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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르네 지라르, 그는 구원자가 될 것인가?

크리스찬북뉴스 | 2017.12.03 17:40
르네 지라르, 그는 구원자가 될 것인가? 예수는 반신화다/정일권/새물결플러스/방영민 편집위원

르네 지라르, 그는 구원자가 될 것인가?

 

성경에서는 말한다. 말세에 나타나는 현상 중에 가장 선명한 것은 돈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더 이상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가 이 땅에서 사람의 영혼을 변화시키고 진실된 인격과 풍성한 삶을 위한 도구가 되지 못한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피조물에게는 흥망성쇠가 있는데 기독교에도 그러한 자연스런 원칙이 정해져 있는 것인가? 기독교는 이제 무능한 진리가 되어 역사의 뒷길로 사라져가는 것인가?

 

모든 종교는 자신의 교리와 가르침이 인류 보편의 가치가 되길 원한다. 사회에서 이단이라고 손가락질 당하는 사교도 그들의 교훈이 최고의 진리라는 것을 힘써 외치고 전한다. 여기서 우리는 고등종교와 하등종교를 상식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는 사랑과 정의와 평등과 세계 평화를 지향하며 인류 정신사적으로도 유익한 역할을 할 것이고, 후자는 이기적이고 폭력적이며 분열과 갈등을 초래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기독교는 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과 기능을 하고 있는가? 사회의 성숙과 번영 그리고 인간의 복지와 생명의 존엄성과 생태계 유지를 포함하는 공공선의 활성화를 위하고 있는가? 아니면 자기의 부와 명예와 권력을 위하여 살아가고 사회와는 고립되어져 있는 외딴섬으로 존재하는가? 모든 사회가 환영하고 존경하고 찾아가는 종교인가? 아니면 사회가 거부하고 외면하며 부정하는 진리인가?

 

어쩌면 기독교를 포함한 고등종교의 하락은 사람들로 하여금 더 자기를 의지하고 자기행복을 위하여 살게 만든 원인이 될 것이다. 이에 더하여 학계와 종교와 문화에서 예수님을 부정하고 그분을 하나의 신화로 만드는 일들이 펼쳐지고 있다. 실제 티모시 프리크와 피터 갠디는 기독교의 기원에 대하여 쓴 책 예수는 신화다에서 예수님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메시아가 아니라 그분의 추종자들을 토대로 만들어진 일종의 신화라고 정의한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이 로마시대 이교도 신화에 나오는 오시리스, 디오니소스, 아티스, 미트라 등과 같은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 인물들은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져 온 신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와 문화가 만들어내는 폭력물인데 예수님이 그들과 같은 신화라는 것이다. 물론 신화가 모두 사기와 거짓은 아니다. 실존의 인물이고 그 사회와 집단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그 사회의 불행을 짊어진 죄의 원흉이다.

 

이 책은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을 반박하며 예수가 반신화이고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라는 것을 증명한다. 고대 로마 시대의 신화와 문화와 그 시대의 영지주의와 이교주의와 비교하여 기독교의 유일성을 비교한다. 이어 현대에 이르기까지 니체와 하이데거에 걸쳐서 나타나는 영지주의와 전체주의와 희생양과 이교적인 현상이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 철학과 신학과 문학에 걸쳐 다양하게 전개하고 있다.

 

필자는 이미 르네 지라르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라는 책을 통해 인류문화사적으로 기독교가 어떻게 진리가 될 수 있는지 합리적인 논증과 해석을 보았다. 그동안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이 초자연적인 성령의 역사로만 생겨나고 이것을 논리적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였는데 지라르는 그 전제를 편견으로 만들었다. 기독교가 억지와 강요와 세뇌가 아니라 회의와 탐구와 학문이 되었다.

 

실제 유럽에서는 지라르는 신의 죽음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종교의 무효성이 더 짙어지는 세계에서 기독교를 구원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세계대전 후 하나님의 말씀이 숨을 쉴 수 없고 전쟁의 잿더미로 덮혀 있던 시절에 칼 바르트가 폐허가 된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구원했듯, 신이 무덤에 있다고 여겨지던 시절에 그 신을 살려냈다 말하고 심지어 21세기의 교부라고 칭하니 대단한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책은 저자가 지라르에 관해서 쓴 것이 아니라 지라르의 가르침을 사용하여 예수님의 신화적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예수님의 역사성에 대한 논쟁은 지금까지도 뜨거운 주제인데 복음서를 통해 드러나는 예수님은 한 개인의 기억이 아니라 그 기억을 공동으로 소유한 집단의 역사이고 소유라는 것을 통해서도 우리는 예수님의 존재가 역사적이고 신화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로마 시대의 전기라는 장르를 통해서도 그분의 실제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그러한 사회적 기억과 장르가 아니라 신화와 성경의 대조를 통해 예수님의 역사성을 드러낸다. 우선 신화의 거짓과 성경의 진실을 드러낸다. 신화가 생성되는 배경을 보면 공동체 안에 갈등이 심화되고 사회적 무질서가 절정에 이를 때 그 사회는 희생양을 찾게 되고 선택된 자는 집단 폭력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분노와 폭력의 화신이 되어 신격화 된다.

 

이렇게 사회는 거짓과 음모를 통해 신화가 발생한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폭력을 노출한다. 모두가 숨기고 은폐하여 희생양을 만들고 거짓 신화를 창조하여 분노와 복수의 악순환을 이어가는데 성경은 유일한 희생양이 되신 예수님으로 그 분노와 복수의 악순환이 끊어진다고 한다. 어느 사회에나 은폐된 집단 폭력과 군중 살인은 숨겨져 있는데 성경은 그 폭력과 살인을 폭로하고 모두가 죄인임을 밝힌다.

 

신화는 희생양을 죄인으로 만들고 모든 악의 근원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나오는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희생양이다. 신화의 나오는 희생양의 죽음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고 광란과 축제의 장을 마련해주는 죽음이다. 그 공동체에 있던 어둠이 물러갔다는 거짓 희망을 불러 일으켜준다. 그 피는 사람들을 마취시키고 흥분시키고 열광시킨다. 원형 경기장에서 검투사가 죽어가듯 그 피는 흥분제이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유일한 희생양의 죽음은 신화와는 다른 카타르시스와 만족을 준다. 육체적이고 본능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이고 심적인 만족이다. 그분의 피는 우리의 폭력을 유발하고 살인을 자극하지 않으며 오히려 집었던 돌을 내려놓게 만든다. 그분의 피는 죄를 지으려는 우리의 손을 깨끗하게 하고 죄가 자리 잡으려는 마음에 십자가를 먼저 세우게 한다. 그분의 희생은 모든 이에게 영원한 평화를 주는 것이다.

 

신화를 보면 희생양이 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들이다. 여러 종류의 불구자와 육체적인 부정함을 지닌자, 사회적인 결함을 지닌 자들이 희생양으로 몰려 죄인이 된다. 그러나 희생양 되신 예수님은 모든 약자들을 대신하여 죽으신다. 모든 차별과 냉소와 비난과 서러움과 배제와 혐오를 짊어지신 어린양이 되신다. 신화의 희생양은 이런 고통을 해결하지 못하지만 유일한 희생양은 해결하신다.

 

이러한 희생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니체와 하이데거가 히틀러를 지지하고 나치와 파지즘의 선두 주자였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사람들에게 허무주의와 냉소주의를 인식시켜 나치라는 권력을 적극 후원한다. 성경은 말하길 모든 권력이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권력과 권세가 어떻게 생겨나는지 우리는 보고 해석해야한다. 신화에 등장하는 희생양을 통해 얻어진 권력은 사탄의 속임수이다. 세상에 존재했던 왕들과 로마의 황제만 보아도 사탄의 지배체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에서는 불교에 대해서도 많은 양을 서술한다. 평화와 자비의 종교라고 알려진 불교인데 저자는 불교 연구를 통해 폭력과 억압과 음란의 기원을 가진 종교임을 파헤친다. 또한 불교의 근본개념인 무아, 무상, 무념, 공 사상이 허무주의가 아니라 세계포기의 희생제의와 세계를 포기하고 출가하는 요기와 붓다의 특정한 개념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들을 희생양과 비교하며 불교 신화성을 드러낸다.

 

저자는 지라르를 통해 분명히 말한다. 예수님은 비신화적인 인물이고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저자는 이런 예수님을 신앙적으로만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문화와 종교와 학제와 학자 간의 비교와 연구를 통해 그 객관성와 진리됨을 설명한다. 기독교는 폭력과 혐오와 배제의 종교가 아니라 비폭력과 화해와 평화의 종교이며 예수님은 그 중심에 계신 유일하신 희생양과 십자가와 부활의 주인공이라고!

 

희생양 메커니즘과 비교신화학을 통해 예수님이 신화라는 것을 반증하고 그분의 역사성을 다양하게 증명하는 이 책을 통해 예수님과 십자가와 희생양이 온전해질 것인가? 인문학에서 하얀 십자가를 세웠다고 하는 그를 통해 붉은 십자가로 나올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될 것인가? 신화와 문학을 연구하다 기독교로 회심하고 예수님을 믿게 된 르네 지라르, 그는 과연 포스트모던 후기 사회, 해체주의 시대, 종교 다원주의 시대에서 기독교의 구원자가 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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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중한 일상 우리의 소중한 일상
오늘을 그날처럼
이철규/새물결플러스/방영민 편집위원


 우리의 소중한 일상보혈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며 주님의 보혈이 우리의 일상에 강같이 흐르는 느낌을 받는다. 주님의 죽으심과 십자가에 대한 설교도 아닌데 십자가의 의미가 선명하게 가슴에 새겨지고 부활과 승천에 대한 설교도 아닌데 소망과 확신에 찬 믿음이 생긴다. 중생의 경험을 하면 보는 눈이 달라지고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는데 중생에 대한 메시지도 아닌데 만물과 사람과 세계가 새롭게 보이게 한다. 누군가 자신의 삶을 간증과 신앙으로 풀어낸 글은 거의 읽지 않는데 이 책은 보면서 책장을 계속 넘기게 되었다. ...
희망의 두 지평에서 하나님 나라의 희망으로 희망의 두 지평에서 하나님 나라의 희망으로
희망의 두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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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참 좋다. 철학에 낯선 독자라도 뭔가 좋은 이야기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에른스트 블로흐와 위르겐 몰트만을 안다면 상당히 호감을 가질 것이다. 두 사람은 2차 자료에 의거해 희미하게 더듬는 필자와 같은 독자들에게도 이 책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몰트만의 경우는 몇 권의 책을 읽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파악이 되지만, 에른스트 블로흐의 경우는 굉장히 낯선 존재다. 수년 전에 블로흐의 <자연법과 인간의 존엄성>을 읽다가 중간쯤에 포기하고 말았다. 굳이 읽어야 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한 데다 익숙하지 않은 블로흐를 따라...
자본주의의 핵심에는 개인의 욕망이 자리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핵심에는 개인의 욕망이 자리하고 있다
교회, 자본주의와 씨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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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참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교회 또는 책에서 두 주제를 같이 다루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일까요? 자신의 적이 누군지조차 몰라 엉뚱한 것과 싸우고 있는 교회의 실상 앞에 저자는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자본주의를 향한 싸움을 외치고 있습니다. 죄악이 넘치는 이 시대에 왠 자본주의를 운운하는지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우선 저자가 왜 이 주제를 꺼내드는지 자본주의에 대한 설명과 정의를 들어보겠습니다. 저자는 자본주의를 "돈이 주도하는 사회, 자본주의적인 것은 어느 영역에서든 돈이 주도적인 역할을...
교회는 가정을 회복하고, 가정은 사회와 교회를 세운다 교회는 가정을 회복하고, 가정은 사회와 교회를 세운다
교회를 세우는 가정예배
장대선/고백과 문답/고경태 편집위원


교회는 가정을 회복하고, 가정은 사회와 교회를 세운다 “가정예배모범”(1647년)은 스코틀랜드 교회 에든버러 총회(10회)에서 결정했다(15쪽). 우리는 가정예배의 중요성을 말하지만 그 기원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장대선 목사의 <교회를 세우는 가정 예배>는 그리스도인의 행동인 가정 예배의 근원에 대해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 이전에 가정예배가 있었을까? 1세기 베뢰아에서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중세로마교회는 ‘복음선포(확실한 신앙)’가 아닌 ‘미사(맹목적 신앙)’로 종교 생활을 구성시켰다. 루터와 칼빈...
영적 전투가 열어내는 현실 너머의 현실 영적 전투가 열어내는 현실 너머의 현실
악마 다시 살려내기
리차드 벡/Fortress Press/김상일 편집위원


악마 다시 살려내기–영적 전투가 열어내는 현실 너머의 현실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 저는 하나님이 아니면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신비한 경험들을 몇 번 했습니다. 예언을 받아 본 적도 있었고, 신학교 졸업식 때 하나님께서 나를 콕 집어서 상을 주셨던 적도 있었습니다. 이런 얘기들을 자세하게 할 필요도 없이, 저는 소위 탈주술화(disenchanted)된 그리스도인은 아닙니다. 저는 복음주의 신앙을 받아들였고, 이제까지 쭈욱 그 신앙 속에서 살아온 사람인데, 복음주의 신앙은 탈주술화된 신앙이 아니기 ...
루터에 대한 변증 루터에 대한 변증
루터와 정치
우베 시몬-네도/조미화/CLC/강도헌 편집위원


루터에 대한 변증  고등학교를 다닐 즈음에 한국개신교회는 개인성경공부와 소그룹 성경공부 유행이 일어났었다. 수많은 성경공부 교재들이 쏟아져 나왔고, 당시 한국교회는 막 일어나기 시작한 지적인 호기심에 맞추어 다양한 경건서적들도 출판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당시 모든 교회와 성도들은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줄 알고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에 매진하였다(한국보수개신교회의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에 대해서는 차후에 평가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또한 창조과학과 같은 성경과 기독교에 ...
1999년 4월 20일, 미국 고등학교 무차별 총기난사사건 그 이후 1999년 4월 20일, 미국 고등학교 무차별 총기난사사건 그 이후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홍한별/반비/옥은숙


1999년 4월 20일, 미국 고등학교 무차별 총기난사사건 그 이후이 책은 제목 때문에 부담스러워서 최대한 늦추고 미루어 읽은 책이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용기도 없고 내용이 너무 무거울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다 읽고 났을 땐 이 책을 추천해준 동료가 고맙게 느껴졌다. 편한 책읽기보다 불편한 책읽기가 언제나 우리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이 책의 영어 부제는 A mother’s reckoning, living in the aftermath of tragedy이다. 비극의 여파와 후유증을 살아내야 하는 한 가해자...
구약의 여호와, 고대 근동의 신들과 논쟁하다 구약의 여호와, 고대 근동의 신들과 논쟁하다
고대 근동 신들과의 논쟁
존 D. 커리드 /이옥용/새물결플러스/정현욱 편집위원


제목을 오독(誤讀)했다. ‘고대 근동 신들과의 논쟁’에서 ‘논쟁’을 ‘전쟁’으로 읽었다. 필자의 뇌리 속에 남은 신화의 세계는 ‘논쟁’이 아닌 ‘전쟁’이기 때문이다. 표지 가장 윗부분에 적힌 ‘Against the Gods’도 논쟁보다는 ‘전쟁’의 의미가 강하게 읽힌다. 고대 전쟁은 나라와 민족들 간의 전쟁이 아니라 신들과의 전쟁이기 때문에다. 2011년 알렙에서 출간된 김원익의 <신들의 전쟁>을 보더라도, 고대 신화는 대부분 전쟁이야기들이 아니던가. 수년 전에 화제가 된 <신들의 전쟁>이나 <타이탄>...
로이드존스처럼 성경을 설교하자 로이드존스처럼 성경을 설교하자
마틴 로이드존스의 설교를 만나다
스티븐 로슨/황을호/생명의말씀사/정현욱 편집위원


로이드 존스, 그 이름만으로 충분한 사람이 아닐까? 아마도 청교도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로이드 존스의 이름은 이미 전설이라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로이드존스를 좋아하고 존경한다. 로이드존스는 특이하면서도 강력한 흡입력을 가진 설교자다. 이미 1981년 고인이 되었지만, 그의 설교는 여전히 살아 있고, 생동감이 있다. 로이드존스를 추종하는 사람이 어디 나뿐이었을까? Eric. J. Alexander는 로이드 존스를 살아생전에 이미 ‘기독교 세계 최고의 설교자’로 불렀다. 지금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로이드 존스의 설교를 사랑한다. 이 책...
성경, 비평에서 새롭게 읽기로 전환하기 성경, 비평에서 새롭게 읽기로 전환하기
성경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가?
데이빗 B. 가너/신호섭/세움북스


성경, 비평에서 새롭게 읽기로 전환하기성경 논쟁 시대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는 명제는 근대의 유물처럼 느껴진다. 이제 사람들은 성경을 한 권의 책으로, 한 권의 문학 작품으로 대하고 싶어 한다. 물론 그 관점이 ‘틀렸다’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그것으로 한정시키려는 저의(底意)다. 성경 논쟁은 칭만큼 뜨겁고, 교회론 만큼 예민하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시작되기도 전 성경은 고등 비평에 의해 난도질당했다. 성경의 무오성과 더불어 제기된 성경의 영감론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이성의 메스로 성경은 철저하게 해부되었다. 그러...
성경적 세계관으로 세상 읽기 성경적 세계관으로 세상 읽기
믿음은 세계관의 전쟁이다
최재호/힐링북스/정현욱 편집위원


성경적 세계관으로 세상 읽기 책을 읽는다는 것은 역사는 읽는 것이고, 타자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타자의 삶을 공유함은 곧 그 ‘사람의 삶을 사는 것’과 비슷합니다. 물론 직접 사는 것과 글로 읽는 것은 다를 것입니다. 한 권의 책은 타자의 것이기에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것과 같습니다. 비근(卑近)한 예로 친구를 생각해 봅시다. 아무리 친하다 해도 친구는 타자입니다. 목소리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삶을 해석하는 것도 다릅니다. 마음이 잘 맞는 친구라 할지라도 다른 점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물며 낯선 타자의...
종말론적 삶을 살아가는 거룩한 공동체 종말론적 삶을 살아가는 거룩한 공동체
유배된 교회
리 비치/김광남/새물결플러스/정현욱 편집위원


일단 제목부터 강하게 끌린다. 2001년에 마이클 호톤의 <세상에 포로 된 교회>(부흥과개혁사)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기회가 된다면 호튼의 책과 비치의 책을 비교하며 읽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가나안교회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라는 표지 문구가 ‘유배된 교회’만큼이나 강열하게 다가온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낯설다. 먼저 저자인 리 비치(Lee Beach)도 낯설고, ‘유배된 교회’라는 의미도 아직 낯설다. 서평을 위해 먼저 저자를 찾아보았다. 한글로 된 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영문으로 검색했다. 책의 원제는...
르네 지라르, 그는 구원자가 될 것인가? 르네 지라르, 그는 구원자가 될 것인가?
예수는 반신화다
정일권/새물결플러스/방영민 편집위원


르네 지라르, 그는 구원자가 될 것인가?  성경에서는 말한다. 말세에 나타나는 현상 중에 가장 선명한 것은 돈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더 이상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가 이 땅에서 사람의 영혼을 변화시키고 진실된 인격과 풍성한 삶을 위한 도구가 되지 못한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피조물에게는 흥망성쇠가 있는데 기독교에도 그러한 자연스런 원칙이 정해져 있는 것인가? 기독교는 이제 무능한 진리가 되어 역사의 뒷길로 사라져가는 것인가? 모든 종교는 자신의 교리와 가르침이 인류 보편...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정체성의 자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정체성의 자유
팀 켈러의 자기 망각의 자유
팀 켈러/10Publishing/김상일 편집위원


자기 망각의 자유  팀 켈러의 자기 망각의 자유(The Freedom of Self-Forgetfulness)는 아주 얇은 책입니다. 고린도전서 3:21-4:7에서 바울이 일갈하는 복음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의 관계, 그리고 그러한 정체성을 통해서 주어지는 자유에 대해서 아주 짧지만 강력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설교 원고를 옮겨놓은 것 같은 책이어서 읽기도 쉽고 짧은데다가, 그 내용은 굉장히 강력한 복음의 능력을 담고 있어서 효율로만 보면 짧은 시간에 최대의 독서 효과를 낼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
왜 신학이 필요한가? 왜 신학이 필요한가?
신학공부: 하나님과 세계
김진혁/예책/강도헌 편집위원


신학이 왜 필요할까?  가끔 목사님들 중에서도 ‘신학’과 ‘목회’는 다르다는 생각을 가지신 분들을 만나게 된다. 나 또한 과거에 그러한 생각을 잠시 가지고 있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과거에 신학의 불용(不用)을 주장(무용(無用)이 아니다)하던 나의 경우를 돌이켜 보면 ‘바른’ 목회 보다는 ‘빠른’ 목회에 집중하였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솔직히 나의 부목사 시절은 철저하게 ‘목회성공’에 집중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내목회의 성공이 곧 하나님의 성공이라는 당위적 믿음가운데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목회에 큰 도움이...
성화를 위한 거룩한 성경 읽기 성화를 위한 거룩한 성경 읽기
말씀 앞에 서는 용기
한주원/이레서원/정현욱 편집위원


성화를 위한 거룩한 성경 읽기 오래전, 교회를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의 이야기입니다. 부산에 주례동의 ㅈ교회 권사님이 운영하시는 하숙집에 이년 정도 머물렀습니다. 그 권사님은 언제나 성경을 읽으셨고, 전도에 열심인 분이었습니다. 매주 이틀 정도는 집 주변을 가가호호 방문하며 전도하셨습니다. 기존의 전도지 전도가 아닌 방문 전도에 가까웠습니다. 어느 날 권사님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정 선생도 같이 안 갈래?’ 호기심에 ‘네 그러죠’라고 대답해 버렸습니다. 전도지도 챙기고, 몇 가지 물건도 큰 가방에 넣고 출발하셨습니...
종교도 중독될 수 있다 종교도 중독될 수 있다
해로운 신앙: 종교 중독과 영적 학대의 치유
스티븐 아터번, 잭 펠톤/문희경/그리심/강도헌 편집위원


종교도 중독될 수 있다   지금 이 시대는 중독이라는 말이 너무 흔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중독’이라는 의미가 긍정적인 의미인지, 부정적인 의미인지 조차도 모호한 경우가 많다. 또한 ‘중독’이라는 단어는 때때로 자기를 합리화시키기 위한 단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중독’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강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불편한 단어이기도 하다.   ‘DSM’ 시리즈를 보면, 한국적 상황과 가장 맞지 않는 부분이 어쩌면 ‘중독’이다. 다섯 번의 개정판을 내었지만, 여전히 ‘중...
비평학이 아닌 계시 문서로 성경관을 확립하여 성경을 해석하고 복음을 전하라 비평학이 아닌 계시 문서로 성경관을 확립하여 성경을 해석하고 복음을 전하라
성경,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가?
데이빗 B. 가너/신호섭/세움북스/고경태 편집위원


비평학이 아닌 계시 문서로 성경관을 확립하여 성경을 해석하고 복음을 전하라세움북스에서 데이빗 가너가 7명이 발제한 에세이를 편집한 Did God Really Say?(2012년)를 신호섭 교수께서 <성경,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가?>라는 제목으로 번역해서 출판했다.  세움북스는 최근에 설립된 출판사로서 산뜻한 표지 디자인과 접근하기 쉬운 주제 등으로 좋은 반응을 이끌고 있다. <성경,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가?>라는 책도 디자인이 산뜻하고, 사이즈도 14×20Cm 규격으로 가볍게 느껴졌다. 그런데 처음...
삶으로 재현하는 하나님의 신비 삶으로 재현하는 하나님의 신비
신비를 엿보다: 다니엘
바바라 륭 라이/송동민/이레서원/정현욱 편집위원


이 책은 탄탄하고 명징하다. 모호한 다니엘서를 백 쪽 남짓의 작은 분량임에도 다니엘서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명료하게 풀어낸다. 다니엘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진다. 첫 부분은 1-6장이며 그 안에는 6개의 "궁정 이야기"(court tale)로 이루어져 있다. 두 번째 부분은 7-12장까지다. 이곳은 일인칭 환상들로 채워져 있다. 전반부가 개관적 서술이라면 후반부는 다니엘에 체험한 개인적 환상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우리의 신앙에 담긴 신비의 요소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질문과 씨름하는 데 놓여 있다는 것’(112쪽)이...
결말에 대한 예감 결말에 대한 예감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최세희/다산책방/옥은숙


영어 원제는 The sense of an ending이고, 한국어 제목과는 정반대의 뜻이다. ‘끝이나 결말에 대한 예감’이라는 뜻인데, 책 내용상 보면 주인공이 가졌던 예감과 그 종국은 엄청나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글 제목에서는 마치 첫 예감이 결과와 다르지 않고 딱 맞았다는 듯한 인상을 준다. 사람들은 이 제목을 보고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어떤 것에 대한 예감이고 그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거지, 예감에 딱 들어맞는 결과라? 어떤 이야기일까?’  이 책은 사람 기억의 온전치 않음과 그 왜곡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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