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폭주 기관차같은 정치가들과 그 집단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
해방이 찾아왔을 때 조선총독부는 건국준비위원회 여운형과 은밀한 회담을 통해 조선이 주체적으로 정권을 수립하도록 평화적으로 정권을 이양하는 작업과 폭력사태의 방지 및 일본인의 안전문제를 협의했었다.
그러나 소련의 미국보다 빠른 남하와 미국의 조선에 대한 몰이해는 건준에 대한 부정으로(건국준비위원회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으로 체제를 바꾸었다. 이 인공은 북한의 인민공화국과는 차이가 있다) 결국 민족이 주도하는 주체적인 국가 세워나가는 데에 실패하게 되고 친미적인 이승만과 일제하의 친일부일 세력들이 권력을 잡는 문제를 낳았고 이것은 한국 근현대사에 일제의 부정적 영향력과 후유증이 깊이 잔존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후 반민특위가 철저히 실패하고 박정희 정권 때 한일협정 체결로 과거사 청산의 미비와 일본의 사과가 쉽지 않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고 만다.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이번에 읽은 『용서없이 미래없다』(데즈먼드 투투, 사자와 어린양)를 읽고 우리에게는 왜 그때 남아공 같은 해결이 불가능했을까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이 책은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흑백연합정부가 수립되고 난 후 진실화해 위원회를 이끌었던 데즈먼드 투투의 이에 대한 기록이다. 남아프리카의 정권과 지배층의 극심했던 인종차별과 그에 대해 싸워왔던 넬슨 만델라를 중심으로 한 투쟁의 오랜 역사 속에서 흑백연합정부는 세워졌지만 묵은 갈등을 풀어가며 어떻게 그 후유증을 최소화하며 과거의 문제를 어떻게 청산하느냐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승만 정권하에서 있었던 반민특위가 실패하였던 이유는 35년이라는 짧지 않은 일제통치 기간 중에서 그에 부응했던 이들이 적지 않았고 또 그들이 기득권과 권력을 쥐고 있거나 갖고 있었던 세력이라는 점에서 녹녹치 않은 문제를 갖고 있었다(그런 점에서 프랑스의 부역자 처리가 조금 더 과감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에 의한 점령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진실화해위원회의 노력과 성과는 깊이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직 구정권의 힘이 살아있고 현정권이 아직은 안정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과거사를 지혜롭게 풀어가느냐 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였다. 과거에 상처입고 가족을 잃은 이들을 어루만지고 보상해주면서도 이제는 과거사를 정리하고 나서도 같이 살아가야 하는 이들과의 관계도 생각해야 하는 깊은 숙제가 있었다.
그러기에 이 과거사 청산을 주도하는 위원회를 ‘진실청산’이 아니라 ‘진실화해’라고 붙인 것은 그저 과거를 드러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진실 속에서 가해자의 사죄와 서로간의 화해라는 진정한 의미의 ‘회복적 정의’를 이루기 위함이었다.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지혜롭게 풀어가느냐 하는 것이고 이러한 과정이 결코 쉽지 않기에 어떤 형태로 이것을 이끌어가건 가해자와 피해자 양쪽에서 비난이나 공격을 받기 쉽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는 진실을 밝히면서도 남아공이 함께 걸어갈 수 있도록 그 중심을 잡아가며 위원회를 이끌어가는 무게감 있는 뚝심과 멘탈을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며 존경스러웠고 부러웠다. 혼란스러운 우리나라의 정권 상황과 위기를 바라보며 과연 우리에게는 이것이 불가능하기만 한 걸까 하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우리나라의 정치가들은 물론 교회지도자들도 꼭 일독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이 책을 읽고 이제는 유아기적 정치를 벗어나야 한다는 바램을 갖기 때문이다.
추신: 우리나라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있다.