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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님
선한 목자/케네스 E. 베일리/류호준-양승학/새물결플러스/조영민 편집위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 ”(시23:1)
시편 23편의 고백은 그 어떤 성경의 다른 고백보다도 아름답고 성도의 삶이 어떤 것인지, 또 그 성도의 삶을 지키시는 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보여주는 최고의 고백이다. 저자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예수님에 대한 이미지 중에 하나가 ‘선한 목자’에 대한 이미지이었음을 말하며, 그 이미지의 회복을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 성경 안에서 ‘선한 목자’와 관련된 내용들을 정확하게 드러내고, 신구약 본문 속에서 이 이미지가 어떻게 표현되고 강화되어지는지를 풀어가며, 그것의 구체적 의미와 적용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의 최고의 강점은 그가 이스라엘의 목자를 ‘안다’는 것이다. 책을 읽어서도, 관광 가이드를 동반하고 만나서도 아닌, 그 근동의 목자들 속에서 자랐고 살았기 때문에 아는 ‘살아 있는 지식’이었다. 그는 중동에서 40여년을 살며, 그 가운데 20년은 신학교에서 신약을 가르치고 있는 학자다. 그래서인지 그의 글은 근동에서 살지 않고는 알기 어려운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근동의 중심이 된 언어들, 그리고 살아있는 묘사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지리학적인 내용들을 가지고 글을 구성한다. 한편 한편의 글들이 촘촘하게 짜인 이 정교한 이야기들은 ‘선한목자’에 대한 이미지를 회복하는 것의 필요를 말했던 저자의 서문의 목적을 충분히 담아내는 것 같다. 글을 읽는 가운데 여러 부분에서 무릎을 칠 수 밖에 없었다. 아마도 나의 시편 23편 설교는 이 책을 읽기 전과 후로 나뉘지 않을까 한다.
저자의 시편 23편의 설명은 이 책 전체의 압권이며 동시에 전제이다. 저자는 책을 읽고 있는 독자들의 손을 잡고 유대 광야로 들어가 양 떼와 함께 그 무리 가운데 서도록 이끌어 낸다. 그 광야를 보게 하고 그 광야의 소리들을 듣게 하고, 그 양떼 속에서 양떼와 함께 목자의 등을 바라보게 한다. 저자는 성경에 쓰여 있는 원어의 한 단어 한 단어를 살피는 분석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분석은 분석자체를 위함이 아니라 더 선명하게 정말 처음 그 메시지 앞에 섰을 이들이 느끼는 방식으로 본문을 읽게 하기 위한 수고였다. 그리고 그가 그려낸 그림은 이전에 만나본 어떤 그림보다 더 선명하게 ‘선한 목자’의 주목하게 만들었다.
양의 생태에 대한 설명, 근동의 목자가 보이는 기본적인 태도, 광야가 가지고 있는 속성, 유대의 기후가 만들어내는 목양의 독특한 방식, 그리고 히브리어 단어(혹은 아람어)가 그 상황에 가지고 있는 독특한 용법들 ... 저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 사용해서 이 시편 23편의 이야기가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인지, 그리고 왜 이 이야기가 그토록 이후 교회에게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책을 읽는 독자요, 매주 설교를 하는 설교자의 입장에서 과장하여 말하면, 이 한편의 이야기만으로도 이 책을 사야할 이유는 충분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지 않는다.
“ 유감스럽게도 서구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시편 23편의 심장인 잃어버린 양의 이미지를 잃어버렸다. 시편의 이런 이미지를 복원하는 것은 시편을 선한 목자 – 잃어버린 양에 대한 성경적 이야기의 나머지 부분들과 재 연결시키는 물꼬를 트게 한다.” (62)
저자는 이 시편 23편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더 큰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한다. 이 ‘선한 목자’에 대한 시편 23편의 이야기가 어떻게 발전되어 가는지? 그리고 이것이 신약에 와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자신과 연결을 시키셨는지? 그리고 초대교회가 이것을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게 되었는지 까지로 의미를 확대해 가는 흥미진진한 여행으로 독자들을 초청하는 것이다. 예레미야와 에스겔, 스가랴의 입을 통해 재해석되어지고 심화되어지는 ‘선한목자’에 대한 이미지의 확장, 사복음서 각권에 담겨 있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선한목자’와 관련된 비유들이 갖고 있는 ‘선한 목자이신 예수’의 자기소개의 내용들, 그리고 초대교회를 섬기는 이들 가운데 마땅히 품어야 할 본으로 소개되는 ‘선한 목자’에 대한 그림을 연어이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저자가 하는 모든 해석에 다 동의할 필요는 없다. 저자가 보여주고 싶은 것이 처음부터 논리적 치밀함으로 서로의 연관성을 찾아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저자의 목적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지배적 이미지 중에 하나였던 ‘선한 목자’와 관련된 이미지를 회복시키고 싶은 것이었고, 그것이 목적이었다면 저자는 충분히 그것을 해냈기 때문이다. 글의 많은 부분에서 공감했고, 어떤 부분에서는 감탄했다. 하나의 이미지로 전체 성경을 관통하는 저자의 이야기가 너무 좋았고, 그래서 어린 아이마냥 그 앞에서 그 이야기들을 듣다보니... 예수님이 더 많이 좋아졌다. 그럼 된 거 아닌가 ?
선한 목자이신 우리 예수님과 더 많은 시간을 더 온전히 누리며, 그 분의 뒤를 따라 선한 목자가 되기를 소원해 보는 복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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