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이 성전을 헐라!
이 성전을 헐라!
성전은 구약과 신약에서 아주 중요한 주제이다. 성전은 유대인과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신앙과 삶의 중심이다. 하나님을 만나고 용서가 이루어지고 화해가 펼쳐지며 공동체에게도 말씀을 주시고 개인에게도 교훈을 주셨던 공간이다. 시간과 공간적으로 성전은 분리되어서 이스라엘을 지배해왔다. 그래서 성전은 단순히 종교적인 의미를 넘어 사회와 경제 그리고 정치적인 영역까지 확장된 거룩한 장소이다.
구약에서부터 아담은 에덴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과 거닐며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사명을 수행해왔다. 모세는 장막을 지어서 하나님께서 백성과 함께하시고 그들을 인도하고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솔로몬은 아버지의 유언을 따라 성전을 지어서 모세때 부여받은 제사장나라로서 사명을 감당해야 했다. 이후 이스라엘은 타락의 역사를 걷게 되어서 성전은 무너지게 되고 스룹바벨이 등장하여 성전을 짓게 된다.
그러나 제2성전기는 스룹바벨로 끝나지 않고 신약을 거쳐 예수님 시대까지 이어져서 헤롯성전이 지어질 때까지 지속된다. 헤롯성전은 자신의 명성과 권위와 영광을 위해 46년간 매해 2만 명의 인원과 노예를 동원하여 화려한 성전을 재건한다. 이것을 통해 유대인으로부터 환심을 사고 경제적인 활동을 성전을 통해 원활하게 하며 정치적인 영향력을 이 거룩한 공간을 통해 펼쳐가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예수님이 나타나서 이 성전이 한 순간에 무너질 것이라 예언한다. 그리고 자신이 삼일 만에 일으키겠다고 단언한다. 유대인들과 로마인들, 여러 종교지도자들과 정치가들이 볼 때 분노를 살 일이다. 46년간 피나는 노력을 통해 지어진 성전이고 모든 경제와 정치가 집약되고 무엇보다 신앙의 중심지로서 이스라엘의 용서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중심과 율법중심의 공간이 사라진다니 이스라엘의 역사와 종교를 뒤집는 발언이다.
이 책은 예수와 성전이라는 주제를 통해 복음서와 바울과 예수님의 사역을 연결시키며 그 차이점과 공통점을 부각시키는 뛰어난 학술서이다. 본서를 통해 유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예수라는 인물을 통해 성전이 어떻게 성취되는지 그 성전의 본연의 의미와 역할과 중요성과 중심성을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예수라는 역사적인 인물이 대제사장으로의 역할을 어떻게 수행하고 성취하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예수님 시대는 이스라엘에게 제2성전기 시대였고 아직도 이방의 압제와 탄압을 받고 있는 유배시대였다. 이스라엘에게 강력하게 요청되었고 간절하게 필요했던 것은 로마로부터의 해방과 자유였고 참된 성전의 회복과 완성이었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유배-회복이 메시아의 도래로부터 이루어진다고 간절히 믿고 있었고, 예수님은 참된 성전이자 참된 대제사장으로서 유배-회복의 내러티브를 완성하실 하나님의 아들과 메시아로 이 땅에 오셨다.
많은 유대인들과 종교지도자들 그리고 정치가와 경제력을 가진 자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볼 수 없었고 이해할 수 없었다. 유대교의 종교체계와 사상으로 예수는 자신의 종교를 해체하고 왜곡시키는 이단자였고 로마의 입장에서 예수는 질서를 무질서로 바꾸고 기존의 카르테를 붕괴시키고 사람을 선동하는 무법한 혁명가에 불과했다.
그러나 예수는 우리가 아는 혁명가와 선동가가 아니다. 경제적인 부와 사회적인 명예를 가져다주는 성전을 어지럽히는 소동가 또한 아니다. 바울의 서신서를 통해 보듯이 예수는 머릿돌이 되시고 모퉁이 돌이시며 다윗의 고백처럼 바위와 산성이시며 다니엘의 예언처럼 뜨인돌이 되신다. 기득권자들은 예수님을 성전을 파괴하고 해체하는 자라고 생각했지만 그가 진정한 메시아와 성전이 되신다고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다.
저자는 유대의 묵시문학과 사도들의 문헌과 복음서와 서신을 통해 예수님이 이루고자 했던 성전의 의미를 탁월하게 그려낸다. 성전은 묵시문학에서도 아주 중요하게 그려지고 있다. 왜냐하면 고난중에 있는 자들에게 새로운 성전이 세워진다는 것은 새로운 왕이 오셔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고 새로운 백성이 자유와 행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묵시문학은 메시아의 도래와 다가올 성전과 종말을 자주 노래한다.
그리고 예수는 고난당하는 자들의 메시아로서 새로운 왕으로 이땅에 임재한다. 예수는 이 땅을 거닐며 자신이 새로운 성전으로서 하나님의 임재와 말씀이 현존한다고 선포한다. 그 묵시론적인 나라가 현재적으로 임하였고 장차 또한 다가올 것이라는 것을 예언한다. 그리고 예수는 자신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예언하며 이 또한 새로운 성전이 임하는 방법이며 구속사를 통해 펼쳐지는 하나님 나라라는 것을 증명한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후 여러 사람들을 만나서 먹고 마시며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자들을 고치신다. 주님은 이러한 사역은 유배-회복의 내러티브 속에 자신이 성전이 되시고 하나님 나라가 즉각적으로 현존하는 것을 나타낸다. 주님의 이러한 사역은 또한 자신이 대제사장으로서 모든 악한 것과 죄를 몰아내고 하나님과의 화해를 가져오는 것이다. 예수님의 성전 되심과 대제사장 되심은 유배-회복의 내러티브 속에서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통로였다.
‘이 성전을 헐라’ 이 말은 유대인들과 기득권자들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암호였다. 그리고 이 말은 평생 꼬리표가 되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도 군사들이 조롱하는 수치스러운 문구가 되었다. 그러나 이 어구만큼 역설적인 어구가 어디 있을까! 성전을 헐라는 것은 헤롯성전을 향한 말이 아니었다. 참된 성전인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예언이고 선언이였다. 그것만이 자신이 참된 성전을 이루고 자신을 따르는 자들이 참된 성전으로 살게 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방법. 예수님의 선택. 예수님의 성전되시고 대제사장 되심.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방법은 성전이 무너지는 것이다. 세상은 성전을 더 크게 더 높이 더 화려하게 짓는 것에 목적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전을 헐으라고 명령하신다. 이 책에서는 그 부분까지는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 하지만 필자는 예수와 성전을 보며 이 명령어까지 어쩌면 현대의 유배-회복의 내러티브 속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보기에 그 명령을 되새겨본다. 예수와 성전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역사적 예수를 통해 펼쳐지는 기독교를 점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