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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성경, 비평에서 새롭게 읽기로 전환하기

크리스찬북뉴스 | 2017.12.05 10:57
성경, 비평에서 새롭게 읽기로 전환하기 성경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가? /데이빗 B. 가너/신호섭/세움북스

성경, 비평에서 새롭게 읽기로 전환하기


성경 논쟁 시대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는 명제는 근대의 유물처럼 느껴진다. 이제 사람들은 성경을 한 권의 책으로, 한 권의 문학 작품으로 대하고 싶어 한다. 물론 그 관점이 틀렸다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그것으로 한정시키려는 저의(底意). 성경 논쟁은 칭만큼 뜨겁고, 교회론 만큼 예민하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시작되기도 전 성경은 고등 비평에 의해 난도질당했다. 성경의 무오성과 더불어 제기된 성경의 영감론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이성의 메스로 성경은 철저하게 해부되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해부된 성경은 다시 부활했고, 이전보다 더 강력한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비평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보수주의 학자들이 변호를 잘한 것일까? 필자의 좁은 소견으로는 고등 비평학의 몰락은 그들은 실제가 아닌 가설에 의존했기 때문에 더 이상 논의할 기반을 잃어버린 것 같다. 실제로 벨하우젠의 문서설을 보자. 아직도 적지 않는 학자들이 벨하우젠의 J.E.P.D. 문서설에 근거하여 성경을 다층적으로 보려 하지만 아무런 근거가 없다.  

 

또한 구약 위주의 전승 비평(Tradition Criticism)과 신약의 구술 전승(Oral Tradition)은 성경을 영감 된 계시가 아닌 인간의 작품으로서의 성경을 강조하지만 그것조차 불발했다. 이유 역시 하나다. 가설에 근거한 비평은 오래가지 못하고, 스스로 퇴보하기 마련이다. 브레바드 S. 차일즈 이후 성경 비평학은 종말을 고했다고 한다면 과언은 아닐 것이다. 아니면 전혀 새로운 시작의 전조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비평학이 절대 악인가? 아니다. 이러한 도전들은 결국 성경은 무엇이며, 성경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를 교회로 하여금 자문하게 된 것이다. 또한 벨하우젠의 문서설은 성경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제공해 주었다는 점은 무시 못한다. 어쨌든 현재 성경 비평학은 소강상태다. 하지만, 전혀 다른 측면에서 성경 논쟁이 불이 붙었다. 그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는 현대 기독교 독자들의 질문이다. 특히 80년대 이후 불어닥친 개인 성경 묵상은 거품이 빠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건실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새롭게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개인 성경 공부다. 이제 신학자들은 개인이 성경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를 제시해 주어야 하고, 성경은 현대의 독자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설명해 주어야 한다.

 

이 책은 가벼운 책이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책이다. 그것은 성경은 무엇인가를 다루기 때문이다. 제목을 <성경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가>로 정했지만, 영어 원제가 좀 더 실감 난다. 원제는 ‘Did God Really Say?’. 다만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으로 사용했다면 더 실감 나지 않을까 싶다. 결국 이 책은 성경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가에 대한 답변인 셈이다. 이 책에 들어가기 앞서 필자는 성경에 대한 네 가지 관점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싶다. 편의상 A-B-C-D 그룹으로 분류하자.

 

A그룹 : 인간의 작품일 뿐이니 교양으로 읽으면 된다.

B그룹 : 하나님이 말씀이 포함되어 있지만 오류가 가득하다.

C그룹 : 하나님은 완전하지만 인간의 손으로 기록되어 오류가 포함되어 있다.

D그룹 : 성경은 정확 무오 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오류는 없으며 완전하다.

 

성경을 단지 네 그룹으로 구분한다는 것은 극단적으로 간소화시킨 점이 없지 않다. 하지만 다양한 스펙트럼을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으니 이러한 간소화된 그룹을 염두에 두고 성경 논쟁은 이해해야 한다. 이 책은 D그룹에 해당되는 책이다. 기실 D 그룹을 대체로 근본주의자로 분류하긴, 다층적이기 때문에 획일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제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저자들은 어떤 근거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는가? 우리는 그것을 어떤 의미로 받아야 할까?

 

이 책은 미국 장로교회(PCA) 교단 39회 총회를 위해 몇몇 신학교와 학자들이 모여 발제한 소논문들이다. 발제한 여섯 명의 학자들은 스콧 올리핀트, 마이클 윌리엄스, 마이클 크루커, 로버터 W. 야브로우, 반 포이트레스, M. 프레임, 데이비드 가너 등이다. 모두 한 장씩 맡아 각기 다른 주제로 발제했다. 그렇기에 단일한 주제도 아니고, 논리적 순서를 따른 것도 아니다. 한 가지 공통된 주제는 성경은 과언 하나님의 말씀인가에 집중한다.

 

서언에서 데이비드 가너는 현시대가 역사적 정통성을 변호하는 것에 대해 맹목, 완고함, 부조리함, 고지식함, 심지어 지적인 부정직함으로 인지’(17)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심지어 복음주의 신학이 자유주의로 불렸던 것에 대해 친절을 베풀기로 작정한 듯이 보인다’(18)고 안타까워한다. 그럼에도 그저 신학적으로 방어하고 변호하기에 급급한 것은 영적 장애만 양산할 것이며 때때로 적실성 없는 구식의 고정관념과 혼란, 그리고 바닷가를 관망하는 일을 더욱 강하게 만들’(21) 것이라고 경고한다. 즉 방어는 최선이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선조들이 쌓은 토대 위에 있는 각각의 세대는 반드시 성경의 진리를 건설적으로, 효과적으로, 그리고 설득력 있게 재 진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21)

 

변호와 재진술을 위한 모임이 바로 이 책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이었다. 1장에서 스콜 올리핀트는 신앙고백적 유산을 살피면서 하나님에 대한 교리와 성경에 대한 교리를 탐색한다. 특이하게 올리핀트는 하나님을 존재의 근원, 또는 존재의 토대’(35)로 설정한다. 모든 지식의 원형은 하나님의 것이다. 인간이 인지하고 소유하는 지식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실 때만 가능하다’(37). 이처럼 모든 지식과 신학의 토대는 하나님이시다.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오직 성경만이 근원적인 권위이며 ... 무오 하며 염감된 것’(39)이다. 교리가 성경에서 가져온 것이기에 오류는 있을 수 있으나 교리가 곧 성경까지 오류가 있다는 식의 모자란 걸음’(40)을 디뎌서는 안 된다. 즉 교리는 신앙고백 차원에서 다루어지기 때문에 성경에 근거한 것이기에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마이클 윌리엄스는 2장에서 교회 진리의 기둥: 워필드의 성경의 영감 교리를 다룬다. 이곳에서 필자에게 생소한 단어를 발견한다. 그 단어는 무류성(無謬性)’이란 단어이다. 영어 ‘inerrancy’를 직역한 것이다. 저자는 B. B. 워필드의 염감교리를 살피면서 성경의 무오성과 무류성을 변호한다. 성경의 무류성은 완전 축자영감설을 지탱하는 기초다. 사실 D그룹에 속한 다양성은 축자영감에 대한 각자 다른 해석상의 스펙트럼 때문이다. 축자영감을 문학적 양식을 배제한 극단적 부류들과 유기적으로 해석하는 이들 사이의 긴장이 첨예하게 대립한다. 어쩌면 보수적 성경 영감론을 지지하는 이들은 문자적 해석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윌리엄스는 특이하게도 워필드의 성경 영감론에서 언약적’(89) 의미를 이끌어 낸다. 즉 성경은 단순히 문자적 해석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과 사람의 언약적 관계에서 읽어야 할 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결국 삶으로 반응해야 하는 책임을 안게 된다. 이러한 윌리엄스의 확장된 의견은 앞으로 성경 논쟁이 가아할 방향을 보여준다. 이제는 불필요하게 반복되는 편집축자영감의 대립으로만 한정 되어서는 안 된다.

 

반 포이트레스는 하나님과 언어’(5)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인간에게 말씀하시는가를 다룬다. 그의 주장은 약간 독특하다. 먼저 하나님은 언어의 창시자’(154)이며, ‘언어의 주인’(155)이시다. 또한 하나님의 언어는 제한이 없으며, 소통을 위해 사용된다.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언어는 삼위일체적 말씀’(153)이시다. 예를 들어보자. 하나님은 사람에게 인간들이 사용하는 들리는 언어가 아니다. ‘성령을 통해’(155) 말씀하신다. 또한 성육신한 예수를 통해 말씀하신다. 성경은 이것을 기록했기 때문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말씀하신다는 곧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로 의역될 수 있는 것이다. 포이트레스는 약간 비약된 논리로 성경의 저자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인간 저자들은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미, 즉 하나님이 이미 소유하신 의미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사건들은 언제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161)

 

예수의 생애를 기록한 복음서는 해석’(161)이다. 해석으로서의 언어는 다시 사건에 의미를 부여한다. 예수의 생애를 해석하는 복음서의 언어는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하나님에 의해 알려지게 된 의미들이며 이제 시간 역사 안에서 영감의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표현된 것’(162)이다. 복음서는 예수의 사건들이 황당하거나 무의미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가운데 성취된 사건임을 알려 준다. 우리는 반 포이트레스의 주장을 통해 복음서가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신할 수 있다.

 

결론을 내려 보자.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계속 질문을 던졌던 성경은 현대 기독교인들에게 어떤 의미인가?’이다. 저자들은 성경에 대한 관점을 바꾸어 보라고 조언한다. 1장에서는 저자의 의도와 다르게 신앙고백적 차원에서 전승사적 읽기를 발견했다. 3신약의 해체에서는 정경학적 읽기를 발견한다. 5장 하나님의 언어에서는 삼위일체론적 읽기를 발견했다. 이러한 다양한 독법은 다양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성경에 대한 의미를 풍성하게 제공해 준다고 믿는다.

 

책을 읽어 나가면서 몇 가지 중요한 결론에 다다랐다. 성경 비평학은 성경을 절대 무너뜨리지 못한다. 또한 성경 비평학을 통해 성경이 무엇인지 좀 더 명료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현재 성경 논쟁은 좀 더 넓게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전승 비평과 구술 전승에 대한 비평은 성경을 유기적으로 보도록 유도했고, 교리적 관점에 함몰된 보수주의에게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었다. 이 책 역시 매우 보수적 관점에서 성경을 옹호하지만 이전 책들에 비해 성경을 바라보는 관점의 폭이 넓어졌다. 반 포이트레스의 하나님과 언어’(5)의 경우는 이전 성경 논쟁 책에서 살펴보지 못한 관점들이다. 적절한 깊이와 성경에 대한 다양한 보수적 관점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하지만 두 가지는 아쉽다. 하나는 글의 행간 때문인지 글씨체 때문인지 명확하게 분간할 수 없으나 가독성이 떨어진다. 마치 신 속에 모래가 들어간 것처럼 약간의 불편함을 느낀다. 또 하나는 순전히 필자의 바람이지만, 미주를 각주로 처리했으면 좋겠다. 어차피 이 책은 가볍게 읽을 책은 아니다. 신학적 소양을 가진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다면 애써서 책 뒤편을 펼치며 미주를 보아야 할 수고는 안했으면 한다. 한 가지의 바람이 있다면, 성경 논쟁에 문외한인 독자들을 위해 간단한 성경 논쟁 역사를 부록으로 실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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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4월 20일, 미국 고등학교 무차별 총기난사사건 그 이후이 책은 제목 때문에 부담스러워서 최대한 늦추고 미루어 읽은 책이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용기도 없고 내용이 너무 무거울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다 읽고 났을 땐 이 책을 추천해준 동료가 고맙게 느껴졌다. 편한 책읽기보다 불편한 책읽기가 언제나 우리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이 책의 영어 부제는 A mother’s reckoning, living in the aftermath of tragedy이다. 비극의 여파와 후유증을 살아내야 하는 한 가해자...
구약의 여호와, 고대 근동의 신들과 논쟁하다 구약의 여호와, 고대 근동의 신들과 논쟁하다
고대 근동 신들과의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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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오독(誤讀)했다. ‘고대 근동 신들과의 논쟁’에서 ‘논쟁’을 ‘전쟁’으로 읽었다. 필자의 뇌리 속에 남은 신화의 세계는 ‘논쟁’이 아닌 ‘전쟁’이기 때문이다. 표지 가장 윗부분에 적힌 ‘Against the Gods’도 논쟁보다는 ‘전쟁’의 의미가 강하게 읽힌다. 고대 전쟁은 나라와 민족들 간의 전쟁이 아니라 신들과의 전쟁이기 때문에다. 2011년 알렙에서 출간된 김원익의 <신들의 전쟁>을 보더라도, 고대 신화는 대부분 전쟁이야기들이 아니던가. 수년 전에 화제가 된 <신들의 전쟁>이나 <타이탄>...
로이드존스처럼 성경을 설교하자 로이드존스처럼 성경을 설교하자
마틴 로이드존스의 설교를 만나다
스티븐 로슨/황을호/생명의말씀사/정현욱 편집위원


로이드 존스, 그 이름만으로 충분한 사람이 아닐까? 아마도 청교도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로이드 존스의 이름은 이미 전설이라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로이드존스를 좋아하고 존경한다. 로이드존스는 특이하면서도 강력한 흡입력을 가진 설교자다. 이미 1981년 고인이 되었지만, 그의 설교는 여전히 살아 있고, 생동감이 있다. 로이드존스를 추종하는 사람이 어디 나뿐이었을까? Eric. J. Alexander는 로이드 존스를 살아생전에 이미 ‘기독교 세계 최고의 설교자’로 불렀다. 지금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로이드 존스의 설교를 사랑한다. 이 책...
성경, 비평에서 새롭게 읽기로 전환하기 성경, 비평에서 새롭게 읽기로 전환하기
성경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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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세계관으로 세상 읽기 성경적 세계관으로 세상 읽기
믿음은 세계관의 전쟁이다
최재호/힐링북스/정현욱 편집위원


성경적 세계관으로 세상 읽기 책을 읽는다는 것은 역사는 읽는 것이고, 타자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타자의 삶을 공유함은 곧 그 ‘사람의 삶을 사는 것’과 비슷합니다. 물론 직접 사는 것과 글로 읽는 것은 다를 것입니다. 한 권의 책은 타자의 것이기에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것과 같습니다. 비근(卑近)한 예로 친구를 생각해 봅시다. 아무리 친하다 해도 친구는 타자입니다. 목소리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삶을 해석하는 것도 다릅니다. 마음이 잘 맞는 친구라 할지라도 다른 점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물며 낯선 타자의...
종말론적 삶을 살아가는 거룩한 공동체 종말론적 삶을 살아가는 거룩한 공동체
유배된 교회
리 비치/김광남/새물결플러스/정현욱 편집위원


일단 제목부터 강하게 끌린다. 2001년에 마이클 호톤의 <세상에 포로 된 교회>(부흥과개혁사)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기회가 된다면 호튼의 책과 비치의 책을 비교하며 읽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가나안교회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라는 표지 문구가 ‘유배된 교회’만큼이나 강열하게 다가온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낯설다. 먼저 저자인 리 비치(Lee Beach)도 낯설고, ‘유배된 교회’라는 의미도 아직 낯설다. 서평을 위해 먼저 저자를 찾아보았다. 한글로 된 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영문으로 검색했다. 책의 원제는...
르네 지라르, 그는 구원자가 될 것인가? 르네 지라르, 그는 구원자가 될 것인가?
예수는 반신화다
정일권/새물결플러스/방영민 편집위원


르네 지라르, 그는 구원자가 될 것인가?  성경에서는 말한다. 말세에 나타나는 현상 중에 가장 선명한 것은 돈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더 이상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가 이 땅에서 사람의 영혼을 변화시키고 진실된 인격과 풍성한 삶을 위한 도구가 되지 못한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피조물에게는 흥망성쇠가 있는데 기독교에도 그러한 자연스런 원칙이 정해져 있는 것인가? 기독교는 이제 무능한 진리가 되어 역사의 뒷길로 사라져가는 것인가? 모든 종교는 자신의 교리와 가르침이 인류 보편...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정체성의 자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정체성의 자유
팀 켈러의 자기 망각의 자유
팀 켈러/10Publishing/김상일 편집위원


자기 망각의 자유  팀 켈러의 자기 망각의 자유(The Freedom of Self-Forgetfulness)는 아주 얇은 책입니다. 고린도전서 3:21-4:7에서 바울이 일갈하는 복음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의 관계, 그리고 그러한 정체성을 통해서 주어지는 자유에 대해서 아주 짧지만 강력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설교 원고를 옮겨놓은 것 같은 책이어서 읽기도 쉽고 짧은데다가, 그 내용은 굉장히 강력한 복음의 능력을 담고 있어서 효율로만 보면 짧은 시간에 최대의 독서 효과를 낼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
왜 신학이 필요한가? 왜 신학이 필요한가?
신학공부: 하나님과 세계
김진혁/예책/강도헌 편집위원


신학이 왜 필요할까?  가끔 목사님들 중에서도 ‘신학’과 ‘목회’는 다르다는 생각을 가지신 분들을 만나게 된다. 나 또한 과거에 그러한 생각을 잠시 가지고 있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과거에 신학의 불용(不用)을 주장(무용(無用)이 아니다)하던 나의 경우를 돌이켜 보면 ‘바른’ 목회 보다는 ‘빠른’ 목회에 집중하였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솔직히 나의 부목사 시절은 철저하게 ‘목회성공’에 집중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내목회의 성공이 곧 하나님의 성공이라는 당위적 믿음가운데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목회에 큰 도움이...
성화를 위한 거룩한 성경 읽기 성화를 위한 거룩한 성경 읽기
말씀 앞에 서는 용기
한주원/이레서원/정현욱 편집위원


성화를 위한 거룩한 성경 읽기 오래전, 교회를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의 이야기입니다. 부산에 주례동의 ㅈ교회 권사님이 운영하시는 하숙집에 이년 정도 머물렀습니다. 그 권사님은 언제나 성경을 읽으셨고, 전도에 열심인 분이었습니다. 매주 이틀 정도는 집 주변을 가가호호 방문하며 전도하셨습니다. 기존의 전도지 전도가 아닌 방문 전도에 가까웠습니다. 어느 날 권사님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정 선생도 같이 안 갈래?’ 호기심에 ‘네 그러죠’라고 대답해 버렸습니다. 전도지도 챙기고, 몇 가지 물건도 큰 가방에 넣고 출발하셨습니...
종교도 중독될 수 있다 종교도 중독될 수 있다
해로운 신앙: 종교 중독과 영적 학대의 치유
스티븐 아터번, 잭 펠톤/문희경/그리심/강도헌 편집위원


종교도 중독될 수 있다   지금 이 시대는 중독이라는 말이 너무 흔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중독’이라는 의미가 긍정적인 의미인지, 부정적인 의미인지 조차도 모호한 경우가 많다. 또한 ‘중독’이라는 단어는 때때로 자기를 합리화시키기 위한 단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중독’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강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불편한 단어이기도 하다.   ‘DSM’ 시리즈를 보면, 한국적 상황과 가장 맞지 않는 부분이 어쩌면 ‘중독’이다. 다섯 번의 개정판을 내었지만, 여전히 ‘중...
비평학이 아닌 계시 문서로 성경관을 확립하여 성경을 해석하고 복음을 전하라 비평학이 아닌 계시 문서로 성경관을 확립하여 성경을 해석하고 복음을 전하라
성경,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가?
데이빗 B. 가너/신호섭/세움북스/고경태 편집위원


비평학이 아닌 계시 문서로 성경관을 확립하여 성경을 해석하고 복음을 전하라세움북스에서 데이빗 가너가 7명이 발제한 에세이를 편집한 Did God Really Say?(2012년)를 신호섭 교수께서 <성경,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가?>라는 제목으로 번역해서 출판했다.  세움북스는 최근에 설립된 출판사로서 산뜻한 표지 디자인과 접근하기 쉬운 주제 등으로 좋은 반응을 이끌고 있다. <성경,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가?>라는 책도 디자인이 산뜻하고, 사이즈도 14×20Cm 규격으로 가볍게 느껴졌다. 그런데 처음...
삶으로 재현하는 하나님의 신비 삶으로 재현하는 하나님의 신비
신비를 엿보다: 다니엘
바바라 륭 라이/송동민/이레서원/정현욱 편집위원


이 책은 탄탄하고 명징하다. 모호한 다니엘서를 백 쪽 남짓의 작은 분량임에도 다니엘서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명료하게 풀어낸다. 다니엘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진다. 첫 부분은 1-6장이며 그 안에는 6개의 "궁정 이야기"(court tale)로 이루어져 있다. 두 번째 부분은 7-12장까지다. 이곳은 일인칭 환상들로 채워져 있다. 전반부가 개관적 서술이라면 후반부는 다니엘에 체험한 개인적 환상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우리의 신앙에 담긴 신비의 요소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질문과 씨름하는 데 놓여 있다는 것’(112쪽)이...
결말에 대한 예감 결말에 대한 예감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최세희/다산책방/옥은숙


영어 원제는 The sense of an ending이고, 한국어 제목과는 정반대의 뜻이다. ‘끝이나 결말에 대한 예감’이라는 뜻인데, 책 내용상 보면 주인공이 가졌던 예감과 그 종국은 엄청나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글 제목에서는 마치 첫 예감이 결과와 다르지 않고 딱 맞았다는 듯한 인상을 준다. 사람들은 이 제목을 보고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어떤 것에 대한 예감이고 그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거지, 예감에 딱 들어맞는 결과라? 어떤 이야기일까?’  이 책은 사람 기억의 온전치 않음과 그 왜곡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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