화를 위한 거룩한 성경 읽기
말씀 앞에 서는 용기
한주원/이레서원/정현욱 편집위원


성화를 위한 거룩한 성경 읽기 오래전, 교회를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의 이야기입니다. 부산에 주례동의 ㅈ교회 권사님이 운영하시는 하숙집에 이년 정도 머물렀습니다. 그 권사님은 언제나 성경을 읽으셨고, 전도에 열심인 분이었습니다. 매주 이틀 정도는 집 주변을 가가호호 방문하며 전도하셨습니다. 기존의 전도지 전도가 아닌 방문 전도에 가까웠습니다. 어느 날 권사님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정 선생도 같이 안 갈래?’ 호기심에 ‘네 그러죠’라고 대답해 버렸습니다. 전도지도 챙기고, 몇 가지 물건도 큰 가방에 넣고 출발하셨습니...
종교도 중독될 수 있다 종교도 중독될 수 있다
해로운 신앙: 종교 중독과 영적 학대의 치유
스티븐 아터번, 잭 펠톤/문희경/그리심/강도헌 편집위원


종교도 중독될 수 있다   지금 이 시대는 중독이라는 말이 너무 흔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중독’이라는 의미가 긍정적인 의미인지, 부정적인 의미인지 조차도 모호한 경우가 많다. 또한 ‘중독’이라는 단어는 때때로 자기를 합리화시키기 위한 단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중독’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강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불편한 단어이기도 하다.   ‘DSM’ 시리즈를 보면, 한국적 상황과 가장 맞지 않는 부분이 어쩌면 ‘중독’이다. 다섯 번의 개정판을 내었지만, 여전히 ‘중...
비평학이 아닌 계시 문서로 성경관을 확립하여 성경을 해석하고 복음을 전하라 비평학이 아닌 계시 문서로 성경관을 확립하여 성경을 해석하고 복음을 전하라
성경,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가?
데이빗 B. 가너/신호섭/세움북스/고경태 편집위원


비평학이 아닌 계시 문서로 성경관을 확립하여 성경을 해석하고 복음을 전하라세움북스에서 데이빗 가너가 7명이 발제한 에세이를 편집한 Did God Really Say?(2012년)를 신호섭 교수께서 <성경,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가?>라는 제목으로 번역해서 출판했다.  세움북스는 최근에 설립된 출판사로서 산뜻한 표지 디자인과 접근하기 쉬운 주제 등으로 좋은 반응을 이끌고 있다. <성경,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가?>라는 책도 디자인이 산뜻하고, 사이즈도 14×20Cm 규격으로 가볍게 느껴졌다. 그런데 처음...
삶으로 재현하는 하나님의 신비 삶으로 재현하는 하나님의 신비
신비를 엿보다: 다니엘
바바라 륭 라이/송동민/이레서원/정현욱 편집위원


이 책은 탄탄하고 명징하다. 모호한 다니엘서를 백 쪽 남짓의 작은 분량임에도 다니엘서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명료하게 풀어낸다. 다니엘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진다. 첫 부분은 1-6장이며 그 안에는 6개의 "궁정 이야기"(court tale)로 이루어져 있다. 두 번째 부분은 7-12장까지다. 이곳은 일인칭 환상들로 채워져 있다. 전반부가 개관적 서술이라면 후반부는 다니엘에 체험한 개인적 환상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우리의 신앙에 담긴 신비의 요소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질문과 씨름하는 데 놓여 있다는 것’(112쪽)이...
결말에 대한 예감 결말에 대한 예감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최세희/다산책방/옥은숙


영어 원제는 The sense of an ending이고, 한국어 제목과는 정반대의 뜻이다. ‘끝이나 결말에 대한 예감’이라는 뜻인데, 책 내용상 보면 주인공이 가졌던 예감과 그 종국은 엄청나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글 제목에서는 마치 첫 예감이 결과와 다르지 않고 딱 맞았다는 듯한 인상을 준다. 사람들은 이 제목을 보고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어떤 것에 대한 예감이고 그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거지, 예감에 딱 들어맞는 결과라? 어떤 이야기일까?’  이 책은 사람 기억의 온전치 않음과 그 왜곡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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