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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주님 앞에 경외함으로 엎드리는 자
엎드림/매트 레드맨/죠이선교회/[송광택]
“우리는 매우 자주, 하늘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기뻐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고, 그분의 엄위로우시고 전능하신 임재 앞에 경외함으로 서 있다는 사실은 잊어버리는 듯 하다.”-달린 첵(호주 힐송교회, 세계 최고의 워십리더)
본서에 따르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하나님에 대한 친밀함, 이 둘 모두를 놓치지 않는 경배를 배워야 한다. 루이 기글리오(패션 컨퍼런스 책임자)는 말하기를, 경배의 자리에서 우리는 사랑 안에 있는 동시에 경외감을 느끼며, 낮게 머리를 숙였으면서도 높이 들어올려지는 것을 경험한다고 했다.
엎드림은 크신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나온다
저자에 따르면 고개를 들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주님을 경배하며 고개를 숙이고 땅에 엎드리게 된다. 우리가 엎드려 경배하는 것은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주님을 경배하며 머리를 조아린다. 우리가 경배하는 자세는 우리 자신과 하나님에 관하여 무언가를 말해준다. 두 손을 드는 것은 우리 영혼이 찬양 가운데 높이 뻗어나가고 있다는 것과 고귀하신 하나님이 그렇게 높임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심을 나타낸다.
기쁘게 춤을 추는 것은 감사로 충만한 마음을 대변한다. 동시에 그것은 우리가 흠모하고 찬양하는 그 분이 이 기쁨의 근원이 되신다는 고백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할 때,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행동은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반영하는 열쇠다(21쪽). “하나님께서 계시하시고 우리는 반응한다. 하나님께서 비추시고 우리는 반사한다.” 엎드려 경배하는 것은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에 감격하는 마음에서 흘러나온다. 엎드려 경배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낮아진 겸손한 심령의 자세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전적인 항복으로 낮추는 것이다.
요한 계시록을 보면 사도 요한은 영광 중에 계신 예수님을 대면한다. 에수님의 눈은 불꽃같이 빛나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처럼 찬란하게 빛난다. 주님을 뵈올 때 요한은 “그 발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되었다(계 1:17). 요한 계시록 7장에서도 엎드린 예배자들을 볼 수 있다.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계 7:11).
에스겔도 하늘이 열리는 다른 경험을 기록하고 있다. 선지자 에스겔은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을 본다. "그 사면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곧 엎드리어 그 말씀하시는 자의 음성을 들으니라."
우리가 함께 모일 때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로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예배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한다. 우리의 예배에는 기쁨의 외침이 있어야 한다. 동시에 하나님 앞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엎드리는 헌신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온전한 경배를 드리기 위해 언제나 이 두가지 요소를 기억해야 한다.
경배는 경이에 뿌리를 박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우리가 엎드려 경배하는 것은 크신 하나님을 크신 하나님으로 높이는 것이다. 엎드림은 크신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나온다. “경배는 경이에 뿌리를 박고 있다”(35쪽). 경이감없이 경배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경배를 경배되게하는 것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한 놀라움이요 경이감이다. 하나님에 대한 독특한 인식이 있어야 바른 경배가 이루어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저자에 의하면 하나님은 온전히 순전하시고 유일하시고 독특하시다. 하나님은 어느 누구도 그 무엇도 감히 가까이할 수 없는 분이시며, 지극히 높으시고 영광 중에 거하시는 분이시다. 아무도 그 능력을 알지 못하고 그 지혜를 측량할 수 없다. “그분은 전적으로 영광스러우시다. 그 광채에 필적할 것이 없고, 그 능력에 비길 것이 없다. 그분은 인간 이성의 한계 너머에, 가장 높은 과학적 지성이 닿을 수 있는 곳보다도 훨씬 높은 곳에 계신다. 다함이 없고 측량할 수가 없으며 깊이를 헤아릴 수도 없다. 영원하고 불멸하시며 눈에 보이지 않으신다. 가장 높은 산봉우리와 가장 깊은 협곡도, 선포된 그분의 위대함의 미약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하늘의 반짝이는 별들도 하나님의 충만한 영광의 지극히 작고 희미한 표상에 불과하다”(35, 36쪽). !
우리는 우리 생각보다 작고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보다 더 크시다. 지구에서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별은 약 6천개다. 어디서든 한 번에 볼 수 있는 별의 개수는 2천 개 뿐이다. 은하계만 해도 수천억 개의 별이 있다. 현재 천문학자들은 다른 은하계가 최소 1,400억 개가 더 있다고 생각한다. 그 중 상당수가 우리 은하계보다 규모가 크다고 한다. 과학자들의 눈에 보이는 우주에만, 전세계 모든 해변과 사막에 있는 모래알 개수보다 10배는 더 많은 별들이 있다고 추산한다.
하나님의 놀라운 손길은 그분이 만드신 만물의 가장 작고 세밀한 부분에서도 발견된다. 19세기 말에 태어난 윌슨 벤틀리는 평생 눈을 연구했다. 이 ‘눈송이 박사’는 “이 세상에 똑같은 눈은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벤틀리는 이 ‘깨어지기 쉬운 보석’을 연구하고 사진을 찍는데 거의 50년 평생을 헌신했다. 눈 결정을 찍은 5천 장의 사진을 관찰한 그는 ‘순간의 경이로운 아름다움’이라고 부르며 경탄했다. “현미경 아래에서 나는 눈송이들이 아름다운 기적임을 발견했다... 결정 하나하나는 디자인의 걸작이었고, 그 어떤 디자인도 결코 반복되지 않았다”(108쪽).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피조물의 노래는 도처에 널려 있다.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말하기를, "우리가 우주의 음악을 듣고서 그 아름다운 하모니를 통하여 그 음악의 작곡자를 사랑하게 되는 것, 이또한 창조자의 목적의 일부이다"라고 했다. 하늘 위의 별 하나하나, 땅에 내리는 눈송이 하나하나, 언덕과 들판, 강과 바다, 천군천사들, 살아있는 모든 피조물들이 우주적 찬양과 경배에 참여하고 있다. 시편 19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 19:1). 로마서 1장 20절은 같은 주제를 이렇게 말한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우리가 경배하는 하나님은 신비로 옷을 입으셨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우주와 자연만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찬미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솜씨에 대한 경이감을 갖게 된다. 우리는 인간의 몸에서도 하나님의 정밀한 솜씨를 볼 수 있다. 우리의 심장은 하루에 약 8200리터의 피를 퍼올린다. 우리의 뇌는 1초에 1억개의 자료를 처리할 수 있다. 우리의 귀는 서로 다른 30만 개 이상의 음을 들을 수 있다. 우리의 눈은 약 8백만 가지의 색상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다. 우리 몸의 근육 600개를 모두 한 방향으로 잡아당긴다면, 약 25톤의 무게를 들어올릴 수 있다. 하나님은 크신 분이다. 우리가 엎드려 경배하는 것은 크신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나온다.
“우리가 경배하는 하나님은 신비로 옷을 입으셨다. 그분은 드러내시며 또한 감추신다. 초대하시며 또한 숨으신다”(55쪽). 쉬시지만 결코 주무시지 않는, 우레와 같은 소리를 발하시며 또한 속삭이는, 두려워 떨게 하시며 또한 친구가 되시는, 그분의 진노는 잠깐이나 은총은 평생 지속되는 그런 하나님이시다. 왕들의 하나님이며 거지들의 하나님, 상류층의 하나님이며 극빈층의 하나님, 고아들의 아버지요, 우리의 약함을 통해 일하시는 분, 거룩한 불꽃으로 타오르시나, 상쾌한 은혜가 충만한 분.
세계가 주목하는 예배자이자 작사작곡가인 저자는 “오늘날 교회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반향해내는 노래와 음악들이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예배하는 공동체로 모일 때마다 하나님의 본성과 성품의 이런 면들을 반영하는 길들을 찾아내야 한다. 노래가 그 한 방법이지만 이것은 단지 음악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는 총체적으로 다가가야 한다. “우리는 거룩한 신적 대면을 위해 우리 마음을 준비하고 있는가? 부끄럽게도 나는 예배팀과 급히 기도를 하고 평상시와 별다를 것 없는 마음자세로 하나님 앞에 설 때가 매우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패스트푸드 영성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예배는 신비와 경이로 뚜렷이 구별되어야만 하는 영적인 제의(祭儀)인 것이다”(60쪽).
하나님은 높고 거룩한 방법으로 우리를 만나신다
저자는 독자에게 이렇게 묻는다: “오늘날 우리의 모임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성실한 제물로 드리도록 돕고 잇는가? 우리의 경배는 우리가 바라고 나아가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그분께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빛 가운데, 순전한 마음으로 나아가야 함을 분명히 전달하고 있는가? 우리의 노래와 우리의 예배 순서는 사람들을 격려하며, 경외함과 숭모함으로 그분 가까이 나아가도록 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경배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길들을 확보하고 있는가?”(62쪽). 마르바 던(Marva J. Dunn)은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하였다: “문제는 우리의 예배 시간이 우리를 하나님의 광채 가운데 침잠케 하느냐이다.”
탁월한 영성작가 존 파이퍼(John Piper)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은 높고 거룩한 방법으로 우리를 만나신다. 그분은 낮고 연약한 방법으로 우리를 만나신다. 그분은 천둥이 치듯 웅장하고 영화로운 방법으로 우리를 만나신다. 그분은 고요하고 친밀한 방법으로 우리를 만나신다. 그분은 복잡한 방법과 단순한 방법, 진노하시는 방법과 자비로운 방법으로 우리를 만나신다”(63쪽).
저자에 의하면, 위르겐 몰트만의 말했듯이,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진노와 관련해서만 하나님의 자비를 알 수 있다. 즉 우리가 그분의 진노를 인식하지 못하는 한 자비를 온전히 깨닫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성경의 진리에는 매우 많은 역설이 있는데, 이러한 하나하나의 아름다운 긴장감이야말로 경배의 신비를 세우는 본질적인 요소들이다.
성경에 나타난 모든 예배자들은 하나님의 엄위하심을 목격한 자들이요 경외함으로 엎드린 자들이다. 훗날 우리는 영원한 나라에서 주님을 경배하며 엎드린 우리 자신을 보게될 것이다. 온 우주의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경배의 마음과 자세를 배우려는 이들에게 본서를 강력 추천한다.
저자 매트 레드맨(Matt Redman)
매트 레드맨은 현재 온 세계가 관심을 갖고 있는 예배자이며,예배 인도자이다.그는 1993년부터 최근까지 "호울 서바이버"(Soul Survivor)에서 예배 인도자로 섬기고 있었고,새로운 세대의 경배 문화를 이끌어 갈 분명한 차기 지도자이다. 매트 레드맨의 노래들은 열정적이고 순수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아는 찬양들이다.정말로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찬양 이 무엇인지 그는 알고 있다.그는 많은 곡을 쓰면서 사람들이 좀더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로 나아가도록 돕고 있으며,교회에서 사 역하는 새로운 예배 인도자들을 이끌고자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특히 "The Heart of Worship"은 수많은 예배 인도자들을 감동시 킨 귀한 고백의 곡이다.그의 음반 속에 담겨진 강력한 메시지와 젊은이들과 함께 호흡할수 있는 찬양들은 거의 죽어 가는 많은 젊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새로운 바람과 놀라운 예배의 부흥을 경험케 하였다. 그는 현재 heartofworship.com의 편집자로 있으며,아내 베스(Beth) 그리고 딸 메이지(Maisey)와 함께 영국 잉글랜드 이스트서식 스 주 브라이턴(Brighton) 근처에서 살고 있다. [Discography] 1997 The Friendship and the Fear 1998 Intimacy 2000 The Father"s Song 2001 Passion for Your Name/Wake Up My Soul(2CD) 2002 Where Angels Fear to Tread - 이 외에 그가 참여한 다수의 집회 실황 음반이 있다.
“우리는 매우 자주, 하늘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기뻐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고, 그분의 엄위로우시고 전능하신 임재 앞에 경외함으로 서 있다는 사실은 잊어버리는 듯 하다.”-달린 첵(호주 힐송교회, 세계 최고의 워십리더)
본서에 따르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하나님에 대한 친밀함, 이 둘 모두를 놓치지 않는 경배를 배워야 한다. 루이 기글리오(패션 컨퍼런스 책임자)는 말하기를, 경배의 자리에서 우리는 사랑 안에 있는 동시에 경외감을 느끼며, 낮게 머리를 숙였으면서도 높이 들어올려지는 것을 경험한다고 했다.
엎드림은 크신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나온다
저자에 따르면 고개를 들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주님을 경배하며 고개를 숙이고 땅에 엎드리게 된다. 우리가 엎드려 경배하는 것은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주님을 경배하며 머리를 조아린다. 우리가 경배하는 자세는 우리 자신과 하나님에 관하여 무언가를 말해준다. 두 손을 드는 것은 우리 영혼이 찬양 가운데 높이 뻗어나가고 있다는 것과 고귀하신 하나님이 그렇게 높임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심을 나타낸다.
기쁘게 춤을 추는 것은 감사로 충만한 마음을 대변한다. 동시에 그것은 우리가 흠모하고 찬양하는 그 분이 이 기쁨의 근원이 되신다는 고백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할 때,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행동은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반영하는 열쇠다(21쪽). “하나님께서 계시하시고 우리는 반응한다. 하나님께서 비추시고 우리는 반사한다.” 엎드려 경배하는 것은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에 감격하는 마음에서 흘러나온다. 엎드려 경배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낮아진 겸손한 심령의 자세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전적인 항복으로 낮추는 것이다.
요한 계시록을 보면 사도 요한은 영광 중에 계신 예수님을 대면한다. 에수님의 눈은 불꽃같이 빛나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처럼 찬란하게 빛난다. 주님을 뵈올 때 요한은 “그 발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되었다(계 1:17). 요한 계시록 7장에서도 엎드린 예배자들을 볼 수 있다.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계 7:11).
에스겔도 하늘이 열리는 다른 경험을 기록하고 있다. 선지자 에스겔은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을 본다. "그 사면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곧 엎드리어 그 말씀하시는 자의 음성을 들으니라."
우리가 함께 모일 때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로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예배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한다. 우리의 예배에는 기쁨의 외침이 있어야 한다. 동시에 하나님 앞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엎드리는 헌신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온전한 경배를 드리기 위해 언제나 이 두가지 요소를 기억해야 한다.
경배는 경이에 뿌리를 박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우리가 엎드려 경배하는 것은 크신 하나님을 크신 하나님으로 높이는 것이다. 엎드림은 크신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나온다. “경배는 경이에 뿌리를 박고 있다”(35쪽). 경이감없이 경배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경배를 경배되게하는 것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한 놀라움이요 경이감이다. 하나님에 대한 독특한 인식이 있어야 바른 경배가 이루어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저자에 의하면 하나님은 온전히 순전하시고 유일하시고 독특하시다. 하나님은 어느 누구도 그 무엇도 감히 가까이할 수 없는 분이시며, 지극히 높으시고 영광 중에 거하시는 분이시다. 아무도 그 능력을 알지 못하고 그 지혜를 측량할 수 없다. “그분은 전적으로 영광스러우시다. 그 광채에 필적할 것이 없고, 그 능력에 비길 것이 없다. 그분은 인간 이성의 한계 너머에, 가장 높은 과학적 지성이 닿을 수 있는 곳보다도 훨씬 높은 곳에 계신다. 다함이 없고 측량할 수가 없으며 깊이를 헤아릴 수도 없다. 영원하고 불멸하시며 눈에 보이지 않으신다. 가장 높은 산봉우리와 가장 깊은 협곡도, 선포된 그분의 위대함의 미약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하늘의 반짝이는 별들도 하나님의 충만한 영광의 지극히 작고 희미한 표상에 불과하다”(35, 36쪽). !
우리는 우리 생각보다 작고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보다 더 크시다. 지구에서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별은 약 6천개다. 어디서든 한 번에 볼 수 있는 별의 개수는 2천 개 뿐이다. 은하계만 해도 수천억 개의 별이 있다. 현재 천문학자들은 다른 은하계가 최소 1,400억 개가 더 있다고 생각한다. 그 중 상당수가 우리 은하계보다 규모가 크다고 한다. 과학자들의 눈에 보이는 우주에만, 전세계 모든 해변과 사막에 있는 모래알 개수보다 10배는 더 많은 별들이 있다고 추산한다.
하나님의 놀라운 손길은 그분이 만드신 만물의 가장 작고 세밀한 부분에서도 발견된다. 19세기 말에 태어난 윌슨 벤틀리는 평생 눈을 연구했다. 이 ‘눈송이 박사’는 “이 세상에 똑같은 눈은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벤틀리는 이 ‘깨어지기 쉬운 보석’을 연구하고 사진을 찍는데 거의 50년 평생을 헌신했다. 눈 결정을 찍은 5천 장의 사진을 관찰한 그는 ‘순간의 경이로운 아름다움’이라고 부르며 경탄했다. “현미경 아래에서 나는 눈송이들이 아름다운 기적임을 발견했다... 결정 하나하나는 디자인의 걸작이었고, 그 어떤 디자인도 결코 반복되지 않았다”(108쪽).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피조물의 노래는 도처에 널려 있다.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말하기를, "우리가 우주의 음악을 듣고서 그 아름다운 하모니를 통하여 그 음악의 작곡자를 사랑하게 되는 것, 이또한 창조자의 목적의 일부이다"라고 했다. 하늘 위의 별 하나하나, 땅에 내리는 눈송이 하나하나, 언덕과 들판, 강과 바다, 천군천사들, 살아있는 모든 피조물들이 우주적 찬양과 경배에 참여하고 있다. 시편 19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 19:1). 로마서 1장 20절은 같은 주제를 이렇게 말한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우리가 경배하는 하나님은 신비로 옷을 입으셨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우주와 자연만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찬미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솜씨에 대한 경이감을 갖게 된다. 우리는 인간의 몸에서도 하나님의 정밀한 솜씨를 볼 수 있다. 우리의 심장은 하루에 약 8200리터의 피를 퍼올린다. 우리의 뇌는 1초에 1억개의 자료를 처리할 수 있다. 우리의 귀는 서로 다른 30만 개 이상의 음을 들을 수 있다. 우리의 눈은 약 8백만 가지의 색상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다. 우리 몸의 근육 600개를 모두 한 방향으로 잡아당긴다면, 약 25톤의 무게를 들어올릴 수 있다. 하나님은 크신 분이다. 우리가 엎드려 경배하는 것은 크신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나온다.
“우리가 경배하는 하나님은 신비로 옷을 입으셨다. 그분은 드러내시며 또한 감추신다. 초대하시며 또한 숨으신다”(55쪽). 쉬시지만 결코 주무시지 않는, 우레와 같은 소리를 발하시며 또한 속삭이는, 두려워 떨게 하시며 또한 친구가 되시는, 그분의 진노는 잠깐이나 은총은 평생 지속되는 그런 하나님이시다. 왕들의 하나님이며 거지들의 하나님, 상류층의 하나님이며 극빈층의 하나님, 고아들의 아버지요, 우리의 약함을 통해 일하시는 분, 거룩한 불꽃으로 타오르시나, 상쾌한 은혜가 충만한 분.
세계가 주목하는 예배자이자 작사작곡가인 저자는 “오늘날 교회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반향해내는 노래와 음악들이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예배하는 공동체로 모일 때마다 하나님의 본성과 성품의 이런 면들을 반영하는 길들을 찾아내야 한다. 노래가 그 한 방법이지만 이것은 단지 음악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는 총체적으로 다가가야 한다. “우리는 거룩한 신적 대면을 위해 우리 마음을 준비하고 있는가? 부끄럽게도 나는 예배팀과 급히 기도를 하고 평상시와 별다를 것 없는 마음자세로 하나님 앞에 설 때가 매우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패스트푸드 영성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예배는 신비와 경이로 뚜렷이 구별되어야만 하는 영적인 제의(祭儀)인 것이다”(60쪽).
하나님은 높고 거룩한 방법으로 우리를 만나신다
저자는 독자에게 이렇게 묻는다: “오늘날 우리의 모임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성실한 제물로 드리도록 돕고 잇는가? 우리의 경배는 우리가 바라고 나아가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그분께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빛 가운데, 순전한 마음으로 나아가야 함을 분명히 전달하고 있는가? 우리의 노래와 우리의 예배 순서는 사람들을 격려하며, 경외함과 숭모함으로 그분 가까이 나아가도록 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경배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길들을 확보하고 있는가?”(62쪽). 마르바 던(Marva J. Dunn)은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하였다: “문제는 우리의 예배 시간이 우리를 하나님의 광채 가운데 침잠케 하느냐이다.”
탁월한 영성작가 존 파이퍼(John Piper)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은 높고 거룩한 방법으로 우리를 만나신다. 그분은 낮고 연약한 방법으로 우리를 만나신다. 그분은 천둥이 치듯 웅장하고 영화로운 방법으로 우리를 만나신다. 그분은 고요하고 친밀한 방법으로 우리를 만나신다. 그분은 복잡한 방법과 단순한 방법, 진노하시는 방법과 자비로운 방법으로 우리를 만나신다”(63쪽).
저자에 의하면, 위르겐 몰트만의 말했듯이,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진노와 관련해서만 하나님의 자비를 알 수 있다. 즉 우리가 그분의 진노를 인식하지 못하는 한 자비를 온전히 깨닫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성경의 진리에는 매우 많은 역설이 있는데, 이러한 하나하나의 아름다운 긴장감이야말로 경배의 신비를 세우는 본질적인 요소들이다.
성경에 나타난 모든 예배자들은 하나님의 엄위하심을 목격한 자들이요 경외함으로 엎드린 자들이다. 훗날 우리는 영원한 나라에서 주님을 경배하며 엎드린 우리 자신을 보게될 것이다. 온 우주의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경배의 마음과 자세를 배우려는 이들에게 본서를 강력 추천한다.
저자 매트 레드맨(Matt Redman)
매트 레드맨은 현재 온 세계가 관심을 갖고 있는 예배자이며,예배 인도자이다.그는 1993년부터 최근까지 "호울 서바이버"(Soul Survivor)에서 예배 인도자로 섬기고 있었고,새로운 세대의 경배 문화를 이끌어 갈 분명한 차기 지도자이다. 매트 레드맨의 노래들은 열정적이고 순수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아는 찬양들이다.정말로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찬양 이 무엇인지 그는 알고 있다.그는 많은 곡을 쓰면서 사람들이 좀더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로 나아가도록 돕고 있으며,교회에서 사 역하는 새로운 예배 인도자들을 이끌고자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특히 "The Heart of Worship"은 수많은 예배 인도자들을 감동시 킨 귀한 고백의 곡이다.그의 음반 속에 담겨진 강력한 메시지와 젊은이들과 함께 호흡할수 있는 찬양들은 거의 죽어 가는 많은 젊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새로운 바람과 놀라운 예배의 부흥을 경험케 하였다. 그는 현재 heartofworship.com의 편집자로 있으며,아내 베스(Beth) 그리고 딸 메이지(Maisey)와 함께 영국 잉글랜드 이스트서식 스 주 브라이턴(Brighton) 근처에서 살고 있다. [Discography] 1997 The Friendship and the Fear 1998 Intimacy 2000 The Father"s Song 2001 Passion for Your Name/Wake Up My Soul(2CD) 2002 Where Angels Fear to Tread - 이 외에 그가 참여한 다수의 집회 실황 음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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