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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성화를 위한 거룩한 성경 읽기

정현욱 | 2017.11.30 11:21
성화를 위한 거룩한 성경 읽기 말씀 앞에 서는 용기/한주원/이레서원/정현욱 편집위원

성화를 위한 거룩한 성경 읽기

 

오래전, 교회를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의 이야기입니다. 부산에 주례동의 교회 권사님이 운영하시는 하숙집에 이년 정도 머물렀습니다. 그 권사님은 언제나 성경을 읽으셨고, 전도에 열심인 분이었습니다. 매주 이틀 정도는 집 주변을 가가호호 방문하며 전도하셨습니다. 기존의 전도지 전도가 아닌 방문 전도에 가까웠습니다. 어느 날 권사님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정 선생도 같이 안 갈래?’ 호기심에 네 그러죠라고 대답해 버렸습니다. 전도지도 챙기고, 몇 가지 물건도 큰 가방에 넣고 출발하셨습니다. 그런데 출발하기 전에 작은 수첩을 하나 꺼내셨습니다. 그곳에서 지난주에 다녀온 집에 대한 이야기와 기도제목에 적혀 있었습니다.

 

다른 것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데 출생한 지 몇 달 되지 않는 아이가 있던 집은 기억이 납니다. 철길 바로 밑에 셋방에 살던 새댁이었는데, 권사님께서 뭔가를 갖다 주기로 한 것 같습니다. 흐릿한 기억이지만 아마도 기저귀나 작은 저고리 종류였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아니나 다를까 세 번째 방문한 집이 바로 그 집이었습니다. 길지는 않았지만 방안에 들어가 잠깐 이야기를 나눈 다음 아이를 위해 기도해주고 나왔습니다. 처음 방문 때는 그냥 인사하고, 두 번 방문 때는 집에 들어가도 되냐고 묻고, 세 번 방문 때는 시간을 내어 이야기를 들어주었습니다. 가난한 동네인지라 갖가지 사연이 있었습니다. 술 중독자 남편을 둔 아내, 엄마가 바람을 피워 알코올 중독 아빠와 사는 여고생과 남동생이 사는 집, 마흔이 훌쩍 넘었는데 아직도 홀로인 독신, 시골에서 올라와 공단에 다니면서 동생들의 학비와 생활비를 버는 청년 등 사연 없는 집이 없었습니다. 권사님은 그들이 가정을 돌면서 사연을 들어주고 기도해주고, 가능한 물질로도 도우려고 애를 썼습니다.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아직도 그 잔상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오늘 이 책을 읽으면서 30년 가까이 흐른 지난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까요. 저는 이 책이 특별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우리는 성경 속에서 언제나 승리하는 사람의 샘플을 찾았습니다. 에녹의 믿음, 아브라함의 순종, 요셉의 인내, 다니엘의 기도 등등. 그러나 성경은 성공보다는 실패한 이야기가 더 많습니다. 아니, 모든 사람은 실패합니다. 개인뿐 아니라 온 인류도 실패합니다. 실패하지 않은 사람 없고, 실수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경은 수많은 인물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들은 때로 위대한 존재로, 영웅으로 그려지지만 어쩔 때는 조잡하고 악랄한 인물로 나옵니다. 한주원 목사는 우리가 감추고 싶은 인간의 어두운 면을 살펴봅니다. 가인의 폭력성, 라반의 갑질 본능, 아간의 탐욕, 삼손의 이기적 사랑, 사울의 인정 중독, 아합의 흐려진 분별력, 엘리바스.빌닷.소발의 소모적인 논쟁 등 인물도 다르고, 성향도 다르고, 시대도 다릅니다. 그러나 인간 본성에 면면히 흐르는 존재의 왜곡은 수천 년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옷만 바꿔 입었을 뿐 남아있습니다.

 

가인은 하나님께 거절당했습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분명히 밝히지 않습니다. 오랜 후에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에 대한 언급을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에 그의 제물과 제사는 열납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제사의 열납 가부는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가인은 거절당했고 아벨은 열납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에 일어납니다. 가인은 하나님의 판단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노골적으로 하나님을 향해 분노’(19)합니다. 심리학자들은 분노가 대상을 조정하려는 교만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가인은 제사를 드리기에 앞서 그의 마음이 잘못되어 있음이 드러납니다. 그는 섭섭해 하고, 그는 분노하고, 결국 아벨을 시기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아벨을 불러내어 죽입니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사람들 속에는 분노가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은 분노가 안으로 들어가 우울증을 일으키고, 어떤 사람은 밖으로 향해 타인을 해칩니다. 하나님은 가인을 향해 죄를 통제하라고 타이릅니다. 네가 죄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네가 주인이 되어 죄가 너를 지배하지 않도록 네 마음을 다스려라. 이것이 하나님의 충고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자신의 분노를 절제하지 못하고, 죄가 자신을 삼키도록 자신하여 분노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가인을 읽다 문득 권사님과 전도하면서 알게 된 아이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엄마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바람이 나 남편과 아이들을 버리고 집을 나가 버렸습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버린다는 말을 들었어도 엄마가 자식을 버린 것을 눈으로 확인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아마도 알코올에 중독된 남편과 자식들을 책임져야 하는 삶의 무게로 인해 도피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습니다. 우리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없으나 선은 넘지 말아야 합니다. 때로는 억울하고, 도무지 참을 수 없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인내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쌓아 놓은 명성이 한 번 참지 못한 분노로 완전히 무너져 내릴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죄를 다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안에 가인이 살아 있습니다. 자신을 서운하게 하는 하나님께 분노하고, 자신에게 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보복하려고 합니다.

 

사울의 이야기는 저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 얼굴이 뜨거웠습니다. 서두에서 어린 시절 성공한 모습에서는 저와 많이 달라 별다른 감흥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부득이한 상황’(141)에서는 심장이 뛰었습니다. 저의 모습과 너무 닮아 있었습니다. 일종의 상황 논리에 빠진 사울의 모습입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따집니다. 그러자 사울은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합니다. “적들은 코앞이고, 군사들은 무서워서 도망가도, 오기로 한 당신은 오지 않으니...” 사울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자신보다 사람들의 인기를 독차지한 다윗을 시기하기 시작합니다. 왕인 자신이 백성들의 인기를 독차지해야 하는데, 어떻게 촌뜨기 목동이 나보다 인기가 더 있을까? 사울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울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눈길보다, 보이는 사람의 인기를 갈망했습니다. 그리고 무너졌습니다.

 

평생 사람의 인정에 목마르다가, 인정을 받으면 교만해지고, 인정을 받지 못하면 낙심합니다”(150).

 

사람은 변합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아서 이리저리 휩쓸립니다. 사람은 도무지 믿을 것이 못됩니다. 그럼에도 사울은 변치 않는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고, 변덕스러운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마침내 사람들의 인기가 사그라질 때, 사울도 존재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전쟁에서 스스로 자결하고 맙니다. 적지 않은 연예인들이 어느 날 갑자기 인기가 떨어지자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소식을 듣습니다. 혹시 우리 안에 그런 모습은 없는지요. 사람들의 한 마디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피상적 존재는 아닙니까? 부끄럽게도 저에게는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만을 묵묵히 바라보아야 하는데 사람의 칭찬이나 관심이 없으면 기운이 빠지고 낙심하게 됩니다. 우리 안에 사울이 죽지 않고 살아 있습니다.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하나님의 계명을 범합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합니다. 자신보다 인기가 많은 사람들을 시기하며 은밀히 모함하려 합니다.

 

사람의 뜻에 맞추면 맞출수록 자신을 잃습니다. 그 사람에게 맞추기 위해 자신의 뜻을 꺾고, 자신의 계획을 접습니다. 자신의 희망도 내려놓습니다. 오직 타인의 칭찬을 듣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나중에는 무능한 사람이라고 비판할 것입니다. 남는 것은 허무함과 배신감뿐입니다. 사울의 말년을 보십시오. ‘겸손하고 착한 청년 사울’(145)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사람을 따라가면 결국 모든 것을 잃습니다. 나도 친구도 하나님도.

 

이 책을 읽으면서 왜 오랜 일이 생각나는지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한 가지는 사람은 저마다 지고 가야 할 짐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무겁고, 누군가는 가볍습니다. 그러나 그 짐을 내려놓는 순간 가족뿐 아니라 자신까지 무너지고 맙니다. 성경 속에 수많은 인물들이 나옵니다. 동일한 조건에서 시작했지만 누군가는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고, 누군가는 중간에 탈락합니다. 누군가는 열악한 상태에서 출발하여 거장이 되고, 누군가는 최적의 환경에서 시작하지만 타락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인간은 실패하는 것이 운명입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악하고 교만합니다. 어쩌면 여기서 소개되는 실패한 인물들은 비극적인 존재가 아닌 우리의 본성의 결과입니다. 어거스틴은 타락 이전에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었지만, 타락 이후에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즉 실패는 운명이고, 필연입니다. 악인들과 부족한 사람들로 소개되는 아간과 압살롬 같은 사람들은 우리들의 본모습입니다. 다만, 우리가 마지막까지 넘어지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부어지는 하나님의 부스러기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은 타락의 낭떠러지 위의 좁은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도 화 낼 일이 얼마나 많으며, 복수하고 싶은 생각이 얼마나 자주 들었습니까? 그럼에도 오늘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저자는 책을 마치는 에필로그에서 구약의 실패한 인물 속에서 자신을 발견했으며, 우리가 살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하더군요. 정말입니다. 우리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만약 그 은혜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느 순간 가인과 같은 살인자가 되어 있을 것이고, 아간과 같이 탐욕스러운 존재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더 거룩해 지기를 소망합니다. 내 안에 거짓된 자아를 죽이고,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으로 채워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에는 우리의 힘이 약합니다. 어쩔 수없이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합니다. 오늘도 그 은혜로 살아갑니다.

 

기도

 

하나님! 자비의 아버지. 오늘 이 책을 읽고 저의 연약함을 발견합니다. 저도 그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는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그들은 밖으로 드러날 뿐이고, 저는 숨겨져 있을 뿐입니다. 주님은 마음으로 지은 것도 죄라 하셨는데, 우리 안에 죄가 얼마나 많은지요. 오늘도 거룩하고 순결하고 싶지만, 저의 모습은 여전히 악하고 허물투성입니다. 오늘 당신께 긍휼을 구합니다. 아버지, 당신 없이는 도무지 소망이 없는 죄인입니다. 휴화산처럼 악이 숨겨져 있어 어느 순간 터져 나올지 모릅니다. 인간을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은 우리를 강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것이라고 하셨으니 이시간도 당신의 긍휼을 구합니다. 주님의 그 피로 저의 허물을 덮으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오직 새롭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저도 거룩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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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중한 일상 우리의 소중한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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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소중한 일상보혈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며 주님의 보혈이 우리의 일상에 강같이 흐르는 느낌을 받는다. 주님의 죽으심과 십자가에 대한 설교도 아닌데 십자가의 의미가 선명하게 가슴에 새겨지고 부활과 승천에 대한 설교도 아닌데 소망과 확신에 찬 믿음이 생긴다. 중생의 경험을 하면 보는 눈이 달라지고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는데 중생에 대한 메시지도 아닌데 만물과 사람과 세계가 새롭게 보이게 한다. 누군가 자신의 삶을 간증과 신앙으로 풀어낸 글은 거의 읽지 않는데 이 책은 보면서 책장을 계속 넘기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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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참 좋다. 철학에 낯선 독자라도 뭔가 좋은 이야기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에른스트 블로흐와 위르겐 몰트만을 안다면 상당히 호감을 가질 것이다. 두 사람은 2차 자료에 의거해 희미하게 더듬는 필자와 같은 독자들에게도 이 책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몰트만의 경우는 몇 권의 책을 읽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파악이 되지만, 에른스트 블로흐의 경우는 굉장히 낯선 존재다. 수년 전에 블로흐의 <자연법과 인간의 존엄성>을 읽다가 중간쯤에 포기하고 말았다. 굳이 읽어야 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한 데다 익숙하지 않은 블로흐를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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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참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교회 또는 책에서 두 주제를 같이 다루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일까요? 자신의 적이 누군지조차 몰라 엉뚱한 것과 싸우고 있는 교회의 실상 앞에 저자는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자본주의를 향한 싸움을 외치고 있습니다. 죄악이 넘치는 이 시대에 왠 자본주의를 운운하는지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우선 저자가 왜 이 주제를 꺼내드는지 자본주의에 대한 설명과 정의를 들어보겠습니다. 저자는 자본주의를 "돈이 주도하는 사회, 자본주의적인 것은 어느 영역에서든 돈이 주도적인 역할을...
교회는 가정을 회복하고, 가정은 사회와 교회를 세운다 교회는 가정을 회복하고, 가정은 사회와 교회를 세운다
교회를 세우는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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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가정을 회복하고, 가정은 사회와 교회를 세운다 “가정예배모범”(1647년)은 스코틀랜드 교회 에든버러 총회(10회)에서 결정했다(15쪽). 우리는 가정예배의 중요성을 말하지만 그 기원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장대선 목사의 <교회를 세우는 가정 예배>는 그리스도인의 행동인 가정 예배의 근원에 대해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 이전에 가정예배가 있었을까? 1세기 베뢰아에서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중세로마교회는 ‘복음선포(확실한 신앙)’가 아닌 ‘미사(맹목적 신앙)’로 종교 생활을 구성시켰다. 루터와 칼빈...
영적 전투가 열어내는 현실 너머의 현실 영적 전투가 열어내는 현실 너머의 현실
악마 다시 살려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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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다시 살려내기–영적 전투가 열어내는 현실 너머의 현실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 저는 하나님이 아니면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신비한 경험들을 몇 번 했습니다. 예언을 받아 본 적도 있었고, 신학교 졸업식 때 하나님께서 나를 콕 집어서 상을 주셨던 적도 있었습니다. 이런 얘기들을 자세하게 할 필요도 없이, 저는 소위 탈주술화(disenchanted)된 그리스도인은 아닙니다. 저는 복음주의 신앙을 받아들였고, 이제까지 쭈욱 그 신앙 속에서 살아온 사람인데, 복음주의 신앙은 탈주술화된 신앙이 아니기 ...
루터에 대한 변증 루터에 대한 변증
루터와 정치
우베 시몬-네도/조미화/CLC/강도헌 편집위원


루터에 대한 변증  고등학교를 다닐 즈음에 한국개신교회는 개인성경공부와 소그룹 성경공부 유행이 일어났었다. 수많은 성경공부 교재들이 쏟아져 나왔고, 당시 한국교회는 막 일어나기 시작한 지적인 호기심에 맞추어 다양한 경건서적들도 출판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당시 모든 교회와 성도들은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줄 알고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에 매진하였다(한국보수개신교회의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에 대해서는 차후에 평가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또한 창조과학과 같은 성경과 기독교에 ...
1999년 4월 20일, 미국 고등학교 무차별 총기난사사건 그 이후 1999년 4월 20일, 미국 고등학교 무차별 총기난사사건 그 이후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홍한별/반비/옥은숙


1999년 4월 20일, 미국 고등학교 무차별 총기난사사건 그 이후이 책은 제목 때문에 부담스러워서 최대한 늦추고 미루어 읽은 책이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용기도 없고 내용이 너무 무거울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다 읽고 났을 땐 이 책을 추천해준 동료가 고맙게 느껴졌다. 편한 책읽기보다 불편한 책읽기가 언제나 우리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이 책의 영어 부제는 A mother’s reckoning, living in the aftermath of tragedy이다. 비극의 여파와 후유증을 살아내야 하는 한 가해자...
구약의 여호와, 고대 근동의 신들과 논쟁하다 구약의 여호와, 고대 근동의 신들과 논쟁하다
고대 근동 신들과의 논쟁
존 D. 커리드 /이옥용/새물결플러스/정현욱 편집위원


제목을 오독(誤讀)했다. ‘고대 근동 신들과의 논쟁’에서 ‘논쟁’을 ‘전쟁’으로 읽었다. 필자의 뇌리 속에 남은 신화의 세계는 ‘논쟁’이 아닌 ‘전쟁’이기 때문이다. 표지 가장 윗부분에 적힌 ‘Against the Gods’도 논쟁보다는 ‘전쟁’의 의미가 강하게 읽힌다. 고대 전쟁은 나라와 민족들 간의 전쟁이 아니라 신들과의 전쟁이기 때문에다. 2011년 알렙에서 출간된 김원익의 <신들의 전쟁>을 보더라도, 고대 신화는 대부분 전쟁이야기들이 아니던가. 수년 전에 화제가 된 <신들의 전쟁>이나 <타이탄>...
로이드존스처럼 성경을 설교하자 로이드존스처럼 성경을 설교하자
마틴 로이드존스의 설교를 만나다
스티븐 로슨/황을호/생명의말씀사/정현욱 편집위원


로이드 존스, 그 이름만으로 충분한 사람이 아닐까? 아마도 청교도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로이드 존스의 이름은 이미 전설이라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로이드존스를 좋아하고 존경한다. 로이드존스는 특이하면서도 강력한 흡입력을 가진 설교자다. 이미 1981년 고인이 되었지만, 그의 설교는 여전히 살아 있고, 생동감이 있다. 로이드존스를 추종하는 사람이 어디 나뿐이었을까? Eric. J. Alexander는 로이드 존스를 살아생전에 이미 ‘기독교 세계 최고의 설교자’로 불렀다. 지금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로이드 존스의 설교를 사랑한다. 이 책...
성경, 비평에서 새롭게 읽기로 전환하기 성경, 비평에서 새롭게 읽기로 전환하기
성경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가?
데이빗 B. 가너/신호섭/세움북스


성경, 비평에서 새롭게 읽기로 전환하기성경 논쟁 시대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는 명제는 근대의 유물처럼 느껴진다. 이제 사람들은 성경을 한 권의 책으로, 한 권의 문학 작품으로 대하고 싶어 한다. 물론 그 관점이 ‘틀렸다’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그것으로 한정시키려는 저의(底意)다. 성경 논쟁은 칭만큼 뜨겁고, 교회론 만큼 예민하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시작되기도 전 성경은 고등 비평에 의해 난도질당했다. 성경의 무오성과 더불어 제기된 성경의 영감론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이성의 메스로 성경은 철저하게 해부되었다. 그러...
성경적 세계관으로 세상 읽기 성경적 세계관으로 세상 읽기
믿음은 세계관의 전쟁이다
최재호/힐링북스/정현욱 편집위원


성경적 세계관으로 세상 읽기 책을 읽는다는 것은 역사는 읽는 것이고, 타자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타자의 삶을 공유함은 곧 그 ‘사람의 삶을 사는 것’과 비슷합니다. 물론 직접 사는 것과 글로 읽는 것은 다를 것입니다. 한 권의 책은 타자의 것이기에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것과 같습니다. 비근(卑近)한 예로 친구를 생각해 봅시다. 아무리 친하다 해도 친구는 타자입니다. 목소리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삶을 해석하는 것도 다릅니다. 마음이 잘 맞는 친구라 할지라도 다른 점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물며 낯선 타자의...
종말론적 삶을 살아가는 거룩한 공동체 종말론적 삶을 살아가는 거룩한 공동체
유배된 교회
리 비치/김광남/새물결플러스/정현욱 편집위원


일단 제목부터 강하게 끌린다. 2001년에 마이클 호톤의 <세상에 포로 된 교회>(부흥과개혁사)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기회가 된다면 호튼의 책과 비치의 책을 비교하며 읽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가나안교회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라는 표지 문구가 ‘유배된 교회’만큼이나 강열하게 다가온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낯설다. 먼저 저자인 리 비치(Lee Beach)도 낯설고, ‘유배된 교회’라는 의미도 아직 낯설다. 서평을 위해 먼저 저자를 찾아보았다. 한글로 된 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영문으로 검색했다. 책의 원제는...
르네 지라르, 그는 구원자가 될 것인가? 르네 지라르, 그는 구원자가 될 것인가?
예수는 반신화다
정일권/새물결플러스/방영민 편집위원


르네 지라르, 그는 구원자가 될 것인가?  성경에서는 말한다. 말세에 나타나는 현상 중에 가장 선명한 것은 돈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더 이상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가 이 땅에서 사람의 영혼을 변화시키고 진실된 인격과 풍성한 삶을 위한 도구가 되지 못한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피조물에게는 흥망성쇠가 있는데 기독교에도 그러한 자연스런 원칙이 정해져 있는 것인가? 기독교는 이제 무능한 진리가 되어 역사의 뒷길로 사라져가는 것인가? 모든 종교는 자신의 교리와 가르침이 인류 보편...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정체성의 자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정체성의 자유
팀 켈러의 자기 망각의 자유
팀 켈러/10Publishing/김상일 편집위원


자기 망각의 자유  팀 켈러의 자기 망각의 자유(The Freedom of Self-Forgetfulness)는 아주 얇은 책입니다. 고린도전서 3:21-4:7에서 바울이 일갈하는 복음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의 관계, 그리고 그러한 정체성을 통해서 주어지는 자유에 대해서 아주 짧지만 강력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설교 원고를 옮겨놓은 것 같은 책이어서 읽기도 쉽고 짧은데다가, 그 내용은 굉장히 강력한 복음의 능력을 담고 있어서 효율로만 보면 짧은 시간에 최대의 독서 효과를 낼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
왜 신학이 필요한가? 왜 신학이 필요한가?
신학공부: 하나님과 세계
김진혁/예책/강도헌 편집위원


신학이 왜 필요할까?  가끔 목사님들 중에서도 ‘신학’과 ‘목회’는 다르다는 생각을 가지신 분들을 만나게 된다. 나 또한 과거에 그러한 생각을 잠시 가지고 있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과거에 신학의 불용(不用)을 주장(무용(無用)이 아니다)하던 나의 경우를 돌이켜 보면 ‘바른’ 목회 보다는 ‘빠른’ 목회에 집중하였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솔직히 나의 부목사 시절은 철저하게 ‘목회성공’에 집중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내목회의 성공이 곧 하나님의 성공이라는 당위적 믿음가운데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목회에 큰 도움이...
성화를 위한 거룩한 성경 읽기 성화를 위한 거룩한 성경 읽기
말씀 앞에 서는 용기
한주원/이레서원/정현욱 편집위원


성화를 위한 거룩한 성경 읽기 오래전, 교회를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의 이야기입니다. 부산에 주례동의 ㅈ교회 권사님이 운영하시는 하숙집에 이년 정도 머물렀습니다. 그 권사님은 언제나 성경을 읽으셨고, 전도에 열심인 분이었습니다. 매주 이틀 정도는 집 주변을 가가호호 방문하며 전도하셨습니다. 기존의 전도지 전도가 아닌 방문 전도에 가까웠습니다. 어느 날 권사님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정 선생도 같이 안 갈래?’ 호기심에 ‘네 그러죠’라고 대답해 버렸습니다. 전도지도 챙기고, 몇 가지 물건도 큰 가방에 넣고 출발하셨습니...
종교도 중독될 수 있다 종교도 중독될 수 있다
해로운 신앙: 종교 중독과 영적 학대의 치유
스티븐 아터번, 잭 펠톤/문희경/그리심/강도헌 편집위원


종교도 중독될 수 있다   지금 이 시대는 중독이라는 말이 너무 흔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중독’이라는 의미가 긍정적인 의미인지, 부정적인 의미인지 조차도 모호한 경우가 많다. 또한 ‘중독’이라는 단어는 때때로 자기를 합리화시키기 위한 단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중독’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강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불편한 단어이기도 하다.   ‘DSM’ 시리즈를 보면, 한국적 상황과 가장 맞지 않는 부분이 어쩌면 ‘중독’이다. 다섯 번의 개정판을 내었지만, 여전히 ‘중...
비평학이 아닌 계시 문서로 성경관을 확립하여 성경을 해석하고 복음을 전하라 비평학이 아닌 계시 문서로 성경관을 확립하여 성경을 해석하고 복음을 전하라
성경,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가?
데이빗 B. 가너/신호섭/세움북스/고경태 편집위원


비평학이 아닌 계시 문서로 성경관을 확립하여 성경을 해석하고 복음을 전하라세움북스에서 데이빗 가너가 7명이 발제한 에세이를 편집한 Did God Really Say?(2012년)를 신호섭 교수께서 <성경,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가?>라는 제목으로 번역해서 출판했다.  세움북스는 최근에 설립된 출판사로서 산뜻한 표지 디자인과 접근하기 쉬운 주제 등으로 좋은 반응을 이끌고 있다. <성경,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가?>라는 책도 디자인이 산뜻하고, 사이즈도 14×20Cm 규격으로 가볍게 느껴졌다. 그런데 처음...
삶으로 재현하는 하나님의 신비 삶으로 재현하는 하나님의 신비
신비를 엿보다: 다니엘
바바라 륭 라이/송동민/이레서원/정현욱 편집위원


이 책은 탄탄하고 명징하다. 모호한 다니엘서를 백 쪽 남짓의 작은 분량임에도 다니엘서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명료하게 풀어낸다. 다니엘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진다. 첫 부분은 1-6장이며 그 안에는 6개의 "궁정 이야기"(court tale)로 이루어져 있다. 두 번째 부분은 7-12장까지다. 이곳은 일인칭 환상들로 채워져 있다. 전반부가 개관적 서술이라면 후반부는 다니엘에 체험한 개인적 환상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우리의 신앙에 담긴 신비의 요소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질문과 씨름하는 데 놓여 있다는 것’(112쪽)이...
결말에 대한 예감 결말에 대한 예감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최세희/다산책방/옥은숙


영어 원제는 The sense of an ending이고, 한국어 제목과는 정반대의 뜻이다. ‘끝이나 결말에 대한 예감’이라는 뜻인데, 책 내용상 보면 주인공이 가졌던 예감과 그 종국은 엄청나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글 제목에서는 마치 첫 예감이 결과와 다르지 않고 딱 맞았다는 듯한 인상을 준다. 사람들은 이 제목을 보고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어떤 것에 대한 예감이고 그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거지, 예감에 딱 들어맞는 결과라? 어떤 이야기일까?’  이 책은 사람 기억의 온전치 않음과 그 왜곡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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