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죽음 이후의 새로운 삶
사람들은 미지의 세계로서의 죽음에 관해 알고 싶어 한다. 미지의 세계를 알아가는 일은 우리의 삶을 풍족하고 조금은 더 명확하게 해준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 많다. 사후세계 역시 이 가운데 하나다. 인류 역사를 통해 사후세계는 끊임없이 논의되어왔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영혼에만 관심을 기울였을 뿐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확실히 볼 수 있는 육체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해왔다. 현세에서의 삶을 마감한 시신이 이후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화제에 올리는 것조차 꺼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상 주변에서 만나고 있으면서도, 죽음 이후 우리 육신의 행로에 대해서는 미지의 세계일 수밖에 없다.
죽음에 대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다한 후 우리의 육신이 어떻게 되는지는 정작 잘 알지 못한다. “용감하게도 메리 로취는 사후에 경직이 일어나 딱딱해진 시체라는 의미의 ‘스티프 Stiff’를 제목으로 이러한 터부에 도전하고 있다. 저자는 죽음이라는 슬프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는 않았다. 죽은 후 사체가 어떻게 처리되는지에 대해 재치 넘치는 필체로 흥미롭게 그렸을 뿐이다”(이원택/ 추천의 말 중에서).
<스티프>는 영혼이 아니라 우리 몸이 겪게 되는 사후세계이다. 이 부분에 관해 우리는 명확한 사실을 목격할 수 있다. 메리 로취는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우리가 터부시해왔던 사후 경직된 딱딱한 시체에 대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여기에 역사적, 과학적 사실을 덧붙여 흥미롭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러면 우리 몸의 사후세계를 논의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저자는 <스티프>를 쓰기 전 '이미 알고 있는 세계와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여행'을 떠났고 그에 대한 글을 썼다. 그러나 남극을 세 번이나 갔다온 뒤로는 더 이상 '미지'라 부를 만한 곳이 없었다. 결국 가까운 곳에서 '낯선 곳을 찾아 틈새를 뒤졌다.' 그녀는 과학이, 특히 죽음과 관련된 과학이 "낯설고 생소하며 혐오스럽지만 그만큼 마음을 끄는 힘이 있다"고 말한다. "남극대륙만큼 아름답지는 않지만 낯설고 흥미롭기는 남극대륙 못지않으며, 그곳만큼 이야기를 나눌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죽어 있는 시체에게는 새로운 사건이나 그렇다고 달리 할 일도 없지 않을까?
흔히 시체가 바닥에 등을 깔고 누워 있기만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분명 그렇지 않다. 저자가 그 유명한 익살과 재치 넘치는 문체로 상세히 설명한 것처럼, 시체는 지난 2천 년 동안 살아 있는 자들 옆에서 과학, 종교, 의학발전의 역사에 큰 획을 그어왔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상상할 수조차 없는 기괴한 과학실험에 참가하기도 하고, NASA의 우주왕복선에도 탑승했으며, 심장이식에서 성전환수술에 이르기까지 모든 외과수술법이 개발되는 현장에서 의사들 옆에서 나름대로 조용한 방식으로 의학사를 만들어왔다.
메리 로취는 이 책에서 해부실습실뿐만 아니라 중세 및 19세기 유럽에서 인간을 재료로 한 의약품, 테네시 대학교의 인체부패 연구소(일명 시체농장), 어느 성형수술 실습실, 인간퇴비라는 미래의 무릉도원을 논의한 어느 스칸디나비아 장의사협의회에 이르기까지 우리 일반인들은 전혀 알 수 없었던 세계로 안내한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체는 우리의 슈퍼 영웅이다. 이들은 불길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높은 건물에서 떨어지고 자동차에 올라 건물 벽과 정면 충돌하기도 한다. 이들에게 총을 쏘고 모터보트로 허벅지를 가르고 지나가도 이들은 괴로워하지 않는다. 머리를 떼어내도 건강에 지장이 없다. 이들은 동시에 여섯 군데에 있을 수도 있다. 이들은 슈퍼맨이다. 이런 능력을 인류를 위해 쓰지 않는다면 얼마나 아까울까”(10-11쪽).
저자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다. 저널리스트들이 다 그렇듯 그도 엿보는 취미가 있다. 그는 그가 흥미롭다고 느끼는 것에 대해 글을 썼다. 그에 따르면 “죽음과 관련된 과학은 특히 낯설고 생소하고 혐오스럽지만 그만큼 마음을 끄는 힘이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그가 여행했던 곳이 남극대륙만큼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낯설고 흥미롭기는 남극대륙 못지 않으며, 그곳만큼이나 나눌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의 1장은 죽은 자를 상대로 하는 수술 연습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인간의 머리는 통구이용 닭과 크기나 무게가 비슷하다”-이것이 첫 문장이다. 그는 머리가 오븐용 쟁반에 놓인 것을 보았다. “모두 40개의 머리가 얼굴이 천장을 향하도록 놓여 있다. 이 머리들은 성형외과의들의 연습용이다. 머리 하나당 두 사람씩이다.” 죽은 사람에 대한 수술이라도 언제나 깔끔하고 가지런하게 이루어진다. 갈고리와 당김기가 마치 식탁 위에 정확히 제자리에 놓인 나이프와 포크처럼 산뜻한 느낌마저 풍긴다. 모든 게 손님을 맞을 준비가 끝난 연회장 분위기이다(20쪽).
의사들은 대부분 의과대학 1년차 시절에 해부실습실에서 사체를 물건으로 바라보는 방법을 완전히 익힌다. 인간처럼 생긴 물건을 앞에 두고 칼로 자르고 창자를 끄집어낼 학생들이 물건화하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해부실습실 담당자들이 사체를 거즈로 싸놓는 일도 종종 있다. 실습을 진행하는 동안 학생들이 부분부분 벗겨가며 서서히 익숙해지게 하는 것이다. 사체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은 사람과 너무나 닮았다는 사실이다. 머리, 더 정확히 말해 얼굴은 특히 마음을 불안하게 만든다.
“기증된 사체들의 사회에서는 버리는 부분이 조금도 없다. 이 머리들은 오늘 이 자리에 모여 안면성형을 받기 전 월요일에는 코 성형 실습실에서 코 성형시술을 받았다고 설명한다”(26쪽).
2장의 제목은 ‘해부학의 범죄’이다. 인체해부학의 발단은 기원전 300년경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였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의료 종사자들이 인체가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알아내는 목적으로 죽은 사람을 해부해도 좋다고 생각한 최초의 지도자였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미라는 만드는 이집트의 오랜 전통도 있었다. 미라는 만드는 과정에서 사체를 갈라 장기를 꺼내기 때문에 왕실과 백성들 모두 이런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또 한 가지 배경은 프톨레마이오스가 개인적으로 해부에 대해 남다른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의사들에게 처형된 죄수들의 사체해부를 장려하는 칙령을 발표했을 뿐만 아니라, 그런 해부가 있는 날이면 그 스스로가 작업복 차림에 칼을 들고 해부실에 나타나 전문가들 곁에서 베고 찌르는 일에 한몫 끼었다”(43쪽).
‘해부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헤로필루스는 인간의 신체를 해부한 최초의 의사였다. 그는 정력적으로 과학에 헌신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인간애와 상식보다 열의가 앞선 나머지, 살아있는 죄수들을 해부했다고 한다. 한 기록에 따르면 그는 600명의 죄수를 산 채로 해부했다고 한다.
16세기부터 1836년 해부법이 통과될 때까지 영국에서 합법적으로 해부할 수 있는 사체는 처형된 살인자들의 시체뿐이었다. 1752년 영국에서는 해부가 살인자들에게 내리는 형벌의 하나로 채택되었다.
합법적으로 해부에 쓸 수 있는 사체가 부조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영국과 초창기 미국의 해부학교들은 불미스러운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고 말았다. 당시 파리에서는 시립병원에서 죽은 빈민들 가운데 찾아가는 사람이 없는 시체를 해부에 이용할 수 있었다.
극단적인 방법이 동원되기 시작했다. 갓 죽은 가족을 오전 한나절 동안 해부학 실험실로 옮겨 놓았다가 교회 묘지로 옮겨가는 이야기가 새삼스럽지 않게 되었다. 17세기 외과의사이자 해부학자였던 윌리엄 하비는 인체의 순환계통을 발견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직업에 대한 열정으로 아버지와 누이를 해부한 사람이다(48쪽).
그런가하면 돈을 주고 사람을 사서 무덤을 파게 한 해부학자들도 있다. 소위 ‘부활업자’들 대다수는 무덤을 파는 인부나 해부실습실 조교로 일하다가 다른 조직과 연결되어 벌이에 나선 사람들이었다. 보수는 연간 대략 1,000달러 정도 됐는데, 비숙련 노무자들이 일반적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의 5배 내지 10배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덤으로 여름철은 내내 휴가를 즐길 수도 있었다.
뇌사(腦死)환자에게서 장기를 떼어내는 과정을 묘사하면서 저자는 이렇게 묘사한다. "심장이 벌렁거리는 사체를 두고 사람들은 혼란을 느낀다. 죽음을 어떻게 정의할까, 또 정신과 영혼이 사라지고 시신만 남는 순간은 정확하게 어느 때일까를 둘러싼 수세기간 혼란의 연장선이다."(192쪽) 따라서 면벽(面壁)수행이 아니라 '사체를 앞에 둔 수행'이 이 책이다. 종교적 높이의 깨달음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죽음이란 분명 슬프면서도 무거운 주제이다. 그러나 <스티프>에서는 개인적인 감정이 배제된 채 그들(시체)이 해온 업적에 대해 흥미로우면서 때로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들여다보게 만들어 준다. 시체들이 어디쯤 가고 있는지, 무슨 꿍꿍이를 벌이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놀라운 이야기는 마치 우리 인간의 사후세계가 아닌 제3세계를 구경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무조건 재미있고 흥미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죽음이란 결코 삶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