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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성경적 세계관으로 세상 읽기

정현욱 | 2017.12.05 10:39
성경적 세계관으로 세상 읽기 믿음은 세계관의 전쟁이다/최재호/힐링북스/정현욱 편집위원

성경적 세계관으로 세상 읽기

 

책을 읽는다는 것은 역사는 읽는 것이고, 타자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타자의 삶을 공유함은 곧 그 사람의 삶을 사는 것과 비슷합니다. 물론 직접 사는 것과 글로 읽는 것은 다를 것입니다. 한 권의 책은 타자의 것이기에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것과 같습니다. 비근(卑近)한 예로 친구를 생각해 봅시다. 아무리 친하다 해도 친구는 타자입니다. 목소리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삶을 해석하는 것도 다릅니다. 마음이 잘 맞는 친구라 할지라도 다른 점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물며 낯선 타자의 책을 읽는다면 어떨까요? 이처럼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것과 같고, 새로운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기회이자 배움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차이동일은 저자와 독자를 묶기도 하고 구별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차이와 동일을 잘 이해하고 책을 읽는다면 훌륭한 독자임에 틀림없습니다. 오늘 또 한 권을 읽고 새로운 경험을 합니다.

 

아내가 책장에서 꺼내 한 권을 보여주면서 읽어 보라 합니다. 책을 보니 낯선 책이지만 세계관이란 단어가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제목은 약간 자극적으로 잡았는데 믿음은 세계관의 전쟁이다입니다. 식상해 보이는 단어지만 제목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세계관도 있지만 주어는 믿음(Faith)’입니다. 표지에 적은 영어를 번역해 보면, ‘믿음은 이다 전쟁 세계관.’ 영어는 한글과 어순이 다릅니다. 언어학자들은 한국어는 형용사가 발달해 있고, 히브리어는 동사가 발달했다고 합니다. 또한 한국이 중요한 것은 뒤에 배치한다면, 영어는 중요한 것은 앞에 배치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이나 영어를 번역할 때는 어순을 그대로 직역해 보곤 합니다. 그러면 한 문장으로 번역해 읽는 것과 다르게 묘한 느낌이 납니다.

 

Faith is the Battle of Worldviews.

믿음은 이다 전쟁의 세계관.’

 

책에서 제목은 중요합니다. 종종 저자의 뜻과 다르게 편집자가 제목을 바꾸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내용을 잘 이해하도록 배려한 것입니다. 이 책은 표지에 저자의 하고 싶은 말의 절반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책의 표지에 책을 파악할 수 있는 두 단락의 문장이 있습니다. 읽어 봅시다.

 

청지기 영성훈련은 업적이나 실적을 남기기 위한 훈련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살피고,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성숙한 사람으로 준비시키는 훈련이다.”

 

영어 제목 아래 있는 문장입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타락한 가치관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성경적인 가치관을 적용하고, 실천하며, 살아가는 삶의 체계를 설명한 영성 훈련서

 

자 어떤 가요? 두 단락의 문장 속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까? 저는 여기서 단어 몇 개를 주목합니다. ‘청지기’ ‘영성훈련’ ‘준비’ ‘타락’ ‘가치관’ ‘성경적인’ ‘삶의 체계’ ‘영성 훈련서이 책은 한 마디로 성경적 가치관을 확립하여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을 살아가도록 돕는 책입니다. 무엇으로 도울까요? 그것이 바로 책 내용입니다. 그 내용은 제목에서 읽을 수 있듯이 세계관입니다. 세계관은 세상을 해석하는 관점입니다. 다른 말로 가치관입니다. 우리는 이 책에서 세상을 해석하는 바른 세계관, 바른 가치관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영성은 자신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여 다스리려는 본성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삶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 그것은 군림과 자기과시가 아니라 섬김과 희생입니다. 이제 그 이야기로 넘어가 봅시다. 도대체 세계관과 그리스도의 성품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이 책은 모두 7장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1장은 서론에 해당하고 2-3장은 세계관의 전제와 발전 단계를 다룹니다. 4-5장은 성경 속에서 세계관을 찾아 탐색합니다. 6-7장은 적용과 실천 또는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고민합니다.

 

1장에서 저자는 사도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생긴 일을 가져와 세계관을 설명합니다. 사도행전 14장을 보면 바울이 걷지 못하는 사람을 보고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고 하니 그가 일어나 걷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본 루스드라 사람들이 바울 일행을 신으로 생각하며 그들을 경배하려고 합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저자는 이것을 복음을 전하는 자들과 듣는 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세계관의 충돌’(26)이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충돌입니다. 세상을 해석하는 두 관점이 충돌한 것입니다. 동일한 사실 앞에서 어떤 사람들은 신화 속 신을 찾고, 어떤 사람들은 살아계신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세계관은 궁극적으로 신적이며, 초월자와 맞닿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계관은 세상을 인식하는 관점인 동시에 신에 대한 인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세계관은 다른 신을 섬기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저자는 세계관을 변화시키는 것은 인간이 노력으로 불가능한 일’(28)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럼 어떻게 가능할까요? 인간의 간절함과 성령이 역사하여야 가능한 것’(29)입니다.

 

저자는 2장에서 철학적 사유 방식을 통해 세계관을 정의합니다. 철학을 하든 안 하든, 종교가 있든 없든 모든 사람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관은 일상을 해석하는 틀이고, 사유하는 방식이며, 삶의 담론을 규정하는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세계관은 사물을 보고, 듣고, 생각하는 틀이다.”(35)

 

2장 중반과 3장에서는 세계관의 형성과정을 설명해 줍니다. 필자는 철학적 사유를 통한 세계관 해석이 좋았습니다. 근현대 철학자들의 사상이 깊이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목회자이면서 기독교 변증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에게 현대철학은 중요했을 것입니다. 철학과 기독교 세계관은 무슨 상관이 있을까를 고민하여 읽어 내려갔습니다. 칸트는 <순수 이성 비판>으로 잘 알려진 철학자입니다. 그는 <판단력 비판>이란 책을 통해 세계관이란 단어를 세상을 감각적으로 인식하는 일상적인 단어로 사용’(42)합니다. 이 단어는 다시 독일 관념론자인 쉘링에 의해 지성적 인식을 의미하는 개념’(43)으로 확장됩니다. 세계관 형성에 가장 중요한 철학자는 헤겔일 것입니다. 헤겔의 철학은 역사적 변증을 통해 역사가 발전한다고 해석하고, 세계관을 역사의 발전과정에서 절대정신의 자기 인식의 결과물’(44) 보았습니다. 이어지는 키에르케고어는 세계관과 인생관을 교차 사용하면서 삶을 해석하는 틀이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실존주의의 문을 열었던 키에르케고어는 발전이 아닌 다른 관점에서 세계관을 보도록 유도합니다. 딜타이와 니체까지 이어지는 철학적 탐색은 궁극적으로 사람은 세계관을 가진 존재이며, 그것이 도덕적이든 종교적이든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기 마련이라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결론은 거듭남은 세계관의 변화’(61)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세계관의 충돌은 영적 전쟁일 수밖에 없게 됩니다.

 

3장에서는 철학이 아닌 기독교 세계관의 체계화 과정을 다룹니다. 제임스 오어와 아브라함 카피어, 코넬리우스 밴틸의 사유를 추적해 가며 기독교 세계관이 무엇인지 설명합니다. 세 학자 중에서 밴틸을 주목해야 합니다. 밴틸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변증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대립했던 학자입니다. 밴틸은 카이퍼의 세계관적 비전 원리를 변증학에 적용한 학자입니다. 밴틸의 변증학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전제(Presuppisition)’입니다. 전제는 일종의 가정이나 가설이지만, 최종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는 의식 체계입니다.

 

전제는 그 사람의 사상적 추론에 있어서 최종적인 권위를 가지며 거의 타협 불가능한 신념의 체계를 형성하며 쉽게 변화되지 않는 탄탄한 기초로 작용한다.”(84)

 

전제는 한 사람의 생각의 틀이라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사람은 어떤 발언이나 행위를 할 때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만의 고유한 이나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것을 밴틸의 전제로 보며,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과 비교합니다. 전제와 패러다임은 정확하게 일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얼마든지 다른 가설을 가지고 문제를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주의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3장의 결론은 모든 피조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전제하지 않는 사상이나 행동은 자기모순이며, 왜곡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관은 대립을 넘어 거듭나야 합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세계관을 바꾸지 않습니다. 창조, 타락, 구속이라는 기독교 세계관의 틀을 제공한 밴틸은 인류의 역사가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해 줍니다. 4-5장은 성경 속에서 기독교적 세계관을 살펴봅니다. 저는 결론에 해당하는 6-7장 속에서 저자의 결론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저자는 지금,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176)고 말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다원화, 다원주의, 다양성, 다문화, 탈권위, 탈규범 등의 다양한 용어로 해석됩니다. 가장 핵심은 권위의 부재입니다. 즉 인간의 이성을 신의 자리에 올렸던 근대와 다르게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는 인간의 감성에 기초한 주관적인 느낌에 기초한 세계관’(176)을 소유합니다. 기실, 개신교는 근대적이며, 근대와 함께 시작했습니다. 사회학자들은 종교개혁을 종교가 아닌 상업의 기초한 사회 변혁과 시민정신의 발현으로 설명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러한 권위를 뿌리부터 흔들며 모든 권위를 개인의 소유물로 퇴보시킵니다. 더 이상 절대 진리는 없습니다. 이차 대전 이후 급격한 힘을 발휘한 실존주의와 그 뒤를 이은 구조주의와 과정 철학 등은 인격적 하나님은 사라지고, 오직 변화하는 사건만 남게 됩니다.

 

존재 자체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역사적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가변적인 것이기 때문에 모든 존재의 의미도 객관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역사적 시점에서 이해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는 시간 안에서 생성되기도 하고 변화하기도 하고 소멸되기도 하는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다.”(190)

 

실존주의는 존재를 무로 돌리고, 과정 철학은 존재는 변하는 것으로 규정함으로 객관성을 무너뜨립니다. 철학의 변화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넘어 양자학으로 넘어가는 과학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철학과 과학은 이미 존재하고 자연현상에 대한 인간적 사유와 관찰에 불과합니다. 자연은 이미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른 세계관은 존재 이전의 영적 문제를 다루는 기독교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밴틸의 전체는 이러한 철학과 과학의 한계를 통찰하고 성경적 세계관만이 바른 것임을 설파했습니다. 우리는 기준은 오직 성경입니다. 철학도 좋고, 과학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인간적 사유는 유한하며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왜곡될 수 있습니다. 오직 성경만이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관점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책을 마무리하여 저자는 소비주의를 주의하라고 말합니다. 기독교까지 소비주의 안경으로 바라본다면 신조차도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기독교는 좁은 길입니다. 사람들은 편하고 넓은 길을 선택합니다. 좁은 길은 진리의 좁은 길을 걷는 것입니다. 넓은 길을 사망으로 끝이 날 것이고, 좁은 길은 생명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최재호 목사의 이 책은 기독교인들이 가져야 할 바른 세계관으로 인도하는 좋은 가이드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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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중한 일상 우리의 소중한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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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소중한 일상보혈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며 주님의 보혈이 우리의 일상에 강같이 흐르는 느낌을 받는다. 주님의 죽으심과 십자가에 대한 설교도 아닌데 십자가의 의미가 선명하게 가슴에 새겨지고 부활과 승천에 대한 설교도 아닌데 소망과 확신에 찬 믿음이 생긴다. 중생의 경험을 하면 보는 눈이 달라지고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는데 중생에 대한 메시지도 아닌데 만물과 사람과 세계가 새롭게 보이게 한다. 누군가 자신의 삶을 간증과 신앙으로 풀어낸 글은 거의 읽지 않는데 이 책은 보면서 책장을 계속 넘기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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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참 좋다. 철학에 낯선 독자라도 뭔가 좋은 이야기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에른스트 블로흐와 위르겐 몰트만을 안다면 상당히 호감을 가질 것이다. 두 사람은 2차 자료에 의거해 희미하게 더듬는 필자와 같은 독자들에게도 이 책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몰트만의 경우는 몇 권의 책을 읽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파악이 되지만, 에른스트 블로흐의 경우는 굉장히 낯선 존재다. 수년 전에 블로흐의 <자연법과 인간의 존엄성>을 읽다가 중간쯤에 포기하고 말았다. 굳이 읽어야 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한 데다 익숙하지 않은 블로흐를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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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참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교회 또는 책에서 두 주제를 같이 다루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일까요? 자신의 적이 누군지조차 몰라 엉뚱한 것과 싸우고 있는 교회의 실상 앞에 저자는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자본주의를 향한 싸움을 외치고 있습니다. 죄악이 넘치는 이 시대에 왠 자본주의를 운운하는지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우선 저자가 왜 이 주제를 꺼내드는지 자본주의에 대한 설명과 정의를 들어보겠습니다. 저자는 자본주의를 "돈이 주도하는 사회, 자본주의적인 것은 어느 영역에서든 돈이 주도적인 역할을...
교회는 가정을 회복하고, 가정은 사회와 교회를 세운다 교회는 가정을 회복하고, 가정은 사회와 교회를 세운다
교회를 세우는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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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가정을 회복하고, 가정은 사회와 교회를 세운다 “가정예배모범”(1647년)은 스코틀랜드 교회 에든버러 총회(10회)에서 결정했다(15쪽). 우리는 가정예배의 중요성을 말하지만 그 기원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장대선 목사의 <교회를 세우는 가정 예배>는 그리스도인의 행동인 가정 예배의 근원에 대해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 이전에 가정예배가 있었을까? 1세기 베뢰아에서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중세로마교회는 ‘복음선포(확실한 신앙)’가 아닌 ‘미사(맹목적 신앙)’로 종교 생활을 구성시켰다. 루터와 칼빈...
영적 전투가 열어내는 현실 너머의 현실 영적 전투가 열어내는 현실 너머의 현실
악마 다시 살려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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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다시 살려내기–영적 전투가 열어내는 현실 너머의 현실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 저는 하나님이 아니면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신비한 경험들을 몇 번 했습니다. 예언을 받아 본 적도 있었고, 신학교 졸업식 때 하나님께서 나를 콕 집어서 상을 주셨던 적도 있었습니다. 이런 얘기들을 자세하게 할 필요도 없이, 저는 소위 탈주술화(disenchanted)된 그리스도인은 아닙니다. 저는 복음주의 신앙을 받아들였고, 이제까지 쭈욱 그 신앙 속에서 살아온 사람인데, 복음주의 신앙은 탈주술화된 신앙이 아니기 ...
루터에 대한 변증 루터에 대한 변증
루터와 정치
우베 시몬-네도/조미화/CLC/강도헌 편집위원


루터에 대한 변증  고등학교를 다닐 즈음에 한국개신교회는 개인성경공부와 소그룹 성경공부 유행이 일어났었다. 수많은 성경공부 교재들이 쏟아져 나왔고, 당시 한국교회는 막 일어나기 시작한 지적인 호기심에 맞추어 다양한 경건서적들도 출판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당시 모든 교회와 성도들은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줄 알고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에 매진하였다(한국보수개신교회의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에 대해서는 차후에 평가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또한 창조과학과 같은 성경과 기독교에 ...
1999년 4월 20일, 미국 고등학교 무차별 총기난사사건 그 이후 1999년 4월 20일, 미국 고등학교 무차별 총기난사사건 그 이후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홍한별/반비/옥은숙


1999년 4월 20일, 미국 고등학교 무차별 총기난사사건 그 이후이 책은 제목 때문에 부담스러워서 최대한 늦추고 미루어 읽은 책이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용기도 없고 내용이 너무 무거울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다 읽고 났을 땐 이 책을 추천해준 동료가 고맙게 느껴졌다. 편한 책읽기보다 불편한 책읽기가 언제나 우리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이 책의 영어 부제는 A mother’s reckoning, living in the aftermath of tragedy이다. 비극의 여파와 후유증을 살아내야 하는 한 가해자...
구약의 여호와, 고대 근동의 신들과 논쟁하다 구약의 여호와, 고대 근동의 신들과 논쟁하다
고대 근동 신들과의 논쟁
존 D. 커리드 /이옥용/새물결플러스/정현욱 편집위원


제목을 오독(誤讀)했다. ‘고대 근동 신들과의 논쟁’에서 ‘논쟁’을 ‘전쟁’으로 읽었다. 필자의 뇌리 속에 남은 신화의 세계는 ‘논쟁’이 아닌 ‘전쟁’이기 때문이다. 표지 가장 윗부분에 적힌 ‘Against the Gods’도 논쟁보다는 ‘전쟁’의 의미가 강하게 읽힌다. 고대 전쟁은 나라와 민족들 간의 전쟁이 아니라 신들과의 전쟁이기 때문에다. 2011년 알렙에서 출간된 김원익의 <신들의 전쟁>을 보더라도, 고대 신화는 대부분 전쟁이야기들이 아니던가. 수년 전에 화제가 된 <신들의 전쟁>이나 <타이탄>...
로이드존스처럼 성경을 설교하자 로이드존스처럼 성경을 설교하자
마틴 로이드존스의 설교를 만나다
스티븐 로슨/황을호/생명의말씀사/정현욱 편집위원


로이드 존스, 그 이름만으로 충분한 사람이 아닐까? 아마도 청교도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로이드 존스의 이름은 이미 전설이라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로이드존스를 좋아하고 존경한다. 로이드존스는 특이하면서도 강력한 흡입력을 가진 설교자다. 이미 1981년 고인이 되었지만, 그의 설교는 여전히 살아 있고, 생동감이 있다. 로이드존스를 추종하는 사람이 어디 나뿐이었을까? Eric. J. Alexander는 로이드 존스를 살아생전에 이미 ‘기독교 세계 최고의 설교자’로 불렀다. 지금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로이드 존스의 설교를 사랑한다. 이 책...
성경, 비평에서 새롭게 읽기로 전환하기 성경, 비평에서 새롭게 읽기로 전환하기
성경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가?
데이빗 B. 가너/신호섭/세움북스


성경, 비평에서 새롭게 읽기로 전환하기성경 논쟁 시대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는 명제는 근대의 유물처럼 느껴진다. 이제 사람들은 성경을 한 권의 책으로, 한 권의 문학 작품으로 대하고 싶어 한다. 물론 그 관점이 ‘틀렸다’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그것으로 한정시키려는 저의(底意)다. 성경 논쟁은 칭만큼 뜨겁고, 교회론 만큼 예민하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시작되기도 전 성경은 고등 비평에 의해 난도질당했다. 성경의 무오성과 더불어 제기된 성경의 영감론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이성의 메스로 성경은 철저하게 해부되었다. 그러...
성경적 세계관으로 세상 읽기 성경적 세계관으로 세상 읽기
믿음은 세계관의 전쟁이다
최재호/힐링북스/정현욱 편집위원


성경적 세계관으로 세상 읽기 책을 읽는다는 것은 역사는 읽는 것이고, 타자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타자의 삶을 공유함은 곧 그 ‘사람의 삶을 사는 것’과 비슷합니다. 물론 직접 사는 것과 글로 읽는 것은 다를 것입니다. 한 권의 책은 타자의 것이기에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것과 같습니다. 비근(卑近)한 예로 친구를 생각해 봅시다. 아무리 친하다 해도 친구는 타자입니다. 목소리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삶을 해석하는 것도 다릅니다. 마음이 잘 맞는 친구라 할지라도 다른 점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물며 낯선 타자의...
종말론적 삶을 살아가는 거룩한 공동체 종말론적 삶을 살아가는 거룩한 공동체
유배된 교회
리 비치/김광남/새물결플러스/정현욱 편집위원


일단 제목부터 강하게 끌린다. 2001년에 마이클 호톤의 <세상에 포로 된 교회>(부흥과개혁사)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기회가 된다면 호튼의 책과 비치의 책을 비교하며 읽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가나안교회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라는 표지 문구가 ‘유배된 교회’만큼이나 강열하게 다가온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낯설다. 먼저 저자인 리 비치(Lee Beach)도 낯설고, ‘유배된 교회’라는 의미도 아직 낯설다. 서평을 위해 먼저 저자를 찾아보았다. 한글로 된 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영문으로 검색했다. 책의 원제는...
르네 지라르, 그는 구원자가 될 것인가? 르네 지라르, 그는 구원자가 될 것인가?
예수는 반신화다
정일권/새물결플러스/방영민 편집위원


르네 지라르, 그는 구원자가 될 것인가?  성경에서는 말한다. 말세에 나타나는 현상 중에 가장 선명한 것은 돈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더 이상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가 이 땅에서 사람의 영혼을 변화시키고 진실된 인격과 풍성한 삶을 위한 도구가 되지 못한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피조물에게는 흥망성쇠가 있는데 기독교에도 그러한 자연스런 원칙이 정해져 있는 것인가? 기독교는 이제 무능한 진리가 되어 역사의 뒷길로 사라져가는 것인가? 모든 종교는 자신의 교리와 가르침이 인류 보편...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정체성의 자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정체성의 자유
팀 켈러의 자기 망각의 자유
팀 켈러/10Publishing/김상일 편집위원


자기 망각의 자유  팀 켈러의 자기 망각의 자유(The Freedom of Self-Forgetfulness)는 아주 얇은 책입니다. 고린도전서 3:21-4:7에서 바울이 일갈하는 복음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의 관계, 그리고 그러한 정체성을 통해서 주어지는 자유에 대해서 아주 짧지만 강력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설교 원고를 옮겨놓은 것 같은 책이어서 읽기도 쉽고 짧은데다가, 그 내용은 굉장히 강력한 복음의 능력을 담고 있어서 효율로만 보면 짧은 시간에 최대의 독서 효과를 낼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
왜 신학이 필요한가? 왜 신학이 필요한가?
신학공부: 하나님과 세계
김진혁/예책/강도헌 편집위원


신학이 왜 필요할까?  가끔 목사님들 중에서도 ‘신학’과 ‘목회’는 다르다는 생각을 가지신 분들을 만나게 된다. 나 또한 과거에 그러한 생각을 잠시 가지고 있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과거에 신학의 불용(不用)을 주장(무용(無用)이 아니다)하던 나의 경우를 돌이켜 보면 ‘바른’ 목회 보다는 ‘빠른’ 목회에 집중하였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솔직히 나의 부목사 시절은 철저하게 ‘목회성공’에 집중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내목회의 성공이 곧 하나님의 성공이라는 당위적 믿음가운데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목회에 큰 도움이...
성화를 위한 거룩한 성경 읽기 성화를 위한 거룩한 성경 읽기
말씀 앞에 서는 용기
한주원/이레서원/정현욱 편집위원


성화를 위한 거룩한 성경 읽기 오래전, 교회를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의 이야기입니다. 부산에 주례동의 ㅈ교회 권사님이 운영하시는 하숙집에 이년 정도 머물렀습니다. 그 권사님은 언제나 성경을 읽으셨고, 전도에 열심인 분이었습니다. 매주 이틀 정도는 집 주변을 가가호호 방문하며 전도하셨습니다. 기존의 전도지 전도가 아닌 방문 전도에 가까웠습니다. 어느 날 권사님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정 선생도 같이 안 갈래?’ 호기심에 ‘네 그러죠’라고 대답해 버렸습니다. 전도지도 챙기고, 몇 가지 물건도 큰 가방에 넣고 출발하셨습니...
종교도 중독될 수 있다 종교도 중독될 수 있다
해로운 신앙: 종교 중독과 영적 학대의 치유
스티븐 아터번, 잭 펠톤/문희경/그리심/강도헌 편집위원


종교도 중독될 수 있다   지금 이 시대는 중독이라는 말이 너무 흔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중독’이라는 의미가 긍정적인 의미인지, 부정적인 의미인지 조차도 모호한 경우가 많다. 또한 ‘중독’이라는 단어는 때때로 자기를 합리화시키기 위한 단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중독’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강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불편한 단어이기도 하다.   ‘DSM’ 시리즈를 보면, 한국적 상황과 가장 맞지 않는 부분이 어쩌면 ‘중독’이다. 다섯 번의 개정판을 내었지만, 여전히 ‘중...
비평학이 아닌 계시 문서로 성경관을 확립하여 성경을 해석하고 복음을 전하라 비평학이 아닌 계시 문서로 성경관을 확립하여 성경을 해석하고 복음을 전하라
성경,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가?
데이빗 B. 가너/신호섭/세움북스/고경태 편집위원


비평학이 아닌 계시 문서로 성경관을 확립하여 성경을 해석하고 복음을 전하라세움북스에서 데이빗 가너가 7명이 발제한 에세이를 편집한 Did God Really Say?(2012년)를 신호섭 교수께서 <성경,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가?>라는 제목으로 번역해서 출판했다.  세움북스는 최근에 설립된 출판사로서 산뜻한 표지 디자인과 접근하기 쉬운 주제 등으로 좋은 반응을 이끌고 있다. <성경,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가?>라는 책도 디자인이 산뜻하고, 사이즈도 14×20Cm 규격으로 가볍게 느껴졌다. 그런데 처음...
삶으로 재현하는 하나님의 신비 삶으로 재현하는 하나님의 신비
신비를 엿보다: 다니엘
바바라 륭 라이/송동민/이레서원/정현욱 편집위원


이 책은 탄탄하고 명징하다. 모호한 다니엘서를 백 쪽 남짓의 작은 분량임에도 다니엘서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명료하게 풀어낸다. 다니엘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진다. 첫 부분은 1-6장이며 그 안에는 6개의 "궁정 이야기"(court tale)로 이루어져 있다. 두 번째 부분은 7-12장까지다. 이곳은 일인칭 환상들로 채워져 있다. 전반부가 개관적 서술이라면 후반부는 다니엘에 체험한 개인적 환상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우리의 신앙에 담긴 신비의 요소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질문과 씨름하는 데 놓여 있다는 것’(112쪽)이...
결말에 대한 예감 결말에 대한 예감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최세희/다산책방/옥은숙


영어 원제는 The sense of an ending이고, 한국어 제목과는 정반대의 뜻이다. ‘끝이나 결말에 대한 예감’이라는 뜻인데, 책 내용상 보면 주인공이 가졌던 예감과 그 종국은 엄청나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글 제목에서는 마치 첫 예감이 결과와 다르지 않고 딱 맞았다는 듯한 인상을 준다. 사람들은 이 제목을 보고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어떤 것에 대한 예감이고 그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거지, 예감에 딱 들어맞는 결과라? 어떤 이야기일까?’  이 책은 사람 기억의 온전치 않음과 그 왜곡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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